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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52화 (352/670)

# 352

귀환 마교관

352화

꽈아아앙!

폭음과도 같은 소음이 터지면서 사비강과 황면인이 멀어졌다.

나무기둥을 부수며 날아간 사비강이 침을 탁 뱉고는 숲속에서 걸어 나왔다.

어쩌다 보니 평원을 벗어나 숲 근처까지 밀려났다.

과연 황면인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사비강은 직감할 수 있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군.’

패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비록 마나 총량의 절반을 소모해서 나타스를 소환했지만, 아직은 충분히 싸울 여력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은 만독불침지체가 되지 않았나?

한데…

우습게도 이길 자신이 없다.

모순된 말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다.

황면인을 처음 본 순간 그는 생각했다.

‘저걸 어떻게 이기지?’

한 마디로 약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회귀한 후 지금까지 죽음의 위기를 겪은 적은 별로 없다.

물론, 얼마 전 명리각에 잠입했을 때는 정말 위험했다.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

하지만 그땐 운이 나빴던 거다.

싸우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오늘처럼 이길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 적 또한 없다.

사비강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스윽 닦아내자, 마침 황면인이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사비강과 달리 그녀는 거짓말처럼 말끔한 모습이었다.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그녀의 시커먼 동공을 보았다.

“정말로 괴물이 되어서 돌아왔군.”

“나를 보낸 건 너의 오만한 실수였지.”

놀랍게도 황면인은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억도 그대로 간직한 채였다.

사비강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황면인이 말했다.

“나 역시 놀라웠지. 이런 몸을 하고도 기억을 온전히 유지하고 이성도 간직할 줄은. 뭐, 외모가 좀 평범하진 않지만 나름 마음에 들더군.”

황면인이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이 흡사 귀신처럼 섬뜩해 보였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어미가 이리 강해진 걸 보면 저승에 간 아들도 자랑스럽겠어.”

“닥쳐라!”

모처럼 황면인이 분기탱천하며 날아들었다.

그녀는 살기를 뿜으며 양손에 든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까가가강! 깡깡!

사비강은 얼른 베르타스를 들어 어지럽게 쏟아지는 칼날을 연신 막아냈다.

수십 합이 지났을 때, 사비강은 황면인에게서 빈틈을 찾아내고는 곧바로 베르타스를 대각선으로 올려 베었다.

쉬컥!

“아악!”

황면인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툭!

그녀의 왼팔이 잘려 나가면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사비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장 앞으로 쇄도했다.

“죽어라!”

그가 일갈을 터뜨리며 그대로 베르타스를 내질렀다.

쑤아아아앙!

베르타스에 강기가 맺히면서 그대로 황면인의 목을 썩둑! 베어냈다.

툭, 데굴데굴…!

머리를 잃은 황면인이 비틀거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발치에는 온통 누런색으로 칠한 머리가 힘없이 굴렀다.

“후우…!”

사비강은 가까스로 자세를 잡고는 심호흡을 했다.

“어느 정도 도발은 먹혀드는군.”

사비강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시 경계 자세를 잡았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고개를 갸웃거렸으리라.

분명 황면인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왼팔을 잃었고, 급기야 머리까지 떨어져 나가지 않았나?

대체 사비강은 누굴 보고 검을 든 것일까?

그런데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르르르르르!

황면인의 머리가 바람결에 부식되면서 순식간에 썩어 가더니 재가 되어 날리는 게 아닌가?

곧이어 주저앉은 황면인의 몸통에서 뭔가 꿈틀거리더니 목과 왼팔이 자라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츄아! 츄아아!

진득한 액체를 흘리면서 황면인의 머리가 다시 만들어졌고, 왼팔 또한 멀쩡한 모습으로 자랐다.

그야말로 기겁할 광경이었다.

황면인이 히죽 웃으면서 몸을 털고는 일어났다.

“이걸로… 여섯 번째군. 아, 머리를 잃은 건 두 번째인가?”

사비강은 웃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다.

그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물론,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이러한 것까지는 알지 못한 채 막연하게 든 생각이었다.

한데 그녀를 상대하면서 쉽게 죽일 수 없다는 걸 더욱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어디를 베어도 그녀는 다시 되살아난다.

다섯 번째로 그녀를 죽일 때는 베르타스와 소닉 버스터 마법을 이용해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났다.

불에 태우고, 용암에 빠뜨려도 보았지만 녹았던 몸은 다시 굳으며 원상태로 돌아왔다.

냉기 속성 마법을 이용해서 얼려 버려도 마찬가지.

결국 다시 녹으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다.

그야말로 불괴(不壞)!

싸움이 길어질수록 사비강은 점점 내공과 마나가 고갈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절망하고 또 절망하거라. 그 아이가 그랬듯이. 그렇게 절망하다가 죽어 가거라.”

“우습군.”

사비강이 내뱉은 말에 황면인이 눈썹을 슬쩍 일그러뜨렸다.

“무엇이 우스운 거냐?”

“내게 지금 누구보다도 절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바로 할멈이거든.”

“감히 사람을 읽는 시늉을 내는 것이냐?”

“아니지. 잊었나 본데, 할멈은 더 이상 사람이 아냐. 그저 사람이었던 괴물이지. 난 사람을 읽진 못해.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데. 한낱 괴물 따위와 같을까?”

“흥, 도발이라면 소용없는 짓이다!”

황면인이 호통을 치며 검을 휘둘러 왔다.

까앙!

금속성에 이어 불꽃이 터져 나왔다.

사비강이 뒤로 훌쩍 물러나며 외쳤다.

“과연 소용없을지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 몸을 무너뜨릴 수 없다면 정신은 어떨까?”

말을 마친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검집에 갈무리하더니 ‘팟!’ 하고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서 서화평원 복판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황면인 역시 사비강의 뒤를 바짝 쫓았다.

순식간에 서화평원 복판에 다다른 사비강은 플라이 마법을 펼쳐 날아올라 주변을 둘러보다가 비척비척 걸어가는 망자 하나를 발견하고는 몸을 날렸다.

“노옴! 어딜 도망가느냐!”

황면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치며 사비강을 쫓았다.

마침내 사비강이 망자의 머리를 덥석 잡아들었다.

그는 마령교도들이 쏘아 보낸 파이어볼을 맞고 화상을 입은 채 죽었던 정도맹 무인이었다.

나타스에 의해 일어선 망자들은 사비강에게 저항할 수 없었기에 마치 삐걱거리는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 서지 못할까!”

버럭 고함을 지르며 도착한 황면인이 곧장 칼을 대각선으로 베어 왔다.

찰나지간, 사비강이 손에 잡혀 버둥거리는 망자의 머리를 든 채 휙 돌아섰다.

쒸에에에엣!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던 칼이 거짓말처럼 우뚝 멈추고 말았다.

동시에 황면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온통 시커먼 그녀의 눈동자가 더욱 큰 어둠을 담았다.

“이, 이…!”

칼을 쥔 황면인의 몸이 가늘게 떨려 왔다.

사비강의 앞을 막아선 망자의 모습은 적면인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화상을 입어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

“너… 너…!”

황면인이 당황한 듯 주춤 물러났다.

대법을 통해 수라불괴가 되고서도 온전히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지만, 어디 처음과 같을 수 있겠는가?

몸이 수십 갈래로 쪼개지고도 끊임없이 재생하는데, 어찌 멀쩡한 정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지되겠는가?

사비강은 이 점을 파고든 것이다.

또한 그녀가 적면인의 이야기만 들으면 흥분한다는 점을 최대한 이용해 본 것이었다.

다행히 통하긴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황면인은 새카맣게 물든 눈을 크게 뜨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 아이를… 놔 줘라.”

“싫은데.”

“그, 그 아이를 당장…”

“싫다니까.”

말을 마친 사비강은 가차 없이 베르타스를 꺼내 들어 화상 입은 망자의 목을 그어 버렸다.

촤아아악!

목이 베인 망자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사비강이 손에 들고 있던 머리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는 사악하게 웃었다.

“자식이 두 번 죽는 걸 보는 기분은 어떨까?”

만약 이 자리에 누군가 있었더라면, 사비강을 보며 치를 떨었으리라.

지금 사비강은 그야말로 악마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황면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비명을 내질렀다.

“끼야아아아아악!”

곧이어 그녀가 머리를 감싸 쥐며 통곡을 했다.

“아이야! 아이야! 으흐흐흑! 아이야!”

잠시 후, 갑자기 그녀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더니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이런 못난 년을 보았나! 그게 어째서 네 아이란 말이냐! 네 아이는 벌써 오래 전에 죽지 않았더냐!”

황면인은 다시 또 머리를 부여잡고 절규했다.

자아분열의 순간이었다.

“아니야! 이 아이는 내게 유일한 위로였소! 어째서 그 아이에게 애착을 가지지 않겠소!”

“멍청한 년! 그런 놈은 죽어도 싸다! 네 원수의 자식이다!”

“아아, 그 부모는 내게 잘못한 것이 없소!”

“그 부모의 부모가 잘못을 저질렀지.”

“하지만 이 아이는 정말로 잘못이 없지 않소!”

황면인 내면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실제로 목구멍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따금씩 절규하다가 미친 듯이 웃는가 하면, 또 모든 것을 부술 것처럼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이 멍청한 년과는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겠어!”

“나도 당신과는 함께 할 수 없소!”

“나도 너희들과 같이 못하겠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갑자기 황면인의 머리 옆으로 또 하나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마치 밀가루 반죽이 나뉘듯이 황면인의 몸이 두 가닥에서 세 가닥으로, 다시 네 가닥으로 마구 분열해 갔다.

사비강도 이런 식으로 반응할 줄은 몰랐기에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황면인은 그렇게 계속해서 분열을 거듭하더니 총 열두 명이 되고 말았다.

“이 멍청한 것들! 고작 애새끼 하나 때문에 이 지경이야?”

분노의 황면인이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쳤다.

그러자 슬픔의 황면인이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당신은 어찌 그리 매정하오! 그 아이는 오로지 나만 의지했단 말이오!”

“어렸을 때야 그랬겠지만, 커서는 스스로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그 녀석도 알았지. 그래서 시종 쌀쌀하게 굴었고.”

냉정한 황면인이 한 말이었다.

“킬킬킬, 어차피 한 평생 꿈처럼 흘러가고 말 것을 뭘 그리 깊이 생각하나?”

쾌락의 황면인이 소리치자, 다시 분노의 황면인이 버럭 화를 냈다.

“닥쳐! 네놈들이 일을 망치겠구나!”

급기야 황면인들이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는가 싶더니 서로 뒤엉켜 싸우는 것이 아닌가?

이 틈을 이용해서 공격을 시도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사비강은 조금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분노의 황면인이 슬픔의 황면인에게 달려들더니 다섯 손가락을 얼굴 양 옆에 푹 꽂아 넣고는 기를 흡수하는 듯 빨아먹기 시작했다.

냉정의 황면인 역시 쾌락의 황면인을 같은 방식으로 제거하면서 흡수해 버렸다.

이 기괴한 광경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지켜보다 못한 사비강이 나서서 황면인 중 하나를 공격했지만, 역시나 신체의 어느 부위가 잘려 나가더라도 금세 재생하고 말았다.

결국 사비강은 공격하기를 포기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어차피 재생할 거라면 이틈에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해 두면서 공략법을 떠올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고는 라겔의 주머니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그러다가 멈칫거리고는 황면인들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분노의 황면인과 애정의 황면인이었다.

사비강의 눈빛이 빛났다.

‘어쩌면…?’

두 황면인은 사비강을 의식도 하지 않는 것인지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그러다가 결국 분노의 황면인이 애정의 황면인 얼굴 양 옆에 손가락을 깊이 박아 넣었다.

순식간에 기력을 빨린 애정의 황면인은 피골이 상접하면서 쓰러졌고, 분노의 황면인은 더욱 커진 몸집으로 변해 버렸다.

분명 그녀는 조금 전에 비해 훨씬 안정되고 강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더욱 인간의 모습에서 멀어진 모습이기도 했다.

황면인이 목을 우두둑 꺾고는 사비강을 향해 말했다.

“이제야 정리가 됐군. 그럼 우리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볼까?”

어느새 그녀의 목소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이 되어서 묘하게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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