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81화 (381/670)

# 381

귀환 마교관

381화

거대한 문 안에서 울려오는 구슬픈 노랫가락은 계속 이어졌다.

사비강은 공동을 한 번 훑어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더 이상 생도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건 의미가 없을 듯한데….’

만약 문 안쪽에 제단이 있다면, 꽤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 나타날 터였다.

괜히 생도들을 우르르 이끌고 들어가 봐야 득보단 실이 많을지도 모른다.

보통의 던전이라면 보스 몹을 사냥한 후에 출구가 열리기 마련이니, 생도들은 차라리 이곳에서 대기하는 게 나으리라.

생각을 굳힌 사비강이 생도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이곳에서 기다린다. 여긴 나 혼자 들어가겠다.”

갑작스런 말에 생도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편, 잔뜩 긴장하고 있던 등부형은 반색하며 말했다.

“오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십…”

“안 돼요.”

능소소가 불쑥 끼어들었다.

사비강과 등부형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능소소가 입술을 꼭 깨물다가 말했다.

“저희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도 있잖아요.”

“방해가 될 수도 있지.”

사비강의 말에 등부형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지! 충분히 방해가 될 수도 있지. 역시 우리는 여기서 대기를….”

하지만 능소소는 등부형을 매섭게 흘겨보고는 말을 이었다.

“정 방해가 될 것 같으면 저희들은 한쪽에 물러나서 지켜보겠습니다. 관주님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희들에게는 큰 배움이 될 거예요.”

몇몇 생도들이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등부형은 내심 짜증이 치밀었다.

‘저 눈치 없는 년은 도대체 왜 자꾸 제 손으로 무덤을 파려는 거야? 들어갔다가 뒈지면 어쩌려고?’

능소소가 다시 한 번 힘을 주며 말했다.

“저희들도 같이 들어가게 해주세요.”

“잠깐! 잠깐만!”

등부형이 얼른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그러자 능소소가 눈을 흘기며 노려보았다.

“또 뭐죠? 조교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요? 등 조교님은 그래도 용천관에서 교관까지 지내신….”

“그게 아니라! 들어 봐. 조용해졌다고.”

그제야 생도들이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고요.

진경산이 신음처럼 입을 열었다.

“으음. 정말이다. 정말 조용해졌어.”

“문 안 쪽에서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여소정도 커다란 문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풍검진이 미간을 구겼다.

“어째 이거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한데….”

“쉿.”

자운룡이 검지를 입에 대며 주의를 주었다.

그가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뭔가 오고 있습니다.”

“뭐가 온다는…”

등부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우우우우우웅…!

미세한 공기의 떨림.

그 떨림은 점점 큰 진동으로 변하더니 마침내 공동 전체가 웅웅 울릴 정도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등부형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고는 꽉 움켜잡았다.

우우우우우우웅!

이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공기가 떨려댔다.

생도들 역시 커다란 문을 등진 채로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고는 동혈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위잉.

생도들이 걸어왔던 통로에서 엄지 손가락만한 뭔가가 날아왔다.

“벌…?”

등부형이 인상을 찌푸리는데,

부우웅! 부우우우우우웅!

순간 새카만 벌떼가 통로를 가득 메우며 공동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등부형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으, 으악! 벌떼다!”

척 보기에도 평범한 벌 같지는 않았다.

몸통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벌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종이었다.

어쩌면 맹독을 품었을지도 모를 일.

사비강이 당황하는 생도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섰다.

“다들 비켜라.”

그러고는 재빨리 왼손을 뻗으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인페르노!”

순간,

화르르르르륵!

사비강 앞쪽으로 화염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소소!”

사비강의 외침에 능소소가 얼른 그 뜻을 알아채고는 앞으로 나서며 청의봉을 뻗었다.

“실라페!”

다음 순간,

후우우우웅!

강렬한 바람이 불면서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화염이 부채꼴처럼 퍼졌다.

그 불바람에 흩어져서 날아들던 벌떼들이 불이 붙은 채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둑…!

그야말로 허공에서 화염비가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곧이어 사비강이 파이어 월을 시전하자, 통로를 가득 막으면서 화염의 장벽이 세워졌다.

후드드드득!

화염을 뚫고 날아드는 벌떼는 저마다 불이 붙은 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길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 떼처럼 벌떼의 습격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래서야 끝이 없겠군.’

이쯤 하면 그만 날아들 때도 됐는데, 통로에서 울려오는 공명은 끝이 없었다.

‘벌떼를 제거하기에는 화염 속성의 마법이 좋긴 하지만….’

하이 레벨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역시 생도들이 위협을 받게 된다.

게다가 지금도 연신 불의 속성 마법을 시전했더니 공동 안의 공기가 많이 부족해진 상태.

평범한 사람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진작 기절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화르르륵.

파이어 월이 소멸되자 다시 벌떼가 붕붕거리며 날아들었다.

능소소가 얼른 실라페를 부려 날아드는 벌떼를 공격했지만, 광범위하게 퍼져서 덤비는 녀석들을 모두 날려 버리진 못했다.

그렇다고 실레스틴을 소환하기에는 역시 생도들에게 위험이 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몇몇 생도들은 기막을 펼치고는 기풍을 일으켜 벌떼들을 날려 보내며 대응했다.

하지만 소모되는 내력에 비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격.

“제길! 차라리 사람 상대하는 게 낫겠어!”

“헉, 헉, 헉! 도대체 이 벌떼는 어디서 나타나는 거지?”

“끝이 없군!”

생도들이 저마다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다물었다.

사비강이 다시 소리쳤다.

“소소! 최대한 벌떼를 통로 밖으로 밀어내라!”

“네, 관주님!”

능소소가 대답과 동시에 실라페를 부렸다.

후아아아아앙!

강렬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자, 생도들을 향해 날아들던 벌떼가 바람결에 휘말렸다.

마침내 능소소가 실라페를 이용해서 벌떼를 통로 바깥으로 밀어냈을 때,

“스톤 월!”

사비강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꾸드드드드드득!

공동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갑자기 장벽이 솟아오르더니 완전히 막아 버렸다.

일단 급한 불을 끈 셈이었지만, 모든 벌떼를 밀어낸 것이 아니었기에 생도들은 여전히 도검을 휘두르며 남은 벌들을 처리해 갔다.

그때였다.

“엇! 소저, 위험하오!”

진경산이 얼른 몸을 날려 여소정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여소정을 향해 날아들던 벌은 진경산의 손등을 쏘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큭!”

진경산이 벌에 쏘인 왼손을 움켜쥐며 신음을 흘리자, 여소정이 얼른 다가와 걱정 서린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괜히 저 때문에….”

“난 괜찮소. 손등에 좀 쏘였을 뿐이오.”

진경산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누군가 그의 손목을 휙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움찔 놀란 진경산이 고개를 돌려보니 진백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손등을 살펴보고 있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

진백은 대답 대신 가만히 그의 손목을 진맥하더니 품에서 단검을 불쑥 꺼내 들었다.

“음?”

놀란 진경산이 눈을 크게 뜨는데, 진백이 지체 없이 단검을 내려치는 게 아닌가?

“이런 미친…!”

당황한 진경산이 욕지거리를 뱉어 내며 얼른 진백의 가슴에 일장을 날렸다.

퍽!

다행히 공력을 크게 실은 것은 아니었기에 진백도 부상 없이 서너 걸음을 물러나는 데에 그쳤다.

진경산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멍청한! 이대로 두면 자넨 죽어! 기혈이 말라 가고 있어!”

“무슨 소리를… 헉!”

멍하니 중얼거리던 진경산은 자신의 왼손을 무심코 보았다가 헛바람을 집어 삼키고 말았다.

“으, 으악! 내 손…!”

놀랍게도 진경산의 손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짝 말라 가더니 이내 가루처럼 부서져 내리는 게 아닌가?

부서져 내리는 속도가 몹시 빨랐는데, 어느새 손가락을 지나 손등까지 부서져 가고 있었다.

“크아아악!”

진경산이 고통과 공포 속에서 몸부림치며 비명을 내지르는데,

쉬이컥!

한 줄기 섬광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그의 왼팔이 통째로 잘려 나갔다.

진경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뒤이어 찾아오는 끔찍한 고통!

“아아아아악!”

탁탁탁.

진경산의 팔을 잘라낸 사비강이 얼른 손을 뻗어 혈도를 점했다.

지혈에 이어 혼혈까지 점하자,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던 진경산이 이내 힘을 잃고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남은 벌떼를 완전히 처리한 생도들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진경산을 내려다보았다.

“한 순간에 팔을 잃다니….”

“그래도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인 건지도”

생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던 사비강이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에 습격해 온 것들은 ‘비블’이라는 벌떼다. 평범한 말벌처럼 생겼지만, 한 번 쏘이면 순식간에 몸이 부서져 나가게 된다. 누구든 비블에 쏘이게 되면 주저 말고 그 부위를 절단하도록.”

말을 마친 사비강이 자운룡을 돌아보았다.

“자 교관이 저 녀석을 좀 챙겨 주시오.”

“알겠습니다.”

자운룡이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진경산을 어깨에 들쳐 멨다.

쿠드드득…!

통로를 막은 장벽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능소소가 사비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관주님. 저 장벽도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잖아요. 그땐 더 많은 벌떼가 한꺼번에 들이닥칠 텐데… 저희들끼리는 막을 수가 없어요.”

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소의 말이 맞아. 이대로 여기에서 대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부득불 모두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네.”

사비강 역시 두 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생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훈련’이라는 단어는 빼겠다. 실전이다.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지켜 주지 않을 거라는 걸 명심하고 각자 알아서 살아남도록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생도들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비강이 돌아서서 육중한 문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들어가지.”

그가 손을 내밀어 힘을 주자 커다란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구그그그그그…긍!

사비강을 비롯한 모든 생도들이 문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문은 다시 묵직한 소리를 울리며 저절로 닫혔다.

드드드드드… 쿠궁!

생도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너른 공간을 훑어보았다.

가운데로 난 길에는 붉은 융단이 길게 깔려 있었고, 양쪽으로는 물이 고여 있었다.

융단 끝에는 제단처럼 쌓아올린 단상이 있었는데, 그 단상 위에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의자 옆에는 갓난아기가 누워 있을 법한 요람이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어째 좀 으스스하군.”

풍검진이 물가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는 물을 내려다보더니 미간을 푹 구겼다.

“이거… 피군.”

“어? 정말이다. 물이 아니라 피였어.”

생도들이 저마다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핏물 웅덩이를 보았다.

그때였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자장자장 자장자장…”

어디선가 여인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