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9
귀환 마교관
399화
쉭쉭쉭!
수십 줄기의 검기가 날아가면서 아름드리나무를 잘라냈다.
나무를 반듯하게 잘라낸 사비강이 손을 한 차례 휘젓자 비수들이 날아가 목판에 박혀 들었다.
투투퉁!
순식간에 목관이 만들어졌다.
사비강은 손수 옹해인의 시신을 들어 관에 담았다.
덮개를 덮은 다음 역시나 비수를 날려 박았다.
“량, 관을 지고 멸마관으로 돌아간다.”
“들었지? 관을 지고 멸마관으로 돌아간다.”
추량이 허공을 보며 그대로 따라 말하자,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뭐하는 거냐?”
“역시 이런 일은 후배가 직접 하는 게… 앗, 아닙니다. 제가 선배로서 솔선수범 해야지요!”
사비강의 서늘한 눈빛을 본 추량이 얼른 어깨에 관을 짊어졌다.
사비강이 피식 웃어 버리고 넘어가자, 추량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듣기로는 옹해인이 바로 옹기승의 스승이라는데, 멸마관에 도착했을 때 옹기승이 크게 상심할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강호는 어찌 될까?’
문득 이 파란만장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자 괜스레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추량이었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곁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사부님.”
“음?”
“총관님이 많이 기다리십니다. 가시죠.”
“그러자.”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추량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이 있는 한, 중원은 끄떡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며.
**
줄곧 빠른 길로 이동하다 보니 사비강 일행은 관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울창한 숲속을 지나거나,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을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객잔에서 자는 날보다 노숙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루는 사비강 일행이 계곡 근처에서 노숙을 할 때였다.
- 니야앙.
추량의 품속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반묘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녀석은 길게 하품을 하더니 추량의 뺨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가냘픈 울음을 토해냈다.
“으음… 반묘, 그만 자…”
추량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반묘는 추량의 얼굴 근처를 서성이다가 이내 고개를 들더니 어디론가 폴짝폴짝 뛰어갔다.
저만치 나무 아래에 누워 잠든 사비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다음 순간, 반묘가 등을 한껏 구부리더니 털을 곧추세우고는 나직하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 그르르르….!
녀석이 바라보는 곳에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사비강 옆에 놓인 베르타스에서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가 싶더니, 저절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스르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범인이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자신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닌지 의심부터 했으리라.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검신이 스르릉 검집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툭…!
검집이 바닥에 떨어지자, 검신은 그대로 수직으로 세워지면서 사비강의 목을 겨누었다.
- 가르르릉…!
반묘가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울음을 토했다.
하지만 베르타스는 반묘를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점점 더 검붉은 기운을 검봉에 운집시키는 듯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사비강의 목을 뚫어 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런데 그때,
“헉!”
헛바람을 삼키는 소리.
베르타스가 움찔거리고는 서서히 떠올랐다.
검봉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반묘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면서 가르릉거렸고, 그 뒤에 추량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우웅…!
마치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베르타스가 몸을 가늘게 떨더니, 찰나 추량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쒸에에에엑!
- 크르러렁!
동시에 반묘가 커지면서 추량 앞을 막아섰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앞을 막은 자가 있었으니…
탁!
날아들던 베르타스를 맨손으로 낚아챈 사비강!
어느새 그는 반묘 앞에 우뚝 선 채로 베르타스의 검신을 손가락으로 잡고 있었다.
사비강이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베르타스를 보았다.
“내가 말했지? 한 번만 더 지랄발광하면 깨부숴 버리겠다고.”
우우우우웅…!
사비강의 손에 잡힌 베르타스가 몸을 다시 떨었다.
그 순간 추량은 보았다.
베르타스를 들고 있는 누군가를.
그건 실제 사람이라기보다는 고획조의 혼일 수도 있었고, 베르타스 자신의 혼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것이 기로 형상화 되어 희미하게나마 보인 것이었다.
팟!
순간 베르타스가 사비강의 손가락에서 벗어나더니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어디론가 날아갔다.
타앗!
사비강이 그대로 베르타스를 쫓아갔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비강과 베르타스가 동시에 사라지자 추량이 두 눈만 끔뻑였다.
“지금 내가 꿈꾸는 건 아니지?”
- 니야앙.
어느새 작아진 반묘가 얼른 추량의 다리를 타고 어깨 위까지 올라왔다.
위협 요소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인지, 녀석은 길게 하품을 하더니 추량의 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
콰아아앙!
베르타스가 그대로 계곡 바닥에 추락하면서 물줄기가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사비강이 수면 위로 천천히 내려섰다.
그의 전신에서 분노의 기운이 풀풀 휘날렸다.
츄아아아아!
곧 수면을 뚫고 베르타스가 솟구쳐 올랐다.
베르타스 역시 수면 위에 꼿꼿하게 선 채로 사비강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폭포수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베르타스를 들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실제로 어떤 기운이 자의를 가져 베르타스를 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베르타스가 기운을 이용하여 어떤 형상을 만들어 낸 것인지 모호했다.
어떻게 보면 고획조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다른 악마의 형상 같기도 했다.
반묘가 일 푼어치의 힘을 덜어 내어 가져갔다지만, 고획조의 기운까지 얻은 베르타스는 여전히 한낱 인간에게 귀속되기엔 너무나 강력한 신병이기였다.
“이런 식으로 끝까지 반항한다면 결국 부숴 버릴 수밖에 없겠군.”
우우우우웅…!
베르타스가 몸을 떨었다.
언뜻 보기엔 비웃는 것 같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분노로 몸을 떠는 것 같기도 했다.
사비강이 시종 싸늘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가르치던 아이가 그러더군. 가질 수 없을 바엔 부숴 버린다고.”
우우우우웅!
한 차례 강렬한 진동을 울린 베르타스가 순간 사비강에게 그대로 날아들었다.
쉬이이이잇!
지금 이 순간 베르타스는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검이나 다름없었다.
사비강이 재빨리 몸을 비틀며 베르타스를 피했다.
동시에 그가 손을 뻗으며 베르타스의 배후를 때렸다.
꽈아아앙!
츄아아아아!
익스플로전 마법에 의해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물보라가 일어났다.
속절없이 튕겨 나간 베르타스가 나무 몇 그루를 무참히 베어내며 바닥에 박혔다.
위이이이잉!
다시 한 차례 몸을 떤 베르타스가 허공에 둥실 떠오르더니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쒸이이이잉!
빛살처럼 날아간 베르타스가 그대로 사비강의 몸을 뚫었다.
하지만 이내 사비강의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사비강은 물가에 서서 폭포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아이스 캐논.”
다음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얼음 광선이 쏘아져 나갔다.
쑤아아아앙!
쩌저저저저적!
무섭게 쏟아져 내리던 폭포수가 그대로 얼어붙으면서 베르타스를 집어삼켰다.
구우우우우웅….!
폭포수에 잡아먹힌 베르타스가 몸을 떨며 울어댔다.
잠시 후,
쩌적, 쩌억…!
베르타스를 가둬 버린 폭포수가 점점 갈라지는 소리를 내더니,
퍼콰아아앙!
이내 얼음 알갱이들이 산산이 부서져 나가면서 베르타스가 튀어나왔다.
쒸에에에엑!
녀석은 그대로 사비강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까불지 마라!”
사비강이 사자후를 터뜨리면서 양손을 불쑥 뻗었다.
소닉 버스터 마법이 펼쳐지면서 날아들던 베르타스에게 음속의 바람이 부딪쳐 갔다.
꽈과아아앙!
다시 한 번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사비강과 베르타스가 동시에 튕겨 나갔다.
콰당탕탕!
퍼콰앙!
꽁꽁 얼어붙은 얼음 알갱이가 사방으로 날아가면서 나무 기둥을 무참히 뚫어 버렸다.
저벅저벅…!
사비강은 얼어붙은 계곡을 밟아 가며 거슬러 올라왔다.
기기긱…!
얼음장에 꽂혀 있던 베르타스 역시 스스로 검신을 뽑아내고는 사비강 앞에 둥실 떠올랐다.
우우웅…! 우우웅…!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거겠지?”
우우우웅!
“좋다. 앞으로 누가 주인인지 확실히 각인시켜 주마.”
사비강이 천천히 손을 뻗어 베르타스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슈슈슈슈슈슈우우웃!
검신에서 수십 아니, 수백 가닥의 검붉은 기운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크읏!”
사비강이 이를 악물며 버텼다.
사비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과 베르타스가 뿜어낸 기운이 서로 뒤엉키면서 거친 격전을 펼쳤다.
사비강의 손등과 이마에 핏대가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앗!”
사비강이 기합성을 터뜨리자,
끼아아아아앙!
베르타스가 공명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마치 여인의 비명처럼 들리는 듯했다.
마침내,
파앙!
베르타스를 든 사비강이 하늘로 쏜살같이 솟구쳐 올랐다.
퍼퍼펑! 쾅! 쾅!
마치 폭죽이 터지듯, 허공에 솟구쳐 오른 사비강의 몸에서 뒤엉킨 기운들이 마구 터졌다.
저 막강한 기운을 한낱 인간의 몸으로 감당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잠시 후,
슈우우우웃! 꽈앙!
그가 혜성처럼 떨어져 내리자, 얼어붙은 계곡에 깊은 구덩이가 생기면서 사방으로 다시 얼음 파편이 날아올랐다.
곧이어,
“이여어어업!”
사비강이 기합성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베르타스를 거꾸로 들고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쩌저어어엉!
얼음덩어리와 검이 부딪쳤음에도 요란한 금속성이 일어났다.
잠시 후,
쩌적…! 쩌저저저적!
놀랍게도 검신에 실금이 생기는가 싶더니,
쩌콰아아아앙!
검신이 산산조각나면서 깨지는 게 아닌가?
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검신 안에서 또 다른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어던지듯, 표면을 깨고 나온 베르타스는 좀 더 얇고 매끈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품고 있는 예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다.
뿐만 아니라, 검신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검붉은 기운이 일순간 사비강의 전신으로 흡수되면서 그의 눈을 붉게 물들였다가 사라졌다.
“스으으읍, 후우우우!”
사비강이 심호흡을 하자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위이이잉.
베르타스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 평소와 다르다.
이전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았다면, 지금은 길들여진 맹수와 같다고나 할까?
휙! 쉬이이익! 쉭쉭쉭!
사비강은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잊지 않으려는 듯 곧장 검술을 펼쳐 보였다.
그의 몸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 베르타스가 달빛을 쪼개고 별빛을 부숴 나갔다.
바람을 가르고, 허공을 베면서 사비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껏 베르타스를 휘두르면서 그가 느낀 것은 ‘강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편하다’는 것만 느껴진다.
강함은 그저 저절로 따라오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
만약 누군가 이 장면을 보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절이라도 올렸으리라.
그만큼 그의 검술은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쉬이이이이잇!
마지막 일검을 휘두르자,
파파파파파파파앙!
얼어붙은 계곡들이 일제히 깨져 나가면서 물방울로 변했다.
츄아아아아아!
마치 박수갈채를 터뜨리듯 얼음에서 녹아 버린 폭포수가 시원스레 쏟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사비강과 베르타스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수면을 차고 날아오른 사비강이 바위에 올라서서는 베르타스를 가만히 들어 보았다.
그가 입매를 비틀었다.
“이제 넌 완전히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