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
귀환 마교관
364화
어느 야산 아래의 허름한 객점.
“여기 국수 나왔습니다요!”
점소이가 씩씩한 목소리로 그릇 두 개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는 돌아섰다.
사비강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잠깐.”
“예?”
점소이가 움찔 떨고는 돌아보자, 사비강이 뚫어질 듯 국수 그릇을 보면서 물었다.
“어째서 이곳은 국수만 파는 거지?”
“아… 죄송합니다. 사실 국수 전문점이기도 하지만, 다른 건 재료가 다 떨어져서요. 헤헤.”
점소이가 송구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점소이가 물러간 후에도 사비강은 좀처럼 젓가락을 들지 않고 국수 그릇만 노려보고 있었다.
반면 추량은 국수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추량이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자 사비강이 넌지시 물었다.
“맛이 어떠냐?”
“꽤 좋은데요? 이 집 괜찮네요. 저는 먹고 한 그릇 더 먹을 생각입니다.”
“혹시 면발이 살아 움직인다거나 식도를 타고 미끄러지는 느낌이 깜찍하다거나 그런 건?”
추량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요즘 미식가 수업도 하십니까?”
“됐다. 그런 게 아니면.”
손사래를 친 사비강이 젓가락을 들어 면발을 쿡 찔러보았다.
다시 한 번 더 쿡쿡.
추량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사비강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사비강이 그릇까지 들고 냄새를 맡는데, 추량 옆에 앉아 있던 무랑도사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아무 짓도 안했으니 그냥 먹게.”
움찔거린 사비강이 무랑을 빤히 노려보다가 물었다.
“한데 왜 안 드시오?”
“배고픔이란 결국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 도가 경지에 달하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법이고, 마시지 않아도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네.”
사비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국수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 먹는 동안은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사비강이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오?”
“제갈선(諸葛仙).”
사비강이 멈칫하고는 물었다.
“제갈세가였소?”
“뭐, 출가한지는 오래 됐으나 뿌리는 그렇지.”
“과연.”
사비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기문둔갑술처럼 오묘한 술법은 머리가 좋을수록 익히기가 수월한 법이다.
제갈세가는 무림의 세가 중에서도 두뇌가 명석하기로 소문난 곳이니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세가에서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겠군.”
피식.
무랑도사, 제갈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사실 출가라기보다는 쫓겨난 셈이지.”
“보지 않아도 훤하군. 분명 사술 따위나 익힌다고 찍혔을 테지.”
사실 제갈세가에서 기문둔갑술을 익혔다고 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 따지면 기문둔갑에 대해 해박했던 선조, 제갈량을 부정하는 셈이 될 테니까.
다만,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무랑도사는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사술의 영역까지 손을 댄 게 분명하리라.
무랑 역시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갖가지 술법을 익히는 것에 재미를 붙였네. 기문둔갑 뿐만 아니라, 기환술(奇幻術)과 섭혼술, 각종 진법놀이와 점술까지. 사주팔자(四柱八字)나 관상(觀相), 수족상(手足相)을 보는 법은 기본으로 익혔지.”
“한데 제갈세가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관심을 둘 것 같은데?”
“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세. 다만 나는 도가 지나쳤던 게지. 궁합(宮合)을 보고 택일(擇日)을 하는 게 예사라면, 나는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를 읽은 후 내 의지대로 조화를 이루어 궁합을 바꾸기도 했네. 이는 단순히 천문(天文)을 읽어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지. 나아가 몇 가지 묘술도 익혔고.”
사비강이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둘러 ‘묘술’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것들이 사술의 영역이리라.
어쩌면 마계의 대법 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가끔 지적 호기심이 지나친 사람들을 보면 가히 위험천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렇듯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어가 버리면,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경계를 하게 마련이다.
적당하면 신기한 일로 끝나겠지만, 지나치면 남의 이목을 속이는 불쾌한 사술이 되는 것.
‘흐음, 사술이나 마교의 대법을 익혔을 가능성이 높겠군. 이런 건 물어봐도 대답은 안 해주겠지.’
사비강을 힐끔 본 무랑이 툭 던지듯 말했다.
“당연히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걸세.”
“독심술도 익혔소?”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가.”
“한데 어찌?”
“궁금해 못살겠다는 표정이 훤한데 모를 수가 있나?”
사비강이 혀를 차고는 이야기를 돌렸다.
“하오문의 총관인 정류광은 어찌 알게 됐소?”
“가장을 나선 후 딱히 갈 곳이 없었지. 그러다 보니 노상 어울리는 게 거지들이나 부랑배들이었지. 개중에 광아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좀 가르쳐 준 적이 있네. 나중에는 그 재능을 인정받아서 그런 건지 하오문으로 들어가더군.”
무랑은 옛일이 생각나는지 툴툴 웃었다.
“뭐, 광아 그놈은 내가 가르쳐 준 술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쓸 만한 녀석이긴 했네.”
“기문둔갑술만 가르쳐 준 건 아닌 것 같은데.”
“물론일세. 나는 기문둔갑술을 토대로 갖가지 묘술을 익히고 그것들을 조합하기에 이르렀지. 종국에는 나만의 술법을 창안했네.”
“그랬군. 어쩐지… 그 술법 이름이 뭐요?”
“내가 창안한 술법은 바로… ‘중원제일기재무랑천지개벽조화술(中原第一奇才無浪天地開闢調和術)’이라고 하네.”
“푸우우우웁!”
순간 추량이 먹던 국수를 뿜어냈다.
그가 얼른 눈치를 보며 사죄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아닐세. 뭐, 놀랄 만도 하겠지. 나도 이 명칭을 처음 떠올렸을 때는 스스로 소름이 돋았으니까.”
“허어…”
추량이 멍한 표정으로 무랑도사를 바라보았다.
‘이런 사람이 사부님 말고 또 있다니….’
한편, 사비강은 모처럼 눈을 반짝이며 무랑을 바라보았다.
“과연! 훌륭한 작명이오! 그 이름에서부터 이미 뭔가 대단한 술법이라는 게 느껴지는 것 같군!”
‘헐.’
추량이 입을 딱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랑은 사비강과 죽이 잘 맞았다.
“자네는 진가를 알아보는군. 광아 녀석은 이 좋은 이름을 자꾸 바꾸자고 했지. 물론 나는 끝내 반대했지만.”
“잘 하셨소. 하여튼 주위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도 간파하지 못하고 세 치 혀를 놀리는 법이지. 내가 학관을 처음 만들려고 했을 때도 그랬소.”
“그런가? 관명이 무엇이기에?”
“절대지존최강무적사비강멸마관이오.”
“오! 과연! 엄청난 작명이군! 대단해.”
“역시 영감께선 작명 감각이 있으시군.”
“노부가 한 수 배웠네.”
무랑이 성성한 수염을 쓸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추량은 국수를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가만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이런 부분에서 통하는 거지?’
**
무한에 멸마관을 짓는 공사는 아직까지 큰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령교에 대항하기 위한 전문 기관인 만큼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물론, 정도맹 본단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지만, 전 중원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대단한 면적을 자랑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무한에 터를 잡았던 여러 방파들은 자연히 멸마관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정도맹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멸마관을 대놓고 비난할 수도 없는 상황.
때문에 다수의 방파들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은 채 은근한 시기와 질투를 품고 있었다.
실제로 정도맹 본단에서도 일부 수뇌 인사들은 사비강에 대한 경계심을 아예 거둔 것이 아니었기에 무한에 터를 잡은 방파들을 넌지시 부추겨 견제하게끔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여타의 방파들이 꽤나 노골적으로 트집을 잡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특히 멸마관의 구성원이 정사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른 방파들이 비난하기에 좋은 소재였다.
특히 서화평원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정도인들의 사파에 대한 혐오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실제로 무한의 방파 중에는 서화평원 전투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제자들도 다수 있었기에.
급기야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인부들에게 괜한 시비를 거는 경우도 생겼고, 사사로운 일로 트집을 잡으며 횡포를 부리는 무인들도 나타났다.
이에 매설란은 천멸대와 신생조에게 인근을 순회하면서 사사로운 사건들이 있을 때 잘 대처하도록 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곡보옥과 백공보가 한 조가 되어서 공사장 인근을 돌며 순회할 때였다.
곡보옥은 연신 투덜거렸다.
“세상 참 좋아졌지. 사파 나부랭이가 정파 무인들과 함께 어울리다니.”
그러자 발끈한 백공보가 쏘아붙였다.
“흥! 세상 좋아졌지! 예전 같았으면 정파 쓰레기들은 사파 무인의 그림자만 봐도 도망갔을 테니까.”
“하! 도망? 그건 도망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게 아닐까?”
“웃기시는군. 명분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서 언제나 비겁한 짓만 하는 것들이 깨끗한 척은….”
“어이, 사파 나부랭이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 교관님… 아니, 관주님만 아니었으면 넌 벌써 내 손에 뒤졌어.”
“하여튼 정파 놈들은 하나같이 주둥이만 살았다니까.”
“이 자식이!”
곡보옥이 발끈해서 내공을 끌어올릴 때였다.
마침 누군가가 골목 모퉁이를 빠르게 돌아 나오면서 백공보와 부딪치고 말았다.
“아앗!”
한 여인이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넘어졌다.
이를 본 곡보옥이 입매를 비틀면서 백공보를 나무랐다.
“뭐하는 짓이야? 여인을 넘어뜨리다니. 하여튼 사파 나부랭이들이란….”
“무슨 말을! 이건 어디까지나 저 여자가 먼저 달려와….”
하지만 곡보옥은 백공보의 변명을 듣기도 싫다는 듯 여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시오, 소저?”
“아야… 괜찮아요.”
여인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제법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는데, 나이는 두 사람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허리춤에 꽤나 값비싼 환도를 차고 있고, 옷매무새가 깔끔한 것으로 보아서는 무한의 어느 방파 소속으로 보였다.
여인이 백공보를 흘겨보더니 날선 목소리로 따졌다.
“그쪽은 사과할 줄도 모르시나 봐요?”
“먼저 와서 부딪친 건 그쪽인데, 왜 나만 사과를 해야 하지?”
백공보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며 따지자, 여인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기가차서.”
그러더니 백공보를 위아래로 훑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요즘 무한에서 설치고 다닌다는 그 사파 무리인가 보군요?”
“그게 어쨌다는 거요?”
“확실히 배우지 못한 사파 잡종이라 그런지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군요.”
이쯤 되자 백공보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지켜보던 곡보옥이 풋, 웃어 버리고는 여인을 달랬다.
“이 친구가 원래 좀 그렇습니다. 이해 좀 해주십시오.”
그러더니 백공보를 돌아보고는 짐짓 근엄한 척 소리쳤다.
“이 배우지 못한 잡종놈아! 어서 사과드려라.”
“뭐, 이런…”
백공보가 이를 가는데, 곡보옥이 눈짓으로 얼른 사과하라는 듯 신호를 보내왔다.
그의 얼굴에 승자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심사가 뒤틀린 백공보는 절대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이것들이… 진짜…!’
백공보가 팔짱을 끼고는 딱딱하게 말했다.
“아니. 나는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겠다.”
“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내가 왜 사과해야 해?”
여인이 발끈해서 따지자, 백공보가 더욱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앞도 안 보고 달려와서 내게 부딪친 건 분명 그쪽 잘못이니 먼저 사과하시오. 그리고 다짜고짜 나더러 사파 잡종이 어쩌고저쩌고 한 것 역시 사과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