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85화 (385/670)

# 385

귀환 마교관

385화

멸마관 관주전 안마당.

취리리릿!

은빛 비늘을 가진 뱀이 달빛 위를 미끄러지며 춤을 추듯 날아갔다.

쉭쉭, 쉬익!

취리리리릿!

허공을 유영하듯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뱀은 연신 보이지 않는 적을 물어뜯으며 궁지로 몰아갔다.

촤아아악!

은빛 비늘의 뱀이 휘청거리며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꼿꼿한 검신이 되어서 달빛을 받아냈다.

“하아, 하아.”

매설란은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녀의 턱 끝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뚝 떨어졌다.

‘아직 부족해.’

그녀는 소매로 땀을 훔쳤다.

그동안 ‘감찰국주’라는 무거운 직책을 수행하면서 개인적인 수련을 등한시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멸마관의 교관이 된 이후로는 훨씬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매설란은 자신의 특기인 사사검법을 더욱 갈고 닦았다.

‘좀 더…!’

그녀는 다시 정신을 집중한 다음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휘청휘청.

그녀의 손에 들린 연검이 다시 꼬리를 치듯 낭창거렸다.

쉬이이이잇!

취리릿! 취리릿!

연검이 날아오르며 다시 뱀의 울음을 토해냈다.

이번에 나타난 적은 다섯이었다.

적들은 그녀의 배후를 노리며 기민하게 달려든다.

하지만 뱀으로 변한 연검은 그녀의 몸을 똬리를 틀 듯 감싸며 방어한다.

적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매설란은 재빨리 공격 태세로 전환한다.

취리리리릿!

은빛 뱀이 다시 달빛 위를 미끄러지며 다섯 명의 적을 차례로 노려 간다.

츄악!

하나의 적이 쓰러졌다.

쿡, 쿡!

두 번째 적은 심장과 요혈이 찔려 즉사했다.

츄아악!

세 번째 적은 목이 베여 넘어갔다.

취리리리릿!

마지막으로 매설란은 자신의 배후를 노리고 달려드는 네 번째 적과 다섯 번째 적을 향해 연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둘러야만 했다.

하지만…

‘안 돼! 이걸론…!’

돌아서는 속도보다 적이 내지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어쩔 수 없이 몸을 비틀어 피한다.

하지만 자비 없이 날아드는 적의 검은 그녀의 어깨와 허벅지를 길게 찢어낸다.

부상을 당한 그녀는 더 충원되는 적들을 보며 절망에 잠긴다.

‘실패야.’

그녀는 싸우기를 멈추고 연검을 거둔다.

그러자 상상속의 적들이 스르르 소멸했다.

초절정 한 명과 절정 네 명을 동시에 상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반의 반각이 지나면 절정 고수 열 명이 더 충원된다는 설정을 넣었다.

결국 그녀는 시간 내에 다섯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초절정을 제거하지 못했으니, 충원된 열 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다.

‘역시… 하나가 더 필요해.’

매설란이 오른손에 들린 연검을 가만히 보았다.

하나의 연검으로 적을 상대하기는 어렵다.

조금 전만 해도 왼손에 검이 하나 더 있었더라면 돌아서는 시간을 아껴 적을 기습할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하나의 검과 두 개의 검을 사용한다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자칫 잘못하면 하나를 사용할 때보다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두 자루 모두 연검이라면 더욱 그렇다.

만약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어딜 가더라도 제 한 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머물러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지. 하지만 욕심을 내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고.”

사비강이 한 말이었다.

그는 매설란에게 은근히 사사검법을 제대로 익혀 볼 것을 권했다.

사사검법에 사(蛇)가 두 번이나 들어가는 것은 사실 그 때문이다.

연검 두 자루로 익혀야 하는 검법이기에!

‘좋아, 결심했어. 나 사사검법을 제대로 익히겠어.’

앞으로 닥칠 우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더 많은 이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명분 때문도 아니다.

그저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서.

분명 지난 시간 무공이 상승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쾌감을 느꼈기에.

그렇다면 역시 연검 한 자루가 더 필요하다.

‘그가 돌아오면… 한 자루 구해 달라고 해볼까?’

매설란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한 번도 부탁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부탁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하다.

‘당신… 무사한 거죠?’

고개를 꺾어 들고 달을 올려다보았다.

왠지 오늘따라 달빛이 시리다.

이 불길한 마음 때문에 일부러 연무장에 나와 더욱 혹독하게 수련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얼마 전 사비강이 데려온 무랑도사였다.

“마음이 심란한 모양이오.”

과연 무랑은 매설란을 보자마자 그녀의 상태를 간파했다.

매설란이 피식 웃었다.

“이렇게 속내를 감출 줄 몰라서야 저도 고수가 되긴 틀렸네요.”

“자책할 것 없소. 내 앞에서는 누구도 속내 따위 감출 수 없을 테니.”

“그럼 도사님이 제 근심도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타인의 근심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신령이 아니겠소? 다만….”

“다만?”

“남들보다 예측은 좀 해볼 수 있겠지. 하여 우환을 조금 덜거나 준비할 수는 있을 거고.”

“그럼… 관주님의 상황을 알 수 있을까요?”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대략 짐작은 해볼 수 있을 거요.”

매설란이 얼른 다가오며 말했다.

“그럼 알아봐 주시겠어요?”

“흐음. 따라오시오.”

무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앞장섰다.

두 사람은 평소 무랑이 기거하는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천하제일최고지자무랑전(天下第一最高智者無浪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선 무랑은 모래가 가득 담긴 사각 틀 가운데로 들어섰다.

매설란은 본능적으로 그곳에 자신이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틀 밖에 멈춰서 기다렸다.

무랑이 모래를 한 줌 쥐고 손바닥에서 흘려보내더니 심호흡을 하고는 품에서 열여섯 개의 작대기를 꺼냈다.

작대기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 매설란이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마침내 무랑은 열여섯 개의 작대기를 들고 착착 소리를 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천기(天氣)가 충(充)하니, 지기(地氣)가 화(和)한다. 음(陰)이 실하여, 양(陽)을 읽으니, 운(運)이 극(極)하여, 도(道)를 헤아리리라.”

촤라라락!

열여섯 개의 작대기가 모래 위로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무랑은 한참이나 그 모양을 살피고 헤아렸다.

틀 밖에 서 있는 매설란은 조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사이비 점쟁이 집에 와서 점을 치는 아낙네가 된 기분이랄까?

한참이 흘러 매설란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마침 무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소 예측과 다른 길이 나타나겠으나, 관주님의 기운이 워낙 성하여 돌아올 길은 결국 찾을 것이오.”

“관주님이 무사히 돌아오신단 말이죠?”

“뭐, 그렇소.”

무랑이 어딘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매설란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농담처럼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의 예측은 정말 믿어도 되는…?”

말을 꺼내던 매설란이 멍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렸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치며 휑하니 지나갔다.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그녀는 관주전 안마당에서 연검을 들고 서 있었다.

워낙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처음부터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는 사술에 당한 것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턱 끝에는 여전히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제 막 수련을 마친 사람처럼 가슴도 뛰고 있었다.

**

무랑은 심각한 표정으로 모래 위에 널브러져 있는 작대기들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참… 곤란하군.”

그는 턱수염을 쓸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허어, 이거 참….”

그가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분명 돌아올 길을 찾긴 찾았는데…

“왜 그 길로 안 가는 거지?”

돌아올 생로(生路)가 분명 열려 있거늘, 의(意)가 없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결국 사비강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뜻.

‘도대체 그놈이 얼마나 난 놈이기에 내 술법조차 더 이상 파고들지 못한다는 건가?’

무랑은 기대와 걱정이 서린 표정으로 일어나더니 창가로 걸어갔다.

그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비강 관주… 돌아와야 할 걸세. 자네를 기다리는 사람이 늘었네.”

**

“지금쯤 결과가 나왔을 테지.”

태사의에 앉은 교주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럴 겁니다.”

금면인이 대답했다.

“만약 사비강이 석실에서 살아남는다면….”

“은면이 나서겠지요. 석실의 싸움을 끝냈을 때가 기습하기에 가장 좋은 순간일 테니까요.”

가능성은 세 가지였다.

첫째, 석실에서 사비강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

그렇다면 아마 생존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은면인도 살아나올 가능성이 없다.

둘째, 석실에서 사비강이 살아남는 경우.

이때는 은면인이 나설 것이다.

석실의 주인과 싸워서 지칠 대로 지친 사비강을 손쉽게 제거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성공하면 사비강이 죽겠지만, 은면인은 살아나올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은면인이 기습에 실패했을 경우다.

그때는 은면인만 희생될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사비강이 석실을 깰 확률이 없습니다.”

금면인의 말에 교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곳이라면 교주인 자신이 들어가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곳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면 분명 존야뿐이리라.

‘그 누구도 거기서 살아나올 수는 없다. 설령 사비강이라 하더라도.’

그러면서도 이토록 많은 경우의 수를 가정하는 것은 교주가 치밀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기 때문이었다.

금면이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이미 은면은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갔습니다. 사비강이 석실의 주인을 꺾지 못하겠지만, 만에 하나를 가정해서지요. 기적은 그리 쉽게 일어나는 게 아니지요. 혹,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그땐, 은면이 진가를 발휘할 겁니다.”

“그래야지.”

교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하복산에는 누가 나가 있나?”

“회면이 지켜보는 중입니다. 머잖아 소식이 들어올 겁니다.”

“좋은 소식이 되겠군.”

교주가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

휘오오오!

쉬이이이이이!

베르타스를 척 늘어뜨린 사비강의 주위로 핏빛 기운이 쉴 새 없이 소용돌이쳤다.

생도들은 숨도 쉬지 않은 채 사비강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여소정이 걱정 서린 얼굴로 옆에 선 표하림에게 나직이 말을 건넸다.

“관, 관주님… 괜찮은 걸까요?”

“나도… 모르겠소.”

분명한 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거다.

사비강은 여인을 제거한 후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는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악, 하악, 하악…!”

거칠게 쏟아내는 숨결이 생도들의 귓가에 규칙적으로 울려 왔다.

뭔지 모르지만 지금 사비강에게 다가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다는 본능의 경고가 일어났다.

그때,

구그그그그그그… 긍!

육중한 소리가 울리면서 석실의 출입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열, 열렸다!”

“드디어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됐어!”

“쉿! 조용!”

생도들이 소리치자 풍검진이 얼른 입에 검지를 대며 주의를 주었다.

갑작스런 소란에 사비강의 몸이 꿈틀거린 탓이다.

“일,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도록 하자!”

등부형의 말에 능소소가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관주님은요?”

“뭐, 알아서 나오시겠지! 관주님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머뭇거리면 오히려 짐이 되고 말아!”

나름 일리가 있었기에 능소소는 입술을 꾹 씹으며 말을 아꼈다.

등부형이 생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먼저 갈 테니, 모두 날 따르도록!”

그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얼른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가 사비강 옆을 지나치려는 순간,

쉬이이이잇!

사비강이 그대로 살기를 뿜어내며 등부형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타닷!

찰나, 자운룡과 위검종이 쏜살같이 달려 나가며 사비강을 향해 쇄도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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