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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16화 (416/670)

# 416

귀환 마교관

416화

촤라라락!

무랑이 정좌한 자세에서 모래밭 위에 막대를 흩뿌려 놓았다.

그 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막대를 집어 들고는 맞은편에 앉은 생도들에게 일렀다.

“이 막대에 알고자 하는 자의 생년월일시를 적고, 뒤편에는 이름을 적는다.”

생도들이 진중한 표정으로 무랑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랑은 정류광의 이름과 그의 생년월일시를 적었다.

“그럼 이자의 보름간 운세를 볼 수 있는데, 만약 상대에게 어떠한 표식이 있다면 그 운세는 더욱 알기가 수월해진다.”

그러자 생도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표식이라는 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라도 좋다. 내가 알고자 하는 상대와 나를 잇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예를 들면… 직접 상대의 몸에 문신을 새겨 주었다거나, 상대에게 장신구를 선물했다거나, 상대의 몸에 상처를 내주었다거나.”

“하면 원수의 운세도 알 수 있습니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상대와 내가 좋은 인연일 때 더욱 정확한 운세가 나온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무랑이 막대를 쥐고 흔들다가 알아듣기 힘든 주문을 읊었다.

막대를 쥔 그의 손에서 신묘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듯했다.

확실히 명문 정파에서 보기에는 어딘지 사이한 사술처럼 느껴지는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멸마관이다.

이미 정사가 조화를 이루어 서로의 출신을 따지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생도들 역시 어떠한 편견도 없이 무랑의 술법을 견식하고 있었다.

마침내 무랑이 주문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손에 쥔 막대를 허공으로 던져 올렸다.

어지럽게 떠오른 막대들이 정점을 찍고는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어떤 것은 모래에 거꾸로 박혔고, 어떤 것은 털썩 누웠으며, 어떤 것은 다른 막대 위에 부딪치고는 튕겨 나가 한참을 굴렀다.

그렇게 떨어진 막대를 무랑이 가만히 훑어보며 말했다.

“막대가 떨어진 위치나 그 모양에 따라 천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눈은 땅을 보되, 혼은 하늘을 보는 것이니라. 그러니 너희들은 천문 시간에도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자의 보름간 운세를 보자면 차분하게 여정을 나선 후, 별 탈 없는 일정을 이어 가다가… 이어 가다가….”

무랑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일그러지더니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생도 하나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전주님. 왜 그러십니까?”

“…….”

“전주님? 혹시 그자의 운세가….”

“쉿. 가만.”

무랑이 전에 없이 굳은 표정으로 주의를 주더니 한참이나 막대를 보았다.

잠시 후 그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예? 전주님 갑자기 어딜…?”

“다들 지난 시간에 알려 준 천문을 다시 한 번 독해하라.”

말을 마친 무랑이 휙 돌아서더니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어리둥절한 생도들을 뒤로 한 채 무랑전을 나서 그대로 관주실로 향했다.

마침 관주실을 나서던 사비강이 무랑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랑도사께서 여긴 어쩐 일이오?”

“문제가 생겼네.”

전에 없이 경직된 표정에 사비강도 표정을 굳히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오?”

“광아가 위험하네. 녀석에게 살이 끼었어.”

“나보고 해결해 달라는 거군.”

“지금 당장이라도 광아에게 가봐야 할 것 같네. 지금도 시간 내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됐소. 내가 움직이면 늦을 리는 없을 거요.”

언뜻 자만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무랑은 그런 사비강의 태도 때문에 오히려 안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

“배부르게 잘 먹었소.”

객잔에서 식사를 마친 정류광이 식탁에 돈을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객잔을 나서자마자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는 거지에게 철전 한 닢을 던져 주고는 발길을 옮겼다.

이제 이틀만 더 가면 무한에 도착할 터였다.

마을을 벗어난 그가 관도를 따라 산기슭으로 접어들 때였다.

저벅저벅.

낯선 사내가 숲을 헤치며 관도로 나타났다.

얼굴을 온통 자줏빛으로 칠한 사내였다.

정류광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는 주춤 물러났다.

“누구요?”

“저승사자지.”

자면인이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섬뜩한지 정류광은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머리털까지 쭈뼛 곤두서는 것 같았다.

마침 자면인 뒤로 여덟 명의 사내가 또 나타났다.

‘마기…!’

그제야 이들이 마령교에서 온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기억이 봉인된 정류광으로서는 이들이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자신에게 진득한 살기를 뿜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부님이 급히 날 부르신 것도 이들과 관련이 있겠구나!’

그렇다면 조금 더 서둘렀어야 했다.

하긴 그렇다고 해도 무한에 도착하기 전에 이들과 만났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정류광이 입에 손가락을 넣고는 휘파람을 삐익 불었다.

자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구조 요청… 뭐 그런 건가?”

그의 짐작이 맞았다.

잠시 후 한 무리의 무인들이 바람처럼 달려와 정류광의 주위를 등지고 에워쌌다.

그들 중에는 앞서 객잔을 나설 때 철전을 던져 주었던 거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가 이들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실제로 정류광이 그에게 철전을 던진 것은 호위를 맡기는 신호이기도 했던 것이다.

자면인이 한쪽 입매를 말아 올렸다.

“소매치기에 거지, 도둑놈까지. 가지가지 모였군. 이러면 마치 내가 중원의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기분이 들잖아?”

그가 목을 우두둑 꺾으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 거침없는 기세에 잠깐 움찔거렸던 수장이 하오문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쳐라!”

하오문도들이 자면인을 향해 일제히 날아갔다.

하지만 자면인의 무공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다.

“아무래도 내가 우습게 보였나보군!”

그가 광기서린 웃음을 흘리더니 귀신같은 보법을 밟으며 하오문도들의 틈을 헤집고 다녔다.

쉬익, 푹! 쉿! 푹! 푹푹!

자면인은 길이가 한 자 정도 되는 검을 양손에 쥐고 있었는데, 장검보다는 짧고 단검보다는 길어 보였다.

두 자루의 검이 하오문도들 사이를 어지럽게 날아다니자, 비명과 핏줄기가 허공에 마구 솟구쳐 올랐다.

대략 스무 명 남짓한 하오문도들이 모두 쓰러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면인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귀신같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피가 마구 튀어 오르는 와중에도 그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면인의 움직임은 깔끔했다.

정류광은 오랜만에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 전 흑운성에서 사비강의 무위를 보았을 때, 그는 막연한 공포심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생하진 않았다.

사비강의 무위가 막강하긴 했지만,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눈앞의 이 자면인은 분명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꺼억…!”

철전을 받았던 거지가 입을 쩍 벌린 채 신음을 흘리다가 푹 고꾸라졌다.

자면인은 검을 뽑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류광을 보았다.

거지가 손을 뻗으며 간신히 말을 흘렸다.

“총관…님. 도망… 컥!”

자면인은 말을 뱉는 거지의 머리통을 발로 무참히 짓이겨 버렸다.

그러는 사이 바닥에 진법을 그려 술법을 준비하던 정류광은 온몸이 돌처럼 굳어 버린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미 늦었어!’

더 이상 발버둥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제길! 이렇게 죽는 건가?’

자면인이 혀로 칼날을 핥으며 히죽 웃었다.

“그러게 혼자 죽으면 좋았을 것을. 왜 애꿎은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고 지랄이냐?”

“원, 원하는 게 뭐요?”

“이미 말했잖아. 네 목숨이라고.”

“대, 대체 내게 왜 이러는….”

“시끄러워. 넌 그냥 뒈지면 된다!”

말을 마친 자면인이 바닥을 탁 차며 쏘아져 나갔다.

눈 깜빡할 사이에 코앞에 다다른 자면인이 그대로 정류광의 미간을 향해 검을 뻗어 왔다.

쒸이이잉!

‘제길! 끝이구나! 이렇게 허무하게!’

정류광은 날아드는 검봉을 보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때,

탁!

지금쯤이면 미간에 구멍이 나고도 남았을 시간.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통도 없다.

정류광이 식은땀을 흘리며 두 눈을 뜨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예기를 뿜어대는 검봉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데, 그 검신을 누군가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류광이 저도 모르게 반색하며 소리쳤다.

“사, 사비강 교관…! 아니, 관주님!”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사비강이 자면인의 검을 가볍게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자면인 역시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뭐…? 사비강? 네가 그 사비강…?”

자면인의 표정이 경악에서 점점 희열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그는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로 신중을 기하는 금면인의 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고작 정류광 하나의 목을 따기 위해 자신이 직접 움직인 게 영 자존심 상한 것이다.

거기에 혈살팔귀까지 붙였으니.

그런데…

‘이거야말로 기다리던 떡밥이 찾아온 셈이 아닌가?’

자면인은 모처럼 피가 끓어올랐다.

지금까지 이렇게 강한 자를 적으로 상대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자신의 광기를 마음껏 펼쳐 보인 적이 언제였던가?

오래 전 금면인을 수세로 몰아붙일 뻔했던 때를 제외하곤 십 수 년 만이다.

그가 돌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네가 그 사비가…!”

퍽, 슈우우우욱, 꽈다앙!

사비강의 주먹질에 속수무책으로 날아간 자면인이 바위를 부수며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차차차차앙!

뒤에 서 있던 혈살팔귀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는 마기를 끌어올렸다.

사비강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싸늘하게 읊조렸다.

“이빨 드러내지 마라. 다 뽑아 버리기 전에.”

“이런 씹탱…!”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저벅저벅 걸어오던 일귀가 순간 움찔거리고는 얼음처럼 멈춰 섰다.

찰나지간이었지만 그는 사비강에게 전신이 난자당하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분명 사비강은 가만히 서서 자신을 노려볼 뿐이었음에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가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꼈던 것이다.

험상궂은 표정을 짓던 일귀가 저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도저히 사비강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젠장…! 내가 왜 이러지?’

그때,

부스럭…!

처참하게 구겨져 있던 자면인이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어깨를 떨었다.

“킥킥킥. 크하하하하! 아주 맘에 들어!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교주님이 신경 쓰실 만해! 하지만… 너무 자만하면 안 되지!”

파앗!

자면인이 바닥을 차고는 쏜살같이 날아… 들어야 했는데…,

구구구구구웅!

“크읏!”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한 그가 느닷없이 털썩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혈살팔귀 역시 어금니를 뿌득 갈면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짚고 엎드렸다.

기이이이이잉…!

엄청난 압력이 그들을 머리 위에서부터 짓누르는 듯했다.

“크으으윽!”

혈살팔귀가 입술을 깨물자 피가 뚝뚝 흘렀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바닥에 이마를 찧고 말았다.

자면인 역시 버티지 못하고 끝내 사비강을 향해 머리를 찧었다.

그야말로 절을 올리는 자세.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자면인의 눈동자에 핏대가 섰다.

‘크으윽! 이런 개새끼! 도대체 뭔 사술을…!’

하지만 그건 사술이 아니라 사비강이 펼친 그래비티 마법이었다.

천해경의 경지에 오른 후로 사비강은 딱히 시동어를 읊지 않아도 곧바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서클의 상승은 없었다.

어쨌거나 시동어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발전이었다.

“살고 싶다면 그 상태로 꿈쩍하지 말고 대가리 조아려라.”

말을 마친 사비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정류광을 이끌고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이런 시건방진 새끼! 죽인다아!”

파바바밧! 타다닷!

자면인을 비롯한 혈살팔귀가 동시에 사비강의 배후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 순간 사비강의 입매가 슬쩍 뒤틀렸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대로 얌전히 대가리 조아리고 있을까 봐 걱정했잖아.”

그러더니 휙 돌아서며 한 차례 손을 휘젓는 게 아닌가?

퀴이이이이이잉!

촤촤촤촤촤촤촤아악!

순간 음속의 진동이 생겨나더니 아홉 명의 무인들을 그대로 덮치면서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

정류광은 허공을 가득 메우며 비산하는 피와 살점들을 보며 턱을 가늘게 떨었다.

손짓 몇 번으로 초절정에 이른 무인들을 파리처럼 죽였다.

이게 사람인가?

“엄… 엄청… 더 강해지셨군요.”

사비강이 무심히 돌아섰다.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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