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4
귀환 마교관
394화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옹해인이 미미한 웃음을 머금고 읊조리자, 동면인이 혈수오마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사삭!
혈수오마가 다섯 방향으로 흩어지면서 옹해인을 순식간에 포위했다.
동면인이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속세를 떠나 은거해서 지내기로 했다면, 세상일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했을 것 아니오? 그게 오래 사는 길 아니었겠소?”
“때론 내가 세상을 피해도, 세상이 날 쫓아오기도 한다네.”
“그럼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는 소리군.”
동면인이 싸늘하게 말을 뱉더니, 날카롭게 소리쳤다.
“죽여!”
“존명!”
일순 혈수오마가 도검을 뽑아 들며 날아올랐다.
어차피 쓸데없는 말을 나누며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의 진법을 펼친 영감이라면 그 무공 수위가 상당하리라.
가장 먼저 일마가 바람을 가르듯 달려가며 검을 내질렀다.
쒸이이이익!
그의 특기인 섬마검(閃魔劍)이 펼쳐졌다.
그 이름처럼이나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스슥. 슥!
옹해인이 보법을 밟자, 놀랍게도 순식간에 열 걸음 밖으로 물러난 게 아닌가?
‘어떻게?’
찰나의 순간 일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빨리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 자신의 일 검에 찔려 죽거나, 간발의 차이로 피하거나, 그도 아니면 무기를 내세워 막아냈다.
한데 저렇게 멀리?
적어도 일마는 자신의 눈을 끝까지 의심했어야 했다.
실제로 옹해인은 그렇게 멀리 벗어난 것이 아니었기에.
단 한 걸음 차이였지만, 오두막집 근처에 깔려 있는 진법이 그런 눈속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환위시공진(幻僞時空陳).
옹해인이 개발하고 만들어낸 진법으로, 오두막집 근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공력을 발출하게 되면 정해진 보법을 밟지 않았을 때 시공간이 이지러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 때문에 환위시공진에 걸려든 일마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달려가 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마와 삼마는 합격술을 펼쳤다.
두 사람이 옹해인을 사이에 두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츄아아앗!
“크억!”
“아악!”
그들 사이에 서 있어야 할 옹해인은 머리 위에 거꾸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이제 보니 자신들이 허공에서 거꾸로 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꾸로 뒤집어진 채 서로를 베고는 추락하는 중이었다.
콰당!
“컥!”
“윽!”
곧이어 사마와 오마가 시간차를 두고 달려들었다.
찰나, 사마가 눈을 부릅뜨고는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가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이런 미친!”
오마가 곧장 자신에게 검을 내질러 온 것이다.
한편 오마의 눈에는 사마가 옹해인을 향해 달려가다가 느닷없이 자신에게 몸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헛!”
그가 얼른 검을 몸을 피하며 헛바람을 삼켰다.
그야말로 혈수오마의 악명답지 않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허무한 공격이었다.
옹해인은 그저 제자리에서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그를 공격하겠다며 달려들던 자들이 서로에게 칼질을 하고 있으니, 남이 보았더라면 그들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절대 믿지 못했으리라.
그만큼 옹해인이 만든 진법이 견고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편 옹해인 역시 내심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자신이 만든 진법 안에서 위협을 가했던 자들은 모두 자해를 해버리거나, 서로 죽고 죽이면서 자멸하기 일쑤였다.
한데 혈수오마의 경우 비록 부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게다가 동면인은 이미 진법이 깔려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아예 접근조차 해오지 않았다.
동면인이 차갑게 소리쳤다.
“늙은이가 잔재주를 부리는군! 검기를 날려라!”
그러자 혈수오마들이 제각각 제한된 공력을 운용하여 검기를 형성해서 날려 보냈다.
쑤아아아앙!
동면인까지 포함해 여섯 줄기의 검기가 날아들자 옹해인이 양손에 기를 운집시킨 다음 사방으로 내지르며 격발시켰다.
파파파파아앙!
그를 향해 날아들던 검기가 장력에 부딪쳐 폭발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한 차례 먼지바람이 회오리치고 나서 옹해인이 주변을 싸늘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쉽게 돌아갈 손님들은 아니군.”
“그걸 이제 아셨소? 도량을 좀 더 쌓으셔야겠소.”
동면인이 차갑게 비웃으며 말하자, 옹해인이 순간 바닥을 차며 그에게 쏜살같이 날아갔다.
“노옴!”
“와라!”
동면인의 눈매가 길게 찢어지며 마기가 폭발하듯 일어났다.
**
콰아앙!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대던 사비강이 멈칫하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커다란 소음과 함께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 바람에 지붕이 흔들리면서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음식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르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사비강은 사나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는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쩝쩝…!”
그렇게 또 한참을 먹는데 다시 한 번 커다란 소음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사비강은 잠깐 멈칫거렸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마지막 접시를 싹싹 핥아먹은 것이다.
더 이상 먹고 싶어도 음식이 없었다.
자신에게 음식을 갖다 바칠 사람은 지금 뭐라고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씨불이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배를 채울 음식이었다.
언젠가 옹해인이 사비강의 먹성을 보며 ‘차라리 소를 키우고 말지.’라고 한 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크아아아!”
더 이상 음식이 없자, 사비강은 화가 난 듯 빈 그릇을 들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와 보니 마침 옹해인은 호숫가에서 여섯 명의 마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꽤나 힘에 겨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진법을 이용해서 제법 버틸 수 있었지만, 그래도 상대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절대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진법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옹해인의 움직임을 보면서 대략의 보법을 파악한 것이다.
사실 대게의 진법이 그렇듯, 환위시공진 역시 초절정의 영역까지 오른 고수들에게는 잠깐의 시간벌기 용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오두막집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금제 진법만큼은 쉽게 깰 수 없는 것이었기에 옹해인과 마인들은 철저하게 절제된 내공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수상비 정도는 가뿐하게 펼칠 만큼의 위력을 지녔지만.
어쨌거나 여섯 명의 마인들은 옹해인을 꽤나 곤란한 처지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파바바밧!
옹해인이 수상비를 펼치며 곧장 오마를 향해 날아갔다.
여섯 명 중 가장 약해 보였기에 우선 머릿수를 하나라도 줄이자는 속셈이었다.
기습도 아닌 상황에서 굳이 강한 자부터 상대할 필요는 없었기에.
하나, 가장 약하다고는 해도 오마 역시 초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비록 금제의 영향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옹해인이 가볍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촤아아악!
오마가 검을 횡으로 후려치자, 수면 위에서 물방울이 튀어 오르면서 그대로 날카로운 얼음덩어리로 변했다.
극음의 기운이 물줄기를 그대로 얼려 버린 것이다.
옹해인이 얼른 낚싯대를 내리쳤다.
쩌어엉!
낚싯대와 얼음덩어리가 부딪쳤을 때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파파파파파파!
산산조각 난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타타타타타탕!
동면인이 검을 휘두르면서 날아드는 얼음 알갱이를 모두 쳐냈다.
푸스스스스!
하얗게 부서진 얼음 가루가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찰나,
쑤우우욱!
하얀 안개를 뚫으며 동면인이 불쑥 나타나는가 싶더니 그대로 검을 횡으로 베어 왔다.
옹해인이 얼른 낚싯대를 돌려세우며 막았다.
쩌어엉!
다시 한 번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그대로 옹해인이 튕겨서 호숫가까지 날아갔다.
츄아아아아!
물보라를 일으키며 미끄러진 옹해인은 온몸이 잔뜩 젖은 채 그대로 널브러졌다.
처벅처벅.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옹해인이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사비강이 접시를 든 채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자네…”
옹해인이 낭패한 표정으로 마인들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사비강을 보고는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늙은이를 도우려는 건가?”
사비강이 마인들을 힐끔 보더니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크르르…”
“보아하니 아직도 완전히 이성을 되찾은 건 아닌 것 같군.”
“정보가 틀리지 않았군요.”
동면인의 말에 일마가 옆에 다가와 서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굳은 표정으로 옹해인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옹해인이 비척거리며 일어나 사비강을 등졌다.
“나서지 말게나.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크으…!”
사비강은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이내 짐승 같은 소리만 낼 뿐이었다.
옹해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저었다.
“내 걱정은 말고 물러나 있게.”
“영감. 방해는 이제 그만하고 비켜 주시오. 우린 영감에게 볼 일이 없소이다.”
동면인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대로 물러날 옹해인이 아니었다.
그가 전에 없이 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자를 넘겨줄 수 없으니, 그대들은 그리 알…!”
꽝!
순간 동면인을 비롯한 혈수오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기세 좋게 소리치던 옹해인이 그 자리에 고꾸라진 것이다.
그를 쓰러뜨린 자는 다름 아닌 사비강이었다.
사비강이 접시를 들고 그대로 옹해인의 뒤통수를 내리친 것.
기를 담았기 때문인지 접시는 깨지지도 않았다.
“끄으…! 이게 무슨 짓인가?”
옹해인이 뒤통수를 붙들고는 고개를 들어 묻자, 사비강이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더니 불쑥 접시를 내밀었다.
“밥… 달라… 크르…!”
놀랍게도 사비강이 말문을 열었다.
하나 그 사실보다도 이 상황에서 밥 타령을 하는 사비강에게 놀란 옹해인이 입을 딱 벌리고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자넨 도대체 상황 파악이….”
“밥… 달라… 크르…!”
“허어, 알겠네. 밥은 줄 테니 우선….”
그때였다.
쒸이이이익!
비수 한 자루가 옹해인의 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찰나, 옹해인이 몸을 비틀자 살갗을 찢으며 지나친 비수가 그대로 사비강이 들고 있던 접시를 깨뜨려 버렸다.
쨍그랑!
곧이어,
파바바바밧!
일마가 수상비를 펼쳐 달려오더니 손을 불쑥 뻗어 옹해인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옹해인이 얼른 장력을 격발시키려고 했으나, 일순 기의 흐름이 탁해지면서 몸이 둔해졌다.
‘비수에 독이 발라져 있었구나!’
다음 순간, 일마가 그대로 옹해인을 호수 복판으로 내던져 버렸다.
속수무책으로 날아간 옹해인이 그대로 물에 빠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첨벙!
일마는 옹해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사비강을 보고는 히죽 웃었다.
“안녕. 한참 찾았다고.”
“크르르…!”
사비강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깨진 접시를 바라보더니 몸을 가늘게 떨었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음?”
일마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사비강의 전신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핏빛 기운.
“크으…!”
사비강의 두 눈 역시 시뻘건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