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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06화 (406/670)

# 406

귀환 마교관

406화

‘흥! 아직도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자 같으니라고!’

등부형은 내심 욕지거리를 뱉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묵양제라면 얘기가 좀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이런 식으로 다가가면 환영해줄 줄 알았다.

뭐, 백번 양보해서 묵양제가 자신보다 윗사람처럼 행세를 하겠다면, 그것도 용인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당장은 동등한 조교 신분이 아닌가?

게다가 나이도 비슷하지 않은가?

중죄를 짓고 한순간에 조교 신분으로 타락한 주제에 여전히 한때의 영광을 잊지 못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한심하다.

그런 주제에 자신을 개 무시해?

거듭 생각할수록 열 받는다.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어떻게 해서든 다시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해야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신세 한탄만 한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그래도 한때 정도맹 본단에서 꽤 높은 직위로 지낸 자였으니, 잘 이용해서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아 보려 했건만.

‘흥! 날 그렇게 홀대하다니! 평생 조교 신분으로 지내라!’

등부형이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고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저만치 모퉁이를 돌아 걸어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음? 이 시간에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린 등부형은 순간 뭔가 수상하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얼른 기척을 감추었다.

그가 모퉁이 끝에 다다라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보니, 시커먼 옷을 입고 흑립을 눌러 쓴 자가 다시 모퉁이로 사라지는 게 보였다.

‘저 녀석은…!’

틀림없다.

교관 위검종이다.

등부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야심한 시각에 어딜 가는 거지?’

사실 등부형은 첫 만남 때부터 위검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객잔에서 그에게 주눅이 들었던 걸 떠올리면 지금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어딘지 기분 나쁜 녀석이었는데… 역시 뭔가 있는 놈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등부형은 위검종을 미행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어간 위검종은 마침내 멸마관 후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를 미행하는 등부형은 점점 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야심한 시각에 왜 멸마관을 빠져나간단 말인가?

게다가 위검종은 점점 더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울창한 숲으로 들어갔을 때, 등부형은 잠깐 사이에 위검종의 행방을 놓치고 말았다.

‘어디지? 어디로 간 거냐?’

등부형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헤매고 있을 때였다.

휙!

숲속 어디선가 매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게 아닌가?

‘엇! 저건…!’

순간 내공을 이용해서 안력을 돋운 등부형은 매의 발목에 서신이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틀림없다! 전서응이다!’

등부형이 반사적으로 품에서 비수를 꺼내 날렸다.

쉭쉭쉭!

세 자루의 비수가 날아갔지만, 녀석은 훈련된 매답게 부드러운 활공으로 암기를 모조리 피해냈다.

결국 비수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전서응은 그대로 북서쪽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젠장! 결정적인 증거를 날려 버렸어!’

등부형이 입술을 쿡 깨물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서응을 이용했다는 것은 그 내용이 꽤나 중하다는 뜻.

한낱 연서를 보내는데 전서응을 이용할 리가 없었다.

저 정도로 잘 훈련된 전서응이라면 분명 심상치 않은 조직이리라.

게다가 이 야심한 시각에 굳이 숲속까지 나와서 전서응을 날려 보냈다는 것은 남에게 보일 수 없는 것이리라.

‘역시… 위검종! 이놈이 뭔가 꿍꿍이가 있구나!’

등부형은 최대한 기감을 펼쳐서 주변을 더듬어 갔다.

그렇게 전서응이 날아오른 곳으로 추측되는 방향을 향해 가는데,

‘저기다!’

전방에서 희미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분명 위검종에게서 느꼈던 그 기운이었다.

등부형은 더욱 자신의 기를 갈무리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마침내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그가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숲속의 자그마한 공터 복판에 꼿꼿하게 선 위검종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때였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선배님?”

느닷없이 등을 때리는 목소리에 하마터면 등부형은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그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니, 자운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 야심한 시각에…”

“쉿!”

등부형이 얼른 주의를 주고는 자운룡의 손목을 다급하게 끌어당겼다.

“왜… 읍!”

등부형이 얼른 자운룡의 입을 막았다.

그가 전음으로 자운룡에게 말했다.

[오늘 드디어 저놈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 같네.]

[저놈이라니… 대체 누굴 말씀하시는…?]

자운룡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음으로 되묻자, 등부형이 바위에 등을 바짝 댄 채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위검종 말일세!]

[위검종 교관이 저기에 있습니까?]

[그렇네. 우연히 위검종 교관이 관을 벗어나는 걸 보았지.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이 딱 떠오르지 뭔가? 해서 그를 미행한 것일세.]

[흐음. 그랬군요. 하지만 그저 산책을 나온 걸 수도…]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야심한 시각에 뭐 하러 여기까지 산책을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지만 목격했네!]

[엇, 그게 뭡니까?]

[전서응일세!]

그러자 이번에는 자운룡도 놀란 듯 흠칫 떨고는 되물었다.

[전서응이라니. 설마 위 교관이 전서응을 어디론가 보냈단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매우 잘 훈련된 매였지. 내 비수를 피할 정도였으니.]

[그랬군요. 그렇다면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겠어요. 관주님께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은 좀 더 지켜보세. 그보다 자네는 여기에 어쩐 일인가?]

[저는 선배님이 밖으로 나가시는 걸 보고 따라온 거죠. 워낙 조심조심 움직이시기에 호기심에 그만. 헤헤.]

자운룡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자, 등부형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이지 이럴 때 보면 자운룡은 속없는 청년처럼만 보였다.

[어쨌거나 조심해야 해. 괜히 들켰다간….]

[벌써 들킨 것 같습니다, 선배님.]

“뭐?”

등부형이 멍하니 되묻는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바위 위에 우뚝 올라 선 위검종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게 아닌가?

“헉!”

깜짝 놀란 등부형은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뭐하는 거지? 거기 두 사람.”

위검종이 싸늘하게 내뱉자, 등부형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삿대질을 했다.

“흥! 네, 네놈이야 말로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정파 놈들은 위아래도 없나 보군. 조교가 교관에게 하는 말버릇이 저 따위라니.”

“닥, 닥쳐라!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나 이실직고해라!”

“무공을 수련 중이었다. 그런 네놈들은 타인의 무공을 염탐하는 게 정도의 예법인가?”

“흥!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내가 네놈이 날려 보낸 전서응을 못 본 줄 아느냐?”

위검종이 피식 웃으면서 냉랭하게 받아쳤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는 거냐? 무공 수련을 염탐한 것도 모자라서 이젠 모함을 하려는가?”

“노옴! 발뺌한다고 호락호락 넘어갈 줄 아느냐! 이 간자야! 처음부터 네놈은 기분이 나빴어!”

“흥! 뭘 근거로 그딴 소리를 내지르는 거지? 증거라도 대든가?”

“내 눈이 바로 증거다!”

“그렇다면 그딴 썩은 눈깔은 뽑아 버리는 게 낫겠군.”

“뭐, 뭣이?”

스르릉!

위검종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고는 살기를 피워 올렸다.

“허튼 소리를 계속 듣다간 내 귀가 썩어 버릴 것 같다. 한 번만 더 지껄이면 주둥이를 베어 버리겠다. 내가 못할 것 같나?”

“이, 이놈이…!”

등부형이 말을 더듬으면서도 선뜻 맞서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위검종이 피워 올리는 살기는 그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했기에.

진득한 사기가 섞여 있으니 온몸을 바늘로 찔러대는 것만 같았다.

이쯤 되자 자운룡이 얼른 나서며 말렸다.

“아하하, 두 분 다 진정하시지요. 아무래도 등 선배님이 조금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위 교관님도 노여움을 푸시지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자 교관! 나는 분명히 보았…!”

[선배님, 일단은 이 자리를 벗어난 후에 해결하지요. 이대로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크음…!]

등부형이 마지못해 입을 다물자, 자운룡이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는 걸로 하지요. 더 이상은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날 염탐한 것에 대한 사과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자운룡이 고개를 숙여 보이자, 위검종의 시선은 등부형에게 향했다.

너는 왜 가만히 있느냐는 눈빛이었다.

자운룡이 얼른 다시 전음을 보냈다.

[선배님. 지금은 아닙니다.]

‘쳇!’

등부형이 내심 혀를 차고는 사과했다.

“미안하게 됐소. 하나, 당신의 무공은 전혀 보지도 못했으니 그리 아시오. 애초에 무공 수련을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우니.”

기어코 한 마디 내뱉은 등부형은 냉큼 몸을 돌리고는 걸어가 버렸다.

‘제길, 저놈이 또 눈 뒤집히기 전에 일단 벗어나자. 두고 보자, 노옴! 네놈의 가면을 내가 벗겨내고 말겠다!’

한편 자운룡은 저만치 저벅저벅 걸어가는 등부형을 보고는 다시 위검종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위 교관께서 너그러이 이해 좀 해주십시오. 그럼 이만.”

자운룡이 빙긋 웃더니 얼른 몸을 돌리고는 달려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위검종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보긴 봤단 말이지…”

그의 눈에 서늘한 한기가 맺혔다.

**

“하앗!”

날카로운 기합성과 함께 검기가 허공에 뿌려졌다.

휙! 쉭쉭쉭! 휘익!

얇은 검신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빛과 달빛이 무수히 쪼개져 나갔다.

검기와 빛 무리가 어우러지니,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 그림 속에서 검무를 추는 여인은 마치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그랬다.

분명 여인은 검술을 펼치는 중이었지만, 그건 마치 검무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검무를 추는 여인은 바로 매설란이었다.

휘리리리리링!

어느 순간 그녀가 든 연검에서 아름다운 공명이 울려 나왔다.

누구라도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넋을 놓고 입을 다물지 못했으리라.

우선은 검술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놀랄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 아름다움 속에서도 느껴지는 강맹함에 놀라리라.

하지만 그녀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인 사비강은 시종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취리리리링! 취리링!

이제 연검은 뱀의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마치 수십 마리의 뱀이 매설란의 몸을 휘어 감으며 연신 튀어나왔다가 들어가길 반복하는 것만 같다.

그렇게 얼마나 검무가 이어졌을까?

취리리리리리링!

매설란을 휘어 감았던 연검이 마구 꿈틀거리며 펼쳐지면서 수십 마리의 뱀으로 변했다.

취릿! 취릿! 취릿!

그녀를 둘러 싼 수십 명의 적들이 요혈을 가격당해 쓰러져 나갔다.

후우우웅!

마지막 적이 쓰러진 순간, 매설란은 자세를 바로잡고는 심호흡을 했다.

뚝.

그녀의 턱 끝에 맺혔던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땠어?”

매설란이 사비강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 단계 성장할 순간이 왔군.”

“정말이야?”

“정말이지.”

사비강의 입가에도 미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매설란은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에는 농담도 곧잘 하고 실없는 소리도 심심찮게 내뱉는 그였지만, 무공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냉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매설란이 호흡을 조절하고는 말했다.

“그래서 나, 부탁이 있어.”

“알겠어. 들어주지.”

“무슨 부탁인 줄 알고?”

“연검 한 자루. 더 구해 볼게.”

매설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조금 감동이긴 하네. 하지만 내 부탁은 그게 아냐.”

이번에는 사비강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뭐지?”

“계속해서 당신한테 의존할 수만은 없으니까. 나도 이제 내 힘으로 구해 보려고.”

“그럼 부탁이라는 건?”

“나를 위해 연검을 구하려고 애쓰지 말란 거야.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굳이 명검이 아니라도 괜찮아. 명장은 무기를 탓하지 않는 법이니까.”

사실 처음에는 사비강에게 부탁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그녀는 생각을 바꿨다.

이번만큼은 스스로 해결해 보겠노라고.

언제까지나 그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고.

이젠 그가 기대어 쉴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다고.

매설란은 가만히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한참 만에 그녀의 입이 열렸다.

“그래도 고마워.”

“정말 고마우면 오늘 밤…”

“나 지금 감동 받았어. 그러니까 바보 같은 말은 하지 말아 줘.”

사비강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한테 반말 한 거지?”

“당신이 실종됐을 때부터. 여자를 걱정하게 만들었으니. 그 정도는 참아야 해.”

“어쩔 수 없군. 앞으로도 걱정하게 만들 것 같으니. 그 정도는 참지.”

사비강의 말에 매설란이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피식 웃어 버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한참 바라보다가 서서히 다가가 입을 맞췄다.

달빛이 두 사람에게 고요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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