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00화 (400/670)

# 400

귀환 마교관

400화

묵양제는 침상에서 일어나 한껏 기지개를 켰다.

“으음. 아침인가?”

가만히 중얼거린 그가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앉아서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여긴…?’

어젯밤 자고 일어났더니 신월문이었던 기억이 불현 듯 떠오른 것이다.

혹시나 또 하루가 반복된 것은 아닐까 두려워서 얼른 창가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다행히 이곳은 멸마관이었다.

‘됐다. 제대로 하루가 흘러갔구나.’

묘한 사술에 당한 것이 영 기분 나빴지만 오늘부터라도 제대로 조사해서 멸마관의 약점을 틀어쥘 생각이었다.

그는 시녀가 차려 준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감사단으로 함께 온 한월각주(寒月閣主) 동령(冬嶺)을 데리고 생도들의 수련장을 찾았다.

사비강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었기에 멸마관의 분위기는 어딘지 가라앉아 있었지만, 여전히 일급의 각반 생도들은 치열한 비무를 펼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상자가 연신 발생하고 있었기에, 묵양제가 도착했을 때에도 들것에 실려 옮겨지는 환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오호라!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이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비무를 시키니 어찌 제대로 무공을 익히겠는가?’

함께 온 동령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부상자가 속출하니 초환각에서 소모되는 약값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이걸 모두 맹에서 지원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재원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하다니.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군.”

“역시 그렇지요? 당장 맹에 보고해야 할 사안입니다.”

묵양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오. 이렇게 심하게 격무를 하니, 그들의 열정을 어찌 칭찬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응?’

“예?”

순간 말을 꺼낸 묵양제도, 듣고 있던 동령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묵양제가 얼른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들이 지나친 비무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라도 입을까 봐 걱정된다는 뜻이었소. 하나 그 열정만큼은 역시 높이 사야겠지요.”

“아… 네… 그렇지요. 하지만 그 열정을 이용해서 생도들을 함부로 굴린 사비강 관주야말로 제일 문제지요. 생도들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특히 우리 정파의 생도들은 야비한 사파 생도 놈들의 술수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연 야비한 수단을 함부로 쓰다니. 그렇게 비열하게 나온다면 우리 정파 생도들은 그 비열한 수에 적응이 되어서 더욱 강해질 수 있으니 아주 칭찬할 만한 방식이군.”

‘응?’

“예?”

다시금 묵양제도, 동령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묵양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길! 지금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까부터 이상하게 마음에도 없는 말이 자꾸 튀어나오고 있었다.

당황한 그가 얼른 말을 돌렸다.

“일, 일단 초환각부터 들릅시다. 가서 부상자들의 증언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소?”

“예, 그러시지요.”

동령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묵양제의 뒤를 따랐다.

초환각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곧장 병실로 향했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이번 실전 훈련에 투입되었다가 한쪽 팔을 잃은 진경산이었다.

“할 말 없습니다! 팔을 잃은 마당에 기분 좋게 떠들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전 이번 일로 인해 인생을 망쳤습니다!”

진경산은 시종 까칠하게 대꾸했다.

동령은 얼른 사비강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사비강 관주에 대해 묻겠네. 자네는 그가 훌륭한 관주라고 생각하는가?”

“흥! 그가 훌륭한 관주라면 내가 왜 한쪽 팔을 잃었겠습니까?”

진경산이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동령은 내심 흡족한 마음이 되어 돌아섰다.

“어떻습니까? 역시 사비강 관주는 여러모로 역량이 부족한 것 같군요.”

“과연. 저 지경이 되어서도 살아 돌아오다니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군.”

“예… 뭐. 그보다 사비강 관주에 대한 평은 확실히 좋지 않군요.”

“확실히 그런 것 같소. 이 정도면 분명 사비강 관주를 궁지에 몰아넣어서 칭찬할 수 있겠소!”

‘응?’

“예?”

또다.

또 헛소리가 나왔다.

울컥 짜증이 치민 묵양제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내 말은! 저런 불평불만이 가득한 자도 잘 이끌고 생환시킨 사비강 관주가 무척 대단하단 말이었소!”

“예?”

‘이런 젠장!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묵양제는 자꾸만 헛소리가 튀어나와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일, 일단 돌아가 봅시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느낀 묵양제는 그대로 숙소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대체 오늘 왜 이러는 거지? 자꾸만… 기분이….’

좋다.

왠지 모르게 들뜨고 있다.

이상하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열심히 수련에 임하는 생도들이 대견해 보인다.

오히려 다른 학관이 멸마관을 본받아서 더 열심히 수련에 매진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애초에 멸마관의 약점을 파헤쳐서 사비강을 해임시키겠다는 목적은 이제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진 것만 같다.

‘사술이다! 빌어먹을! 틀림없이 사술이야!’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 누구에게 사술에 걸린 걸까?

하긴 당장 밝혀내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곳은 사파 무리가 득실거리지 않는가?

그 생각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만 같다.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에게 사술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설마 무랑이라는 자가?’

사비강이 이상한 노인을 데려와 전주로 앉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각종 술법에 능통하다고 하는데, 결코 유명한 자는 아니었다.

분명 연줄을 이용해 능력도 없는 자를 고용한 게 아니겠나?

“후우우!”

묵양제는 심호흡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는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제대로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

관주전 정자에서 매설란과 무랑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넘겼군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오.”

무랑의 대답에 매설란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과연 관주님이 먼 길을 떠나 모셔올 만한 분이군요. 대체 어떻게 저자를 고분고분하게 만드신 거죠?”

무랑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조그마한 약병이었는데, 마개로 막혀 있었다.

매설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게 뭔가요? 도사께서 만드신 건가요?”

“그렇소.”

“잠깐 봐도 될까요?”

매설란이 병을 건네받고는 흔들어보았다.

속에는 액체가 들어 있는지 물소리가 들렸다.

막 마개를 열어 보려고 하자, 무랑이 얼른 약병을 낚아채고는 품에 넣었다.

“이걸 함부로 열었다간 총관께서도 저자와 같은 처지가 될 거요.”

“대체 안에 든 게 뭐죠?”

“이름 묻는 거요?”

무랑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매설란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무랑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랑표중원유일무이칠정취향(無浪表中原唯一無二七情醉香)’이라는 용액이오.”

“아…”

매설란이 애매한 반응으로 대꾸하자, 무랑이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물론 내가 만들어낸 거요. 아주 독창적으로.”

“네… 그런 것 같네요.”

“어째서?”

“네?”

“어째서 내가 만든 것 같다고 생각한 거요?”

“그냥… 이름을 들어 보니 왠지 그럴 것 같아서….”

“과연. 총관께서는 촉이 좋으시군.”

무랑이 허연 수염을 쓸며 중얼거리니, 매설란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이 일곱 가지 향에 따라 상대의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게 가능한 거외다. 뭐, 사사로운 술법이긴 하나 제법 요긴하오.”

“과연 대단하십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 칠정취향을 사용하실 건가요?”

“칠정취향이 아니라 무랑표중원유일무이칠정취향이오. 그게 정식 명칭이오.”

“아… 네….”

“당연히 이걸 사용할 거요. 거기에 몇 가지 술법을 더하겠지만. 이 무랑표중원유일무이칠정취향은 욕망이 강한 자일수록 잘 듣지.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묵양제’라는 자는 욕망이 매우 강한 자임이 틀림없소.”

“그렇군요. 앞으로 그가 가진 내면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겠군요.”

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지켜보십시다. 관주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네.”

두 사람의 대화를 끝으로 봄바람이 소슬하니 불어왔다.

**

묵양제는 눈을 떴다.

어디선가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으음…”

왠지 머리가 묵직했다.

요 며칠 허탕만 쳐서 그럴까?

만사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방해자가 많을수록 구린 구석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나?

‘오늘만큼은 철저히 조사해서 이 멸마관의 문제점을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아침을 먹은 후 곧바로 동령을 만나 조사를 나섰다.

이번에는 조신량이 각주로 머물고 있는 신수각부터 찾았다.

조신량은 풀무질을 하면서 뜨거운 열기를 피워대고 있었는데, 한여름처럼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게 각주께서 만든 거요?”

동령이 화살대를 들어 물어보자, 조신량이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툭 내뱉듯 대꾸했다.

“그렇소만.”

그건 다크번의 날개 뼈로 갈아 만든 화살촉이 끼워진 것이었다.

“흥, 사파에서 지내다 와서 그런지 만든 물건조차도 사이한 기운을 품고 있군.”

동령이 노골적으로 힐난했다.

그가 옆에 선 묵양제를 돌아보며 물었다.

“묵 당주님, 그렇지 않습니까? 한낱 마물들에게서 채취한 것으로 무기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이건 정의로운 기운만을 사용하려는 정도의 뜻과도 한참이나 동떨어지지 않습니까?”

“그렇소. 마물들을 상대하겠다고 하면서 어찌 그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불미스러운 것들을 이용하겠다는 거요? 그건 정말이지… 정말이지….”

“당주님…?”

동령이 놀란 표정으로 묵양제를 보았다.

묵양제가 눈시울을 붉히는가 싶더니 이내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것이 아닌가?

“당주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오. 그저 난… 크흡…! 이 모든 일들이 너무 슬퍼졌소. 크흑!”

“예?”

“저 시커먼 화살대를 보니… 얼마나 아팠을까? 죽는 순간에 자신의 날개 뼈가 인간의 화살로 만들어질 운명이라는 것을 녀석은 알았을까요? 흑…!”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아아, 아니오. 아무것도 아니오. 그저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덧없음을 느끼고 있소.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소? 오늘따라 스치는 바람마저 슬프구려. 동경이나 보면서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리고 싶소.”

“바람이 슬프다니… 도대체….”

동령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묵양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터벅터벅 걸어가 버렸다.

“당주님!”

동령이 불렀지만 묵양제는 만사가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젓고는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조신량이 코웃음을 치며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했다.

“거 좀 비켜 주시오! 바쁘단 말이오!”

“커험.”

동령이 헛기침을 하고는 얼른 묵양제의 뒤를 쫓았다.

이번에 두 사람이 찾은 곳은 진백이 머무는 초환당이었다.

다만 오늘은 병실이 아닌 제약실을 방문했다.

“이 모든 것들이 마물의 혈액을 이용해서 연구 중인 약물이란 말이오?”

동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날카롭게 물었다.

“그렇소. 무슨 문제라도 있소?”

“당연히 문제가 아니겠소! 영약도 영약 나름이지! 마령교가 소환한 마물을 이용해서 약을 만들다니! 만에 하나 부작용이라도 발생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묵 당주님!”

“그렇소. 이런 무모한 짓을 함부로 해선 안 되지. 당장 본맹에 보고를 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예?”

“하아, 이게 전부 살자고 하는 짓. 삶이란 무엇이기에 이리도 고달프단 말인가? 인간은 왜 병들고 아프고 괴로워한단 말인가? 슬프도다… 인생이 덧없구나….”

이번에도 묵양제는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돌아서는 게 아닌가?

마치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기 시작했다.

마침 초환각으로 들어서던 등부형이 묵양제를 발견하고는 얼른 달려오더니 귓속말을 속삭였다.

“묵 당주님! 제가 멸마관의 문제점에 대해서 상세히 보고드릴 수 있습니다. 대신 묵 당주님께서 추후 저를 잊지만 않으신다면….”

한데 묵양제가 그의 이야기를 더 듣지도 않은 채 글썽이는 눈으로 등부형을 보는 게 아닌가?

“무엇이 당신을 그리 욕망에 찌들게 만들었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이렇게까지 아등바등 사는 이유가 무엇이오? 참으로 안타깝구려.”

“예…?”

“그만 돌아가시오.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오. 슬픔이 나를 집어삼켰소.”

그러더니 묵양제는 세상이 멸망한 듯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등부형이 멍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뭐 저런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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