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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20화 (420/670)

# 420

귀환 마교관

420화

장원의 주변은 검붉은 기운의 장막으로 덮여 있었다.

검붉은 기운이 마치 거대한 실드처럼 보였다.

장막의 안쪽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풍경이 이지러져 있었는데, 어딘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봉인된 기억일세. 저 장막은 바로 그 봉인 때문에 생겨난 게지.”

“들어갈 수는 있는 거요?”

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네. 다만 봉령귀(封靈鬼)를 상대해야만 하지.”

“봉령귀?”

“봉인된 기억에 강제로 접근하려고 하면, 봉령귀가 나설 걸세. 그 봉령귀를 뚫고 나면 다시 저 장원에서 번을 서는 무인들을 피해서 잠입해야겠지.”

“뭐 어쨌든 들어갈 수 있단 말이군. 갑시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갔다.

검붉은 장막으로 들어설 때는 뭔가 묘한 감촉이 전신을 훑으며 지나갔다.

장원까지는 삼십여 장이 남아 있었다.

사비강이 막 걸음을 옮기려는데,

슈르르르르!

사비강 앞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연기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덮어 쓴 자였는데, 얼굴은 눈코입이 뚫린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봉령귀인가!’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쒸에에엑!

느닷없이 봉령귀가 손을 들어 올려 내려쳤다.

찰나지간 봉령귀의 손에 거대한 낫이 나타나면서 사비강의 목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쉬이이잇!

“칫!”

사비강이 혀를 차고는 얼른 물러나며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까앙!

슈르르르!

금속성이 터져 나오자마자 거대한 낫이 다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신 사비강의 좌우와 배후에 또 다른 봉령귀들이 홀연히 나타났다.

“조심하게!”

돌아보니, 무랑 역시 봉령귀에 둘러 싸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었다.

“별 재미있는 것들이 다 있군!”

찰나, 사비강이 발검술을 이용해 베르타스를 횡으로 그었다.

차아아앙!

검기가 휘몰아치면서 뻗어 나가자, 주변을 둘러쌌던 봉령귀들이 이번에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비강은 얼른 몸을 날려 무랑을 에워싼 봉령귀들에게 검기를 날려 보냈다.

쒸아아악! 쒸아악!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치자 봉령귀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스러져 갔다.

“갑시다!”

사비강과 무랑이 장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랑이 소리쳤다.

“장원 안으로 진입하기만 하면, 봉령귀는 더 이상 따라붙지 않을 게야.”

하지만 봉령귀는 그럴 일 없을 거라는 듯 끊임없이 눈앞에 나타나며 두 사람을 덮쳐 갔다.

그때마다 사비강은 검을 휘둘러 봉령귀를 베어냈다.

가장 힘든 것은 베는 감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녀석들은 치명상을 입으면 연기처럼 사라졌는데, 그러다 보니 있는 힘껏 휘둘렀을 때 그 관성 때문에 지나치게 체력이 소모됐다.

그렇다고 적의 공격을 막지 않으면 어김없이 상처를 입었다.

마치 다크번의 날개 뼈에 베였을 때처럼 타들어 가는 고통이 있었다.

마구 베르타스를 휘두르며 나아가던 사비강은 순간, 우뚝 멈추고 말았다.

“이것들…!”

정말이지 징글징글할 정도로 많은 봉령귀들이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마치 장원 안쪽으로는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다는 듯 빽빽하게 도열한 봉령귀들.

무랑이 침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봉인력이 강하군.”

“다른 방법은 없소?”

“없네. 정면돌파 외에는.”

“그럼 어쩔 수 없지. 다 없애 버릴 수밖에!”

말을 마친 사비강이 바닥을 탁 차고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쉬에에에엑!

그의 검이 앞을 막고 있던 봉령귀의 심장을 향해 짓쳐들었다.

봉령귀도 인간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기에 치명상을 입히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았다.

목을 베어내거나 심장을 꿰뚫어야만 했다.

푸푸푸푹!

일렬로 서 있던 봉령귀 몇이 그대로 베르타스에 꿰뚫리면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슈르륵! 슈르르르륵! 슈르르르륵!

봉령귀들이 사이한 기운을 뿜어내며 사비강에게 마구 달려들었다.

“마법을 써도 되겠소?”

“안 될 건 뭔가?”

오히려 무랑이 반문하자, 사비강이 장원 쪽을 힐끔 가리켰다.

혹시라도 소란이 일어나면 번을 서는 무인들이 이쪽을 수상히 여기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그제야 무랑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무릎을 탁 치고는 말했다.

“깜빡하고 말을 안 했군. 봉령지에서는 어떤 소란이 일어나도 밖에서 알 수가 없네.”

“자주 깜빡하시는군.”

사비강이 볼멘소리를 하고는 양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익스플로전!”

슈르르르, 퍼퍼퍼퍼퍼펑!

온통 시커멓게 날아들던 봉령귀들이 속절없이 터져 나가면서 검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과연 무랑의 말대로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는데도 장원은 조용하기만 했다.

다만, 봉령귀는 사라진 만큼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지긋지긋하군!”

사비강은 이를 뿌득 갈고는 무랑에게 달려가 그를 어깨에 들쳐 멨다.

“뭐하는 겐가?”

“가만히 있으시오!”

사비강이 순간 허공답보를 펼쳐 솟아오르더니 바닥으로 손을 뻗으며 다시 소리쳤다.

“파이어 필드!”

화아아아아악!

순간 봉령지 전체가 시뻘건 불기운을 품으면서 화염의 대지로 변해 버렸다.

슈르르르르륵…!

봉령귀들이 연기가 되어 흩어져 갔다.

사비강은 그대로 허공을 가로지르며 장원을 향해 날아갔다.

마침내 장원 담벼락 가까이에 내려선 사비강에게 봉령귀들이 또다시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불사지체였다.

쉬컥! 쉬컥! 쉬쉬쉭!

거대한 낫이 마구 날아들면서 사비강의 전신을 덮은 실드에 박혀들었다.

무랑이 얼른 뛰어내리면서 봉령귀들을 향해 쌍장을 뻗었다.

“하앗!”

퍼퍼퍼퍼펑!

요란한 폭음이 터지면서 봉령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이윽고 두 사람이 봉령지를 완전히 벗어나 장원의 담벼락으로 올라오자, 바글거리며 달려들던 봉령귀들도 더 이상은 막지 못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군.”

“이제 정류광을 찾을 차례군.”

“가세나.”

두 사람은 허리를 잔뜩 낮춘 다음 담벼락을 따라 빠르게 달렸다.

한참을 이동하던 두 사람은 다시 옆 전각의 지붕 위로 올라섰다.

장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전각 주변으로는 유독 많은 무인들이 번을 서고 있었다.

사비강이 무랑을 돌아보았다.

“동서로 흩어져서 칩시다.”

“알겠네.”

무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날렸다.

서쪽을 맡은 사비강이 최대한 은밀하게 본당으로 접근했다.

어느 순간, 그가 밤새처럼 날렵하게 날아들었다.

쉬이이잇! 푹!

“컥!”

번을 서던 무인은 자신이 왜 죽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조금 떨어져 있던 곳에서 주변을 감시하던 무인이 흠칫거리고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비강이 날린 비수가 훨씬 빨랐다.

쉬이이잇, 푹!

“컥!”

목이 그대로 꿰뚫린 무인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사비강은 더욱 빠르게 이동했다.

본당 지붕에서 번을 서는 무인들이 모두 열둘.

사비강이 맡을 자는 여섯 중에서 네 명이 남았다.

사비강은 그림자처럼 움직여 남쪽 처마 끝에 서 있는 무인의 배후로 다가갔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무인이 휙 돌아서는 순간,

“슬립.”

사비강이 손을 뻗으며 마법을 캐스팅하자, 무인이 그대로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사비강은 그를 소리 나지 않게 받쳐 안은 후에 조심스럽게 눕혀 두었다.

이제 남은 자는 셋이다.

본당의 구조는 매우 복잡했기에 지붕의 모양도 꺾여 있는 곳이 많았다.

덕분에 잠입하기에는 오히려 수월한 점이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세 명을 한꺼번에 처리해야겠군.’

꺾인 지붕의 모양 때문에 초반 잠입은 쉬웠지만, 이제는 사각지대가 없어진 셈이다.

사비강은 가운데에 선 무인의 뒤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양손으로 비수를 날려 좌우의 무인들을 제거한 뒤에 바로 앞의 무인을 슬립 마법으로 잠재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창!

“……!”

무랑이 잠입하기로 했던 동쪽 지붕에서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세 명의 무인들이 흠칫거리고는 돌아서는데,

“엇!”

“헉!”

“누…!”

쉬이이잇!

그들과 눈을 마주친 사비강이 재빨리 경신법을 펼치면서 새처럼 날아갔다.

쉬컥!

바로 앞에 선 무인의 머리를 날려 버린 사비강이 그대로 베르타스를 내던졌다.

쒜에에에엑!

강기를 품은 베르타스가 화살보다도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됐다!’

아직은 이기어검을 사용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몸의 감각은 칠 할 정도로 회복한 듯했다.

쉬컥! 푹!

무인의 목을 베고 날아간 베르타스가 또 다른 무인의 가슴에 박혀들었다.

폐를 관통당한 것인지 가슴에 베르타스를 박아 넣은 무인은 헛숨을 몇 차례 들이켜다가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마침 무랑이 지붕 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좀 까다로웠군.”

“덕분에 들킬 뻔 했소.”

“뭐, 결과적으로 잘 되었으니 다행 아닌가?”

사비강이 대답 대신 손을 뻗자, 베르타스가 휙 날아와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무랑이 기왓장을 들어내는데, 마침 인기척이 들려 두 사람이 얼른 몸을 낮췄다.

본당에서 남녀 두 사람이 빠져나오더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저자는…?’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리고 가만히 보는데, 무랑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오.”

사비강은 남녀가 멀어지자, 지붕의 목재를 잘라냈다.

강기를 이용했기에 목재는 부드럽게 잘렸다.

두 사람이 지붕 아래로 잠입하자, 곧 본당의 실내가 훤히 드러났다.

사비강이 눈살을 구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설마… 늦은 건가?]

그때 사비강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혹시 방금 전에 나간 자들이…?]

[봉령귀들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모양이군. 쫓아가세!]

결국 어렵게 잠입한 보람도 없이 다시 돌아 나가야 할 상황.

두 사람은 빠르게 빠져나와 지붕 위로 다시 올라갔다.

저만치 장원을 벗어나서 걸어가는 남녀가 보였다.

그중 남자의 손에 상자가 들려 있었다.

‘저건가!’

타닷!

사비강과 무랑이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장원을 벗어날 때쯤이었다.

“웬 놈들이냐!”

마침 장원으로 복귀하던 적마단원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날카롭게 외쳤다.

사비강이 눈살을 구겼다.

“적면…?”

분명 적마단원을 이끌고 있는 자는 적면인이었다.

앞서 자신이 그를 죽였음에도 또 나타난 것이다.

무랑이 말을 붙였다.

“이곳은 몽계야. 자네가 저치를 제거했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실제 기억으로 복구될 수밖에.”

사비강이 귀찮은 표정을 짓더니 적면인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세 번씩이나 죽이긴 싫다. 비켜라.”

“뭔… 개소리를…!”

쉬커억!

찰나지간 한 줄기 섬광이 적면인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적면인의 머리가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바닥에 툭 떨어졌다.

츄아아아아!

분수처럼 피를 뿜어낸 몸통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쫓지 마라. 귀찮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는 달려 나갔다.

무랑이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적마단원들이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저, 저 쳐 죽일 놈들을 잡아!”

누군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적마단원들이 일제히 사비강과 무랑을 뒤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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