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3
귀환 마교관
383화
이번만큼은 여인도 놀란 것인지 재빨리 몸을 회전하며 사비강의 장력을 흘려보냈다.
츄아앗!
하지만 날카롭게 다듬어진 강기가 그녀의 몸을 스치면서 피가 튀었다.
치익… 치이익…!
핏방울이 떨어지자 융단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녹았다.
핏물에 잔뜩 젖은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돌아보았다.
“미안하지만 내 몸이 만독불침이라서 말이야.”
여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이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넌 볼수록 마음에 드는 아이구나. 안되겠다. 다른 아이들을 포기하더라도 너만은 반드시 내 아이로 삼아야겠구나. 이 어미가 널 최고의 아이로 키워 줄게.”
말을 마친 여인이 품에 안고 있던 남악의 머리를 어깨너머로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확실히 매를 덜 맞았군.”
사비강이 싸늘하게 말을 뱉더니 곧바로 블링크를 이용해 여인 앞으로 이동했다.
팟!
쑤아아아앙!
권강이 실린 주먹이 곧장 여인의 어깨를 노리며 날아갔다.
“소용없대도.”
여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순간 이동이라도 하듯 눈앞에서 사라졌다.
파앙!
사비강의 주먹이 허공을 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비강 역시 충분히 예측한 바였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을 노린 것이기도 했다.
‘걸렸어!’
찰나, 사비강이 왼손을 뻗으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소닉 버스터!”
퀴이이잉!
음속으로 만들어진 바람이 매섭게 날아가면서 여인의 몸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꺄아아악!”
폭발이 일어나자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여인의 옆구리와 다리 한쪽이 아예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가고 말았다.
첨벙!
그녀가 웅덩이에 빠지자 핏물이 튀어오르면서 여인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후우우.”
사비강이 심호흡을 하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아직까지 생도들과 뒤엉켜 싸우는 북도문도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것들까지 처리해야 하는 건가?”
원래 대게의 보스 방은 보스 몹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소멸하게 되어 있었다.
‘하긴. 이 던전은 어딘지 좀 이상하니까….’
일단은 저 잡것들부터 쓸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도들이 아직까진 잘 싸워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사비강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생도 하나가 북도문도의 발에 걷어차이며 핏물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첨벙!
“흐아아악!”
핏물에 빠진 생도가 비명을 내지르며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젠장!”
사비강이 단상으로 달려가려는데,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렴. 어차피 곧 나의 아이로 다시 태어날 거란다. 죽음은 언제나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이지.”
여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츄아아아아!
핏물에서 여인이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녀의 부상당한 몸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나의 양수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을 품는단다.”
“어지간히도 피를 좋아하는 모양이군. 꽤나 성가시단 말이지. 하지만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사비강의 반응에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생각일까?”
“죽음은 또 다른 탄생이라는 것 말이야.”
여인이 환하게 웃었다.
“네가 내 말을 이해한다니 기쁘구나. 이제 너도 죽음을 거부하지 않겠구나. 아무 걱정하지 마렴. 아이야, 내가 너를 다시 낳아 줄 테니. 어미로서 기쁜 마음으로.”
“계속 그렇게 기뻐해 줬으면 좋겠군. 당신의 그 모자란 아이들을 내가 다 빼앗아 가버려도 말이야.”
“뭐?”
순간 사비강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나타스!”
쑤아아아아앙!
사비강의 쇄골 사이에 박힌 크라니온에서 진녹색 빛이 터져 나오며 천장으로 솟구쳐 올랐다.
곧이어 사비강 옆으로 떨어진 빛은 이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더니 검은 넝마를 두른 해골 기사를 소환해 냈다.
비틀린 얼굴을 가진 해골 기사가 사비강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 죽음을 다스리는 악령, 나타스가 그대의 부름에 답했다.
해골 기사를 본 여인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사비강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말했잖아. 네 아이들을 뺏어가겠다고. 나타스, 저것들 회수할 수 있겠어?”
- 나, 나타스에게 죽음을 다스리는 일에 불가능은 없다.
“그럼 가져와.”
찰나,
후우우우웅!
나타스가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검은 연기가 물결치듯 북도문도들과 산적들을 덮쳐 갔다.
생도들과 어울려 싸우던 적들은 검은 연기를 흡입하자마자 움직임을 뚝 멈췄다.
동시에 붉게 빛나던 그들의 눈동자가 온통 허연 동공으로 가득 차 버렸다.
여인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내, 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이냐?”
“이제 좀 쉬게 해주려고.”
말을 마친 사비강이 나타스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일렀다.
“전부 회생 불가능하게 죽여 버려.”
- 시시하군.
겨우 이런 일로 자신을 부른 것이냐는 듯, 시큰둥하게 중얼거린 나타스가 손을 한 차례 휘젓자,
퍼억! 퍼퍼퍼퍼퍼퍽!
섬뜩한 소리와 함께 북도문도들의 전신이 산산조각 터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뼈와 살점들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튀어 버리니 원래의 형체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여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사비강은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제는 못 살릴 것 같군. 뭐, 그래도 살려낸다면 얼마든지 다시 죽여 버리지.”
반은 진담이었고, 반은 허세였다.
사실 이 석실에서 나타스를 소환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하기에.
언제까지나 나타스를 소환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여인은 사비강의 말을 그대로 믿는 듯했다.
“이, 이… 찢어 죽일 놈! 네놈을 기필코 내가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네 아이들도 내가 죽여 버릴 테다!”
눈이 붉게 충혈 된 여인이 느닷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고여 있는 핏물들이 허공으로 방울방울 솟아오르더니 구슬처럼 단단해지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혈주(血珠)가 된 핏물이 무서운 속도로 생도들을 향해 날아갔다.
쉭쉭쉭쉭쉬이이익!
찰나지간 사비강이 생도들 앞으로 블링크를 펼쳐 이동한 후 곧바로 손을 뻗으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라운드 실드(Ground Shield)!”
후아아아앙!
단상 위로 커다란 반구가 형성되면서 빠른 속도로 날아들던 혈주가 마구 부딪치며 타들어 가는 소리를 냈다.
타타타타타!
치익! 치이익!
혈주가 터지면서 핏물이 모두 증발하자 사비강이 생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피에 독이 있으니 호신강기를 펼쳐서라도 막아야 한다. 무기로 쳐내거나 막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알, 알겠습니다.”
생도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 튀어 나갔다.
쒸이이이잇, 팟!
경공과 블링크 마법을 섞어 순식간에 여인 앞에 당도한 사비강이 그대로 일장을 날렸다.
파앙!
하지만 여인은 무척 빨랐다.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사비강의 손을 미끄러지듯 피하더니 그대로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긁으며 지나갔다.
츄아아앗!
“큿!”
사비강의 오른팔이 길게 찢어지며 피가 뿌려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며 무영비각(無影飛脚)을 펼쳤다.
콰앙!
분명 여인의 등을 때린 것인데, 마치 바윗덩이를 때렸을 때처럼 육중한 충격음이 들렸다.
그대로 튕기듯 날아간 여인이 융단 위를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건방진…!”
“아직 끝이 아니지!”
타앗!
사비강이 그대로 바닥을 차며 여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주먹이 이번에는 파천신권(破天神拳) 초식을 펼쳤다.
이는 백공보가 익힌 필살무공이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주먹에 모든 기운을 집중시켜 폭발적인 위력을 이끌어내는 무공이었다.
쑤우우우웅!
권강이 주먹 끝에 시퍼렇게 맺히자마자,
꽈아아앙!
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옆구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여인이 그대로 건너편 벽에 부딪치고는 핏물 웅덩이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사비강이 호흡을 조절하면서 가만히 기다렸다.
핏물 웅덩이에 빠진 이상 여인은 다시 멀쩡하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이거… 수라불괴가 된 황면 할멈 이후로 최대의 난관이군.’
정확히 비교하자면 그때보다도 더 좋지 않은 상황이다.
이곳이 제한된 구역인데다가 여인의 석실이기 때문이다.
마나를 사용하면 지나치게 빨리 소모되고, 공력만 이용하자니 여인의 끝없는 소생이 부담된다.
유일한 방법이라곤 저 핏물 웅덩이가 없는 곳에서 여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보스를 죽이기 전에 이 석실을 나갈 방법이 없다.
츄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여인이 다시 혈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뜯겨져 나간 옆구리는 다시 멀쩡하게 재생된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찢어졌다.
“이제 조금씩 화가 나려고 하네.”
말을 마친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한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하얀 피부에 희미하게 보이던 혈관이 점점 도드라지고 있었다.
급기야 혈관 하나하나가 붉게 빛나면서 마치 문신처럼 새겨졌다.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피를 흡수하고 있는 건가?’
여인은 몸집도 점점 커지더니, 융단 위로 완전히 올라섰을 때는 원래 모습의 두 배가 넘는 크기가 되었다.
“죽이기엔 아까운 아이지만… 너는 나를 너무 화나게 했구나.”
여인이 싸늘하게 읊조리더니 오른손을 옆으로 쭉 뻗었다.
그 순간, 웅덩이에서 핏물이 방울방울 맺혀 솟아오르더니 차츰 딱딱하게 굳으며 기다란 창을 만들어냈다.
쉬이이이익, 탁!
피로 이루어진 붉은 창을 낚아챈 여인이 차디찬 시선으로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안타깝지만 내게 말 안 듣는 아이는 필요 없단다.”
휙!
그녀가 한 차례 창을 휘젓자, 붉은 기운이 사선으로 날아갔다.
사비강이 얼른 실드를 펼쳐 막아냈다.
파앙!
붉은 기운이 소멸되자,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애가 말을 안 듣는다고 죄다 죽여 버리면 되겠어? 쯧… 그러니 네가 어미의 자격이 없는 거야.”
“닥쳐라!”
쑤아아앙!
순간 여인이 사비강에게 달려들며 창을 휘둘렀다.
콰지익!
허공을 가른 여인의 창이 그대로 융단을 찍었다.
어느새 사비강은 부유 마법을 펼쳐 허공으로 솟아오른 상태.
여인이 혀를 차더니 양손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베르타스에 의해 벽에 꽂혀 있던 옷자락이 더욱 사납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부우우욱!
옷자락이 찢어지면서 베르타스의 구속에서 벗어나더니 그대로 핏물 웅덩이에 풍덩 빠졌다.
잠시 후, 혈수면 위로 솟아오른 옷은 처음처럼 멀쩡한 모습이었다.
옷자락이 날아와 그녀의 어깨를 두르자, 이번에는 완전한 새로 변하는 대신 그녀의 등에 오색 깃의 날개가 돋아났다.
후우우웅!
한 차례 날갯짓을 하자, 그녀가 허공으로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쑤아아아앙!
혈창이 핏빛 기운을 머금은 채 그대로 사비강을 내질러 갔다.
사비강 역시 손을 뻗어 베르타스를 회수하고는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쉬이이이잇!
까앙!
베르타스와 혈창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사비강이 이를 악물었다.
‘생각해야만 한다! 이년을 제거할 방법을. 지금까지 공략할 수 없는 던전은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