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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31화 (431/670)

# 431

귀환 마교관

431화

“하악, 하악, 하악!”

자운룡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이 피에 젖은 그의 모습은 마치 혈귀 같았다.

땀과 섞인 핏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고 자상을 입었음에도 치명상은 피한 것인지 움직임에 있어서 어색한 점은 없었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시체들이 즐비했다.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마령교도들의 시체도 있었고, 멸마관 무인들의 시체도 있었다.

목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대부분 치명상을 입어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는 자들이었다.

당이협과 위검종도 한쪽에 쓰러져 있었는데,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지금 이곳에 서 있는 사람은 딱 세 사람 뿐이었다.

자운룡과 여곤, 그리고 옥마단의 부단주였다.

여곤이 침음을 흘리고는 자운룡을 노려보았다.

“이런 식으로 반역을 저지르다니. 미쳤소?”

“미쳤지. 내 제자를 제물로 받칠 때부터 이미 미친 거였지.”

자운룡이 쓴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자, 여곤이 코웃음을 쳤다.

“흥! 아직도 괴물이 된 그깟 계집을 못 잊어서 이렇게 허우적거리니…!”

“더러운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마라!”

자운룡이 일갈을 터뜨리더니 바닥을 차고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쒸이이이잉!

까앙!

갑자기 그림자가 나타나 자운룡의 검을 받아내자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터져 나왔다.

“크읏!”

촤아아악!

여곤의 앞을 막아선 자가 뒤로 미끄러지며 울컥 피를 토해냈다.

그는 바로 옥마단 부단주였다.

“방해 마라!”

자운룡이 소리치며 다시 일격을 가하자, 부단주가 얼른 허리를 젖혀 피하더니 몸을 빙글 돌려 일장을 뻗어 왔다.

퍼엉!

“크윽!”

자운룡이 입술을 질끈 씹고는 주춤 물러나다가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해냈다.

“쿠웨에엑!”

검을 바닥에 거꾸로 꽂은 채 지팡이삼아 디뎠다.

검붉은 핏덩이가 한 움큼 나왔다.

“정신 차리시오! 은마단주!”

옥마단 부단주는 고함을 버럭 내지르면서도 스스로 의미 없는 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정신을 차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옥마단원들 상당수가 자운룡의 검에 죽어 나갔다.

이제 와서 정신을 차린들 그가 저지른 일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냥 순순히 죽어 달라고 소리쳤어야 맞는 말이리라.

자운룡이 호흡을 가다듬고는 부단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단주가 움찔 거리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상처 입은 맹수라 할지라도 숨이 붙어 있는 한 위험한 법이다.

그 맹수가 선공을 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어리석은 짓.

“단주께서 먼저 저지른 일이니 원망은 하지 마시오!”

일갈을 터뜨린 부단주가 바닥을 차고는 재빨리 쏘아져 나갔다.

찰나, 자운룡이 미끄러지듯 달려들더니 몸을 낮게 깔면서 검을 대각선으로 올려 베었다.

슈컥!

“크악!”

그야말로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아직도 어디서 저런 힘이 남아 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부단주는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하아, 하아, 하아…!”

자운룡은 거칠게 호흡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여곤이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자운룡을 노려보더니 나직이 읊조렸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소?”

“이미 숱한 후회를 했다.”

“미쳤군. 존야께서…”

타앗!

자운룡이 다시 바람처럼 움직였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여곤이 하려는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들을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젠장! 미친놈 같으니라고!”

여곤이 욕지거리를 뱉어내면서 검을 앞세웠다.

쩌엉!

“크윽!”

요란한 금속성과 함께 여곤이 멀찍이 튕겨 나갔다.

‘아직도 이런 힘이…!’

여곤은 내심 놀라면서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가 얼른 손을 뻗으며 외쳤다.

“결빙구!”

퍼카앙!

얼음 덩어리가 생성되면서 자운룡의 검과 부딪쳤다.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한기가 자운룡의 전신을 음습했다.

움직임이 둔해지자 여곤은 재빨리 검을 내지르며 자운룡의 심장을 노려 갔다.

쒸에에에엑!

‘됐다! 죽어라, 놈!’

마령공과 검술을 조합한 것은 역시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헙!”

여곤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자운룡이 검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마주쳐 오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라면 자신의 검이 자운룡의 심장을 뚫긴 하겠지만, 자신 역시 목이 날아가 죽고 말리라.

“동귀어진을? 이런, 미친…!”

여곤이 말을 마저 잇기도 전에,

푸욱!

슈컥!

그의 검이 자운룡의 심장을 뚫었고, 직후 머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툭, 데굴데굴…

츄아아아아!

머리를 잃은 여곤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더니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헉, 헉, 허억… 크웁, 쿠웨에엑!”

자운룡은 다시 검을 거꾸로 꽂아 지팡이처럼 디디고는 한 사발의 피를 토해냈다.

그는 가슴에 검을 꽂아 넣은 채로 비틀거리며 돌아섰다.

마침 저만치 쓰러져 있던 사내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자운룡에게 절룩거리며 다가왔다.

등부형이었다.

“자네가… 마령교도였다니… 믿을 수가 없군.”

“미안하게 됐소.”

자운룡이 쓴 웃음을 지으며 대꾸하자, 등부형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찌 그리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지?”

“선배가 순수해서 그렇소.”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선배라 불러 주는 건가?”

자운룡이 좋을 대로 생각하라는 듯 피식 웃어넘겼다.

등부형의 말대로 자운룡은 이제 숨이 끊어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무릎을 굽히지 않았다.

문득 등 뒤에서 들리는 기척에 자운룡이 힘겹게 돌아서며 검을 앞세웠다.

검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침 숲속 공터로 들어서던 무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가왔다.

“맙소사, 난리도 아니군.”

“무랑…?”

무랑이 자운룡과 등부형에게 다가오더니 혀를 찼다.

그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여곤의 머리를 주워 들었다.

“이렇게 엄청난 짓을 저지르다니. 자네도 참 어지간하군.”

무랑의 말에 자운룡이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요?”

“내가 있어서 안 될 건 무엇인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다 끝났으니.”

자운룡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무랑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정녕 이런 짓을 하고도 후회는 없는가?”

“곧 죽을 마당에 후회를 한들 무엇 하겠소? 다만…”

자운룡의 시선이 저만치 쓰러진 능소소에게 향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짓던 그녀가 지금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운룡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조금 더 일찍 저지르지 못한 게 후회스러울 뿐이오.”

“그렇군. 그걸로 됐네.”

“무슨…?”

무랑이 불쑥 손을 뻗더니 자운룡의 심장에 꽂힌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다음 순간,

쑤우우욱!

츄아아아아아!

피분수가 터지면서 자운룡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핏물이 온 세상을 덮는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

자운룡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얼른 가슴을 더듬어 보니 상처로 벌어졌어야 할 가슴이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 테지?”

무랑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 보니 무랑이 여곤의 머리 대신 커다란 구슬을 들고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거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 자운룡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여긴…?”

틀림없이 관주전 안마당이었다.

매설란이 정자 앞에 서 있었고, 당이협을 비롯한 멸마관 무인들이 자신을 완전히 포위한 채 검을 앞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라도 자신에게 달려들 태세로 잔뜩 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침 곁에 있던 등부형이 화들짝 놀라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헉! 이건 도대체…?”

그가 황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랑도사를 보고는 물었다.

“무랑도사님!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겁니까?”

무랑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들이 총관님께 와서 서신을 내밀며 보고했을 때, 내가 술법을 걸어 두었네.”

“술법을…? 왜죠? 아니, 그럼 지금 제가 겪은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허상일세.”

무랑의 말에 등부형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자운룡 역시 멍하니 서 있다가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술법의 대가라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하긴 이 정도나 되니 사비강 관주가 이 늙은이를 극진히 아끼는 것 아니겠나?

한데 우습게도 무랑의 술법에 당해서 괘씸하다는 생각보다는 능소소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됐다.

차츰 이성이 돌아온 자운룡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우리가 서신을 내민 후에 술법을 걸었다는 건… 이미 날 의심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그랬지. 사실 위검종이 간자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네.”

“어째서 알고 있었소?”

“자네는 모르겠지만, 관주님께서 자네를 봤다는군.”

“나를…?”

자운룡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자, 무랑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며칠 전 관주님이 자네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더군.”

**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고 합니다.”

사비강이 진중한 표정으로 무랑을 돌아보았다.

무랑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알아듣게 말해 보게. 그러니까 자네는 진즉 위검종을 의심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 내가 의심하는 건 그가 아니오. 위검종은 확실히 사공을 익힌 무인일 뿐이지.”

“그럼 대체 무슨 이야기를… 자네, 설마…?”

무랑이 뭔가 짐작이 가는 듯 말끝을 흐리자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의심하는 건 자운룡 교관이오.”

“자운룡 교관이…?”

“사실 그를 본 적이 있소.”

“어디서?”

“몽계에서.”

무랑이 눈을 크게 떴다.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지다니.

사비강은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정류광의 몽계에서 소울비드를 들고 달리던 남녀.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자운룡이었다.

물론, 몽계의 자운룡은 사비강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비강은 그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소울비드가 든 상자를 가지고 달리던 남녀 중 한 사람이었소.”

“그 사실이 틀림없다면, 자운룡 교관이 마령교에서 심어 놓은 간자라는 말이군.”

“그럴 거요.”

“한데 존야는 왜 그 소중한 소울비드를 자운룡 교관에게 맡긴 건가? 직접 지니고 있지 않고?”

“말했다시피 소울비드에 들어 있던 바리탄 후작은 존야의 몸을 화신으로 삼았소. 즉, 그 두 사람이 상자를 가지고 갈 때는 그저 흡혼충의 군집이었을 뿐이었지.”

“그 말은….”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 아마도 키메라가 될 후보가 아닐까 싶소.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인 자운룡이 이곳에 있으니 키메라가 될 자는….”

“그 여인이겠군.”

사비강이 무랑을 돌아보았다.

“그렇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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