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
귀환 마교관
419화
‘지, 지독한… 놈!’
꼬박 반 시진이 흘렀다.
사비강은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았다.
한 식경 전부터는 생포하려는 계획도 포기했다.
수장 복면인은 주위에 널브러진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서른 명 중 열아홉 명이 사비강에게 당해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한편 사비강은 온몸을 난자당해서 서 있는 것조차 기적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전신이 피에 젖은 혈귀.
사비강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후욱, 후욱, 후욱!”
사비강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이제는 정말이지 손만 대도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수장 복면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손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저건… 괴물인가?’
수장 복면인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절대 쓰러뜨릴 수 없는 괴물과 맞닥뜨린 기분.
“대, 대주님…! 어떻게 하죠?”
옆에 선 수하 하나가 물었다.
수장 복면인은 짜증이 팍 솟구쳐 올랐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이 멍청아!’
그가 내심을 억누르며 씹어뱉듯 말했다.
“신호탄 쏴.”
“아, 알겠습니다!”
복면인이 품에서 주섬주섬 신호탄을 꺼냈다.
하지만 그가 하늘로 던져 올리기도 전에,
쒸에에엑!
“헉!”
사비강이 귀신처럼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어딜!”
수장 복면인이 일갈을 터뜨리며 사비강을 향해 칼을 휘둘러 갔다.
쒸이잉, 콰창!
그대로 떨어져 내린 칼날이 기왓장을 깨트렸다.
기왓장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퍽. 퍼퍼퍽!
사비강은 날아드는 기왓장을 모두 쳐내지 못했다.
몇몇 개의 파편이 그대로 그의 몸에 박혀 들었다.
“카악, 퉷!”
침을 뱉자 피가 섞여 있었다.
삐이이익, 팡!
마침내 하늘로 던져 올려진 신호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수장 복면인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그 패기는 인정해 주지. 하지만 이제 넌 죽은 목숨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사방에서 마기가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곧이어,
슉, 슈슈슈슈슉!
붉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속속 내려섰다.
그 중에서도 얼굴을 시뻘겋게 칠한 사내, 적면인이 저벅저벅 다가오더니 수장 복면인을 보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죄송합니다!”
수장 복면인이 털썩 무릎을 꿇자, 적면인이 그의 뺨을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
짜악!
“한심한 놈.”
적면인이 싸늘하게 중얼거리고는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혈귀가 된 사비강이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적면인을 보더니 히죽 웃었다.
“오랜만이야.”
“나를 아는 놈이더냐?”
적면인이 미간을 잔뜩 구기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잘 알고 있지. 내 손으로 죽인 놈이니까.”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몽계’라는 게 나쁘지 않군. 그리운 사람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적면인은 혀를 차면서 수장 복면인을 노려보았다.
“이런 멍청한… 저 미친놈 하나를 처리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수장 복면인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적면인은 사비강이 확실히 미친 것이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이 멀쩡하다면 생전 처음 보는 자신에게 저런 말을 건네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다음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생각은 무너졌다.
“어머니는 잘 계시더냐?”
“……!”
적면인이 미간을 좁히고는 꿈틀거렸다.
사비강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낳아 준 정보다 기른 정이 깊은 법이지 않겠어?”
“이… 개새끼… 너 정체가 뭐냐?”
“말했잖아. 가까운 미래에 널 죽인 게 나라고.”
“미친놈에겐 매가 약이지. 숨 한 줄기만 붙여 두어라.”
“존명!”
대답과 동시에 붉은 무복을 입은 마인들이 일제히 사비강에게 날아들었다.
“그래, 얼마든지 덤벼라!”
사비강이 악귀처럼 외치며 적들에게 부딪쳐 갔다.
그의 싸움은 정말이지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저게 무슨 검법이지?’
적면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사비강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비강의 몸에는 상처가 점점 많아졌다.
피츗! 촤아악!
“크으읏!”
사비강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보통의 경우 무랑의 말처럼 현실에서는 범인이더라도 몽계에서는 무공의 고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워낙 초인적인 힘을 가졌던 사비강이다 보니, 몽계에서는 오히려 현실보다 못한 수준의 실력으로 고생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가 실전을 겪으면서 빠르게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푹!
“커억!”
푹! 푹! 푹!
“으아악!”
사비강은 그야말로 신들린 사람처럼 움직였다.
둔탁해 보이는 움직임은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을 찾아갔고, 검로도 전보다 훨씬 매끄럽게 이어졌다.
적면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정말이지 난데없이 나타난 방해꾼이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에 대해서 자세히 안다는 듯이 말하는 태도며.
“맘에 안 드는 놈! 비켜라!”
적면인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바닥을 차고는 날아갔다.
쒸에에엑!
그의 검이 사비강의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찰나, 사비강이 자세를 슬쩍 낮추더니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듯 손을 뻗어 오는 것이 아닌가?
적면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떻게 갑자기 이런 움직임을…?’
분명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마치 싸움을 하는 도중에 점점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지 않은가?
콰악!
“크억!”
아래에서 불쑥 솟구쳐 오른 사비강이 적면인의 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졸지에 사비강에게 목이 졸린 적면인이 숨이 막혀 버둥거렸다.
“단주님!”
“이런 쳐 죽일 놈이!”
타다닷!
적마단원들이 일제히 살기를 뿜어내며 사비강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사비강이 왼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바닥을 활짝 펼쳐 보였다.
그리고 적면인을 본 채로 읊조리듯 말했다.
“최선을 다해 날 죽이려고 했어야지. 호기심이 너무 강해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니까.”
“무슨…?”
“인페르노.”
사비강이 마법을 캐스팅하자, 그의 손바닥 앞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화르르르르르르륵!
“쿠아아악!”
“으아아악!”
가장 앞장서서 달려들던 적마단원은 그 자리에서 새카맣게 타버려 즉사했고, 그 뒤를 이으며 달려들던 자들은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지붕 아래로 추락했다.
적면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도대체 네놈은…”
“같은 말을 하는 것도 지겹다. 죽인 놈을 또 죽이는 것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 발목을 잡겠다면 제거할 수밖에.”
“크이익! 네놈은 누구냐! 네놈이 나를…!”
적면인은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사비강이 손에 힘을 주는 순간,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털썩!
시체가 된 적면인을 내버려 두고는 사비강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스으으읍, 후우우우!”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기운이 우러나왔다가 다시 스며들었다.
‘제법 감각이 돌아오고 있군. 이제 초절정의 초입쯤 되려나?’
이 정도면 빠른 적응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는 주변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은 적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슈르르르르…!
적마단원들과 복면인들이 갑자기 잿더미처럼 변하면서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이 흠칫거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딸랑… 딸랑…
허리춤에 맨 계명종이 울렸다.
의식의 경계라는 뜻.
‘정류광이 여길 떠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점점 지워지고 있다는 건가?’
어쨌거나 이곳에 계속 머물 수는 없는 노릇.
‘무랑을 찾아야겠군.’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는 마을 어귀로 내달렸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오히려 힘은 넘쳐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계명종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무랑이 표기한 열십 자 모양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산속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깊은 숲속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챙챙! 채챙!
저만치 수풀 너머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사비강이 얼른 달려가 보니 무랑이 검은 무복을 갖춰 입은 자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몽계를 자각하는 무랑은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지만, 적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기에 제법 힘든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퍽!
무랑의 발길질에 흑의인 하나가 나가떨어지자, 얼굴을 검게 칠한 흑면인이 이를 부득 갈면서 소리쳤다.
“저 영감탱이 목숨은 필요 없다! 죽여 버려!”
“존명!”
흑의인들이 일제히 마기를 끌어올리면서 도검을 휘둘러 왔다.
무랑이 몸을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사방팔방으로 장을 뻗어냈다.
퍼퍼퍼퍼펑!
“크아악!”
“흐아악!”
흑의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흑면인까지 쳐내지는 못했다.
무수히 날아가는 흑의인들 사이에서 흑면인이 불쑥 튀어나오며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뒈져라! 영감탱이!”
“헛!”
무랑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흑면인의 검이 더욱 빠르게 따라붙었다.
그의 검봉이 무랑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
까앙!
청명한 금속성이 터져 나오면서 흑면인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관주…!”
“좀 늦었소.”
사비강이 대꾸하고는 그대로 바닥을 차며 흑면인에게 쏜살같이 날아갔다.
쉬이이잇!
“어림없다!”
흑면인이 일갈을 터뜨리며 검을 내리쳤다.
쩌카앙!
순간 흑면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기세 좋게 내려친 검신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나면서 깨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순간,
푸욱!
베르타스가 그의 심장을 꿰뚫으면서 등 뒤로 튀어나왔다.
“커억…!”
“단주님!”
“으아아! 죽어라앗!”
흑의인들이 일제히 사비강에게 날아들었다.
촤아아아악!
순간 사비강이 그대로 베르타스를 횡으로 그으면서 돌개바람처럼 휘몰아쳤다.
서커커커컥!
“크아아악!”
“우아악!”
비명이 난무하면서 달려들던 흑의인들이 쓰러져 나갔다.
살아남은 흑의인들이 벌벌 떨면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저, 저 괴물은 도대체 뭐야?”
“어디서 저런 놈이…!”
사비강이 그들을 둘러보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덤벼라. 시간 없다.”
“이익! 죽엿!”
찰나, 흑의인들이 독기를 품고는 사비강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비강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익스플로전!”
콰콰콰콰콰콰앙!
요란한 폭발이 일어나며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흑의인들은 인육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무랑이 멍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자네… 꽤나 각성했군.”
“아직 멀었소.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사비강이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느 쪽이오?”
“저기 장원이 하나 있더군.”
무랑이 저만치 숲 너머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묘한 기운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