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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98화 (398/670)

# 398

귀환 마교관

398화

“반…묘?”

추량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흑귀가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이제 그 이름은 안 어울릴 것 같군. 어떻게 보더라도 저건 더 이상 고양이 따위가 아니다.”

말을 마친 그가 천천히 검을 앞세우며 기수식을 취했다.

사비강마저 물어뜯은 짐승 아니, 마수다.

그런 녀석이 자신들에게 달려들면 목숨을 걸어야 하리라.

그가 천천히 살기를 피워 올리자, 반묘가 다시 나직이 울음을 터뜨리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 크르르르…!

“반묘! 넌 괜찮은 거지? 나야, 추량이다!”

“산 너머 산이군! 저깟 짐승이 널 알아보겠나?”

흑귀가 핀잔을 주며 날을 세웠지만, 추량은 포기하지 않았다.

“착하지? 이리 와.”

- 크르르르…

“그래, 그래. 네가 날 돕기 위해 나섰다는 걸 알아. 고맙다. 정말.”

- 크르르…

놀랍게도 반묘는 조금씩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기도를 가다듬던 흑귀 역시 놀란 표정으로 반묘를 보았다.

‘어쩌면…?’

반묘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정말이지 덩치는 웬만한 호랑이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며 다가오던 반묘가 마침내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크르러렁!”

“엇!”

“젠장할!”

흑귀가 얼른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 들려는데…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반묘가 갑자기 추량 앞에서 배를 벌러덩 드러내며 드러눕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 니야아앙!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게 가냘픈 울음을 토해내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반묘가 땅에 등을 대고 비비적거리니 먼지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던 추량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묘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반묘! 넌 괜찮구나!”

흑귀가 멍하니 그 모습을 보자, 옆에 쓰러져 있던 옹해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원래 사람보다 짐승이 더 예민한 법이지. 그 아이가 정말로 해냈구나. 일 푼어치의 힘을 덜어 내고도… 오히려 제 것으로 흡수하다니….”

반묘의 배에 엎어진 추량이 따뜻한 기운을 만끽하며 농담처럼 말했다.

“이제 넌 앞으로 ‘반호(斑虎)’라고 불러야겠다! 녀석, 정말 잘 성장했구나!”

“그게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흑귀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추량은 아랑곳하지 않고는 반묘의 몸에 얼굴을 비볐다.

보드라운 털과 따뜻한 체온이 그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무너진 오두막집 터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곧 사비강이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

흑귀가 표정을 굳히고는 얼른 검을 앞세웠다.

잠깐의 행복에 빠졌던 추량 역시 그제야 현실로 돌아와 얼른 일어나 경계했다.

“크으…!”

사비강이 뒤통수를 어루만지면서 신음을 흘렸다.

흑귀와 추량이 잔뜩 긴장한 채 투기를 끌어올리자, 사비강이 고개를 들고는 두 사람을 보더니 이맛살을 찡그렸다.

“뭐냐? 그 투기는? 한 번 붙어 보자는 거냐?”

“……!”

추량과 흑귀가 서로를 보았다.

곧 추량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비강에게 달려들었다.

“우아아! 사부님! 정신이 돌아오셨습니까?”

“징그럽게 왜 이래? 그나저나 여긴 어디냐? 왜 내가 여기 있는 거냐?”

사비강이 달려드는 추량을 밀어내며 말하자, 추량이 그간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전해 주었다.

대략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비강이 손에 들린 베르타스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너무 많은 피를 처먹였나 보군.’

우우우우웅…!

좋은 시절이 끝났다고 여긴 것일까?

베르타스가 투덜거리듯 검신을 떨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흑귀가 다가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자, 사비강이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수고했다. 그런데… 저 덩치 산만한 녀석은 뭐냐?”

사비강의 시선이 반묘에게 향했다.

반묘가 이를 드러내고 잠시 으르렁거렸지만, 곧 사비강의 사나운 시선에 제압당한 것인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추량이 싱글싱글 웃었다.

“저 녀석이 바로 그 반묘입니다.”

“반묘?”

“예! 사부님이 뿜어낸 기운을 빨아먹더니 갑자기 이렇게 성장했어요!”

“흐음. 성장이라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지금껏 플라탄의 알에서 태어난 마수 중에서 성장하는 녀석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다.

다만, 체내에 축적되는 마나의 양이 많아짐에 따라 그 능력이 향상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저렇게 모습이 변하는 경우는….’

그때였다.

흑귀가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추량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줄어든다.”

“응?”

“저거.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제야 추량이 흑귀의 시선을 따라 반묘를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호랑이보다도 큰 덩치를 자랑하던 반묘는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는 처음과 거의 비슷한 크기로 돌아온 상태였다.

“어라… 반호가 다시 반묘가 됐네.”

추량이 얼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사비강이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저 녀석은 그런 유형이었군.”

“그런 유형이라니… 그게 뭡니까?”

추량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묻자,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답했다.

“발기(勃氣)하면 변태(變態)가 되는 유형이다.”

“발기… 변태… 뭔가… 오묘… 하네요.”

“쉽게 말해 평소에는 저런 모습이지만, 체내의 기를 격발시키면 순간적으로 변태하여 아까처럼 호랑이 모습으로 변하는 거지. 상당히 드문 유형의 마수인데… 운이 좋았구나.”

말을 마친 사비강이 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아진 반묘를 가만히 보았다.

아마도 반묘가 반호로 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크기의 마나홀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데 이번에 베르타스가 섭취했던 마력을 대량 흡수하면서 한순간 마나홀이 팽창하면서 성장한 것이리라.

그러니 어떤 면에서 보면 성장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비강의 시선이 이번에는 저만치 쓰러져 있는 노인에게 향했다.

“저자가 마령교도인가?”

“아…!”

그제야 추량이 생각난 듯 얼른 달려가 옹해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의식을 잃은 옹해인의 안색은 몹시 창백했는데, 당장이라도 숨을 거둘 것만 같았다.

“이분이 바로 옹 선배님이십니다. 사부님을 그동안 보살펴 주신 분이지요.”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다가와 옹해인의 맥을 짚었다.

‘좋지 않다.’

그가 한 줄기 공력을 불어넣자, 옹해인의 숨결이 다소 고른 형태가 되었다.

“일단 편한 곳으로 옮겨.”

“예, 사부님.”

사비강이 돌아서서 손을 휘젓자, 무너져 내린 오두막집의 파편들이 저만치 쓸려 나갔다.

비교적 평평한 곳이 나타나자 추량이 얼른 옹해인을 자리에 눕혔다.

“위독하다.”

“사부님이라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사비강은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없어. 힐링 포션도 만병통치약은 아니지. 이 정도면 화타가 살아 돌아와도 힘들어.”

“그럼 어쩌죠?”

사비강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마지막을 준비하도록 배려해야겠지.”

“마지막이라니….”

추량이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비강이 정신을 차리면 살려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비강도 만능인은 아닌 것이다.

그때 마침 옹해인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자네가… 사비강 관주로군.”

“신세를 졌습니다.”

사비강이 깍듯하게 말하자, 옹해인이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옹해인은 기력이 점점 꺼져 가고 있었지만, 사비강이 불어넣어 준 공력 덕분에 말을 끊지 않고 이어 갈 수 있었다.

“내 제자, 승아가 자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네. 그에 대한 사례라고 생각하게. 이 또한 운명이 아니겠는가?”

옹기승을 두고 한 말이었다.

옹해인이 이번에는 추량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자네… 내 벗에게 연락을 해줄 수 있겠는가?”

“예? 하지만 어떻게 연락을 해야…”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 부적!’

추량이 얼른 품에서 부적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은 운을 증폭시켜 주는 부적이었는데, 이미 다 사용해 버린 것인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른 한 장은 바로 무랑과 자신을 연결시켜 주는 부적.

그런데…

‘이걸 어떻게 쓰는 거지?’

그때, 옹해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 가슴에 붙이고 의식을 집중하게. 그리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것이야.”

희미하게 웃으며 하는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이미 추량은 부적 한 장의 효력을 톡톡히 겪지 않았던가?

게다가 무랑을 만났을 때 그가 얼마나 신묘한 술법을 부리는지 몸소 겪었다.

때문에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옹해인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잠시 후.

휘아아아앙.

가슴에 댄 부적에서 황금빛 연무가 퍼져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그것이 뭉게뭉게 뭉치면서 추량의 콧구멍 속으로 쑤욱 빨려들어 가는 게 아닌가?

“흐읍!”

깜짝 놀란 추량은 한동안 그 상태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헛!”

갑자기 움찔거리더니 얼굴을 쭉 빼고는 턱을 내밀었다.

그 모습이 마치 무랑도사의 표정과 행동을 흉내 내는 것 같아서 언뜻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한데 놀랍게도 추량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분명 무랑의 것이었다.

“자네… 다쳤군.”

“보다시피.”

추량 아니, 무랑이 묻는 말에 옹해인이 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옹해인은 추량의 몸에 빙의한 유체가 바로 ‘무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옹해인이 놀리듯 말했다.

“역시 자네는 언제나 괴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단 말이지.”

하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무랑은 대답도 하지 않고 옹해인의 맥만 짚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참담하게 일그러져 갔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도록…!”

버럭 화를 내던 무랑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추량의 얼굴을 한 무랑은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것만 같았다.

옹해인이 빙그레 웃었다.

“다 운명 아니겠는가?”

“운명은 개뿔…”

무랑의 목소리가 잔뜩 젖어들었다.

은근히 경쟁의식을 가졌던 옹해인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나누었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옹해인이 씁쓸한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 알겠군. 자네가 왜… 세상에 나선 것인지. 그래, 이자라면….”

그의 시선이 사비강에게 향했다.

그리고 다시 무랑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이번에도 자네가… 제대로 맞았군. 나보다 한 발 앞서 움직였어.”

“내가 그를 찾은 게 아닐세. 그가 먼저 나를 찾았지.”

“호오, 그렇다면 더욱 기대를 걸어볼 만하군. 이제 이자는 천해경에 이르렀네.”

두 사람은 알아듣기 힘든 내용을 서로 한참이나 그렇게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쿨럭! 커어억!”

옹해인이 허리를 숙이며 격하게 기침을 하더니 시커먼 핏덩이를 마구 토해냈다.

이제 그의 숨결은 무척 가늘어져 있었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무랑을 보았다.

입술을 질끈 씹은 무랑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내 오랜 벗이여…, 너무 슬퍼 말게나. 무책임했던 날 용서하게….”

“슬프긴 지랄… 누가…”

내뱉는 말과 달리 무랑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옹해인이 사비강을 올려다보았다.

“자네… 중원을… 부탁…하네….”

겨우 말을 끝맺은 옹해인이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늘한 바람과 적막만이 호숫가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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