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
귀환 마교관
366화
퍽!
“크아악!”
곡보옥이 내지른 주먹에 얻어맞은 무인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콰당탕!
벽을 부수며 나뒹굴던 무인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진 채로 기절하고 말았다.
“헉, 헉, 헉!”
곡보옥이 무릎을 쥐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우, 이 지긋지긋한 새끼들!”
그가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몸을 바로 세우는데, 또 다른 무인이 마침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가 곡보옥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앗! 여기다!”
“저쪽이다! 가자!”
곧 다른 무인들의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우르르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젠장!”
곡보옥이 욕지거리를 뱉어내고는 다시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로 고함소리와 호통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골목을 헤집으며 이리저리 도망치던 곡보옥은 마침내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그는 눈앞에 버티고 선 높다란 돌벽을 보고는 얼른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뒤를 바짝 추격해 오던 무인들은 어느새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면서 곡보옥을 압박했다.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독 안에 든 쥐새끼 신세가 됐군.”
약이 바짝 오른 신월문 무인들이 이를 갈며 한 걸음 한 걸음 좁혀 왔다.
곡보옥은 천천히 물러서다가 등에 벽이 닿자 한숨을 탁 내쉬었다.
“하여튼 그 돼지 새끼랑 어울리고 다니면 될 일도 안 된다니까.”
곡보옥이 천천히 왼발을 앞으로 뻗으며 기수식을 취하고는 권기를 끌어올렸다.
그의 기도가 묵직하면서도 날카롭게 다듬어지자 거리를 좁혀 오던 신월문 무인들도 멈칫거리고는 경계심을 다졌다.
그때 마침 남위성과 남화연이 도착했다.
남위성이 혀를 끌끌 찼다.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드는가? 고작 사파 놈들 따위를 위해서. 우린 그저 그자에게 죄를 묻고 사과를 받아내면 그만인데.”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일을 크게 만든 건 그쪽이잖아. 그놈이 사파 나부랭이라는 건 인정하겠는데, 죄를 묻고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도 그놈이라서 말이야.”
“쯧… 이해할 수가 없군. 그대 같은 정도인이 어째서 사파 놈들과 어울리는지. 설마 벌써 잊은 건가? 그들이 본맹을 배신하고 뒤통수를 쳤던 사실을?”
“그 죄는 이미 따져 물었고, 그래서 혈사련은 본맹에 복속된 걸로 아는데?”
그러자 남위성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핏발까지 선 채로 씹어뱉듯 말했다.
“과연 네놈 가족 중 한 명이 그들에게 목숨을 잃었어도 같은 소리를 지껄였을까?”
뜻밖의 반응에 곡보옥이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이것들 애초에 원한이 있었던 건가?’
하긴 단순 혐오로 보기에는 좀 집요한 구석이 없지 않다.
어쩌면 백공보에게 달려가서 부딪친 것도 처음부터 계획된 짓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사건을 크게 일으킨 다음 멸마관을 문제 삼고 그 활동을 위축시킬 속셈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괜히 일을 크게 벌였다는 후회가 슬며시 일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멧돼지 같은 놈이 먼저 사과했을 리가 없으니….’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다.
곡보옥이 남위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하다니. 그런 이유로 그 녀석에게 먼저 시비를 건 건가?”
그러자 남화연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시, 시비라니! 무슨 소리를! 그쪽이 먼저 내 가슴을 만지고 밀어서 덮치려고…!”
“봐봐. 이래서 거짓말은 하면 안 돼. 한 번 시작하니까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잖아? 처음에는 밀어서 넘어뜨렸다더니, 그 다음엔 가슴을 밀었다. 이제는 가슴을 만지고 밀어서 덮쳤다? 농담이라도 이 정도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나?”
“오, 오라버니! 저 녀석도 그놈과 한패가 분명해요! 어떻게 저런…!”
“연아, 진정해라. 이 오라비가 엄하게 꾸짖으마.”
남위성이 매서운 눈초리로 곡보옥을 노려보았다.
“이런 식으로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게 됐군. 이미 네놈들은 본문에 너무 큰 피해를 줬다. 이대로 넘어가면 세상이 비웃을 터.”
“끝까지 피해자 행세 쩌시네.”
“지금이라도 군말 없이 따라가겠다면 더 다치게 하진 않겠다.”
곡보옥이 피식 웃더니 소매를 둘둘 걷어 올렸다.
이미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진 소매가 다시 툭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고 기수식을 취하며 말했다.
“내가 역으로 제안하지. 더 다치기 싫으면 돌아가라.”
“도저히 말로는 안 되겠군.”
남위성이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열 명의 무인들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다음 순간,
“하앗!”
그 중 한 명이 기합성을 내지르자, 열 명이 동시에 곡보옥을 향해 날아들었다.
쉭! 쉬익! 쉬쉬쉬이이잇!
찰나지간, 곡보옥이 양손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실드!”
터터터터터텅!
쏟아지던 칼자루가 보이지 않는 막에 튕겨 나가자, 곡보옥은 그대로 보법을 밟으며 상대를 타격해 갔다.
퍽! 퍼퍽!
쉬이이이익, 퍽!
그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게다가 그의 권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오래전 사비강이 선물한 철인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콰당!
우당탕탕!
여기저기 튕겨 나간 무인들이 저마다 벽에 처박히면서 고꾸라졌다.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다니…!’
남위성은 물론 다른 무인들도 곡보옥의 권력에 혀를 내둘렀다.
남위성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한꺼번에 쳐!”
그러자 적호대주 곽명신이 서른 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이제 투기를 넘어 살기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곡보옥이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제길… 이건 못 당하겠는데….’
그때였다.
“한 명을 여럿이 괴롭히는 게 정도인 거야?”
갑자기 낭랑한 목소리가 오른쪽 건물 지붕 위에서 들리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을 돌아보았다.
팔짱을 낀 채 골목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바로 신생조의 방각이었다.
그 곁으로 맹가숙이 뒷짐을 진 채 다가와서 말했다.
“요즘은 이게 유행인가 보지. 한 명을 놓고 수십 명이 둘러싸서 살기를 무럭무럭 피워대는 게.”
“그럼 우린 죽었다가 깨어나도 정도는 못되겠군.”
“그래도 뭐 지금은 저쪽도 여러 명이니까 욕은 먹지 않겠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윽, 스스스으윽.
건물 지붕 위로 그림자들이 빼곡하게 나타났다.
신생조원들이었다.
그들이 일시에 살기를 피워 올리니 골목의 분위기가 숨도 함부로 쉬기 힘들 만큼 험악해졌다.
“이놈들이!”
곽명신이 이를 뿌득 갈고 소리치자,
“아서라. 저 돼지 녀석에게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면 가만 두지 않겠다.”
맹가숙이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위기에 몰려 있던 곡보옥이 피식 웃어 버렸다.
“니미… 멋있는 척 하기는.”
그때였다.
무리 뒤편에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이내 누군가 외쳤다.
“엇! 신월문의 천웅대(天雄隊)다!”
“맙소사. 천웅대까지 나타났으니 이거 큰일이 되겠는 걸?”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사람들.
곡보옥과 신생조원들이 미간을 구긴 채 무리 뒤쪽을 보았다.
검은 무복을 갖춰 입은 일단의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위성이 입매를 치켜 올렸다.
“아무래도 네놈들이 머릿수를 믿고 설치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머릿수로 따지면 우리가 우세할 것 같군.”
오십여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나타난 천웅대주 송하성(宋河惺)이 남위성 앞으로 다가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뭐, 아직까지는. 다만 깨끗하고 쾌적했던 우리 무한에 저 사파 나부랭이들이 설치고 다니는 게 썩 보기 좋진 않군.”
그러자 송하성을 비롯한 천웅대가 살기를 피워 올리면서 신생조원들을 노려보았다.
이쯤 되자 신생조원들도 슬며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남 공자께서는 숫자에 약한가 보오. 내 보기엔 머릿수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것 같은데.”
왼쪽 건물 지붕 위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또 하나의 그림자가 불쑥 나타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시선을 돌려 보니 그곳에 활을 멘 단리정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잠시 후 단리정의 배후로 천멸대원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놈들!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냐?”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우린 그게 일상이 되어서 말이오.”
남위성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애초에 사파 몇 놈들을 혼내 주고 나서 멸마관의 입지를 좁히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진 것이다.
그때,
“비켜라. 이게 무슨 일이냐?”
다시 무리 뒤편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물러서자, 그 사이로 장포를 두른 나이 지긋한 무인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를 본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신월문주다!”
“헐. 정말 일이 커졌군. 이거 제대로 구경거리가 생겼는데?”
무리 사이로 걸어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신월문주 남운평(藍雲平)이었다.
그의 곁에는 보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있었는데, 정도맹 본단에서 온 손님으로, 심지황(沈志黃) 장로였다.
심지황은 특히 욱청풍의 측근이기도 했는데, 오늘 이곳에 와서 멸마관을 넌지시 감시하도록 부추기려다가 마침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신월문주까지 나타나니 단리정도 이쯤에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골목 아래로 뛰어내려 포권을 취했다.
“멸마관의 천멸대주 단리정입니다. 아무래도 사사로운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남운평의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사사로운 오해로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단 말인가?”
그러자 곡보옥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일은 그쪽이 먼저 크게 벌린 거요!”
남운평의 시선이 남위성과 남화연에게 향했다.
설명을 해보라는 눈치였다.
그러자 남화연이 대뜸 눈물을 글썽이며 흐느꼈다.
“아버지, 억울해요. 저는 그저 길을 가다가… 저기! 저자가 제 가슴을 만지고 밀어서 넘어뜨려 덮치려고 하기에… 흑!”
남화연이 결국 닭똥 같은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이쯤 되자 몰려들어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남화연의 말을 믿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남화연이 지목한 백공보는 애초에 근본이 나쁜 사파 무인이 아닌가?
지붕 위의 백공보를 올려다보는 남운평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해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백공보가 다시 골목 아래로 뛰어내리고는 코웃음을 쳤다.
“딸의 거짓말만 믿고 해명을 하라니. 난 그저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고, 저 여자가 먼저 내게 달려와 부딪쳤소.”
“목격자가 있는가?”
남운평의 말에 곡보옥이 성큼 나섰다.
“제가 목격자입니다.”
하지만 남운평의 표정에 차가운 조소가 걸렸다.
“한 패가 목격자라고 나서 봐야 신빙성이 없지 않나?”
“한 패?”
이쯤 되자 이번엔 맹가숙이 훌쩍 뛰어내리고는 말했다.
“보쇼, 이것들이 평상시에 얼마나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걸 알면 한패니, 두 패니 그런 말은 못할 것 같은데?”
“그딴 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이번엔 단리정이 조심스레 나섰다.
“하나 증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먼저 주장하는 자가 내밀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목격자도, 증거도 없기는 매 한 가지인 것 같습니다.”
조목조목 반박하자, 모여든 사람들 중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때 다시 뒤쪽 지붕 위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쪽의 말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니 이쯤에서 마무리 하는 게 좋겠군요.”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매설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