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
귀환 마교관
382화
사비강은 눈살을 잔뜩 구기고는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확실히 이상하군.’
그는 전생에 수많은 던전을 다녀보았다.
때문에 어지간한 보스 방의 구조는 훤히 꿰고 있었다.
한데 이런 구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여인의 흥얼거림.
이렇게 독특한 보스 방이라면, 직접 보지는 못했더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을 터였다.
한데 모든 것이 생소하다.
이런 경우라면 둘 중 하나다.
자신이 아직까지 접해 보지도 못했을 만큼 엄청난 보스가 존재하는 최악의 던전이거나, 너무 시시해서 마계에서도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던전이거나.
하지만 최악의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라.”
사비강이 주의를 주자, 생도들이 저마다 무기를 움켜쥐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비강은 생도들과 함께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단상 위의 요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희미한 자장가 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왔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생도들이 뺨을 씰룩이며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제길! 기분 나빠!”
“도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야?”
그때 노랫소리가 멈추더니 여인의 희미하고도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어머, 손님이 찾아왔구나… 우리 아가 잠을 깨워 버렸네…”
등부형이 버럭 소리쳤다.
“제길! 웬 요물인지 모르겠지만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자 여인이 깔깔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싸늘해진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불청객이 큰소리를 치다니. 참으로 무례하구나.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 저 무례한 자에게 마실 거라도 내어주려무나.”
잠시 후.
참방.
고여 있는 핏물에서 물소리가 일어났다.
생도들이 흠칫 떨고는 모두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때 또 다시,
참방참방.
생도들은 얼른 서로를 등진 채 무기를 앞세우며 주변을 경계했다.
마침내,
스으윽. 스으윽.
핏물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헉! 나타났다!”
“잠깐, 그런데 저 사람들 몸이…?”
생도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놀랍게도 핏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목과 팔다리가 제각각 꿰매져 있었는데, 전부 짝이 다른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팔다리의 길이가 서로 맞지 않아 똑바로 걷질 못하고 목각인형처럼 삐걱거렸다.
“끄음. 토막 난 시체를 제멋대로 끼워 맞췄군.”
진백이 신음처럼 목소리를 흘려냈다.
그야말로 악취미가 아닌가?
등부형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그, 그럼 저것들은 마령교가 만든 강시입니까?”
“저런 강시가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네. 게다가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하면 저건 대체 뭡니까?”
그러자 사비강이 불쑥 나섰다.
“저게 강시든 뭐든 상관없지. 중요한 건 저것들이 우리를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거야. 다들 물러나 있도록.”
사비강의 말에 생도들이 얼른 그의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훈련의 의미가 없어진 지금, 굳이 저들을 생도들에게 맡길 이유도 없었다.
지금 사비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생소한 던전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가 왼손을 쭉 뻗고 마법을 캐스팅하려는데,
“엇? 저자들…! 이제 보니 북도문의 문도들이군!”
풍검진의 말에 등부형도 맞장구를 쳤다.
“맞다! 저 찢어진 옷에 새겨진 문양은 틀림없이 북도문을 상징하는 거야! 찢어진 옷자락을 보니 대호채의 산적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세상에… 어쩌다가 이자들이 이렇게까지….”
여소정이 입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비강은 지체 하지 않고 마법을 펼쳤다.
북도문도들이든, 대호채 산적들이든 이미 죽은 자들이라면 연민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인페르노!”
순간 화염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며 강시처럼 변해 버린 북도문도들을 덮쳐 갔다.
한데 놀랍게도 불길을 정면으로 맞은 적들이 전혀 불타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마침 허공에서 경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아이들이 그 정도로 당할 것 같으냐? 내가 온 정성과 사랑으로 키운 아이들이다. 너희들도 곧 저렇게 강한 아이들로 만들어 주마.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아, 장차 너희들의 형제가 될 자들을 맞이하렴.”
그러자 북도문도와 산적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려 왔다.
“크아아아!”
“쿠어어어!”
사비강이 이번에는 아이스 캐논(Ice Cannon) 마법을 캐스팅했다.
찰나지간, 새하얀 광선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콰아아아아아!
하지만 북도문의 문도들은 잠깐 얼어붙는 듯싶더니, 이내 다시 움직이며 생도들을 향해 쇄도해 왔다.
여인의 나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흐응. 소용없다니까.”
사비강이 미간을 구겼다.
‘냉기와 화염 속성에 모두 내성이 있다는 건가?’
어쩌면 이곳이 보스 방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환경이 적들에게 유리하게 조성되어 있을 테니.
실제로 사비강은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할 때 더 많은 마나가 소모되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소소. 실레스틴을 부릴 수 있겠느냐?”
사비강의 말에 능소소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그렇잖아도 아까부터 소환하려고 했지만… 부름에 응하질 않아요!”
“역시…”
이곳의 기운이 정령조차 막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곳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이곳에 제단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이곳으로 들어왔던 북도문의 문도와 대호채의 산적들은 좋은 제물이 되어 주었으리라.
그리고 이 방의 주인을 소환했을 것이다.
한데…
‘대체 보스가 누구지?’
자장가를 부르는 여자 몬스터.
역시 생소하다.
하지만 상념을 길게 이어 갈 수 없었다.
순식간에 생도들 앞에 다다른 북도문도들이 사나운 기세로 무기를 휘둘러 온 것이다.
“크어어어!”
“쿠아아아!”
까강! 깡깡!
“크윽! 이런 시체 따위가 감히…!”
“다들 쫄지 마라! 어차피 뒈진 인간들이다!”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 주마!”
생도들이 저마다 기세를 끌어올리며 북도문도들에게 마주쳐 갔다.
물론 그 중에는 적의 기이한 외모에 주눅이 들어 몸을 사리는 자들도 몇몇 있었다.
등부형도 그런 자들 중 한 명이었다.
‘제길…!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저게 강시도 아니라면 대체 뭐지? 그리고 아까부터 들려오는 기분 나쁜 여자 목소리는…?’
그때였다.
등부형이 눈을 부릅뜨고는 단상 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엇! 저, 저기…!”
사비강이 그의 시선을 쫓아 돌아보자, 놀랍게도 빛살이 쏟아져 내리는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은 무척 아름다웠는데,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빛살 때문인지 이제 막 하늘에서 강림한 선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단상 위에서도 그녀만큼은 몹시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소중한 듯이 품에 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는데, 바로 사람의 머리였다.
“저, 저건…! 북도문주의 머리잖아!”
누군가 남악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경악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말대로 여인이 품에 안고 있는 것은 바로 남악의 머리였다.
더욱 경악할 만한 광경은 그녀가 남악의 머리에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몸통을 이어 바느질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대호채주의 몸통일지도 몰랐다.
여인이 고개를 들더니 사비강과 생도들을 훑어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너희들 중 누가 이 아이의 팔다리가 되어 주겠니?”
“저 미친년…!”
풍검진이 씹어뱉듯이 중얼거리자, 여인이 그를 빤히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아이야, 너는 입이 거칠구나. 내가 좀 더 예쁜 입으로 다시 바느질해 주마.”
찰나,
쒸에에에엑!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베르타스가 여인의 이마를 뚫고 의자에 푹 박혔다.
하지만 이내 여인의 모습이 스르르 사라지는가 싶더니 허공에서 다시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패기가 넘치는 아이네. 특별히 아껴 주고 싶구나.”
몇몇 생도들이 허공을 올려다보자, 여인은 보이지 않고 오색 깃의 화려한 새가 유유히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사비강이 능공섭물의 수법으로 베르타스를 다시 거두어들였을 때, 커다란 새는 저만치 융단 끝으로 날아가 내려앉았다.
잠시 후, 새의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옷을 벗은 나신의 여인이 꼿꼿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여전히 그녀의 품에는 남악의 머리와 누군가의 몸통이 들려 있었다.
반면 날개는 옷으로 변한 채 하늘하늘 움직이며 허공을 떠돌았다.
아마도 저 옷을 걸치게 되면 여인은 새로 변해서 날아다니게 되고, 옷을 벗으면 다시 나신의 여인으로 되돌아오는 듯했다.
그 신묘한 모습에 생도들은 저마다 북도문도들과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에도 헛것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신의 여인이 흐느적거리듯 앞으로 걸어왔다.
“버릇을 고쳐 주어야 할 아이들이 많구나.”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미안하지만 가르치고 계도하는 건 내 전문이라서 말이야.”
“너는 참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래, 네가 이 아이의 팔다리가 되어도 좋겠다.”
“아무래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계도가 필요하겠어.”
팟!
사비강이 바닥을 차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쒸이이이잇!
베르타스가 그대로 여인의 가슴을 내질렀다.
하지만
스팟!
여인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이내 옷자락이 날아와 그녀의 몸을 둘렀다.
그 순간 여인은 다시 새로 변하면서 천장 높이 솟구쳤다.
“어딜!”
사비강이 그대로 바닥을 차고는 천장까지 솟구쳐 올랐다.
찰나, 커다란 새가 날갯짓을 하자,
후우웅!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사비강을 아래로 밀어냈다.
콰앙!
융단 복판에 떨어져 내린 사비강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중심을 잡았다.
어찌나 세게 추락한 것인지 융단 아래의 바닥이 쩌적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동시에 양옆에 고인 핏물 웅덩이가 출렁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사비강이 심호흡을 하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쉽지 않군.’
생소한 환경, 생소한 상대, 생소한 전투 방식.
어지간하면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계대공의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웬만한 건 모두 겪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저년은 누구지?’
사비강이 이맛살을 팍 구긴 채 여인을 쏘아보았다.
어느새 여인은 다시 출입문 앞으로 내려와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벗어던진 날개는 이번에도 옷자락으로 변해서 머리 위를 하늘거리며 날아다녔다.
“누구냐? 넌.”
사비강이 던진 질문에 여인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
“내가 네 어미다.”
“요즘은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그런 식으로 하는 모양이구나.”
“호호호, 지금은 아닐지라도 곧 그리 될 것이란다.”
“자고로 미친년은 매가 약이지!”
파앗!
찰나지간, 사비강이 블링크 마법을 시전하면서 여인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음?”
이번에는 여인도 깜짝 놀란 것인지 눈을 크게 떴다.
사비강이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베르타스를 내질렀다.
쉬이이이익!
순간, 여인이 몸을 비틀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동시에 베르타스가 사비강의 손을 떠났다.
쒸이이이익!
촤악!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베르타스는 여인이 아닌, 옷자락을 노린 것이었다.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옷자락을 꿰어 버린 베르타스가 그대로 벽에 날아가 꽂혔다.
콰직!
베르타스에 꿰인 옷자락이 몸부림을 치듯 펄럭였다.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여인을 보았다.
“이걸로 날개는 꺾은 셈이군.”
하지만 여인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너는 정말이지 독특한 아이구나.”
“당연하지. 아마 네년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독특할 거다!”
파바밧!
사비강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면서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우우웅!
여인의 코앞까지 다다른 사비강이 일장을 날리는 순간,
“훗.”
여인이 가볍게 웃음을 짓더니 몸을 비틀었다.
곧이어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사비강의 오른팔을 길게 그으며 지나갔다.
츄아아악!
“큿!”
곧이어 여인은 다리를 쫙 찢으며 그대로 주저앉는가 싶더니, 몸을 비틀며 소용돌이치듯 솟아올랐다.
퍼억!
사비강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안녕.”
어느새 사비강 위로 순간 이동한 여인이 그대로 다리를 들어 내려찍었다.
콱!
슈우우우웃! 첨벙!
무서운 속도로 떨어진 사비강이 그대로 핏물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바닥으로 내려선 여인은 손톱에 맺힌 피를 핥으며 희미한 신음을 흘렸다.
“하아아. 짜릿해. 너무 맛있는 아이구나.”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다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핏물 웅덩이를 보았다.
“이 웅덩이는 나의 양수. 이제 너의 몸엔 내 독이 스며들어 다시 태어나게 될 거란다. 반듯하게 썰어서 예쁘게 바느질 해주마.”
그 순간,
츄아아아아!
핏물이 불룩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혈귀(血鬼)가 된 사비강이 빠른 속도로 여인을 향해 쇄도했다.
쉬이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