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01화 (401/670)

# 401

귀환 마교관

401화

머리가 맑아진 것은 오늘 오후쯤이었다.

그동안 마치 술에 취한 듯, 감정에 취한 듯 그저 구름을 타고 떠다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제멋대로 굴었다.

한데 이 모든 것이 정리되고 또렷한 정신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확신한 건 점심을 먹은 직후였다.

묵양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지난 이틀간 자신은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이 천금 같은 기회를 이틀씩이나 날려먹은 것이다.

‘이놈들이 누굴 놀려 먹어?’

어금니를 까드득 간 묵양제가 동령을 부른 다음 대책을 논의했다.

“이제 정말 제대로 조사해 볼 작정이오.”

“역시 때가 됐군요.”

“그렇소. 그동안 내가 좀 이상했더라도 이해해 주시오.”

“물론입니다. 뭐, 그런 모습도 저로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좀 더 확실하게 밀어붙일 필요도 있겠지요. 그럼 또 뭔가 다른 반응이 올 테고 말입니다.”

동령은 어딘지 기대가 된다는 듯 말했다.

“뭐, 반응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소. 이번엔 정말로 제대로 조사해서 빼도 박도 못하도록 만들 생각이니까.”

“진심이십니까?”

“물론이오.”

묵양제의 대답에 동령은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수긍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절도 이제 끝이군요.”

“당연하지. 그들에겐 치욕의 시절이 도래하는 거요.”

“예…”

동령의 표정이 어딘지 떨떠름했다.

묵양제는 내심 불쾌했다.

‘겨우 이틀 허비한 걸 가지고 날 못 믿는 모양이군!’

묵양제는 속내를 드러내는 대신 오늘밤 대회의실에서 모든 수뇌부가 모일 수 있도록 지시해 두었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 철저하게 바닥까지 파헤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날 밤, 멸마관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수뇌부 사이에서는 어딘지 엄숙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묵양제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흥! 지금까지 날 잘도 가지고 놀았겠다! 이제는 어림없다!’

각오를 다진 묵양제가 책상을 탕! 치고는 일어나 소리쳤다.

“그간 여러분들은 날 우습게 봤을 지도 모르겠소! 하나 이제는 다를 것이오. 오늘 나는 제대로 이 멸마관을 조사할 작정이오!”

“그러시지요.”

매설란이 다소곳이 대답하자, 묵양제가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사비강 관주의 실종 사건에 관해서 할 말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사비강 관주의 실종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지금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소. 당장 그가 복귀하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나 관주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는 없소.”

“물론입니다.”

매설란의 대답에 묵양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고분고분한 게 아닌가?

아니면, 혹시 매설란이 관주 자리를 노리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가 아는 매설란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매설란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아직까지 관주 자리가 공석일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요.”

“그렇소! 한데 지금 관주 자리는 공석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매 총관이야말로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지금 관주는 실종된 상태….”

말을 쏟아내며 관주석을 가리키던 묵양제는 그대로 얼음이 된 것처럼 우뚝 멈추고 말았다.

‘뭐, 뭐야? 사비강이 언제 저기에…?’

놀랍게도 관주석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사비강이었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대체 내가 왜 아직도 실종 상태라는 거요?”

사비강의 말에 묵양제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하마터면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묵양제가 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괜찮습니까?”

동령이 얼른 달려와 묵양제를 부축했다.

묵양제가 동령에게 전음으로 따지듯 물었다.

[대체 저자가 왜 저기에 있는 거요!]

[무슨 말씀이신지…?]

[몰라서 묻소? 저자는 지금 실종 상태였던 것이 아니요? 그래서 우리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로 했고!]

그러자 동령이 멍한 표정으로 묵양제를 바라보았다.

그가 걱정이 가득한 눈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당주님… 정말 괜찮으신 거지요?”

[왜 자꾸 같은 말을 물어보시오!]

“그도 그럴 것이… 사비강 관주가 복귀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뭐라고?”

묵양제가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한참이나 눈만 끔뻑이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대체 동, 동 각주께선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요? 우리가 온 게 겨우 사흘 전이건만… 어찌 보름 전에 사비강 관주가….”

“정말 괜찮으십니까?”

“아, 글쎄! 괜찮다니까!”

묵양제가 버럭 소리치자, 동령이 못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초환당에서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지금 내 말을 듣기나 하는 거요!”

“물론입니다. 그러니 걱정이 되는 겁니다.”

“대체 뭐가 그리 걱정이냔 말이오!”

“그야…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지는 사흘이 아니라, 벌써 석 달이 지났으니까요.”

“뭐…”

순간 묵양제는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회의실에 모인 멸마관 수뇌부가 눈을 끔뻑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저 눈은…! 진짜냐? 진짜냐고!’

묵양제는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왠지 모르게 구토가 치밀었다.

사라졌어야 할 사비강이 상석에 앉아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이 이곳에서 석 달이나 지냈다니?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제기랄! 악몽이다! 또 사술에 걸린 거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

짜악!

묵양제가 느닷없이 제 뺨을 스스로 올려붙였다.

오른쪽 뺨이 벌겋게 부어올라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 모습에 대회의실에 모여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탄식을 터뜨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짜악! 짜악!

묵양제는 연신 자신의 뺨을 때렸다.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한 행위였다.

하지만 꿈에서 깨기는커녕 그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점점 경계심을 넘어 안쓰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동령이 얼른 묵양제의 팔을 붙들며 소리쳤다.

“동 당주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이게 지금 현실이오?”

“그렇습니다. 현실입니다.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제기랄! 나도 알고 싶다고! 뭐가 문제인지!’

묵양제는 자신이 점점 미쳐 가는 것만 같아서 몹시 두려웠다.

보다 못한 매설란이 시녀에게 소리쳤다.

“묵 당주님이 진정하시도록 차를 내어드려라.”

“알겠습니다.”

곧 시녀가 쟁반에 차를 한 잔 담아왔다.

동령이 찻잔을 들어 건네주었다.

“자, 묵 당주님. 우선 차라도 드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곳 초환각주님의 의술이 뛰어나시니 분명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졸지에 환자 취급을 받는 것에 화가 난 묵양제가 찻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앗, 뜨뜨…!”

혀와 목구멍을 데인 묵양제가 그만 찻잔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찻잔이 깨지는 순간,

쨍그랑!

“헉!”

그의 동공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 변화를 본 매설란과 무랑이 은밀히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제야말로 묵양제는 무랑의 술법에서 완전히 깨어난 것이다.

방금 건넨 차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매설란이 묵양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정신이 좀 들었겠군. 그 차는 바로 무랑도사가 직접 만든… 아무튼 이름이 좀 복잡한 그런 차지. 술법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차.’

매설란의 생각대로 묵양제의 머릿속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석 달간의 기억들이 모조리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은 단 사흘로 기억했지만, 실제로는 석 달이나 흘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월문에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머물렀던 기억이 돌아왔는데, 이제야 신월문주가 왜 자신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한 것인지 겨우 이해가 됐다.

실제로 그곳에 머무는 동안 신월문주는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기에.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멸마관에서 머물며 기녀들을 숙소까지 불러 모아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던 자신의 모습.

기녀들의 가슴에 돈다발을 꽂아 주던 기억과 그들에게 둘러싸여 술에 취해 낭창하게 웃고 떠들던 기억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사실 이 또한 칠정취향에 당하면서 저지른 일들이었지만, 그런 깊은 사정까지 묵양제가 알 리 없었다.

‘도대체 이건…!’

그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대회의실에 모인 수뇌부를 마구 훑어보았다.

“이건…! 계략이다! 음모다! 네놈들이 날 궁지로 몰았구나! 이런 식으로 날 가지고 놀다니!”

그가 잔뜩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대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수뇌부의 시선에는 경멸마저 어려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무랑의 술법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사비강과 매설란 뿐이었다.

사비강조차도 그의 술법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묵양제의 행동이 그저 지극히 자연스럽게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 그딴 시선으로 날 보지 마라! 내 당장 맹에 보고하겠다! 맹에 보고해서 네놈들을….”

“그러실 필요 없소.”

사비강이 무뚝뚝하게 말하자, 묵양제가 그를 사납게 쏘아보았다.

“무슨 소리냐?”

“이미 맹에는 보고가 되었소이다. 뭐, 그전에도 지속적으로 보고를 올렸고.”

“대체 누구 마음대로 그런 보고를…!”

말을 꺼내던 묵양제는 다시 헛바람을 집어 삼키고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맙소사… 내가… 했군.’

그랬다.

그동안 묵양제는 맹에 보고서를 열흘에 한 번씩 올렸는데, 그때마다 온통 좋은 말만 빼곡하게 적어서 보냈다.

이제야 오늘 동령의 반응도 이해가 되었다.

그로서는 이상했을 것이다.

매일 같이 멸마관에 머물면서 음주가무를 함께 즐기던 묵양제가 갑자기 제대로 조사를 하자니 아무래도 이상했으리라.

“이건… 이건… 함정이야! 난 맹으로 돌아가겠어! 가서 다시 보고서를…!”

“그럴 필요 없소. 이미 맹에서 손님이 오셨소.”

사비강이 시큰둥하게 대꾸하자, 묵양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맹에서…? 대체 누가…?”

그때였다.

대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낯익은 한 사람이 들어섰다.

“날세.”

그는 바로 장로회주 욱청풍이었다.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묵양제를 노려보았다.

“그간 잘 지내셨나?”

말 속에 가시가 있었다.

그간의 기억이 완전히 돌아온 묵양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욱청풍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잘 지내셨을 테지. 매일 같이 기녀들을 불러 흥청망청 돈을 쓰면서 웃고 마시고 떠들었을 테니!”

“회, 회주님. 그건….”

“닥치시게!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네! 대체 자네는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욱청풍은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

멸마관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관주 자리를 묵양제에게 넘기려고 했건만.

대체 지금 상황은 뭐란 말인가?

욱청풍은 묵양제가 몹시 못마땅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묵양제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을 제대로 하라고 보냈더니 주색잡기에 빠져서 이 따위로 처리를 해? 못난 놈!’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묵양제를 쏘아본 후 사비강에게 포권을 했다.

“커험! 관주께 신세를 졌소. 감사단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오. 대신 사과드리겠소.”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원래 감찰 관련 임무가 어려운 법 아니겠습니까?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으니 유혹에 빠지기도 쉽지요.”

사비강이 이해하는 척 말을 했지만, 결국은 다시 한 번 묵양제의 만행을 확실히 지적한 셈이었다.

욱청풍이 내심 속이 뒤틀렸지만 내색하지 않는 대신 입을 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소.”

“그리해 주신다면 더 없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말을 마친 욱청풍이 몸을 휙 돌리고는 대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회, 회주님!”

묵양제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소리치자, 사비강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이쯤에서 회의를 종료하시겠습니까? 뭐, 어쨌든 주최하신 분이 거기 계시니….”

“큭…!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묵양제가 씹어뱉듯이 말하고는 얼른 욱청풍을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매설란이 피식 웃더니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또 하나 처리했네.”

“덕분이지.”

사비강의 대답에 매설란이 싱긋 웃었다.

그때 당이협이 다가오더니 나직이 일렀다.

“오늘 맹에서 연락이 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좀 심각합니다.”

“무슨 일이지?”

“던전이라고도 말씀하셨던 그 소환지를… 다른 문파에서도 찾아 나서서 마물들을 사냥하겠다고 공언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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