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
귀환 마교관
429화
“이게 뭐하는 짓이지?”
위검종이 주변을 둘러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그를 둘러싼 멸마관의 교관들과 조교들이 형형한 살기를 피워 올렸다.
등부형이 한 걸음 나서며 소리쳤다.
“네놈이야말로 그간 멸마관에서 무슨 짓을 한 거냐?”
“몰라서 묻나? 생도들을 가르치지 않았나?”
위검종이 냉랭하게 대꾸하자 등부형이 코웃음을 쳤다.
“하! 물론 그러시겠지. 그러면서도 관주님의 행적 하나하나를 낱낱이 마령교에 보고도 했을 테고!”
“뭐?”
위검종이 미간을 구기며 되묻자, 등부형이 서신 뭉치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이러고도 발뺌할 작정인가! 내가 네놈의 방에서 찾아낸 증거들이다!”
위검종이 눈살을 구기더니 흩날리는 서신 중 한 장을 낚아챘다.
서신의 내용을 대략 훑어본 그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모함을 당했군.”
“흥! 어련하실까? 네놈이 그런 핑계를 댈 줄 알았지.”
이쯤 되자 당이협도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위 교관. 우리와 함께 관으로 돌아가셔야겠소. 자세한 건 차차 설명합시다.”
“싫소.”
“뭣이?”
“이 역시 사파에 대한 편견이 아닌가? 누군가가 날 모함한 것이라면 쉽게 벗어던질 수 있는 올가미가 아닐 터. 순순히 따라갈 순 없지.”
“역시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건가?”
당이협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냈다.
스르릉.
그러자 그의 뒤에 선 다른 교관들과 조교들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기에 눌리지 않겠다는 듯 위검종도 검을 뽑았다.
당이협이 미간을 좁혔다.
“기어이 피를 봐야겠단 거요?”
“필요하다면. 그게 무인의 길 아니겠는가?”
“어쩔 수 없군. 순순히 협조하지 않겠다니, 강제로 끌고 갈 수밖에!”
당이협을 비롯한 교관들과 조교들이 일제히 투기를 끌어올렸다.
위검종 역시 진득한 살기를 피워 올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다음 순간,
타앗!
위검종이 먼저 움직였다.
“헛!”
화들짝 놀란 등부형이 얼른 검을 앞세웠다.
까앙!
청명한 금속성에 이어 등부형이 휘청거리자, 위검종이 그대로 날아올랐다.
“크웃!”
등부형이 얼른 양팔을 교차하면서 막으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위검종은 그의 정수리를 꾸욱 밟더니 그대로 허공으로 도약하는 것이 아닌가?
팟!
“큭! 이놈…!”
적에게 머리를 밟힌 치욕감에 등부형이 이를 빠득 갈면서 돌아섰다.
하지만 이미 위검종은 벌써 쫓아가기도 힘들만큼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잡아라!”
당이협이 소리치자, 교관들과 조교들이 일제히 위검종의 뒤를 쫓았다.
위검종이 힐끗 뒤를 돌아보는 찰나였다.
쒸엑! 쒸엑! 쒸에에엑!
어디선가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화살 세 대가 매섭게 날아들었다.
휘리릭!
위검종이 얼른 몸을 뒤틀면서 날아드는 화살을 피했다.
츄팟! 팟!
세 자루의 화살 중 두 자루가 그의 어깨와 가슴팍을 찢으며 날아가 나무기둥에 박혔다.
잠시 주춤거린 틈을 이용해 당이협이 암기를 날려 왔다.
“달아나지 못한다!”
슉! 슈슉슉!
암기 수십 자루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위검종이 혀를 차고는 검은 회오리바람처럼 회전하며 날아올랐다.
따다다다당!
츄팟! 파파파팍!
“크읏!”
“윽!”
위검종이 튕겨낸 암기들이 오히려 다른 교관들과 조교들에게 위협적으로 날아갔다.
촤아아아앗!
회전을 멈춘 위검종이 바닥에 둥근 원을 그리면서 미끄러졌다.
주변으로 자욱한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때마침 단리정이 이끄는 조교들이 위검종의 배후로 내려서면서 완전히 포위를 했다.
위검종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변을 살폈다.
완벽한 포위.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졌다.
마침 지켜만 보던 등부형이 삿대질을 하며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
“넌 이제 독안에 든 쥐다! 그만 포기하고 순순히 자백해라! 이 간자 놈아!”
위검종이 씹어뱉듯이 답했다.
“나는 간자가 아니다.”
“그러니 그건 같이 가서 얘기합시다.”
당이협이 다시 표정을 풀고는 회유하듯 말을 건네 왔다.
위검종이 잠깐 생각에 잠긴 듯 주변을 살폈다.
이대로 빠져나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순순히 따라가자니, 누가 쳐놓은 지도 모를 올가미에 걸려 버둥거릴 게 뻔하지 않은가?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역시 일단은 따라가야 하려나?’
그때였다.
슈슈슈슈슈슈슉!
옥빛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리면서 교관들과 조교들을 완전히 포위하는 것이 아닌가?
멸마관 무인들은 물론, 위검종조차 영문을 몰라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마침 옥의 무인 중에서도 얼굴을 온통 옥빛으로 칠한 사내가 저벅저벅 걸어 나오더니 위검종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고생하셨소. 늦어서 미안하오.”
위검종이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옥면인을 보았다.
‘이거야말로 제대로 걸렸군.’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데,
“역시! 네놈이 마인이었구나! 끝까지 발뺌하더니, 결국 이런 함정을 파놓고…!”
“시끄럽다! 이것들 모두 쓸어버려!”
등부형이 내뱉는 말을 가로지르며, 옥면인이 버럭 외쳤다.
“존명!”
순간 사백 명에 달하는 옥마단원들이 일제히 멸마관 무인들을 향해 마기를 뿌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당이협이 얼른 암기와 독을 뿌려대며 위검종을 노려보았다.
“위 교관! 정녕 간자였단 말이오?”
“나는 아니라고 했소.”
“하면 이 상황을 어찌 설명하시겠소!”
위검종이 뭐라고 하려는 찰나, 옥마단원 하나가 당이협을 향해 살수를 뻗어 왔다.
“헙!”
츄아앗!
당이협이 얼른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옆구리에 기다란 자상이 새겨지고 말았다.
이제는 노닥거릴 여유가 없었다.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위검종은 인파에 묻혀 제대로 찾아볼 수도 없었다.
대신 숲속은 옥마단과 멸마관 무인들이 마구 뒤섞여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곳곳에서 비명과 기합성이 난무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런 아수라장을 먼발치의 나뭇가지 위에서 지켜보는 자가 있었으니….
“이걸로 멸마관은 정리가 되겠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사람은 바로 자운룡이었다.
그는 저만치 멸마관 무인들을 휩쓰는 여곤을 가만히 응시했다.
확실히 그는 강했다.
멸마관 무인들이 여곤을 집중 공격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쪽은 자신들이었다.
살기등등한 그의 두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가 품은 야욕이 여기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자운룡은 조금 전 여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거사를 치르기 전에 하나만 묻지.”
“무엇이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
자운룡의 질문에 여곤은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그 생각뿐이오?”
“그래도 한때 나를 따르던 아이였다.”
“쯧… 지금쯤 그 괴물은 금면께서 잘 사용하고 있을 거요. 사비강을 잡기 위한 도구로 말이오.”
자운룡의 표정이 흠칫 떨렸다.
그의 눈빛이 전에 없이 싸늘하게 식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운룡이 아니라 은면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
“은면. 정신 차리시오. 본교의 무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본교를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잊었소? 하물며 그런 괴물 따위야….”
슈우웃, 콰악!
순간 자운룡이 손을 뻗어 여곤의 목을 움켜잡았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지 마라. 그 아이는 내 제자였다.”
여곤이 자운룡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말을 꺼냈다.
“쿡쿡. 어찌 그리 정이 많으시오? 그래서야 거사를 제대로 치를 수나 있겠소?”
여곤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한참이나 맴돌았다.
자운룡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이걸로 됐다.”
자운룡이 나직이 읊조리며 돌아섰다.
그런데 그가 막 걸음을 떼려고 할 때였다.
“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유난히 고막을 찔러 왔다.
어쩌면 돌아서기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능소소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자운룡이 흠칫거리고는 시선을 다시 돌렸다.
마침 능소소가 옥마단원들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옷가지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내상마저 입은 것인지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확실히 뭔지 모를 분위기가 닮았다.’
은면인이 가만히 입술을 씹었다.
다시 또 오래 전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
“사부님!”
느닷없는 고함소리에 자운룡이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해맑은 표정을 짓는 유정(劉貞)이 자운룡을 빤히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히 하셔요?”
“아… 아니다. 그보다 무슨 말을 했느냐?”
“지금 어디에 가는 건지 여쭈었습니다.”
유정이 방긋 웃으며 대꾸했다.
미소가 무척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반면 자운룡은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갈 곳이 있다. 본교가 널 필요로 하는구나.”
“본교에서요?”
“그렇다.”
유정은 더 궁금한 것 같았지만 묻지 않았다.
“정아.”
“네?”
“불안하느냐?”
“왜요?”
“조금 전에 널 데리고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느냐?”
“그건 그냥 궁금해서 여쭤 본 거였어요. 사부님이 함께 있는데 왜 불안하겠어요? 전 사부님과 함께 있을 땐 아무것도 불안하지 않아요!”
유정이 다시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자운룡은 그런 그녀의 두 눈을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하고 시선을 외면했다.
그렇게 자운룡은 유정을 데리고 어느 동혈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따라 한참이나 들어가자 제법 너른 공동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백면인이 뒷짐을 진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이 아이군요. 확실히 자연 친화력이 좋을 것 같군요. 대법이 성공할 것 같습니다.”
백면인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유정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 웃음이 어딘지 섬뜩하였기에 유정은 슬그머니 자운룡의 뒤에 다가가 섰다.
자운룡은 그런 유정의 태도를 모른 척하며 백면에게 말했다.
“잘 부탁하겠네.”
“걱정 마십시오. 최고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기간은 얼마나…?”
“이 년 정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꽤나 길군.”
“참으십시오. 인내 끝에 얻는 열매가 달콤한 법이지요.”
백면인의 희미한 웃음에 자운룡은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꺄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철문 안쪽에서 들렸다.
자운룡이 앞을 가로막은 백의 마인들을 향해 일갈했다.
“비키라고 하지 않았더냐!”
“죄송합니다.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단주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자운룡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당장 비키지 않으면 네놈들 모두 죽여서라도 들어가겠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자중하십시오!”
백의 마인들이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대답하자, 자운룡은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그때 다시 철문 안쪽에서 치솟는 비명.
“끼야아아아아악!”
“이런 젠장! 정아! 괜찮으냐? 이 개새끼들! 당장 비켜라!”
차아앙!
자운룡이 검을 뽑아 들자, 백의 마인들이 표정을 굳히고는 저마다 검을 뽑아 들었다.
차차차아앙!
“실수하시는 겁니다!”
“흥! 실수는 네놈들이 한 거다!”
자운룡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 나가려는데,
끼이이이익…!
철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무슨 일인가?”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 교주와 백면인이 함께 나서고 있었다.
자운룡이 교주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으며 포권했다.
“교주님! 정아를 보러 왔습니다! 만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교주 곁에 서 있던 백면인이 한숨을 내쉬며 한 걸음 나섰다.
“왜 이러십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래서야 대법이 온전하게 진행되겠습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대법 중에는 면회가 불가하다고.”
“그 아이가 고통스러울 거라는 말은 없지 않았나!”
“생각과 달리 고통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만, 그만큼 더 큰 성과가 있을 겁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만.”
교주의 묵직한 음성이 자운룡의 말을 가로질렀다.
자운룡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교주를 돌아보았다.
“교주님!”
교주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존야의 뜻을 거역할 셈인가?”
자운룡이 입술을 쿡 씹는데,
“꺄아아아악!”
다시금 열린 철문 안쪽에서 유정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은면이 흠칫거리자, 백면인이 수하들을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뭣들 하느냐! 어서 문을 닫지 않고!”
끼이이익, 철컹!
철문이 닫히자 자운룡이 주먹을 꾹 말아 쥔 채 몸을 가늘게 떨었다.
교주의 손이 무릎 꿇고 있는 은면의 어깨에 닿았다.
“참아라. 이 모든 것이 대업을 이루기 위한 위대한 걸음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