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89화 (389/670)

# 389

귀환 마교관

389화

“회면이 당했습니다.”

금면의 보고에 태사의에 앉아 있던 교주는 미간을 팍 구기며 눈을 떴다.

“회면이 당해?”

“예, 함께 갔던 정예 마인이 모두 당했습니다.”

“누구에게 당했단 말인가?”

“아무래도… 사비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세히.”

“사비강이 석실을 깨고 나왔습니다. 은면이 기회를 놓친 듯합니다.”

“뭐라!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교주가 벌떡 일어났다.

치밀한 성격인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사비강도 절대로 석실에서 살아 나올 수 없다고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한데 석실을 깼다니!

‘사비강 그자가… 존야와 버금가는 수준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교주의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려 왔다.

장내는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마령교의 그 누구도 사비강이 살아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한참이 지나서야 교주의 무거운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사비강이 염탐하던 회면을 발견해서 제거했다는 건가?”

그는 말을 꺼내면서도 여전히 이 상황을 믿기 힘들었다.

‘대체 그 석실이 어떤 곳인데 그런…!’

금면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역시 이보다 자세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보고를 받고 나서 교주만큼이나 더욱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은 정보가 제한적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에 은면이 다시 알려 올 것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리는 교주에게 금면이 다시 보고를 이어 갔다.

“자세한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은면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사비강은 주화입마에 빠졌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주화입마라?”

“예, 석실을 무너뜨린 직후 사비강이 폭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때 회면을 제거하고 그대로 행방불명이 된 상황입니다.”

“하면 소환지에 들어간 다른 생도들은 어찌 되었나?”

“사상자가 있습니다만, 다수의 생도들이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역시나 쉽게 믿을 수 없는 보고였다.

제단이 만들어진 소환지에 들어간 이상, 생도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곳은 더욱 그랬다.

단 일 푼어치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사비강만큼은 기적이 일어나서 살아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망상을 해보았다.

그렇다.

그건 어디까지나 망상이었다.

그 터무니없는 망상을 대비해서 은면에게 칼을 갈게 한 것이고.

한데 사비강이 멀쩡하게 살아 나온 것도 모자라서, 은면을 비롯한 다른 생도들 대다수가 살아남았다니?

게다가 사비강은 행방불명이라니.

사실 보고를 올리는 금면인도 이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는 가만히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그 석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자신들이 예측했던 세 가지 상황 중 단 하나도 들어맞지 않다니!

교주는 뭔가를 생각하는지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쩌면 생각이 아니라, 충격 속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사비강이 죽어야 했으니까!

금면인은 그의 입이 떨어지기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마침내 교주가 입을 열었다.

“만약 사비강이 주화입마에 빠져 실종된 상황이라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고 볼 수 있군.”

금면인은 내심 감탄했다.

이 믿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교주는 곧바로 후속 대책을 생각한 것이다.

금면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해서, 이미 동면(銅面)과 혈수오마(血手五魔)를 추격조로 보냈습니다.”

“잘했군.”

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혈수오마는 마령교 내에서도 초절정 고수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최정예들이었다.

그들이 사비강을 추격해서 찾아내기만 한다면 어렵지 않게 일을 해치울 것이다.

다만…

“사비강이 주화입마에 빠진 게 아니라면….”

“자세한 건 은면의 보고를 더 들어봐야 알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동면과 혈수오마가 합공을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지. 그 석실에서도 살아 나온 놈이다. 만에 하나 실패를 하게 되면, 자네가 직접 나서야 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금면이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

**

“벌써 열두 시진이 꼬박 지났어.”

“그러게 말이야. 저러다 쓰러지실까 봐 걱정이군.”

“누가 그러는데, 저건 기우제(祈雨祭)의 일종이라더군.”

“기우제? 관주님이 실종됐는데 왜 기우제를?”

“그야 알 수 없지.”

“쉿. 다들 조용히 해. 혹 방해라도 될라.”

수군거리던 생도들에게 또 다른 생도가 주의를 주었다.

그들은 모두 멸마관 무랑전에서 술법을 배우는 생도들이었다.

이번에 입관한 생도들 중에서도 술법에 재능이 있는 자들을 선별해서 무랑이 특별히 무랑전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한데 최근 사비강 관주가 실종되면서 무랑은 무랑전 후원에 제단을 쌓게 하였고, 제단이 완성되자마자 그곳에 커다란 대접을 갖다 놓은 뒤에 제를 지내고 있었다.

꼬박 하루를 채웠음에도 무랑은 대접 앞에서 절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절을 올리는 무랑을 보며 생도들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켜보던 생도들도 하나둘 돌아가고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툭, 툭…!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직까지 남아서 무랑을 지켜보던 생도 중 한 명이 나직이 소리쳤다.

“엇! 빗방울이다!”

“정말이네.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비가 정말 내리기 시작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쏴아아아아아아아!

시원한 빗줄기가 거짓말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기우제가 통했나 봐.”

“과연 무랑도사님은 대단하시구나.”

생도들이 연신 들떠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이 의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현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는 비단 무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중원 전체에 동시적으로 쏟아져 내리는 비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은 더욱 놀랐으리라.

그야말로 쏟아져 내리는 물들이 천지를 잇고 공간을 잇는 중이었다.

장작 무랑이 의식을 시작한지 열여섯 시진 만이었다.

마지막 절을 올리고 일어서던 무랑이 비를 맞으며 비틀거렸다.

“엇! 전주님!”

생도들이 얼른 달려가려고 했지만, 무랑은 재빨리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대신 심호흡을 하고는 커다란 대접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쏟아져 내리던 비는 무랑 앞에 놓인 대접을 완전히 채우고 나서야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이윽고 무랑이 손을 뻗어 대접의 수면을 한 차례 쓸었다.

그런 다음 가만히 대접에 담긴 물을 굽어 살폈다.

**

크르렁!

수풀을 헤집으며 대호(大虎)가 튀어나왔다.

쉬이이잇!

한 줄기 붉은 검기가 날아오르면서 사납게 달려들던 호랑이는 그대로 몸이 절반으로 갈라지며 즉사하고 말았다.

철퍽!

사비강은 이제 고깃덩이가 되어 버린 호랑이를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더니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생살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쩝쩝… 우걱우걱…!”

누군가 보았더라면 기겁을 했으리라.

하지만 워낙 깊은 산중이었기에 근방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비강은 순식간에 호랑이 한 마리를 다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배가 고픈지 눈살을 찌푸리고는 아랫배를 슬슬 문질렀다.

입가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만히 몸을 일으킨 그가 주변을 슬쩍 훑어보았다.

빽빽한 나무들로 가려져 시야가 답답했다.

다음 순간,

쑤아아아아앙!

검붉은 검강이 횡으로 날아가자,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그대로 쓰러져 나갔다.

수십 장이 초토화 되니 전방으로 시야가 시원하게 뚫렸다.

마침 저만치 산정호수가 보였다.

목이 마르던 차였기에 사비강은 본능의 이끌림에 따라 그곳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팟!

다음 순간 사비강은 호숫가에 서 있었다.

그야말로 귀신같은 움직임.

사비강은 그대로 수면에 코를 처박은 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야말로 짐승이 따로 없었다.

그때,

쏴아아아아아!

마른하늘에 거짓말처럼 소낙비가 내렸다.

사비강은 개의치 않았다.

쏟아져 내리는 비 따위를 신경 쓸 만큼 정신이 온전하지도 않았다.

한참이나 게걸스럽게 물을 들이켠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저만치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낡고 초라한 집 한 채가 호숫가에 그림처럼 지어져 있었다.

사비강은 그 집에서 뒷짐을 지고 걸어 나오는 노인을 보았다.

“크르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사비강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다음 순간,

파앙!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 쏜살 같이 날아갔다.

비 내리는 호수면 위를 날듯이 달리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롭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한편, 호숫가의 낡은 집.

이제 막 문을 열고 나온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침음을 흘렸다.

“흐음. 예사롭지 않은 비로다.”

가만히 중얼거린 노인은 푸른색 장삼을 걸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억수 같이 쏟아져 내리는 비에도 그의 몸은 조금도 젖지 않았다.

노인이 무심히 시선을 돌려 호숫가에 선 사비강을 보았다.

그는 짐승처럼 헐떡이며 사나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호수를 건너온 듯 수면 위로 길게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물결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노인이 성성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 비는 그대 때문인 모양이군.”

노인은 사비강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이 베르타스에 머물렀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요검(妖劍)… 이로다.”

우우우우웅…!

베르타스가 말귀를 알아듣는 듯 떨어댔다.

다음 순간,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 달려들려는데,

“왜 그리 비를 맞고 서 있누? 어서 들어가세. 자자, 이리 오게.”

노인이 먼저 저벅저벅 다가오더니 사비강의 손을 덥석 잡고 이끄는 게 아닌가?

뜻밖의 상황에 사비강이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노인을 보았다.

노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양할 것 없네. 우선은 좀 씻어야겠군. 냄새가 지독하군, 허허.”

“크르르…!”

“부끄러워할 것 없네. 내 일전에 자네 같은 아이를 본 적이 있지. 간만에 옛 생각이 나는군.”

“크르르…!”

“뭐, 그땐 이렇게 사납진 않았지. 하지만 그 아이와 자네는 많은 부분이 닮았구먼.”

노인은 사비강의 손을 이끈 채 휘적휘적 걸어갔다.

너무나 당연한 듯 행동했기 때문일까?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들려던 사비강도 더 이상은 으르렁거리지 않고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갑자기 쏟아져 내린 비 때문에 땅바닥에는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두 사람은 물웅덩이를 철벅철벅 밟아 가며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그중 물웅덩이 한 곳.

수면에 비친 사비강의 그림자가 스르르 변하더니 이내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무랑도사였다.

잠시 후 물웅덩이에 비친 무랑도사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

꿈쩍도 하지 않고 대접만 내려다보던 무랑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가 긴 한숨을 내쉰 끝에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찾았다.”

**

“젠장! 어떻게 우릴 찾았지?”

추량이 이를 빠득 갈고는 눈앞의 적들을 훑어보았다.

모두 여섯 명.

하나 같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들.

사실 애초에 이들의 눈을 피해 숨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흑귀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은 추종술의 달인이지, 은신술의 달인은 아니었다.

여섯이나 되는 초절정 고수가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으리라.

그래도 느닷없이 쏟아지는 폭우가 자신의 흔적을 지워 주길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었다.

물론 부질없는 희망이 되었지만.

‘이놈들까지 사부님을 찾을 줄이야.’

추량과 흑귀는 사비강의 흔적을 찾던 중, 우연히 이들을 만났다.

바로 동면인과 혈수오마였다.

그들과 조우했을 때, 두 사람은 정면승부로 도저히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다.

곧바로 몸을 빼냈지만 여섯 명의 초절정 고수를 따돌리기는 역시 아무래도 무리였다.

결국 지금 추량과 흑귀는 낭떠러지 끝 막다른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그리 겁먹을 건 없다. 만약을 대비해서 너희들 중 하나는 살려 둘 수 있으니까.”

동면인이 히죽 웃으며 걸어 나왔다.

추량은 코웃음을 쳤다.

“흥! 우리 목숨을 인질로 잡는다고 해서 사부님이 눈 하나 까딱할 것 같으냐?”

“슬픈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군.”

동면인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추량이 흑귀를 힐끔 돌아보았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만약 흑귀 혼자였다면 충분히 은신을 해서 이자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으리라.

찰나,

“사과는 저승에서나 해라!”

동면인이 바닥을 차며 화살처럼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추량이 흑귀 앞을 막아서며 기합성을 터뜨렸다.

“하아앗!”

후아아아앙!

추량의 수호구에서 오러가 뿜어져 나오며 방패가 만들어졌다.

동면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건… 뭔…?”

쩌엉!

“아악!”

“커윽!”

동면인의 강기를 정면으로 막아낸 추량이 그대로 튕겨 나가면서 흑귀를 덮쳤다.

두 사람이 벼랑 밖으로 튕겨 나가자, 동면인이 달려와 미간을 구겼다.

“한 놈은 살려 두려고 했건만.”

천운이 따르지 않는 한 둘은 죽은 목숨이리라.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건 사비강의 행방이다.

“계속해서 사비강을 추적한다.”

동면이 싸늘하게 중얼거리고는 몸을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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