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10화 (410/670)

# 410

귀환 마교관

410화

“아니, 왜 기회조차 안 주는 거야? 뭐가 문제냐고!”

덩치가 집채만 한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바로 ‘광동팔괴(廣東八怪)’라 불리는 사파 무리 중 삼괴(三怪)였다.

유난히 커다란 덩치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머리 두 개는 더 얹어도 될 만큼 키가 컸다.

하지만 그 앞에 선 귀영단 옥무결(玉無缺)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말했다시피 등급이 상향 조정되었소.”

그는 아까부터 굳은 표정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삼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니미럴! 그러니까 우린 그런 소리 듣지 못했다고!”

“그건 당신들 사정이오.”

“이런 젠장! 우리가 광동에서 여기까지 온 게 헛걸음이 된 셈인데, 어디서 보상받으라는 거야?”

삼괴가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자, 옥무결은 이맛살을 슬쩍 구기면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어쨌든 들어갈 수 없으니 그리 아시오.”

“아오…!”

삼괴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옥무결을 노려보았다.

보다 못한 이괴가 삼괴의 어깨를 다독였다.

“됐다. 그만해라. 어차피 등급이 상향 조정됐으면 방법이 없어.”

“제길! 소환지가 코앞에 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니!”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이곳 치옹산에 올 때까지만 해도 그냥 위험을 무릅쓰고 토벌을 하러 간다는 심정이었다.

한데 막상 출입 자체를 통제하고 있으니, 노다지를 앞에 두고 침만 흘리는 심정이었다.

위험해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저 안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이 들어 있기에 정도맹 얌체 녀석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삼괴가 침을 탁 뱉고는 주위를 힐끔 둘러보았다.

이미 소환지 근처에는 광동팔괴처럼 헛걸음을 한 무인들이 상당수 모여 있었다.

소환지 입구를 지키는 귀영단은 총 스무 명이었는데, 원래 다섯 명이었다가 소환지 등급이 조정되면서 관리자를 추가한 모양이었다.

몇몇 귀영단원들은 항의를 하는 무인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젠장! 왜 이런 것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냐고!”

삼괴가 큰 소리로 투덜거리자, 마침 저만치 서 있던 젊은 사내가 피식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엄연히 규율이 있는 것인데 저리 생떼를 쓰면 어쩌자는 건지. 쯧쯧.”

깔끔한 외모를 지닌 그는 허리춤에 기다란 검을 패용하고 있었는데, 바로 섬서에서 온 북풍정가(北風鄭家)의 소가주 정현웅(鄭賢雄)이었다.

그러자 그의 곁에 서 있던 북풍대주(北風隊主) 비천운(費千雲)이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근본이 없는 것들이니 어쩔 수가 없지요.”

“하긴. 배운 게 없으니 저 난리를 치는 거겠지.”

정현웅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고, 그 목소리는 고스란히 삼괴의 귀에도 들어갔다.

당연히 듣고 가만히 있을 삼괴가 아니었다.

광동팔괴 중에서도 가장 성질이 불같은 그였다.

대번 콧김을 뿜어대면서 북풍정가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는 정현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이, 거기 꼬마야. 방금 뭐라고 했느냐?”

비천운이 눈매를 좁히며 나서려고 하자, 정현웅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대신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엄연히 규율이 존재하건만, 다짜고짜 억지를 부리고 따져대는 것이 꼴사나워서 한 마디 했소.”

“이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삼괴가 살기를 피워 올리는데, 이괴가 먼저 나섰다.

“흥! 엄연히 규율이 있는데도 비굴한 수법까지 써 가며 사정하던 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뭐요? 우리가 언제 사정했다는 거요?”

이번에는 정현웅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괴가 입매를 말아 올렸다.

“내가 못 본 줄 아나? 귀영단원에게 뒷돈까지 찔러 주면서 사정하던데?”

그 말에 주변의 다른 사파 무인들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제 정현웅은 귀 밑까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 무슨 소리요! 그런 적 없소!”

“호오, 정말?”

“모함하지 마시오!”

“그럼 물어볼까? 저 귀영단원은 정중히 거절하던데. 정 억울하면 가서 물어보고.”

“이이익! 더 이상 듣기 싫다! 네놈들이 나를 모함하는구나!”

정현웅이 참지 못하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다른 모두가 듣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사파 놈들이 정파를 욕보이다니!”

일부러 다른 정파 무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발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란이 커지자, 다른 정파 무인들도 관심을 가지면서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거기 무슨 일이오?”

반듯하게 무복을 갖춰 입은 사내가 다가오며 물었다.

척 보기에도 정도 무인이라는 냄새가 났다.

정현웅이 분개하며 말했다.

“이 사파 놈들이 정파를 욕하고 있었소!”

“뭣이? 그게 사실이오?”

사내의 질문에 광동팔괴가 코웃음을 쳤다.

말 잘하는 이괴가 비아냥거렸다.

“사실은 무슨. 난 그저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했을 뿐이오. 저자가 귀영단원에게 뇌물을 찔러 주면서 소환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것을 봤거든.”

“이익! 개소리 작작해라!”

정현웅이 발끈하면서 다짜고짜 검을 휘둘러 갔다.

어차피 말싸움이 길어져 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실제로 그가 귀영단원을 돈으로 매수하려는 시도를 했기에.

아마 과거의 정도맹이었다면 그런 수법이 통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귀영단은 사비강의 직속 조직.

그런 꼼수가 통할 리가 없었다.

한편 정현웅이 검을 뻗어 오자, 이괴가 기다렸다는 듯 쌍장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흥! 이젠 대놓고 무력으로 해결하려 드는군! 무력조차도 형편없는 주제에!”

퍼퍼엉!

장력과 검기가 부딪치면서 커다란 소음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각각 물러나자, 저만치 떨어져 있던 귀영단원이 달려왔다.

“멈추시오! 소환지 앞에서는 비무가 금지되어 있소!”

그러자 이괴가 잘 됐다는 듯 귀영단원을 돌아보았다.

“어디 물어나 봅시다. 이자가 당신에게 뒷돈을 찔러 주었소? 안 주었소?”

귀영단원이 정현웅을 힐끔 보았다.

‘아니라고 해!’

정현웅의 속내가 무색하게 그는 빠르게 인정했다.

“주었소.”

“엇? 진짜다.”

“뭐야? 정말로 뒷돈을 준 거야?”

이쯤 되자 주변에 모여든 다른 정도 무인들조차도 정현웅을 보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정현웅의 얼굴이 더욱 벌겋게 달아올랐다.

귀영단원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받지도 않았소.”

“…라는군.”

이괴가 말을 맺으며 씨익 웃었다.

정현웅이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해서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대체 뭐가 이리 시끄러운 게야?”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사람들이 돌아보니, 대략 스무 명의 무인들이 막강한 기도를 뿜어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깃발을 들고 있었는데, ‘천도(天刀)’라는 붉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엇! 천도문이다!”

“천도문이 여기까지 오다니!”

“요즘 소환지는 다 휩쓸고 다닌다는 그 문파잖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바로 앞까지 다다른 천도문의 장기탁이 길을 막고 있는 이괴를 보고는 눈살을 슬쩍 구겼다.

“비키시오.”

“…끄음.”

광동팔괴가 아무리 광동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파 무리라지만, 요즘 명성을 드날리고 있는 천도문에 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천도문… 강하다.’

특히 무리 가운데에 서 있는 죽립의 노인에게서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괴가 콧잔등을 씰룩이다가 물러나자, 장기탁의 시선이 이번에는 정현웅에게 향했다.

너는 왜 안 비키고 있냐는 듯.

정현웅이 얼른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포권을 취했다.

“안녕하십니까? 천도문주님. 후배, 북풍정가의 소가주 정현웅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서… 용건이 뭔가?”

“예?”

“비키라는 소리를 못 들은 건 아닐 테고. 용건이 뭔가?”

“아, 그것이…”

정현웅이 버벅거리자, 눈살을 찌푸리던 차재강이 냉랭하게 말했다.

“용건이 없으면 비키시게.”

순간 차재강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사나운 기운 때문에 정현웅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고 말았다.

길이 열리자 천도문 무인들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침 소환지 입구를 지키는 옥무결 앞에 다다른 장기탁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환지로 들어가기 위해 왔소.”

옥무결이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아, 천도문주님. 이곳은 현재 등급이 상향 조정되어서 들어가실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상급이었지만 현재는 상급으로….”

“내가 자네한테 그런 걸 물었던가?”

다시 한 번 죽립 아래에서 흘러나온 서늘한 목소리.

꿀꺽.

날카로운 기도에 압도된 정현웅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물러났다.

‘제길! 뭐 저렇게 까칠한 거야? 같은 정파끼리!’

정현웅이 내심 이를 까득 갈고는 물러났다.

마침 옥무결이 대답했다.

“저자의 말대로요. 이곳은 출입할 수 없소.”

그러자 천도문주 차재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중상급이라고 들었네만.”

“최근에 상향되었소.”

“그럼 한 번 정한 등급을 다시 바꿀 수도 있단 말인가?”

“그렇소.”

“그럼 잘 됐군. 다시 바꾸면 되지 않겠나?”

“무슨…?”

“지금 우리가 들어갈 테니 아주 잠깐 등급을 한 단계 낮추게나. 그 후에 다시 등급을 상향하든지 알아서 하게.”

옥무결이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대꾸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안 될 게 뭐가 있나? 한 번 정한 등급이라도 조정이 가능하다고 한 건 자네가 아닌가?”

“무슨 되도 않는 억지를…!”

“본문은 천도문일세.”

순간 차재강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기도가 뿜어져 나왔다.

그 위압감이 엄청났기에 옥무결은 잠시 숨을 참아야 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본문이 많은 소환지를 공략했지. 본문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텐데.”

차재강의 눈빛이 더없이 차가워졌다.

옥무결이 침을 꿀꺽 삼키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요.”

“나는 들어가야겠네.”

“그런…”

“허가해 주길 바라네.”

차재강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옥무결은 점점 자신이 없어져 갔다.

분명히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는데….

‘제길… 이게 뭔…!’

엄청난 압박감을 견디기가 힘들다.

사파에서 사용하는 섭혼술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막강한 기도를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쏘아내서 기가 눌리게 하는 것이다.

초식동물이 맹수 앞에서 기가 꺾이고 의지를 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차재강은 현재 내공을 날카롭게 다듬어 옥무결에게 쏘아 보내면서 무언의 압박을 하는 중이었다.

“크읏…!”

“도저히 안 되겠나?”

차재강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침내 옥무결의 입술을 비집고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 들어가도… 좋습니…”

“고맙네.”

순간 차재강이 강맹한 기운을 거둬들이며 씨익 웃었다.

그렇게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었다.

“거기, 동작 그만.”

발길을 붙드는 낯선 목소리.

차재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우뚝 멈췄다.

그가 천천히 돌아보는데,

“엇! 관, 관주님!”

옥무결이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관주…? 멸마관의 사비강 관주…?’

차재강이 고개를 들어보자, 젊고 잘생긴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사비강이었다.

‘이자인가? 생각보다 훨씬 젊군.’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바로 앞에 다다른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지금 어딜 가는 거요? 아무래도 연로하시다 보니 방향을 잘못 짚은 것 같은데. 거긴 아주… 위험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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