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3
귀환 마교관
353화
콰아아앙!
혜성처럼 떨어진 사비강이 커다란 나무를 부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푸스스…!
사비강이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그의 몸을 덮고 있던 나무 조각 파편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후우, 후우…”
숨을 거칠게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풀풀 뿜어져 나왔다.
쉬이이잇, 턱!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어 황면인이 십여 장 앞에 떨어져 내렸다.
건장한 남자만큼이나 체격이 커지고 근육질로 다져진 그녀가 목을 우두둑 꺾으며 말했다.
“벌써 포기한 게냐? 이러면 재미없는데.”
사비강이 입매를 치켜 올렸다.
“진짜 괴물이 되었군. 저승으로 간 아들이 감격하겠어.”
“후후. 더 이상의 도발은 소용없단다.”
시커먼 눈동자를 가진 황면인이 입매를 히죽 치켜 올렸다.
순간 사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면서 하얀 머리카락이 풀풀 휘날리니, 흡사 마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열두 명의 황면인이 하나로 융합된 후부터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모습이었다.
때문에 사비강은 좀처럼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걸로 세 번째 시도인가?’
사비강은 천천히 베르타스를 앞으로 내밀고는 왼손에 마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도할 때는 거의 통할 뻔했다.
그렇다면 한 번 더 시도해 볼 만하다.
바로 내공과 마나를 분리하여 동시에 운기 하는 것!
우우우우웅!
오른손에 공력이 주입되자, 베르타스가 묵직한 진동을 울리면서 몸을 떨어댔다.
반대로 사비강의 왼손에는 마나가 집중되면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형성되고 있었다.
후우우우웅.
‘된다…!’
두 번째 시도할 때는 살짝 느낌만 스쳤다면, 지금은 확실히 운기가 되고 있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싸움을 이어가다 보니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저절로 체득한 것이다.
“도발이 아니라 진심어린 감탄이었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 튀어 나갔다.
타앗!
쒸이이익!
순간 사비강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찰나지간,
팟!
그가 황면인의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배후에 나타나 검을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쑤아아아앙!
검강이 매섭게 치고 나오면서 황면인의 등짝을 노렸다.
“소용없는 짓! 네놈은 날 죽일 수 없다!”
황면인이 순간 번쩍거리면서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황면인은 사비강의 측면에 나타나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쒸이이이잇!
한데 이번에도 사비강이 한 박자 더 빨랐다.
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가 죽인대?”
“뭣?”
찰나,
후아아아앙!
사비강의 왼손에 집중된 마나가 음속의 진동을 울리면서 그대로 황면인을 직격했다.
꽈아아앙!
촤촤촤촤촤아악!
소닉 버스터 마법을 온몸으로 받아낸 황면인의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순식간에 그녀의 육편은 사방으로 흩어져 비산했다.
물론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수라불괴가 된 황면인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할 것이다.
하지만 사비강이 생각한 비장의 한 수는 따로 있었다.
그가 품에서 라겔의 주머니를 꺼내들더니 손을 불쑥 뻗으며 외쳤다.
“텔레키네시스!”
순간 조각조각 흩어져 비산하던 인육 파편들이 라겔의 주머니를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쉭쉭쉭쉭쉭쉭쉭.
라겔의 주머니는 주둥이 크기가 한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제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황면인을 통째로 그 안에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잘게 나눠진 황면인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라겔의 주머니는 차원의 틈새인 아공간이다.
그곳에서 자의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라겔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낼 때는 어디까지나 ‘의지의 부름’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다.
즉, 사비강이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꺼내고자 마음먹지 않는 한 영원히 갇힌다고 봐야 한다.
“헉, 헉, 헉…!”
사비강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폈다.
혹시라도 남은 인육의 파편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에 하나 작은 인육 파편이라도 남아 있다면 거기에서 다시 또 황면인이 재생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다행히 없는 건가?’
길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비로소 황면인이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사비강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라겔의 주머니에서 힐링 포션과 마나 포션을 꺼내 들고는 꿀꺽꿀꺽 마셔댔다.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군.”
한숨 돌린 사비강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공을 시작했다.
‘마나를 왼손에, 내공을 오른손에!’
단전에서 서늘한 기운이 일어나더니 혈맥을 따라 휘돌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곧이어 사비강의 신체 오른편에서 푸른빛의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가슴에서 뜨끈하면서도 진득한 기운이 일어나더니 신체의 왼편에 머물렀다.
그러자 이번엔 왼팔을 중심으로 붉은빛의 오러가 일렁거렸다.
이렇게 정좌를 하고 운기를 한 것은 이번 전투 중에 익힌 운공법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체화하려는 목적이었다.
‘됐군.’
사비강이 눈을 뜨자, 한쪽 눈은 푸른빛으로, 다른 한쪽 눈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방식의 운공을 상시적으로 적용하여 생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실전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써먹을 수 있을 테니.
또한 이렇게 내공과 마나를 분리하는 게 가능해졌다면, 더 많은 발전도 이룰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번 전쟁이 정리되면 연구를 좀 해 볼 필요가 있겠어.’
마지막으로 내공과 마나를 체내에서 일주천을 해본 사비강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련주를 찾아 나설 차례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나타스가 바올드 무리를 완전히 휩쓸고 마령교도를 상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마나를 거의 소모한 탓인지 그의 기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물론, 나타스가 소멸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크라니온의 결계 속으로 돌아가 다시 소환을 할 때에는 부름에 응할 것이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 날아오르려고 할 때였다.
“사부니이이임!”
아스라이 추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된 추량은 온몸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마도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적들을 상대한 모양이었다.
“헉, 헉, 헉! 사, 사부님! 기다리십시오! 괜, 괜찮으십니까?”
“나보다 네가 숨넘어갈 것 같다.”
“후우, 말도 마십시오! 이렇게 멀리 오시면 어쩝니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별 놈들이 다 덤벼들었다고요!”
“수련은 확실히 됐겠군.”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욧! 하나밖에 없는 제자가 죽을 뻔했다고요!”
“어쨌든 고생했다. 혹시 모르니 이걸 가지고 있어라. 용법은 알고 있겠지?”
사비강이 품에서 힐링 포션을 하나 꺼내 던져 주었다.
추량이 얼른 그것을 낚아채고는 물었다.
“그런데 이 귀한 걸 이렇게 마구 낭비해도 됩니까?”
“잊었냐? 하오문에서 받은 것들이 상당하다는 걸?”
“물론 그렇지만….”
“마계 녀석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때 힐링 포션을 한두 개만 챙겨 왔을까 봐 그러냐?”
“아…”
“군단 급으로 챙겨 왔다. 그들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거든. 문제는 그걸 전부 내게 빼앗겼다는 거지만.”
“그럼, 안심하고 복용하겠습니다.”
“이것도 받아 두어라.”
사비강이 다시 던져 준 것은 마나 포션이었다.
추량이 그것들을 품에 갈무리하자, 사비강이 돌아섰다.
“그럼, 가자.”
“예? 어딜…”
“대가리 찾으러 가야지.”
팟!
순간 사비강의 신형이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음 순간 추량은 벌써 저만치 점처럼 멀어진 사비강의 뒷모습을 보았다.
“악! 사부님! 또 혼자만…! 제길! 같이 가자고요!”
추량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
후들후들…
“헉, 헉, 헉…!”
독고진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주체하면서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눈가로 스며드는 바람에 한쪽 눈살을 찌푸리고는 소매로 훔쳤다.
“칫…!”
혀를 찬 그가 주변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자신을 포위한 신생조원들이 여전히 살기를 뿜어대며 냉엄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조금은 지친 기색이 보였지만, 자신에 비하면 훨씬 여유가 넘쳤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내가…!’
그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초절정의 영역에 오른 자신이 아닌가?
물론, 신생조원들 중에도 구강룡처럼 초절정 고수가 있긴 하다.
하지만 초절정이라고 해서 어디 다 같은 수준이던가?
구강룡은 자신에 비하면 한참 아래다.
한데도 자신이 당했다.
신생조원들 하나하나의 무공도 생각 이상으로 고강했지만, 그보다도 합격술과 차륜술이 대단했다.
사실 이는 신생조원들도 모르는 사이에 발전한 것이었다.
틈만 나면 사비강을 죽이기 위해 암살 시도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합격술과 차륜술이 발전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영향으로 독고진은 지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미 그와 함께 싸우던 수하들은 피를 흘린 채 차가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저벅저벅.
맹가숙이 구절창을 쥔 채로 다가왔다.
독고진이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네놈들이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쉿. 죽어 가는 마당에 그리 악쓸 건 없잖소?”
“뭣이?”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어차피 죽을 거라면 차라리 모든 걸 인정하고 떠나시오.”
“이런 창자를 발라 버릴…!”
쉬이이잇! 탁!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누군가 독고진의 목을 움켜쥐었다.
독고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컥…! 컥!”
그는 신음을 뱉어내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았다.
놀랍게도 자신의 목을 움켜쥔 남자는 바로 사비강이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독고진 뿐만 아니라 맹가숙을 비롯한 신생조원들도 놀라서 소리쳤다.
“교관님!”
“다들 애썼다.”
사비강이 무신경하게 말을 뱉고는 독고진을 빤히 노려보았다.
독고진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사비강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련주.”
“……?”
“련주는 어디에 있나?”
“크윽…!”
독고진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침을 뱉었다.
“퉤엣!”
하지만 힘없이 날아간 침은 사비강에게 닿기도 전에 바닥으로 늘어지듯이 떨어졌다.
사비강이 씨익 웃더니 손을 놓아 주었다.
“근성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흥! 네놈을 반드시 련주님이…!”
쉬이이익! 퍽!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
허공을 가르며 빛살처럼 날아간 베르타스가 그대로 독고진의 머리를 절반 쪼개며 박힌 것이다.
쿠웅!
그대로 큰대자로 쓰러진 독고진은 다신 움직이지 못했다.
사비강이 손을 뻗자 독고진의 얼굴에 박혔던 베르타스가 피를 흡수한 다음 휙 날아들었다.
“바쁜데 꼭 두 번씩 묻게 하고 있어. 쯧.”
사비강이 혀를 차고는 주변을 휘이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곧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신생조원들이 사비강의 뒷모습을 그렇게 가만히 넋 놓고 보는데, 마침 저 뒤에서 아스라이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제일 먼저 돌아본 사람은 옹기승이었다.
“사부니이이임!”
소리치며 달려오는 사람은 바로 추량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추량이 무릎을 쥐고는 물었다.
“헉, 헉, 헉, 후우! 사, 사부님은 어디로 가셨소?”
“방금 저쪽으로 갔소.”
맹가숙이 사비강이 걸어간 방향을 가리켰다.
놀랍게도 그 사이에 사비강은 다시 찾기도 힘들만큼 멀어져 있었다.
추량이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아우, 젠장! 이건 절대로 일부러 이러는 거야! 확실하다고! 사부님! 제기라아알!”
추량이 다시 소리치며 사비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