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26화 (426/670)

# 426

귀환 마교관

426화

바깥에서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놈이 정도맹을 끌어들였습니다!”

백면인이 문을 벌컥 열면서 들어와 소리쳤다.

금면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중얼거렸다.

“대어를 잡으려고 했더니, 피라미들까지 떼로 몰려들었군.”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흐음. 대어를 낚기 위해서라면 미끼를 아끼지 않아야겠지. 화령마(火靈魔)를 풀게나.”

“알겠습니다.”

백면인이 대답을 하고는 곧바로 방을 나갔다.

금면인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사비강. 드디어 보게 되겠군.”

그가 마기를 풀풀 풍겨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누구냣!”

금면인이 돌연 천장으로 솟구치며 검을 뽑아 들고는 강기를 뿜어냈다.

쩌까앙!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터져 나왔다.

“큭!”

천장에서 은신하고 있던 복면인이 신음을 터뜨리며 떨어져 내렸다.

쉭쉭!

촤아악!

금면인이 재빠르게 검을 휘두르자,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복면인이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크윽!”

복면인이 엉거주춤 일어나려는 순간,

푸욱!

금면인의 검이 복면인의 뒷목을 뚫으며 입으로 튀어나왔다.

“끄억…!”

찢어져 나간 복면 사이로 쩍 벌어진 입이 드러났다.

걸쭉한 피를 한 바가지 흘린 복면인은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진 복면인의 등에 ‘살(殺)’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을 확인한 금면인이 미간을 흠칫 구겼다.

‘살막이…?’

어째서 살막이 이런 곳에 나타난단 말인가?

굳이 따지자면 살막은 사파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엄밀히 따진다면 그들은 정사지간의 조직이다.

청부만 주어진다면 정파든 사파든 가리지 않는 신비 조직 중 하나.

한데 어째서 이들이 정도맹과 함께 본교를 노린단 말인가?

그야말로 정도맹과 살막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이해할 수가 없군.”

설마하니 사비강이 살막까지 포섭했단 말인가?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어쨌거나 살막이 개입했다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정도맹이 들이닥친 것도 이해가 간다.

이 정도 대규모 전투에 살막이 투입되었다면….

‘확실히 만만하게 볼 놈이 아니야.’

금면인이 검신에 묻은 피를 한 차례 털어내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미처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금면인의 호신위인 귀혼(鬼魂)이었다.

금면인을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따르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조차도 살수의 기척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금면인은 귀혼을 이해했다.

살막의 일급 이상의 살수가 작정을 하고 잠입했다면, 아무리 귀혼이라도 눈치 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정면으로 싸움을 걸어온다면 귀혼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듯 숨어들어 목표물을 제거하는 실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순간만큼은 본인들의 무공을 훨씬 넘어서는 자들까지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다만 이번에는 먹이를 잘못 노린 게지.’

금면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방심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군. 나가서 살막의 개입을 알리고 주의를 주도록 해라.”

“복명!”

대답과 동시에 귀혼의 기척이 사라졌다.

**

푹!

“커어억!”

서걱!

툭, 데굴데굴…

두 명의 마인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면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가슴에 ‘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무인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 분지는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고함소리와 비명이 차올랐고, 비릿한 혈향이 공기 중에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그런 가운데 살막의 살수들은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였다.

그들은 주로 우두머리 급 마인들만 노렸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 속에서 마령교의 수장들은 살막의 살수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적들을 상대하는 것과 동시에 수하들까지 지휘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표적으로 삼고 달려드는 살수들까지 신경 쓰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덕분에 마령교는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뒤늦게 살막의 개입이 알려졌지만, 그때까지도 마령교도들은 반신반의했다.

정도맹이 살막과 합공을 해왔다? 왜? 어째서? 어떻게?

삶과 죽음이 순식간에 갈리는 상황 속에서도 그런 의문이 떠오를 정도로 말이 안 된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마령교의 수장 무인들은 죽어 가면서야 비로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죽인 자의 옷에 새겨진 ‘살’이라는 글자를 분명히 보았기에.

그렇게 죽어간 마령교의 수장 마인의 시체 위로 두 사람이 나타났다.

“정말 정신없군요.”

추량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의 몸은 이미 여기저기 상처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나타나는 모든 적은 추량이 맡아서 처리했다.

그래도 정사마 대전에서 실전을 겪어서인지 아직까지는 버틸 만했다.

“이제부터 넌 빠져라.”

“예? 그럼 사부님은…”

“초대장을 보낸 녀석을 만나야지.”

사비강의 시선이 분지 중앙에 자리 잡은 언덕 위의 정자로 향했다.

그는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의지가 저곳에 있음을.

어떤 식으로든 저곳에서 결판을 내야할 것임을.

**

능운파는 정도맹 무인들을 이끌고 적진을 종횡무진하며 거침없이 휩쓸어 갔다.

그를 따르는 정도맹 무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능운파의 일검에 오두막집 하나가 박살이 나고, 그의 일장에 떼로 달려들던 마령교도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곤 했다.

특히 능운파가 이끄는 무인들 중, 맹주 직속 부대인 승룡대(昇龍隊)는 총 열두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들 하나하나가 초절정 고수였다.

때문에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로지 마인들의 시체만 즐비했다.

그런 정도맹의 활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으니….

“이대로라면 맹주가 북서로(北西路)로 치고 들어오겠군.”

백마단의 일대주(一隊主)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이대주(二隊主)가 고개를 끄덕였다.

“북서로에 매복을 하세.”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

다른 대주들 역시 동의했다.

새하얀 백의를 갖춰 입은 그들은 바로 백마단의 십대 대주들이었다.

총 이백 명으로 이루어진 백마단이 이번 전투에서 맡은 임무는 바로 맹주를 유인하는 것.

열 명의 대주들이 뒤를 돌아보고는 수하들을 향해 수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이백 명의 수하들이 일시에 새하얀 물결이 되어서 좁은 길을 따라 뻗어 나갔다.

그들은 십대 대주를 추격해 올 맹주와 승룡대의 발목을 잡는 역할이었다.

“우리도 가지!”

일대주가 말을 뱉는 것과 동시에 전각 지붕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열 명의 대주들이 경공을 펼치면서 상의를 찢어 벗어 던지자, 백의 안에 새카만 경장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북서로 초입에 도착하자마자 좌우측으로 다섯 명씩 나뉘어서 전각 지붕 위에 매복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을 펼치는 정도맹주는 북서로 진입로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중이었다.

[다들 작전은 제대로 숙지하고 있을 테지?]

일대주의 말에 다른 아홉 명의 대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쇼. 형님만큼이나 똑똑하니.]

막내인 십대주(十隊主)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능운파가 무리를 이끌고 북서로 초입으로 막 들어섰을 때,

[지금이닷!]

일대주가 전음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차며 날아올랐다.

타타타탓!

시커먼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북서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음?”

“기습이다!”

맹주가 고개를 들자, 승룡대주가 경계 태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동시에,

“화염구!”

열 명의 대주들이 일제히 시동어를 외치면서 손을 내뻗었다.

화륵, 화르륵, 화르르륵!

슈슈슈슈슈슉!

뜨거운 불덩이가 손바닥 앞에 맺히는가 싶더니 능운파를 향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콰콰콰콰콰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능운파를 중심으로 시뻘건 불기둥이 치솟았다.

열 명의 대주들이 연이어 시동어를 외쳤다.

“열화폭(熱火爆)!”

꽈과앙! 꽝꽝꽝꽝꽈앙!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불기둥이 치솟았다.

“맹주님!”

“이놈들!”

생전 처음 보는 싸움 방식에 승룡대원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백마단 대주들을 향해 부딪쳐 갔다.

까가앙! 따당!

한데 일합을 겨룬 백마단 대주들이 곧바로 몸을 빼내는가 싶더니, 멀찍이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는 사이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가 사라지면서 능운파의 상태가 차츰 드러났다.

‘통했을까?’

백마단 일대주가 일말의 기대를 걸고는 지켜보았지만, 곧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푸쉬이이…!

연기가 사라지고 나자, 웃통이 완전히 찢겨져 나간 능운파의 모습이 멀쩡하게 나타난 것이다.

상체 몇 군데에 그을음이 묻어 있었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탄탄한 근육질은 유달리 강인해보이기만 했다.

‘치잇! 호신강기로 막아낸 건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막을 줄은 몰랐다.

적어도 두어 군데 화상은 입으리라 생각했건만.

능운파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아무래도 내가 우습게 보였나보군. 이딴 잔재주로 덤벼들다니.”

구오오오오…!

서서히 기수식을 취하는 능운파의 전신에서 엄청난 살기가 우러나왔다.

일대주가 주춤 물러나며 말했다.

“후, 후퇴하라!”

“후퇴!”

타다다닷!

열 명의 대주들이 일제히 몸을 돌리며 바닥을 차는 순간,

“쥐새끼 같은 놈들!”

능운파가 천둥 같은 고함을 터뜨리더니 검을 횡으로 그었다.

쑤콰아아앙!

거대한 강기가 길목을 휩쓸며 뻗어 나갔다.

파파파파파!

강기의 너비가 어찌나 큰지 양쪽에 늘어선 건물 벽에 상흔이 새겨질 정도였다.

“헉!”

“치잇!”

열 명의 대주들이 일제히 돌아서며 검을 앞세우고는 강기를 막아냈다.

따다다다다당!

“크아악!”

하지만 모두가 강기를 막아내진 못했다.

막내인 십대주가 비명을 터뜨리며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십대주!”

멀찍이 튕겨 나간 일대주가 얼른 일어나며 소리쳤지만, 목이 절반 이상이나 찢어진 십대주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제길! 계속 달려!”

일대주의 반응에 대주들이 그대로 달아났다.

과연 맹주의 무위는 명불허전이었다.

“이놈들! 서지 못할까!”

맹주를 비롯한 승룡대가 무서운 속도로 대주들의 뒤를 추격했다.

그렇게 길 끝에 다다랐을 때,

[지금이다!]

일대주가 매복해 있는 수하들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찰나,

“우와아아아!”

백의를 입은 마인들이 전각 지붕 위에서 한가득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닌가?

“흥! 가소롭군!”

맹주가 코웃음을 치더니 검강을 일으키며 돌개바람처럼 날아올랐다.

슈카카카카카캉!

연신 불꽃이 터지면서 피가 흩뿌려졌고 비명이 차올랐다.

거기에 승룡대의 칼바람이 파도처럼 이어졌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려!”

승룡대주의 말과 함께 승룡대원들의 강기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슈카가가각!

“크아아악!”

“으아악!”

피와 살점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새하얀 물결은 금세 핏빛으로 얼룩졌다.

아수라장을 뚫고 나온 능운파와 승룡대는 앞서 달리는 아홉 명의 대주를 노리며 다시 달렸다.

그렇게 길목이 꺾어질 때나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백의 무복을 입은 마인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곤 했다.

그때마다 능운파와 승룡대는 거침없이 강기와 검기를 날려대며 적을 휩쓸어 갔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과연 능운파는 ‘정도맹주’라는 지위가 한낱 허울뿐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달아나는 대주들 역시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내심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이제 보니 맹주도 괴물이구나!’

‘저것이 강호에서 패권을 가진 자의 진정한 실력이란 말인가?’

그렇게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어느새 아홉 대주들은 전각들이 둥글게 원형을 이루는 광장으로 들어섰다.

촤아아앗!

발을 미끄러뜨리며 멈춰 선 대주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이제 역습을 가할 때!

마침 원형광장으로 능운파가 들어서자마자,

“지금이닷!”

“뒈져랏!”

“흐아압!”

아홉 대주들이 일제히 기합성을 터뜨리며 검기를 뿌려댔다.

쒸이익! 쒸이이익!

“가소로운!”

능운파가 냉소를 짓더니 그대로 열십자로 검을 휘둘렀다.

쑤쑤아아앙!

두 줄기의 강기가 교차하면서 아홉 대주에게 날아갔다.

파파파파파파파!

“이런 미친…!”

대주들이 기겁을 하며 검을 내세워 막았다.

쩡! 쩌저엉!

“크읏!”

“아악!”

어떤 이는 검을 놓치면서 쓰러졌고, 어떤 이는 검을 쥔 채로 몸이 두 동강 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힘의 차이!

추풍낙엽이 따로 없었다.

손바닥이 찢어진 일대주는 울컥 피를 토하고는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제길…! 내상을…!”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차이가 클 줄이야.

허무하리만치 간단히 당하지 않았나?

뭐, 그래도 이만하면…

저벅저벅.

능운파가 다가오더니 그의 머리를 거칠게 휘어잡았다.

“큭…!”

“나를 상대하려면 너희들의 주인이 나와야 할 것이다.”

“킥킥킥…”

일대주가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새하얀 이 사이로 벌건 핏물이 스며들었다.

“멀리 계신 분 기다릴 것 없소. 크큭. 이제 당신을 죽일 화령마가 나타날 것이니. 애초에 우리 임무는 여기까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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