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
귀환 마교관
359화
“문파를 세우겠다는 거요?”
“뭐, 어떤 면에서는 그런 셈이오. 하지만 문파라기보다는 학관에 가깝겠군. 마계에 대해서는 모두들 무지할 테니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겠소?”
“대체 그 마계는 정확히 언제 침공한다는 거요?”
“확실하진 않지만 앞으로 오 년 이내가 될 것 같소.”
사비강은 대답을 하면서도 확신하진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마계의 본격적인 침공까지 대략 칠 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서 마병들과 바올드를 보고 나니 어쩌면 그 시기가 좀 더 빨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바올드와 같은 생명체가 나타나려면 앞으로 이 년이 더 지났어야 했다.
어떤 계기로 인해 시기가 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원인은 근본적으로 사비강에게 있을 것이다.
그가 회귀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생겨났고, 그로 인해 미래가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건 이런 현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게 바로 ‘마령교’라는 점이다.
정류광이 마령교에게 무엇을 팔아넘겼을까?
아마도 마계 침공 시기가 빨라진 것은 그 물건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비강은 이번 전쟁을 이용했다.
희생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정도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무림의 패권을 잡은 정도맹은 결코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테니.
그들은 그저 안일한 생각으로 호의호식하며 세월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휘의 희생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한편 정도맹 수뇌 인사들도 사비강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사비강이 맹 외에서 별도의 세력을 만드는 것이 차라리 견제하기에 수월할 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적어도 사비강이 맹주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에게 많은 기회가 생길 테니까.
묵양제가 나서며 물었다.
“사 대협께선 정사를 구분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혹 마령교도 받아들일 생각이오?”
“그건 아니오. 그들은 실제로 마(魔)를 숭배하는 집단이니 오히려 우리의 궁극적인 적이라고 할 수 있소.”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수뇌 인사 몇몇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면 학관을 어디에 세울 생각이오?”
“정도맹과 혈사련의 접경지대인 무한(武漢)이 어떨까 싶소.”
“과연 무한이라면 강호의 중심이 될 만한 곳이니 여러 영웅들을 모으기도 좋을 것 같소.”
검영각주 섭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묵양제가 다시 물었다.
“관명(館名)은 정하셨소?”
“물론이오.”
사비강이 자신 있게 답하자,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사비강의 눈빛이 더 없이 진중해졌다.
“사실 관명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했소. 마족들의 씨를 말려 버려야 하는 만큼 우습게 보여서도 안 되며, 약해보여서도 안 되지. 해서 며칠간이나 고심을 거듭하며 지었소.”
“그래서 무엇이오?”
“바로… 절대지존최강무적사비강멸마관(絶對至尊最强無敵司砒江滅魔館)이오.”
“하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내에서 희미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다수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덤덤한 반응이었다.
태사의 옆에 서 있던 구윤은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엔 이름까지 넣었군.’
반면 사비강은 그 명칭이 매우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가 장내를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다들 감탄하실 거라고 생각했소. 사실 나 역시 이 명칭을 떠올리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이게 어째서 감탄이냐!’
묵양제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목소리를 한껏 누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관명은 그걸로 확정한 것이오?”
“그렇소. 미안하지만 이 명칭이 탐나더라도 양보할 수는 없소. 정 원한다면 내가 묵 당주가 만들 조직에 쓸 만한 명칭을 한 번 구상해 보겠소.”
물론 묵양제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절대지존최강무적사비강멸마관은 대대적으로 입관생을 모집할 예정이오.”
“하면 마족의 침략에 대해서 강호에 공식적으로 선포하겠다는 뜻이오?”
방철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강호가 혼란에 휩싸여 통제가 되지 않을 것이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신력 있는 정도맹에서 마족의 침략에 대해서 공식 선언하면 강호는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이리라.
“어디까지나 마령교가 소환한 마물들에 대항하는 특별 조직처럼 보이게 할 것이오. 그러니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오늘 내가 한 말을 발설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물론,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더라도 공식 선언은 최대한 지양할 생각이오.”
“한 마디로 비밀리에 모집하는 마족 대항 조직이라는 말씀이군.”
“그렇게 봐도 무관하오. 어쨌든 그곳에서는 나만의 방식으로 지도를 할 생각이오. 필요에 따라 마법을 가르칠 수도 있다는 뜻이지. 또한 입관을 희망하는 지원자라면 출신을 떠나 능력만 보고 선별할 생각이오. 물론, 지원자를 모두 받아들이지도 않을 거요. 그들만은 마족 대항전에서 정예 중의 정예가 되어야 할 테니.”
장내에 모인 사람들이 술렁거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화평원 전투를 통해서 대략의 분위기는 느끼고 있었지만, 역시나 마족의 침략이라는 장황한 이야기만큼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수군거렸을까?
여태껏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능운파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 전쟁을 통해서 직접 마물과 싸웠고, 녀석들이 얼마나 강한지 몸소 겪었소. 해서 사 대협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소. 만약 그 의견에 반대하는 뜻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말하시오.”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지만 나서는 자가 없었다.
맹주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괜히 반기를 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방철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궁금하다는 듯 질문했다.
“지원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인원이 많아지면 사 대협 혼자 가르칠 수는 없을 텐데.”
“해서 감찰국 무인들을 모두 데려갈 생각이오. 물론 매설란 국주까지. 혈사련에서 온 신생조는 주로 사파 지원자들을 맡을 생각이오. 그러고도 부족한 부분은 따로 모집할 거요.”
그러자 다시 장내가 술렁거렸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감찰국 무인들을 모두 데려간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하면 감찰국은 어떻게 되나?
수뇌 인사들의 시선이 총군사인 구윤에게 향했다.
구윤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견이 없는 한 맹주님은 그것 또한 허락할 생각이십니다.”
구윤이 조금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그는 처음 사비강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강력하게 반대했다.
다른 사람이 감찰국을 맡게 되면 또 다시 부패가 시작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비강의 생각은 달랐다.
“감찰국 자리가 비게 되면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할 거요. 그렇게 되면 내가 맹 밖에서 어떤 조직을 만들든지 신경도 쓰지 않겠지. 오히려 자유롭게 대비할 수 있을 거요.”
사비강의 추측은 거의 정확했다.
사비강의 예측대로 비어 버린 감찰국 자리는 수뇌 인사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들의 눈빛이 대번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윤이 내심 차갑게 중얼거렸다.
‘흥, 눈독 들여도 소용없다. 이 자리는 결코 아무에게나 내어 주지 않을 테니!’
이미 맹주는 감찰국주로 임명할 사람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바로 검영각주 섭청이었다.
하지만 당주가 아닌 각주의 신분으로 갑자기 감찰국주가 된다면 반발이 꽤나 심할 터였다.
사비강이 그 많은 공을 세우고도 감찰국주가 되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일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되어야 할 터다.
방철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학관의 규모는 얼마나 되겠소?”
“규모는 제법 클 수도 있소. 다만, 본관 출신의 무인이 마족에 대항하기 위한 문파를 따로 설립하겠다고 한다면 막을 생각 또한 없소. 내 목적은 오로지 마족을 막아내는 것이니까. 마족에 대항할 수 있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소?”
“좋은 생각이오.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강호인들도 조금씩 대비가 될 것 같소.”
섭청이 끼어들며 지지 의사를 보냈다.
다른 이들도 더 이상 반대하진 않았다.
마령교와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서 특별 조직을 구성한다는데 반대할 명분은 없었다.
사실 이미 그들의 관심사는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 생길 학관 따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감찰국주라는 빈자리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대략의 상황이 정리되자 구윤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좋습니다. 하면 본맹은 사비강 대협이 학관을 설립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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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에 학관을 세우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비강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상당한 규모의 학관을 건축했는데, 그러다 보니 무한에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중소 문파나, 지단은 은근한 견제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사비강은 주변의 견제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했다.
건물이 하나씩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던 사비강이 옆에 선 매설란에게 말했다.
“학관이 완성될 때까지 설란이 전권을 위임받아서 진행하도록 해.”
“또 제게 일을 떠넘기시는군요?”
매설란이 미간을 곱게 찡그리며 말하자,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할 일이 있거든.”
“이번엔 어딜 가시려고요?”
“마족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어. 그자를 학관으로 데려올 생각이야.”
“얼마나 걸려요?”
“거기까진 나도 모르겠군. 순순히 따라올 사람은 아니어서.”
“알겠어요. 몸 조심해요.”
매설란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하지만 내심은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겨우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들떠 있었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심정을 눈치 챈 것인지 사비강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다녀오면 맛있는 것 사줄게.”
매설란이 피식 웃고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 꼭 지켜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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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 지어진 낡은 집.
그곳 안마당에는 한 노인이 뒷짐을 진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얗고 긴 눈썹이 눈을 완전히 덮어버릴 만큼 기인의 풍모를 지닌 노인.
그는 성성하게 기른 하얀 수염을 손으로 쓸면서 유심히 별을 관찰했다.
그렇게 석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얼마나 시간을 흘려보냈을까?
누군가 보았더라면 노인이 그대로 돌이 되어 버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큰일이로다.”
비로소 노인의 입이 열리면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얀 눈썹 아래로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이 땅의 것이 아닌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구나.”
노인이 혀를 끌끌 차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고는 또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귀찮은 손님이 찾아오겠군. 오늘 밤은 류광이 녀석의 꿈자리를 찾아가 따끔하게 나무라야겠구나.”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노인은 그렇게 웅얼거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안마당 한쪽 구석에 심어진 감나무를 정확히 열두 바퀴 맴돈 다음에 안채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