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60화 (360/670)

# 360

귀환 마교관

360화

쌀쌀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옷깃을 두텁게 여미고 목도리까지 친친 감아도 한기가 뼛속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한 추위였다.

하지만 서래향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바위에 걸터앉은 그녀는 얼어붙은 연못의 수면을 하릴없이 내려다보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그대로 얼어붙어 땅에 떨어질 것만 같은데도 그녀는 추위를 모르는 사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작은 움직임을 보였다.

품에서 뭔가를 꺼내든 것이다.

까맣게 빛나는 돌.

흑요석이었다.

하얗게 얼어 있는 세상만 보다가 까마디 까만 조약돌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약간의 추위를 느낀 그녀가 내공을 운기해 체온을 상승시켰다.

마침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닿았다.

“괜찮으십니까?”

정신을 차린 서래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섰다.

“무린…!”

“바람이 찹니다.”

적무린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 왔다.

왜일까?

서래향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넌 참 바보 같구나.”

“홍묘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적무린이 쓴웃음을 지었다.

서래향이 픽 웃어 버렸다.

부인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적무린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난 이제 아무것도….”

“괜찮습니다.”

불쑥 꺼낸 한 마디에 서래향이 고개를 들고 적무린을 올려다보았다.

적무린은 시종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이젠 서두를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이젠 홍묘님 마음이 가는대로 가시면 됩니다. 더 이상 당신을 구속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무린…”

“하지만 그전에….”

“……?”

“제가 드릴 게 있습니다.”

“나한테? 그게 뭔데?

서래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잠시 따라오십시오.”

적무린이 몸을 돌리더니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서래향이 의아한 표정으로 적무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아이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요.”

점소이의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탁자 위로 그릇 두 개가 탁, 놓여졌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수 두 그릇이었다.

서래향은 한참이나 그것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너머로 적무린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그때 못 먹었잖아요. 이제부터 작은 행복을 하나씩 누리셔야죠.”

“무린…”

서래향이 입술을 꼭 깨물고는 눈물을 글썽이자, 적무린이 당황한 듯 말했다.

“겨우 이 정도 행복으로 눈물을 보이시면 곤란합니다.”

서래향은 가슴에서 치미는 무언가를 애써 눌러 참으며 따끈한 국수를 보았다.

한번 복받친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고마워, 잘 먹을게.”

이윽고 그녀가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끝내는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다.

적무린도 조용히 젓가락을 들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작은 행복을 누렸다.

**

저만치 달빛 아래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마을 어귀라고 할 수 있는 언덕 위의 바위에는 ‘도향(桃香)’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추량이 언덕 아래의 마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사부님, 도대체 누굴 찾으러 가시는 겁니까?”

“무랑도사(無浪道士).”

“그건 또 누굽니까?”

“앞으로 절대지존최강무적사비강멸마관의 교관이 될 자다.”

“아, 예…”

추량은 그 명칭만큼은 어떻게 하면 안 되겠냐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고는 대충 수긍하고 말았다.

괜히 말을 더 이어 가면 저 길고도 유치한 명칭을 또 들어야 할 것 같기에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도향에서 무랑을 찾으라 했으니, 목적지까지는 온 것 같군.”

“마을이 생각보다 크군요.”

“일단 수소문을 해서라도 무랑도사를 찾아야겠지.”

두 사람은 마을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마을은 크고 화려했다.

밤이 깊은 시간이었는데도 저자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기저기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치들도 분주해 보였다.

“우선 가장 정보를 건지기 쉬운 곳에서 무랑도사에 대해….”

사비강이 말끝을 흐리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두 사람은 마을의 홍등가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속살이 훤히 비치는 망사 옷을 걸친 미녀들이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다가왔다.

“어머, 오라버니. 어딜 가세요? 우리랑 같이 놀아요.”

“잘 해드릴게요. 우리 홍화루(紅花樓)에 오시면 소녀가 온몸을 녹여드린답니다.”

“우리 홍화루에는 중원 최고의 미녀들만 있답니다.”

사비강과 추량은 혼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입을 헤벌쭉 벌리고 말았다.

추량이 사비강에게 귀띔했다.

“사, 사부님. 흐흐. 자고로 기루에는 온갖 정보가 오가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잠시 들렀다가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너, 그런 핑계로… 기루에 가는 건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 확실히 기루만큼 많은 정보를 취급하는 곳도 없지. 가보자!”

사비강이 헤실헤실 웃으며 승낙하자, 기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두 사람을 데리고 기루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 연기가 자욱한 기루에는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달콤한 향이 가득했다.

과연 중원 최고의 절세 미녀들만 모아놓은 것인지 기녀들이 하나같이 아름답고 예뻤다.

두 사람은 기녀들이 이끄는 대로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방으로 들어선 사비강은 동경을 힐끔 보고는 추량에게 물었다.

“오늘 나 좀 잘생겼지?”

“암요. 사부님은 그림자조차 잘생기셨습니다.”

“하긴. 내가 좀 잘생겼지!”

왠지 오늘따라 자신감이 넘치는 사비강이었다.

조금 있자니 기녀들이 문을 열고 방안으로 나비처럼 날아들었다.

“오라버니 몸이 정말 탄탄하시네요.”

“혹시 무공을 익히신 분인가요?”

“정말 어쩜 이렇게 힘이 좋으실까?”

기녀들은 연신 달달한 목소리로 사비강의 귀에 속삭여댔다.

사비강과 추량은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연신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나신이나 다름없는 여인들이 연신 두 사람의 몸을 더듬어 갔다.

“우흐흐흐. 간지럽구나.”

“조금 참아 보셔요. 제 온몸으로 오라버니를 녹여드릴게요.”

“하하하. 벌써 내 마음이 녹고 있다.”

“아이참, 몸도 마음도 모두 녹여 버릴 거라니까요.”

“하하하!”

“호호호!”

기방에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기녀들은 사비강과 추량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하면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두 사람은 다음날 아침 부스스 눈을 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녀들의 속옷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괜히 멋쩍어진 두 사람이 헛기침을 하고는 방을 나서려는데,

“어머, 오라버니들. 어딜 가시려고요?”

“이제 그만 가봐야 할 때가….”

“아이참, 그러면 너무 아쉽잖아요. 오늘도 우리 재미있게 놀아요.”

“거참, 우리도 할 일이 있… 헉…!”

말을 꺼내던 사비강이 헛바람을 삼켰다.

바로 앞에 무릎을 꿇은 여인이 어디를 어떻게 건드린 것인지 사비강은 눈을 질끈 감고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추량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신을 더듬어 오는 기녀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추량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사, 사부님. 이왕 이리된 것 여기서 아침밥을 먹고 나서지요.”

“그래, 그게 좋겠다.”

사비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녀들이 아침상을 차려 왔다.

두 사람은 배가 부르도록 아침 식사를 하고는 다시 나신이 된 기녀들과 뒹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밤이 깊어지도록 환락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홍화루를 나서지 않았다.

어느 샌가 사비강과 추량은 본래의 목적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하루하루를 홍화루에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보름이 꼬박 흘렀다.

짹짹… 짹! 짹!

아침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추량은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온몸이 나른했다.

그는 기분 좋은 나른함을 한껏 느끼면서 기지개를 켰다.

“으하아암!”

하품을 길게 하고는 눈을 비비는데, 누군가 허벅지를 감아가듯 스르르 만지는 것이 아닌가?

“흐흐흐. 아침부터 또?”

추량이 헤실헤실 웃으며 허벅지로 손을 가져갔다.

상대의 매끄러운 피부가 느껴졌다.

“후후, 간지럽다니까. 그만해.”

하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추량의 허벅지 안쪽으로 깊숙이 손을 밀어 넣었다.

게다가 또 다른 여인은 목을 핥는 것인지 자꾸만 간지러워 웃음이 나왔다.

추량이 몸을 비틀었다.

“더 이상은 힘들어. 조금만 더 자자. 그런데 정말 피부가 매끄럽군. 그리고… 음… 왜 이렇게 차갑지?”

그제야 조금 이상한 것을 느낀 추량이 눈을 부스스 뜨고는 하반신을 내려다보았다.

옷을 훌렁 벗고 있는 다리 사이로 뭔가가 감겨 들어가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그것을 확인한 추량은 다음 순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내밀어진 뱀 대가리를 보고는 사색이 되고 말았다.

취리리리릿!

느닷없이 나타난 뱀이 입을 쩍 벌리면서 혀를 날름거리자,

“헉! 우어, 우아아아아악!”

그가 기겁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를 감싸면서 미끄러지던 수십 마리의 뱀들이 후드득 떨어져나가더니 마구 꿈틀거리는 게 아닌가?

“으아아아아! 이게 다 뭐야? 헉! 잠, 잠깐, 여긴 대체 어디야?”

추량이 알몸이 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기방의 침상에서 잠들었을 텐데 주변은 온통 휑한 풀숲이 아닌가?

게다가 저렇게 득실거리는 뱀들은 다 뭐란 말인가?

‘제길!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추량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가리다가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맙소사! 살이 쭉 빠졌잖아!’

며칠 동안 환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 대가일까?

얼굴 가죽이 뼈에 달라붙은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온몸의 피골도 상접해 있었다.

‘사부님! 사부님은 어디에 계시…?’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추량은 저만치 나무 아래에 널브러져 있는 사비강을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사, 사부님! 사부님 일어나십시오!”

그러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사비강이 부스스 눈을 뜨고는 추량을 보았다.

“아음. 무슨 일이냐?”

“일어나 보십시오! 뭔가 이상합니다!”

“아직… 시간이 이르니… 흐음… 좀 더 자야겠다.”

“그럴 때가 아니라고욧! 그래요, 무랑도사를 찾으러 가야 하잖아요!”

“무… 뭐? 그게 누구냐?”

“무랑도사요! 아무튼 사부님 좀 일어나 보시라니까요!”

“거참, 시끄러운 녀석일세.”

사비강이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았다.

마침 굵다란 뱀 한 마리가 그의 허리를 감아오자, 무심결에 그 비늘을 어루만지는데….

“헛!”

뒤늦게 이상한 낌새를 챈 사비강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쉬쉬쉬쉬쉬쉿!

순식간에 베르타스까지 뽑으며 휘두르자, 그의 몸에 엉겨 붙어 있던 뱀들이 저마다 몸이 동강나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파닥파닥.

몸이 잘린 뱀들이 요동을 치며 마구 꿈틀거렸다.

그나마 멀쩡한 뱀들은 순식간에 숲속 어딘가로 미끄러지며 사라지고 말았다.

“제길…!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사비강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기루에 있어야 할 터인데, 숲속에서 벌거벗은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니!

게다가 살이 쭉 빠진 것으로 보아서는 하루 이틀만 지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당한 모양이군.”

사비강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사, 사, 사부님… 괜, 괜찮으십니까? 제대로 물리신 것 같은데….”

추량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비강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걱정 마라. 난 이미 만독불침지체다. 뱀독에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몸이 아니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뭐냐?”

“그게… 사, 사부님… 거시기에….”

“뭐?”

사비강의 시선이 추량을 따라 아래로 향했다.

그 순간 그는 보았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꽉 깨문 채로 대롱대롱 달려 있는 뱀 한 마리를.

“우아아아아악! 이, 이 뱀 새끼가 내 소중한 거시기를!”

사비강이 반사적으로 뱀을 잡고는 잡아당겼다.

하지만 뱀은 끝까지 사비강의 물건을 강하게 물고는 놓지 않았다.

“으아아악!”

지켜보던 추량이 얼른 달려가서 뱀꼬리를 낚아챘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추량이 뱀 꼬리를 힘껏 잡아당기자 사비강의 비명이 더욱 높아졌다.

“아아아아아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