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
귀환 마교관
351화
“저런… 사악한 술법을…!”
욱청풍이 미간을 좁히고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화평원을 내려다보았다.
그 곁에 있던 묵양제도 몸을 가늘게 떨며 말했다.
“이,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반, 반드시 짚고 따져야 할 문제입니다!”
“알고 있네. 어찌 이런 일이…!”
욱청풍과 묵양제는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생각을 굳건히 굳혀 갔다.
그들은 사비강이 소환해낸 나타스와 죽은 자들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단순히 사술을 넘어 마교에서나 행할 대법 같은 것이 아닌가?
저 사악한 술법을 사용한 자가 정도맹 소속의 무인이라니!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잠자코 듣고만 있던 구윤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발끈해서 일어났다.
“두 분, 이제 그만 좀 하시지요?”
“무, 무슨 소립니까?”
묵양제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구윤을 보았다.
욱청풍도 약간은 노기가 서린 눈빛으로 구윤을 응시했다.
“뭘 그만하라는 소리요? 군사.”
“아까부터 계속 사비강 전 국주를 모함하려 하지 않습니까?”
“모함? 모함이라니! 당치도 않는 소리를!”
욱청풍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묵양제 역시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그걸 모함이라고 하십니까? 군사께서도 지금 저 흉포한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으로 이해가 될 일입니까? 본맹에서 저러한 사술을 전수한 적이 있습니까? 저건 마교에서나 나올 만한 대법이 아닙니까? 한데 이걸 좋게만 보고 넘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구윤이 미간을 좁히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조금은 지친 음색으로 물었다.
“그래서 지금 사비강 전 국주가 그 마교의 술법으로 본맹을 공격하고 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하면, 본맹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아니면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위기에 빠진 본맹이 겨우 살아 돌아올 수 있게 됐습니다. 한데 두 분은 어째서 트집 잡을 생각만 하십니까?”
“어허! 트집이라니요! 군사께서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아무리 결과가 좋다고는 하나, 그 과정이 악랄하다면 그것이 어찌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까?”
“대체 무엇이 그리 악랄하다는 겁니까?”
“죽은 자들을 되살려내는 걸 보지 못했습니까? 저건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이쯤 되자 구윤은 자신도 모르게 비소가 흘러나왔다.
그의 비웃음에 당황한 묵양제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왜, 왜 그렇게 웃고 계십니까?”
“두 분은 망자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기 이전에 산 자에 대한 예의부터 좀 챙기셔야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물론 결과가 좋다고 하여 과정을 모두 용인할 수는 없지요. 하나, 제가 보기에는 그 과정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대체 사도와 정도는 무엇으로 구분한답니까? 사람을 살리는 사도라면 그것이 정도와 또 무엇이 다릅니까? 거칠고 패도적이면 모두 사도입니까? 하면 사천당문의 독공도 사도라고 몰아붙일 생각이십니까?”
“그건 너무 나간 거지요! 모든 것은 기준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거늘….”
“대체 그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군사께서는 도대체…!”
“듣기 싫습니다!”
구윤이 전에 없이 정색을 하며 소리쳤다.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가 냉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더니 차갑게 일렀다.
“두 분은 당장 출정하셔서 맹주님과 정의천지인단을 무사히 이곳으로 인도하세요.”
“하지만 아직 이야기가….”
“명령입니다.”
구윤이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더 이상의 대화는 불허하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묵양제야 그렇다고 쳐도 장로회주인 욱청풍은 못내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물론, 전시에는 총군사의 지위가 장로회주보다 우위에 있다지만, 평소에는 그 위치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욱청풍이 짐짓 분기를 참지 못해 공력을 뿜어내자, 구윤 앞으로 한 여인이 사르르 눈처럼 떨어져 내렸다.
가늘고 긴 검을 뽑아 들고 구윤을 막아 선 그녀는 바로 호신위인 비령이었다.
“군사님께 항명하시는 겁니까?”
그녀의 입에서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차하면 장로회주라 할지라도 칼부림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담겨 있었다.
욱청풍이 슬며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조금 전의 분기는 어느 정도 식었는지 꽤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그가 포권을 취했다.
“군사의 명 받들겠소.”
“명 받들겠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몸을 돌려 언덕을 내려갔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구나.”
구윤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먼발치로 고개를 돌렸다.
비령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이냐?”
“사비강 전 국주가 소환한 것은 아무리 봐도 정도와는 거리가 멀긴 합니다.”
“너마저 그 소리냐?”
“조용히 넘어가긴 어려울 겁니다.”
“내가 알 바냐? 그땐 사비강 전 국주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다만 당장 내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들이 듣기 싫었을 뿐이다.”
비령이 풋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구윤이 힐끔 돌아보았다.
“왜 웃느냐?”
“왠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닮아? 무엇이? 무엇을?”
“군사님과 사비강 전 국주 말입니다.”
“아… 그런가?”
구윤이 가만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썩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잠시 후 비령은 스르르 기척을 지웠다.
구윤은 먼발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들으셨소? 내 군사로서의 이성을 당신이 다 망쳐 놓았소. 추후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거요.’
그의 눈에 아득한 곳에서 누군가와 싸우는 사비강이 보였다.
천리경을 들어보니 상대는 얼굴을 온통 누렇게 칠한 노파였다.
“오늘 내가 천외천(天外天)을 보는구나.”
**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살혼단을 이끄는 독고진은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죽은 자를 베어 넘겼다.
갑자기 나타난 이 죽은 자들 때문에 살혼단 전력 다수를 잃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은 것들도 잘게 다져놓다시피 썰어 버리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바올드가 나타난 것도 놀라웠는데, 이번에는 사비강이 더 이상한 녀석들을 몰고 온 것이다.
“추 당주는 도대체 싸우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니미럴!”
그는 울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저만치 후방에 뒤쳐져 있는 추희룡을 노려보았다.
추희룡은 대체 뭘 하는 것인지 병력을 이끈 채로 후방에서 치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저 겁 많은 녀석을 믿는 게 아니었지!”
물론 몸을 사리라는 군사의 지시가 있었다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마령교가 소환한 바올드가 모조리 죽은 마당에 더 이상 몸을 사릴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 일이 끝나면 반드시 캐묻고 말리라!’
독고진은 이를 빠득 갈고는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오랜만이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고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맹가숙이 구절창을 휘휘 잡아 돌리면서 히죽 웃고 있었다.
“네놈은…?”
“신생조장 맹가숙이올시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변으로 하나 둘 사람들이 나타났다.
모두 신생조였다.
그제야 독고진은 자신이 몇몇 수하들과 함께 신생조원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어금니를 뿌드득 갈았다.
“이 개망나니 같은 것들이… 지금 나를 상대로 한 번 해보겠다는 거냐?”
“못할 것도 없지.”
“네놈들이 사비강 그 작자 밑에서 굴러먹더니 결국 뒤통수를 치는구나! 네놈들은 본련의 수치다!”
“아아, 말은 바로 하자고. 우리는 그저 빚을 갚으려는 것뿐이니까.”
“빚? 그건 무슨 소리냐?”
“일전에 우리가 묵귀대를 쳤을 때, 그 잘못을 물어서 파문시키려고 했잖소? 이제는 당신이 파문당할 차례요. 영원히 말이지.”
“뭣이? 이런 미친 것들이 단체로 겁 대가리를 상실했군! 이 반란분자들을 모두 죽여 버려!”
순간, 독고진과 함께 있던 수하들이 바닥을 차며 신생조원들에게 날아갔다.
맹가숙이 입매를 치켜 올렸다.
“쓸어 버리자고!”
파바밧!
곧이어 신생조원들 역시 일제히 적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
대나무 위에 서 있던 녹면인은 먼발치에서 벌어지는 황면인과 사비강의 싸움을 숨 죽여 지켜보았다.
애초에 걱정으로 가득했던 그는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조금씩 희망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비록 먼 거리이긴 했지만, 황면인은 사비강을 상대로 정말로 잘 싸우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벌써 몇 번이나 죽었을 위기도 황면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사비강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수라불괴가 완성되니 상대할 자가 없구나!’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마연맹의 진영을 살폈다.
마침 후방으로 빠져 있는 추희룡이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이제 몸을 사려?’
그가 미간을 팍 구기고는 대나무를 차고 날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쒸에에에에에엑!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화살 한 대!
녹면인이 얼른 몸을 뒤틀고는 양손을 뻗으며 외쳤다.
“방호!”
투카앙!
“크웃!”
다행히 실드를 펼쳐 화살을 막아내긴 했지만, 강기를 입고 날아든 화살이었기에 그 충격이 대단했다.
게다가 완전히 막아낸 것은 아니어서 화살이 어깻죽지를 얇게 스치고 지나갔다.
탁, 촤아앗!
바닥에 착지하면서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녹면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웬…!”
그때,
슈슈슈슈슈슉!
녹면인의 주위를 에워싸면서 그림자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바로 천멸대였다.
녹면인이 눈살을 찌푸리고 천멸대를 훑어보자, 염자량이 커다란 도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요상한 수법으로 우리 대주님 화살을 잘도 막아내는군.”
녹면인이 냉소를 짓더니 싸늘하게 읊조렸다.
“맹랑한… 그렇다면 더 요상한 것도 보여줄까?”
“무슨…?”
따악!
녹면인이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드드드드드…!
땅이 잔잔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투콰아! 투콰! 투콰아아!
녹면인 주위로 땅바닥에 일곱 개의 구멍이 생기면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스스스스…!
검고 탁한 기운을 스멀스멀 뿜어내는 그것들은 양손 대신 기다란 칼을 달고 있었다.
바로 녹면인을 수호하는 흑마병(黑魔兵)들이었다.
이들은 거마병과 굴마병의 장점을 합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 순간,
휘리리리릭!
흑마병들이 일제히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녹면인을 포위한 천멸대에게 날아갔다.
천멸대원들이 일제히 물러나면서 소리쳤다.
“실드!”
쑤아아아앙!
까라라라라랑!
실드가 형성되는 것과 동시에 흑마병들의 칼날이 불꽃을 일으키며 튕겨나갔다.
그 광경에 녹면인의 눈썹이 팍 일그러졌다.
“네깟 놈들이 어떻게 그런 걸…?”
연우경이 비웃음을 머금은 채 답했다.
“우리도 요상한 걸 쓸 줄 알거든.”
“뭣이?”
“더 요상한 것도 보여줄까? 소소.”
그러자 능소소가 청의봉을 내밀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실레스틴!”
휘아아아아아아아아앙!
순간 거짓말처럼 강렬한 태풍이 불어 닥쳤다.
녹면인은 물론, 흑마병들조차 그 바람의 힘을 쉬이 이기지 못해 양팔을 교차한 채 버티느라 급급할 정도였다.
찰나, 연우경이 외쳤다.
“지금이다! 쳐!”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멸대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들의 손에는 벌써 붉은 불덩이가 맺혀 있었다.
화르르륵! 화르륵!
겨우 눈을 뜬 녹면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말,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