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65화 (365/670)

# 365

귀환 마교관

365화

이쯤 되자 여인의 표정은 분노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녀가 말까지 더듬으며 소리쳤다.

“뭐, 뭐 이런 개, 개망나니 같은 인간이 다 있어? 하여튼 사파 쓰레기들은 짐승만도 못하다니까!”

그녀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자 주위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질 것 같자, 곡보옥이 나서며 상황을 수습했다.

“소저,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내가 대신 사과드리겠소. 죄송하오.”

하지만 여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곡보옥에게 쏘아붙이듯 따졌다.

“왜 그쪽이 대신 사과를 하죠? 난 이 사람한테 꼭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생긴 건 꼭 멧돼지 같이 생겨가지고. 흥!”

“풋!”

곡보옥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다가 이내 표정을 관리했다.

반면 백공보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잘나신 정파 놈들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비하하기도 하나보군.”

“시끄러워요! 당신처럼 안하무인인 인간은 처음 보는군요!”

“나도 처음 봤소. 소저처럼 막무가내로 우기기만 하는 사람은.”

“애초에 그쪽이 먼저 사과를 했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요!”

“글쎄 먼저 달려와서 부딪친 건 그쪽이라고 몇 번이나….”

백공보가 말을 꺼내던 중이었다.

“아가씨! 무슨 일입니까?”

문득 뒤쪽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 모두 통일된 적색 무복을 갖춰 입었고, 긴 칼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아마도 여인과 같은 문파의 무인들인 듯했다.

여인이 백공보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저자가 내 가슴을 밀어서 넘어뜨렸는데 사과도 하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내게 사과를 하라고 난리군요!”

그러자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눈에 힘을 주고는 백공보를 노려보았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낀 곡보옥이 슬며시 나섰다.

“음…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아니고….”

“대협께선 잠깐 빠져 계시오.”

수장이 다가와 곡보옥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더니 백공보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감히 아가씨 몸에 손을 대고도 사죄하지 않다니! 네놈은 이분이 누군지 알고나 있는 것이냐?”

“누군지 알 게 뭐야?”

백공보도 이제 화가 날 대로 난 상태라 툭 쏘듯 대답했다.

수장 무인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말했다.

“이분은 신월문(新月門)의 남화연(藍嬅燕) 소공녀이시다! 나는 적호대주(赤虎隊主) 곽명신(郭銘晨)이다!”

‘신월문’이라는 말에 모여들어 구경하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신월문이 어딘가?

대도시 무한에서 만검세가(萬劍世家)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대문파가 아닌가?

무한에서 첫손에 꼽힌다는 것은 호북성 일대에서도 그 명성이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무한에서는 만검과 신월이 보이는 방향으로는 오줌도 함부로 누지 말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그만큼 대단한 권세를 떨치는 문파였지만, 백공보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문파를 등에 업고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건 정도인들의 유행 같은 건가?”

“뭐, 뭣이? 뚫린 주둥이라고 함부로 놀리는구나! 과연 배워 처먹지 못한 사파 쓰레기….”

꽈앙!

순간 폭음과 같은 커다란 소음이 울렸다.

곽명신의 눈동자가 커졌다.

백공보가 주먹으로 옆벽을 때렸는데, 그 자리가 움푹 들어간 것이 아닌가?

화를 삭이는 것인지 백공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사파가 어쩌고저쩌고… 아까부터 자꾸 열 받게 하네.”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렸다.

“대, 대단한 권력이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내질렀는데 벽을 뚫을 지경이군.”

물론 무리 중에는 사파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파 놈들이 악독한 건 사실이잖은가?”

“하긴. 얼마 전에 서화평원에서 전투가 있었던 것도 혈사련이 배신을 해서 일어난 전쟁이라던데?”

“신월문이 이를 갈만도 하군.”

그때였다.

“다들 여기서 뭐하는 것이냐?”

무리 뒤편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곽명신이 돌아보더니 얼른 포권을 취했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따져 묻는 사람은 바로 신월문의 소문주인 남위성(藍緯星)이었다.

남화연이 그에게 달려가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 폭력적인 사파 무인 좀 보셔요. 어쩜 저런 인간이 다 있죠?”

남화연은 그간의 일을 대략 말해 주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주 주관적인 견해로.

당연히 남위성은 격노했다.

자신의 동생이 성폭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서 폭력을 당하기 직전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사건이 커지자 곡보옥이 다시 나섰다.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대신 사과드릴 테니 이쯤에서 그만하시는 게 어떻겠소?”

하지만 남위성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만하긴 뭘 그만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저자에게 예의가 뭔지 가르쳐 줘야겠군! 감히 내 동생에게 손을 대? 뭣들 하느냐? 놈에게 예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어라!”

“옛!”

남위성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호대가 부채꼴로 도열하면서 저마다 칼을 뽑아 들었다.

백공보가 피식 조소를 머금었다.

“이젠 뒤집어씌우는 것도 모자라서 무력행사까지….”

“닥쳐라! 무한의 법도를 가르쳐 주마!”

마침 적호대 무인 하나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찰나, 백공보가 기이한 보법을 밟더니 주먹을 쑥 내질렀다.

파앙!

“크아악!”

적호대 무인이 백공보의 주먹을 얻어맞고는 포탄처럼 날아가 벽을 부수며 나동그라지는 게 아닌가?

생각보다 강맹한 권력에 적호대는 물론 남위성도 놀란 것인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 저 사악한 놈! 감히 사술을 써서 무력행사를 해? 저런 놈은 봐 줄 것도 없다! 한꺼번에 쳐라!”

“존명!”

적호대 무인들이 일제히 바닥을 차고 달려가는 순간이었다.

꽈아아아앙!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지축이 뒤흔들렸다.

곧이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바닥이 쩌적 갈라지는 게 아닌가?

“크웃!”

“뭐, 뭐야?”

희뿌연 먼지가 가라앉고 나자 그 중심에 우뚝 선 사람이 보였다.

바로 곡보옥이었다.

그가 싸늘하게 식어 버린 표정으로 신월문 무인들을 훑어보았다.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아.”

남위성이 이맛살을 팍 구겼다.

“설마… 지금 저 사파 쓰레기를 편드는….”

“거 아까부터 듣기 안 좋네. 어쨌든 이 녀석은 내 친구거든.”

뜻밖의 발언에 백공보가 곡보옥을 힐끔 보고는 물었다.

“뭐하는 거냐?”

“우쭐거리지 마라. 네가 예뻐서 이러는 건 아니니까. 그냥 좀 짜증이 나서 그러는 거니까.”

백공보가 피식 웃어넘겼다.

반면 남위성은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그쪽도 사파 나부랭이와 같이 어울리다가 잡종이 되었나보군! 불과 며칠 전에 사파 놈들이 정파를 배신하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잊었단 말인가!”

“시끄러워. 앞뒤 꽉 막힌 너 같은 놈하고는 말도 섞기 싫으니까.”

“노옴! 감히 신월문을 무시하다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뭣들 하느냐! 저 안하무인한 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다음 순간, 신월문 무인들이 일시에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꽝!

화르르르륵!

화염채찍이 땅바닥을 때리자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올랐다.

뒤로 훌쩍 물러났던 맹가숙은 재빨리 구절창을 휘둘렀다.

투타타타타탕!

마칸의 꼬리를 쥔 설서린이 차갑게 웃었다.

“영감, 제법인데?”

“말했잖아. 이전의 나와는 다를 거라고.”

“그래도 너무 방심하면 곤란하지.”

탓!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설서린이 바닥을 차며 화살처럼 날아갔다.

쒸에에에엑!

화르르륵!

불길을 머금은 채찍이 춤을 추듯 맹가숙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앗!”

맹가숙이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구절창을 마주쳐 갔다.

쩌엉!

채찍과 구절창이 부딪쳤는데 금속성이 울렸다.

찰나,

철컥!

구절창의 삼분지일 지점이 직각으로 꺾이면서 마칸의 꼬리가 그대로 힘을 잃은 채 맹가숙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 쥐새끼 같은 영감이…!”

설서린이 미간을 팍 구기고 돌아서려는데,

“늦었다.”

등 뒤에 닿는 서늘한 목소리.

다음 순간,

퍼엉!

맹가숙의 장력이 설서린의 등을 타격했다.

“악!”

설서린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가자, 한쪽에서 지켜보던 설수민이 벌떡 일어나며 달려왔다.

“린아!”

그가 얼른 쓰러진 설서린을 부축해 일으켰다.

“괜찮니?”

“괜찮아요, 오라버니.”

맹가숙은 천천히 자세를 바로 잡으며 구절창을 아홉 마디로 접었다.

“이쯤 하는 게 좋겠군.”

그 말에 설서린이 혀를 차면서도 투기를 거두었다.

대련을 더 이어가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맹가숙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내공을 운기해 보았다.

단전에서 솟아오른 내공이 혈맥을 따라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 간다.

이전에는 개울물처럼 느껴지던 것이 이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 같다.

‘그래, 이 느낌이었어.’

내공을 일주천하는 게 이처럼 재미있다고 느껴진 적이 언제던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운기란 그에게 가장 재미없고 고된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혈맥 곳곳에 독기가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지!’

맹가숙은 희미한 미소까지 머금은 채 내공을 운기했다.

한편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석탄강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서린도 전보다 훨씬 강해졌지만, 영감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군.”

그러자 옆에 있던 도비천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이제야 영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거지.”

“맹 영감이 그 정도로 대단했나?”

“말도 마라. 영감의 전성기 때를 떠올리면 그야말로 피에 굶주린 야차 같았으니까. 아마 영감이 전성기 때의 감각을 완전히 되찾는다면 우리 중에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을 거야.”

석탄강은 정말 그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맹가숙이 보여준 무공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사실 맹가숙이 이렇게까지 발전을 이룬 것은 사비강 덕분이었다.

만독불침지체가 된 사비강이 맹가숙의 몸에 깃든 독기를 완전히 제거해 준 것이다.

서화평원 전투가 끝나고, 사비강이 그를 따로 불렀을 때만 해도 맹가숙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꼬박 한 나절을 사비강과 함께 운기하고 나니, 그의 몸속에 스며들었던 독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비강이 모두 가져간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맹가숙은 정말이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그때 한쪽 나무 그늘 아래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구강룡이 코웃음을 치며 나섰다.

“흥! 과연 대적할 자가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판단해 보지.”

그의 도발에 맹가숙이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한 번 해보자는 건가?”

“못할 것도 없잖아.”

“물론이지.”

맹가숙이 천천히 기수식을 취해 갔다.

오히려 맹가숙은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지금 같아서는 누구라도 자신에게 시비 좀 걸어줬으면 하는 심정이었으니까.

구강룡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천천히 기수식을 취해 갔다.

‘확실히 기도가 다르군.’

두 사람 사이에 전에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마침내 두 사람이 격돌하려는 순간,

콰당!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리면서 백공보가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직 공사 끝나지도 않았다. 문짝 다 때려 부술 일….”

맹가숙이 눈살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다가 멈칫했다.

여기저기 찢어진 옷자락, 피가 잔뜩 묻은 옷, 붓고 베인 상처.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백공보의 행색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맹가숙이 구절창을 거두고는 딱딱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백공보가 겨우 숨을 고르고 말했다.

“곡보옥…”

“뭐?”

“그 돼지새끼가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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