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21화 (421/670)

# 421

귀환 마교관

421화

카카캉! 땅!

금속성이 연신 터져 나왔다.

이따금씩 파육음과 함께 비명이 솟구쳐 올랐다.

적마단원들은 끈질겼다.

그들은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사비강과 무랑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소란이 벌어진 것을 눈치 챈 마령교도들은 더욱 속도를 높여서 달렸다.

무랑이 적마단원의 머리를 박살내며 소리쳤다.

“저들이 가져간 상자를 확인해야 하네! 분명 광아가 넘긴 것일 게야!”

“먼저 가겠소!”

“알겠네! 곧 따라가도록 하겠네. 하지만 명심하게! 장원에서 멀어질수록 광아의 의식에서 멀어지는 거야! 무의식의 경계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네!”

“알겠소!”

말을 마친 사비강이 자신에게 달려들던 무인의 목을 뎅겅 베어내고는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가느냐!”

적마단원 하나가 다시 배후에서 달려들었다.

동시에 측면에서는 화살 한 자루가 날아들었다.

휘리리릭!

사비강이 몸을 눕히는 것과 동시에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날아드는 화살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배후에서 달려들던 적마단원의 얼굴에 가차 없이 쑤셔 박았다.

콰직!

“크아아악! 내 누우운!”

오른쪽 눈알에 화살이 박힌 적마단원이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얼른 몸을 날려 앞서 장원을 빠져나간 자들의 뒤를 쫓았다.

경신법을 펼쳐 빠르게 달리다 보니 마침 저만치 달려가는 남녀가 보였다.

마침 남자가 힐끔 돌아보더니 소리쳤다.

“제길! 꼬리가 붙었다! 달려라!”

하지만 이미 칠 할 이상의 능력을 회복한 사비강은 그들보다 훨씬 빨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딸랑… 딸랑…

허리춤에 맨 계명종이 울리기 시작한 것.

‘칫! 당장 잡지 않으면…!’

사비강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노옴! 받아랏!”

쉭! 쉭! 쉭! 쉭!

앞서 달리던 무인들이 비수를 꺼내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따당! 땅!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놀려 날아드는 비수를 모두 쳐내고는 그들을 바짝 추격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분명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는데, 모든 움직임이 느리게만 느껴진 것이다.

‘내가 느려진 만큼 저들 역시 느려지고 있다. 의식의 경계에 가까워졌다는 건가?’

그에 대한 대답이라도 하듯 계명종이 아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울렸다.

딸랑! 딸랑! 딸랑!

당장이라도 돌아가라는 듯 계명종은 시끄럽게도 울려댔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든 저 상자를 낚아채야 한다.

사비강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 순간 그는 또 다시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나뭇잎들이 이상하게 꿈틀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눈알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눈을 끔뻑이는 나뭇잎이 사비강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무의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가?’

시공이 급속도로 느려지고 있었다.

반면 계명종은 아까보다 더욱 빠르게 울렸다.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그야말로 고막을 찢을 듯 빠르고 크게 울렸다.

이제 일 장 정도 남았다.

‘저것만 낚아채면 바로 돌아선다!’

생각을 굳힌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꺼내서 날렸다.

쒸에에에엑! 푸욱!

“크억!”

무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상자가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사비강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듯 손을 뻗어냈다.

물론, 몽계였기에 상대는 사비강을 알아보지 못했다.

‘반드시 잡는다!’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마침내 사비강이 상자를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

슈화아아아아아악!

주변이 순식간에 온통 하얀 빛에 삼켜지는 것이 아닌가?

“크읏!”

사비강이 얼른 팔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우뚝 멈춘 채로 얼마나 있었을까?

더 이상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챈 사비강이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야?”

온통 새하얀 빛으로 덮인 세상.

땅도 하늘도 구분이 되지 않는 미지의 공간.

그 한가운데에 사비강이 덜렁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는 계명종이 있었지만, 더 이상 어떠한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

후우우웅!

눈을 감고 서 있는 능소소 앞으로 돌개바람이 느닷없이 일어났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떠올랐다.

잠시 후,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다.

휘이이이이이이잉!

주변으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연무장에 모인 생도들이 입을 딱 벌린 채 능소소를 보았다.

“대, 대단해. 분명 은잠사를 이용한 눈속임도 아니고, 사이한 사술도 아니야.”

“저게… 정령이라는 건가?”

사실 생도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능소소의 몸은 실라페가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잠시간 허공을 부유하던 능소소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섰다.

“와아아아!”

짝짝짝!

생도들이 저마다 박수를 쳤다.

그들 모두 눈을 반짝이며 빛내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능소소가 전담하게 된 정령반이었다.

정령과 친화력이 뛰어날 것으로 판단되는 생도들을 특별히 선별한 다음 능소소가 정령술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정령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친화력입니다. 여러분들이 친화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공을 쌓는 것보다 정신력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각자 본인에게 맞는 정령들과 계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해요. 정령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처음에는 하급 정령과 계약을 맺게 되고….”

생도들은 조곤조곤 이어지는 능소소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 후로 능소소는 실라페를 소환해서 몇 가지 시범을 보여주었다.

생소한 광경을 목격한 생도들은 그저 넋이 나간 채 연신 박수갈채를 이어 갔다.

자연과 친화력이 높은 생도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정령반의 분위기는 언제나 화기애애했다.

노을이 질 무렵, 대략적인 수업이 끝나자 생도들이 흩어졌다.

능소소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단상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우, 내가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니….”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늘 주눅이 들어 있던 생도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

정말이지 사비강을 만나고 나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관주님… 정말 감사해요.”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관내의 언덕을 올려다보았다.

저 언덕의 별채에서 사비강은 폐관 수련을 하고 있을 터였다.

물론, 사비강은 실제로 폐관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다른 교관들과 조교들에게는 그리 알려져 있었다.

마침 누군가 그 앞에 나타나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아… 자운룡 교관님.”

“지쳐 보이시네요.”

자운룡이 생글 웃으며 말을 건네 왔다.

그가 단상에 걸터앉는 걸 보며 능소소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네. 사실 좀 지쳤어요. 하지만… 보람이 있어요.”

“그럼 다행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겠지요. 그럴수록 그 누군가도 많은 것을 배워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 테고요.”

자운룡이 뭔가를 떠올리듯 하늘을 보며 읊조렸다.

능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나로 인해 변하고 달라질 인생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 인생들이 모두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니까.”

“그렇군요.”

자운룡이 왠지 모를 씁쓸한 미소를 그리면서 중얼거렸다.

“변하고 달라져도 후회하지 않을 인생들이라….”

“적어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제 가르침으로 인한 피해는 없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자운룡이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능소소를 보았다.

“운이 좋군요. 정령반 생도들은.”

“예? 어째서…?”

“이렇게 좋은 스승을 만났으니까요.”

“아… 과찬이에요. 전 아직도 한참 멀었는걸요.”

“능 조교님은 이미 훌륭한 스승입니다. 매일 생도들에게 놀림이나 받는 멍청한 저와 비할 바가 아니죠.”

자운룡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속없는 웃음을 짓자, 능소소가 벌떡 일어나면서 미간을 좁혔다.

“누가 교관님을 조롱하는 거죠? 정말 너무하네요! 그런 생도라면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 해요!”

“…….”

자운룡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이지… 발끈하시는 모습마저….”

“닮았나요?”

“네… 죄송합니다. 능 조교님을 보면서 자꾸 다른 사람을….”

“아니에요. 저를 보고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거든요.”

자운룡이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며 능소소를 가만히 보았다.

한참 후에야 자운룡이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모기처럼 가늘어 바로 옆에 있는 능소소도 듣기 힘들 정도였다.

“저어… 그… 오늘 저녁에 시간이 된다면….”

그때 능소소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사비강 관주님 덕분이에요.”

“네?”

뜬금없는 소리에 자운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능소소가 어딘지 그리움을 담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이런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게 된 것도… 다 사비강 관주님 덕분이죠.”

“아… 그분이 그렇게 대단하신가요?”

말을 꺼내면서도 자운룡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자신이 그토록 예찬하던 사비강이 아니었던가?

한데 능소소가 이렇게 말하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질투가 섞여 버린 것이다.

하지만 능소소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네.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저 따위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만큼 훌륭하신 분. 제 인생의 모든 것을 바꿔 놓으신 분. 그래서 너무나 감사한 분이죠.”

“그렇군요. 하긴 우리 관주님이 정말 대단하시죠.”

자운룡이 활짝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이자, 능소소가 눈을 반짝이며 바짝 다가왔다.

너무 가까워진 거리 때문인지 자운룡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능소소는 그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요.”

“……?”

“전 지금도 사비강 관주님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게 되면 가슴이 설레요. 아! 물론 이성으로 흠모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닌가? 맞나? 아무튼 제가 느끼는 것은 그 이상의 뭐랄까… 경외감? 뭐, 그런 거예요.”

“그렇군요.”

“아무리 힘들고 위험한 일이 생겨도… 전 사실 사비강 관주님만 함께 있다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그래서 지난 번 토벌 작전 때도 전혀 무서울 게 없었답니다. 다만… 관주님이 행방불명이 되었을 땐 너무나….”

능소소가 다시는 생각하기 싫다는 듯 침울한 표정이 되어 양 팔뚝을 쓰다듬었다.

자운룡이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관주님이.”

“예? 어째서요?”

“그냥… 누군가에게 그토록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요.”

그러자 능소소가 다부진 표정이 되어서는 벌떡 일어났다.

노을빛이 그녀의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의기소침해질 필요 없어요! 교관님도 분명히 그런 스승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럴…까요?”

자운룡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짓자, 능소소가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어찌나 세게 두드렸는지, 자운룡이 흠칫 놀랄 정도였다.

“암요! 당연하죠! 저도 노력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비강 관주님을 보듯, 제게 배운 생도들이 저를 그렇게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자운룡 교관님은 저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시니, 분명히 가능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조금 힘이 나는군요.”

“생도들이 짓궂게 구는 것도 전부 자운룡 교관님이 편하고 좋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러니 힘내세요, 교관님! 언제나 제가 응원할게요! 아자!”

능소소가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소리쳤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자운룡이 웃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아자!”

능소소가 배시시 웃으며 옆에 나란히 앉았다.

“이럴 때 사비강 관주님이 곁에 있었더라면 좋은 말씀을 해주셨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폐관 수련 중이시니….”

능소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산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네, 분명 더 강해져서 돌아오실 거예요.”

**

“돌아갈 수가 없다. 젠장!”

주변이 온통 새하얀 공간.

사비강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제길! 도저히 돌아갈 방법을 모르겠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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