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84화 (384/670)

# 384

귀환 마교관

384화

사비강은 몸을 팽이처럼 회전하며 베르타스를 횡으로 그어 갔다.

쩌엉!

이번에도 혈창과 베르타스가 부딪치면서 공기가 쩌렁쩌렁 떨려댔다.

과연 여인은 어지간한 초절정 고수 열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물론, 보스 몹이 머무는 석실이라는 환경이 한 몫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모든 여건이 여인에게 유리하도록 갖춰져 있기에.

반면 사비강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나가 급격히 소진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공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큰 제약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던전이 마계에서 소환된 것이다 보니, 마나에만 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이년의 정체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는 건 확실히 문제지만.’

싸우는 내내 기억을 헤집고 더듬어보았지만, 역시나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상대.

‘옷이 날개로 변하고, 아이에 집착하는 여인이라….’

더구나 이건 지능이 약간 있는 보스 몹 수준이 아니다.

거의 인간과 다를 바 없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지 않았나?

생각할수록 수수께끼투성이다.

마계에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몬스터.

아니, 저 여자를 몬스터로 보는 게 맞긴 한가?

어쨌거나 그런 여자가 이 석실의 주인이다.

어떻게 저런 여자를 소환한 거지?

만약 소환한 게 아니라면…?

‘도대체 저년은 어디서 나타난 거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와중에도 여인은 혈창을 매섭게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쉬이이이익, 따앙!

다시 한 번 불꽃이 크게 일어났다.

따다다다당! 깡!

여인은 쉴 새 없이 사비강을 몰아붙였다.

사비강은 그녀의 혈창을 막아내는 한편, 계속해서 보법을 밟으며 물러났다.

최대한 마나를 아끼기 위해서 마법을 자제하며 싸웠다.

내공이 제법 소진되면 마나를 다시 내공으로 치환해서 보충하며 싸웠다.

한편, 둘의 전투를 단상에서 지켜보던 생도들은 한동안 자신들의 처지도 잊은 채 감탄의 연속이었다.

“대, 대단하군.”

“저게 사람의 무위라고 볼 수 있나?”

“이래서야 원… 보고 배울 수도 없겠는데?”

그러던 어느 순간 혈창이 사비강의 가슴팍을 찢으며 지나갔고, 베르타스는 여인의 팔을 뎅겅 베어 버렸다.

“됐다!”

“아직 안심하긴 일러!”

표하림이 쾌재를 부르자, 풍검진이 버럭 소리치며 경각심을 곤두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은 상처를 입을 때마다 핏물웅덩이에 몸을 담갔다가 솟아올랐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상처 부위가 멀쩡하게 회복되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비강의 몸에는 상처가 점점 많아졌고, 그녀는 지칠 줄도 모르고 싸웠다.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보스가 머무는 석실.

모든 환경과 조건이 그녀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따앙!

금속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이번엔 사비강이 뒤로 튕겨 나갔다.

촤아아악!

융단 위를 미끄러지며 멈춰 선 사비강이 호흡을 조절하며 여인을 노려보았다.

‘과연 만만치가 않아.’

여인이 아이라 부르던 북도문도들과 산적들을 모두 제거해 버리면, 그녀가 평정심을 잃어 기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생각보다 여인은 차분하게 대응해 왔다.

아니, 분명히 분노하고 있었지만 평정심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분노로 여인은 더욱 강해졌다.

황면인과 힘겹게 싸웠던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문제는 이 여인이 황면인보다 훨씬 더 전투력이 우월한데다 여러 환경이 사비강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황면인에게 구사했던 수법을 사용하기도 힘들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베르타스가 미약하게 진동을 뿜어냈다.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사비강이 혀를 찼다.

“알아. 나도 맘에 안 든다고. 이 엿 같은 상황이.”

우우우웅.

베르타스가 대답이라도 하듯 다시 떨어댔다.

사비강은 무시했다.

한낱 던전의 보스 몹에 발이 묶여서 이렇게 개고생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나마 나타스를 소환해서 죽은 자들을 모두 정리했다는 게 다행이랄까?

적어도 생도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고비는 넘긴 셈이다.

다만, 생도들을 의식해서라도 광범위한 지역을 공격하는 하이 레벨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젠장!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던전을 소환해서는…!’

사비강이 내심 혀를 차는데, 여인이 흐느적거리며 걸어왔다.

“제법이구나, 아이야. 볼수록 죽이기엔 아깝구나. 지금도 갈등이 되는구나. 내가 너를 품을지, 그냥 죽여 버릴지….”

“미쳐도 곱게 미칠 것이지.”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곧장 블링크 마법을 펼치더니 여인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하아앗!”

기합성과 함께 그가 베르타스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쩌어엉!

이번에도 베르타스는 여인이 들어 올린 혈창에 막히며 불꽃과 함께 튕겨 나갔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 사비강은 뭔가를 보았다.

‘이건…?’

우우우우웅!

사비강이 깨달은 것에 반응이라도 하듯 베르타스가 더욱 거칠게 울렸다.

사비강의 표정에 아주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여인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조소하듯 물었다.

“아이야, 미쳐 가는 것이냐?”

“미친년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아주 묘하군, 그래.”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천천히 검을 바로잡았다.

우웅. 우우웅.

베르타스가 전율하듯 떨어댔다.

마치 주인이 자신의 뜻을 알아 준 것이 기쁘다는 듯.

“……?”

여인이 미간을 슬쩍 구기고는 베르타스를 바라보았다.

우웅. 우우우웅. 우우웅!

베르타스의 검신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여인이 모종의 불길함을 느끼고는 입을 여는데,

“무슨…”

타앗!

사비강이 빛살같이 날아가며 여인에게 쇄도했다.

쑤아아아앙!

검강을 머금은 베르타스가 여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림없는 짓!”

여인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더니 몸을 회전하며 혈창을 뻗어 왔다.

쉬이이익, 까앙!

다시 한 번 베르타스와 혈창이 부딪치며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그 순간 사비강은 분명히 보았다.

터져 나오는 불꽃들 사이로 베르타스가 붉게 물들었다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는 것을!

‘틀림없군!’

사비강이 내심 확신을 하자, 베르타스의 떨림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해졌다.

우웅, 우우우우웅!

“알아, 안다고. 기다려 봐.”

사비강이 싸늘한 웃음을 머금고는 중얼거렸다.

이제야 베르타스의 뜻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마나를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비강에게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한데 베르타스가 울어댄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마침 여인이 다시 한 번 혈창을 내지르며 사비강에게 달려들었다.

쉬이이잇!

사비강이 재빨리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카창!

호신강기가 깨져 나가면서 그대로 혈창이 옆구리를 찔렀다.

푹!

“크읍!”

신음이 터져 나왔다.

여인은 그대로 혈창을 휘두르며 사비강의 몸을 베어냈다.

휘리리릭, 첨벙!

허공에서 몇 바퀴를 회전한 사비강이 그대로 핏물 웅덩이에 빠져 버렸다.

치익, 치이이익!

사방으로 핏물이 튀면서 타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앗, 관주님!”

“저런!”

지켜보던 생도들이 저마다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

여인이 싸늘하게 웃었다.

“기고만장해서 설치더니 결국 별것 아니었구나. 너희들은 걱정 마라. 곧 저 녀석을 완전히 처리한 후에 누구보다 튼튼한 내 아이들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 순간,

츄아아아!

사비강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여인을 노려보며 비소를 머금었다.

“누구 마음대로? 말했잖아. 저 녀석들은 내가 키운다고.”

“아직도 정신을…”

슈우우우우…!

말을 뱉어내던 여인이 흠칫거리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사비강의 입매가 귀신처럼 찢어졌다.

“베르타스. 실컷 처먹어라. 이제야 네 불만을 알았다.”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깨달은 여인이 날카롭게 외쳤다.

“지, 지금 뭐하는 짓이냐?”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때론 해법이 너무 간단해도 헤맨단 말이지. 어지간히도 피를 좋아하는 녀석이 너 말고도 있거든.”

“무, 무슨…!”

여인이 경악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시선은 사비강이 들고 있는 베르타스로 날아들었다.

슈우우우우우…!

핏빛처럼 붉게 물든 베르타스의 검신.

베르타스는 지금 웅덩이에 고여 있는 핏물들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우우…!

“멈, 멈춰! 무슨 짓이냐!”

파바밧!

여인이 비명처럼 고함을 지르며 사비강에게 날아들었다.

쉬이이익!

사비강이 얼른 뒤로 물러나며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쉬이익, 쩌엉!

스으으으읏!

“헉!”

여인의 눈동자가 또 한 번 커졌다.

사비강이 일부러 검을 튕겨 내지 않고 내공을 이용해 베르타스와 혈창을 흡착시킨 것.

그러자 베르타스가 혈창의 기운을 야금야금 흡수해 가는 것이 아닌가?

결국 피를 흡수하는 베르타스에게 있어서 여인의 혈창은 맛있는 먹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이익…!”

그녀가 얼른 혈창을 거두었지만, 사비강이 그대로 베르타스를 맞댄 채 따라갔다.

“이런 거머리 같은 놈!”

여인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손톱으로 사비강의 가슴팍을 그었다.

촤아악!

앞섶이 찢어져 나갔지만 사비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가 날갯짓을 하며 훌쩍 물러나고 나서야 사비강이 떨어졌다.

하나, 그건 사비강에게 있어서 또 다른 기회였다.

사비강은 곧바로 핏물 웅덩이로 떨어지면서 베르타스를 깊숙이 담가 버렸다.

슈우우우우우!

이미 피 맛을 보았기 때문일까?

베르타스는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핏물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녀석이 희열을 느낀 것인지 강렬한 진동을 울렸다.

그 진동으로 석실 전체에 공명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여인이 또 한 번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찰나,

쑤아아아아앙!

베르타스가 그대로 수직으로 솟구치며 여인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 버렸다.

촤아아아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여인이 두 동강이 난 채 핏물 웅덩이에 빠져 버렸다.

첨벙! 첨벙!

“후욱, 후욱, 후욱!”

사비강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양손으로 손잡이를 콱 움켜잡았다.

어느새 그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 되어서 왠지 모를 광기를 품고 있었다.

베르타스가 엄청난 양의 피를 흡수하면서, 사비강의 의식도 서서히 잠식해 가는 것이었다.

츄아아아!

여인이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혈수면 위로 나타났다.

다만 이전보다는 어딘지 조금 작아진 체형이었다.

그녀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안, 안 돼! 그마아안!”

여인이 다시 사비강에게 날아들었다.

사비강 역시 반사적으로 여인을 향해 마주쳐 갔다.

이제 사비강은 거의 무아지경 상태였다.

두 눈은 충혈 되다 못해 동공 전체가 시뻘겋게 변해 버렸다.

본능에 따라 아니, 광기를 품은 베르타스의 의지에 따라 몸이 절로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쉬이이이잇!

베르타스는 그 와중에도 피를 흡수해 가면서 혈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촤아아악!

하나 이번에는 여인이 조금 더 빨랐다.

그녀의 손톱이 길게 자라나면서 사비강의 어깻죽지를 찢어낸 것이다.

“크읏!”

신음을 터뜨린 사비강이 휙 돌아서며 베르타스를 날렸다.

쒸에에에엑!

이기어검이었다.

여인이 곧바로 혈창을 내세웠다.

그런데,

투카앙!

베르타스가 그대로 혈창을 깨부수며 여인의 심장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닌가?

푸욱!

“아아아악!”

이미 다량의 피를 머금은 베르타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세가 대단했다.

타다닷!

사비강이 수상비를 펼치며 혈수면 위를 내달렸다.

마침내 코앞까지 다다른 사비강이 여인의 가슴에 박힌 베르타스의 손잡이를 잡았다.

찰나, 그의 눈이 핏빛보다도 붉게 빛나며 귀신처럼 찢어졌다.

“너…!”

여인은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촤아아아아악!

사선으로 그어진 베르타스에 의해 여인의 몸이 완전히 절반으로 갈라졌다.

사비강은 베르타스를 척 늘어뜨리고는 다시 핏물을 흡수해 갔다.

“하악, 하악. 하아악.”

거친 숨결이 입 밖으로 마구 토해져 나왔다.

사비강의 전신에서 핏빛 기운이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지켜보던 생도들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이제 웅덩이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우…!

“그마안…!”

얼마 남지 않은 핏물 웅덩이에서 여인이 다시 소생됐다.

하지만 그녀는 곧 마른 논바닥처럼 피부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래처럼 부서져 내리고 말았다.

“안…돼…!”

슈우욱!

마침내 석실의 모든 핏물을 흡수한 베르타스가 포효를 내지르듯 강렬한 진동을 울렸다.

우우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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