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77화 (377/670)

# 377

귀환 마교관

377화

스무 명의 생도들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사비강을 올려다보았다.

일급 일반과 이반의 생도들.

단상에 오른 사비강은 굳은 표정으로 생도들을 훑어보았다.

“아직 많은 것들이 생소하고,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것도 알고 있다. 너희들은 배울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늘 그렇듯 적은 우리에게 시간을 넉넉하게 주지 않는 법이지.”

“혹시… 실전입니까?”

일반의 진경산이 주먹을 불끈 쥐고 물었다.

일전에 양초지와 갈등을 빚었던 그 생도였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 많은 것들이 정비되지 않았지만, 마냥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 수만 없는 게 인생이지. 이제 너희들은 첫 실전 훈련에 투입될 거다. 실전임에도 훈련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특별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 내가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너희들의 목숨은 스스로 지킬 생각으로 임해야 할 거다.”

“그럼 드디어… 마령교와 싸우는 겁니까?”

진경산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마령교와 싸우는 게 아니라, 마물들과 싸운다.”

“그 마물들을 부리는 게 마령교 아닙니까?”

“다르다. 마물들은 각각의 의지로 우리와 싸우게 된다. 다른 질문은?”

생도들이 입을 다물고 서로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없어서 질문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너무 많은 것을 모르니 뭘 물어야 할지 모를 뿐이다.

사비강의 말대로 실전을 겪기에는 멸마관이 생긴 후 배움의 기간이 너무 짧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뭐든 직접 부딪쳐 보면 깨닫게 되겠지. 지금은 한 가지만 생각해라. 마물들을 없애고 살아남는 것. 그럼 내일 출발하겠다.”

“알겠습니다!”

일반과 이반 생도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

얼굴을 온통 금빛으로 칠한 금면인(金面人)이 태사의에 앉은 교주를 향해 말했다.

“멸마관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

교주가 눈을 뜨고는 금면인을 보았다.

“어떤?”

“강서의 정흥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오늘 은면으로부터 급보가 도착했으니, 아마 내일쯤이면 정흥에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교주의 눈이 빛을 발했다.

“정흥이라… 역시 그쪽으로 가게 된 건가?”

“예, 소환지 중에서도 가장 먼저 드러난 곳입니다.”

“아마 그곳은 제단이 형성된 곳이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금면인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말하자, 교주의 입가에 사악한 웃음이 깃들었다.

“사비강… 그자가 운이 없군. 하필이면 그곳을.”

“한데 은면 역시 사비강과 함께 소환지로 가게 된 것 같습니다.”

“은면도?”

“아마도 이번 기회에 사비강을 처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제단 소환지라면 은면이 나서지 않아도 사비강이 살아나올 확률이 없을 것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예측 불허의 인간이니까요.”

“하긴… 기대되는군. 과연 그자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만약 그가 살아나오지 못한다면….”

“은면도 잃게 될 겁니다. 하지만…”

“대업은 그 순간 속도를 내게 될 터.”

“그렇습니다.”

금면인의 입매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

강서 정흥 하복산.

동혈 앞에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었다.

바로 사비강을 비롯한 멸마관의 교관과 조교, 생도들이었다.

이번 멸마대에 참여한 생도는 일급의 일반과 이반이었다.

교관 중에는 자운룡과 위검종이 참여하였고, 조교는 등부형과 능소소가 함께했다.

마지막으로 초환당주인 진백도 함께 있었다.

다만 흑귀와 추량은 멸마관의 업무가 많은 관계로 함께 오지 못했다.

동혈을 등지고 선 사비강이 생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곳에 마물들이 소환되었을 확률은 매우 높다. 다만 처음 발견된 만큼 그리 강한 마물이 나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그러자 이반의 여생도 여소정(呂簫靜)이 나서며 물었다.

“어떤 마물들이 나오는지 알 수 있나요?”

“아니. 들어가기 전에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사실 이런 소환지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예를 들면, 보스 몹… 그러니까… 수장 마물이 존재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결계가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등. 다양하지. 정확한 건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다.”

사비강의 말에 생도들이 저마다 긴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마물들이 강하지 않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처음 겪는 존재가 아닌가?

게다가 서화 평원 대전에서 나타난 마물들은 신흥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낼 만큼 파급력이 있었다.

그런 만큼 마물들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생도들로서는 절로 긴장되는 것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자들도 있었다.

뛰어난 검술을 인정받아 일급 일반에 배정받은 진경산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비록 중소 문파 출신이었지만, 그 일대에서는 촉망받는 후기지수로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던 자였다.

그가 멸마관에 지원하게 된 계기 역시 강호가 알아 줄만한 큰 공을 세워서 점점 세가 줄어드는 소속 문파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야심이었다.

진경산이 여소정에게 다가가 안심시켜 주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소저. 그래봐야 하등한 마물 따위 아니겠소? 만약 소저가 위험에 처하면 이 진경산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도와드리겠소.”

그러자 그와 사이가 좋지 않던 양초지가 콧방귀를 끼며 불쑥 말했다.

“추파 던지면서 까불대지 말고 네 목숨이나 잘 챙기거라, 애송아.”

“허참. 역시 근본도 없는 사파 것들은 주둥이가 참 더럽군.”

“뭣이? 네놈의 주둥이야말로 걸레를 물었나보구나!”

“흥! 영감탱이가 겁이 나면 인정을 할 것이지. 왜 남의 목숨을 걱정하나?”

“겁이 나긴 누가 겁이 난다고 그래? 그깟 마물들 수백 마리가 나타나도 이 몸은 무적이다!”

“무적이라. 하긴 무적(無籍)이 되겠지.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질 나부랭…”

그때 시커먼 그림자가 진경산 앞을 막아섰다.

“그쯤 씨불였으면 그만 닥치고 집중해라. 놀러온 게 아니다.”

서늘한 목소리에 진경산이 움찔거리고 돌아보자, 흑립을 푹 눌러 쓴 위검종이 입을 꾹 다문 채 서 있었다.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십니까? 같은 사파라고 편드는…”

진경산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위검종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살기는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기에.

한편 무리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등부형은 혀를 끌끌 찼다.

‘역시 기분 나쁜 녀석이야. 사기가 지나쳐 마기가 느껴질 정도로 기분 나쁜 놈.’

그가 머릿속에 든 생각을 거두고는 주변 생도들을 안심시켰다.

“모두들 너무 걱정마라. 내가 너희들을 지켜 주마.”

대략의 정비가 끝나자 사비강이 돌아서서 앞장섰다.

“그럼 지금부터 들어간다.”

“옛!”

스무 명의 생도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사비강이 옆에 선 진백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제 곁에서 너무 떨어지지 마십시오.”

“알겠네.”

**

똑… 똑…

동굴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 왔다.

동굴은 굉장히 어둡고 습했다.

호기롭게 들어섰던 생도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사비강이 나직이 주문을 입에 올렸다.

“라이트.”

화악.

순간 허공으로 빛 덩어리가 떠오르면서 주변이 밝아졌다.

“오오. 저건 어떻게 한 거지?”

“저게 바로 마법 아냐?”

“역시 마법은 익혀 두면 정말 편하겠군.”

걸음을 옮기던 생도들이 불쑥불쑥 소리쳤다.

그들은 이제 막 멸마관에서 제작한 마법서를 교부받고 수업을 들어가려던 차였다.

때문에 아직까지 마법의 원리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자는 없었다.

다만 사비강의 마법이 사술이나 환술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쯤은 알 정도로 기본 지식을 쌓아 둔 상태였다.

다시 고요함 속에서 행진이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사비강이 라이트 마법을 유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밝은 빛이 저만치 안쪽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엄청나군!”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동굴을 지나 커다란 공동에 다다른 생도들이 주변을 훑어보며 너도나도 탄성을 터뜨렸다.

커다란 공동에는 굵직한 기둥이 규칙적으로 솟아 있었는데, 희미한 빛을 머금은 기둥이 천장을 떠받들고 있었다.

“이봐, 이게 빛을 머금고 있는 걸 보니 야명주와 같은 재질이 아닐까?”

생도 한 명의 말에 다른 생도들도 빛을 뿜는 기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치만 정말 아름답군.”

“커험. 비켜들 보시오. 내가 한 번 확인해 보겠소.”

진경산의 말에 다른 생도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진경산이 검을 뽑아 들고는 기둥을 향해 정신을 집중하더니,

“하아앗!”

기합성과 함께 곧장 검을 휘둘렀다.

쉬이이잇, 까아앙!

“크윽!”

순간 검신이 맥없이 튕기면서 진경산이 입술을 쿡 씹었다.

놀랍게도 기둥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진경산은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익힌 강룡진검(强龍眞劍)을 제대로 구사하면 바위도 두부처럼 썰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어떠한 실수도 하지 않았다.

한데 기둥에 흠집조차 내지 못한 것이다.

한편 양초지는 배를 쥐고 웃어댔다.

“킬킬킬! 꼴좋구나. 이제야 본 실력이 드러나는구나!”

“뭐라? 영감탱이가 뭘 안다고 큰 소리를…!”

그때였다.

기둥을 가만히 보던 자운룡이 검을 뽑아 들더니 푹 찔러서 베어내는 것이 아닌가?

요란하게 튕겨 나갔던 진경산과 달리, 자운룡은 너무나 쉽게 기둥의 일부를 베어낸 것이다.

그 무위에 자운룡은 물론, 양초지도 놀라서 눈을 퉁방울처럼 크게 떴다.

겉으로 무시하긴 했으나, 양초지는 진경산의 무공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직접 겪어 알고 있었다.

한데 진경산이 흠집도 내지 못한 것을 자운룡은 너무나 손쉽게 베어낸 게 아닌가?

‘과연 교관은 교관이라는 건가?’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사람은 생도들뿐만이 아니었다.

등부형 역시 내심 놀라고 있었다.

‘저 녀석의 무공이 꽤나 고강하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겪으면 겪을수록 놀랍군.’

한편 자운룡은 잘려 나간 돌조각을 보면서 말했다.

“빛이 나지 않는군요. 기둥의 일부였을 때는 분명 빛나고 있었는데….”

“그럼 이 동굴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 같은 건가?”

등부형이 무심히 중얼거린 말에 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봐야겠군.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동굴이라니. 참으로 신묘하군.”

사비강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좀 이상한데….’

그는 수많은 던전을 겪어 보았다.

때문에 던전 입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대략 어느 정도 난이도일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한데…

‘여긴 도통 모르겠군. 뭐, 좀 더 겪어 보면 알겠지.’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걸어가려고 할 때였다.

“오오, 여기 진짜 야명주다!”

“어디? 엇! 진짜다! 야명주가 도대체 몇 개야? 이거 제대로 횡재했는데?”

두 명의 생도가 소리치자, 다른 생도들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과연 먼저 발견한 자의 말대로 벽에 야명주 대여섯 개가 다닥다닥 붙은 채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일단 내가 먼저 발견했으니, 여기 제일 큰 건 내가 갖겠어.”

말을 마친 생도가 단검을 꺼내 들고 야명주의 가장자리를 찌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끔뻑.

“응?”

생도가 움찔거리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방금… 이거…”

“왜 그래?”

다른 생도가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방금… 분명히…”

야명주 위로 마치 눈꺼풀 같은 게 덮이듯 내려왔다가 올라가지 않았던가?

그때,

끔뻑!

“헉! 뭐, 뭐야? 이거!”

“방금 뭔가 깜빡였는데?”

곁에 있던 생도도 뒤늦게 이상한 점을 눈치 채고는 소리쳤다.

곧이어,

부스럭…! 꾸구웅!

갑자기 벽이 진동을 하더니 야명주가 박혀 있던 벽면이 저절로 부서지듯 떨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으악! 바위가 움직였어!”

“아, 아냐! 이, 이건 마물이다!”

생도들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번쩍! 번쩍! 번쩍…!

공동의 벽면을 따라서 수백 개의 야명주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꾸구구…!

꾸드드득!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윗덩이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벽면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전히 떨어져 나온 거대한 존재를 올려다보면서 생도 중 한 명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맙소사… 야명주가 아니라, 마물의 눈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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