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
귀환 마교관
350화
휘리릭!
사비강이 손을 휘젓자 장삼 자락이 펄럭였다.
동시에 그가 소리쳤다.
“블리자드(Blizard)!”
다음 순간,
후우우우웅!
휘아아아아아앙!
마병들이 있는 북서쪽 지역에 북풍한설이 휘몰아쳤다.
그야말로 살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강렬한 추위였다.
들판이 꽁꽁 얼어붙었고, 땅바닥이 추위에 떨다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꽝! 와르르르!
온몸을 던져 터져 나가던 폭마병은 육체의 파편이 조각조각 흩어진 채로 얼음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정도맹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얼어붙고 말았다.
몇몇 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얼른 극양의 기운을 운공하면서 극한의 지대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쿠웅!
쩌저저어억!
육중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얼어 버린 거마병이 쓰러졌다.
꽈다앙!
꽁꽁 얼어붙은 거마병은 바닥에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조각조각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막강한 눈보라 속에서 움직임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꼿꼿하게 얼어붙었던 풀밭은 바스락거리며 부서졌고, 인간들이 흘린 땀과 피는 눈꽃처럼 으스러지며 흩날렸다.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정도맹 무인들은 저마다 입을 척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대, 대단하다… 대체 이게 무슨…?”
“사비강 교관님이 극음의 무공을 익히신 건가?”
“하지만 이런 무공이 있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어쨌거나 우, 우린 이걸로 살 수 있다!”
“우와아아!”
정도맹 무인들이 저마다 양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사비강이 이 순간 그들에게 있어서는 신령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쳐라!”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공력이 담겨 있었기에 감찰국 무인들과 신생조원들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매설란이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쓸어 버려!”
“우와아아아!”
가장 먼저 앞서 달린 조직은 고적산이 이끄는 철혈단이었다.
그들은 대규모 전투에 적합한 조직이었기에 다른 이들보다도 기동성이 뛰어났다.
새하얗게 얼어 버린 마병들을 시커먼 구름떼가 휩쓸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그 뒤를 이어 천멸대와 암영대를 포함한 감찰국 무인들과 신생조가 달려갔다.
비록 인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기세는 누구도 막기 힘들 만큼 사나웠다.
퍼캉! 퍼퍼퍼펑! 퍼카캉!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병들이 속수무책으로 깨져 나갔다. 아니, 터져 나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염자량이 대도를 휘두르며 그라운드 웨이브 마법을 발동하면 바닥이 파도처럼 들고 일어나면서 일대의 거마병과 폭마병들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능소소 역시 실레스틴을 소환해 얼어붙은 마병들을 강풍으로 휩쓸었다.
단리정이 쏘는 화살은 일직선으로 서 있는 마병들을 거침없이 꿰뚫으며 날아갔고, 설서린이 휘두르는 마칸의 꼬리는 적진을 종횡무진하며 얼어붙은 거마병들을 사정없이 터트려 갔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아니, ‘학살’이라는 표현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단단하게 굳어 있는 석상들을 감찰국 무인들과 신생조가 거침없이 깨부수는 형국이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저 ‘난동’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리라.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정도맹 무인들도 슬금슬금 사기가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함성을 내지르며 무기를 휘둘러 갔다.
“감찰국이다!”
“우와아아아! 사비강 전 국주님이 우리를 구하러 오셨다!”
“이제 살 수 있어!”
“이것들을 전부 깨부숴 버려!”
퍼캉! 퍼퍼퍼펑! 퍼카캉!
정도맹 무인들이 밀물처럼 밀려들면서 얼어붙은 마병들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동서에서 서로 밀어닥치니 얼음조각이 되어 버린 마병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얼음 덩어리들이 박살나면서 주변으로 하얀 얼음 알갱이가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한편, 먼발치에서 이 모습을 보던 묵양제와 욱청풍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어떻게 저런 일이…?”
“대체 저건 무슨 무공입니까?”
묵양제가 욱청풍을 돌아보며 물었지만, 욱청풍이라고 블리자드 마법을 알 리가 없었다.
그가 그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겠네. 설마 저자가 혈사련에 있는 동안 사술을 익혔다는 건가?”
“아!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눈앞에 펼쳐진 현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묵양제로서는 그 이외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도 없었다.
허공에 부유하고 있던 사비강은 발아래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장벽 위로 내려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벽은 처음 솟아올랐던 부분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구궁! 그그그그그긍!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장벽이 무너져 내리자, 사비강이 양손을 활짝 펼치면서 소리쳤다.
“나타스!”
다음 순간, 그의 쇄골 사이에 박혀 있는 크라니온에서 진녹색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쑤아아아아아앙!
하늘로 솟구친 광선은 다시 혜성처럼 떨어져 내리는가 싶더니, 사비강 옆에서 구름처럼 뭉게뭉게 뭉치면서 기묘한 존재를 드러냈다.
검은 넝마를 두른 해골 기사.
그가 비틀린 얼굴로 사비강을 보았다.
- 죽음을 다스리는 악령, 나타스가 그대의 부름에 답했다.
사비강의 머릿속으로 바로 울려오는 음성이었다.
반면 달아나던 정도맹 무인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해골 기사를 보고는 입을 딱 벌린 채 그 자리에서 굳었다.
“맙소사, 저게 뭐야?”
“괴, 괴물… 아니, 귀신… 인가?”
“도대체 지금 중원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하지만 뒤이은 능운파의 목소리에 그들도 얼른 정신을 차렸다.
“무얼 꾸물거리는가! 어서 퇴로를 확보하고 물러나라!”
하나 능운파 역시 무인들을 통솔하면서도 사비강 곁에 나타난 나타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 대협! 대체 저건 또 뭔가?’
지금까지 수많은 날을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지간한 일에 놀라지 않고, 또 웬만한 위기가 닥쳐도 당황하지는 않을 거라 자부했다.
한데 오만이었다.
그는 오늘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정심은커녕 막연한 공포심마저 심연 어딘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대체 이 중원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한편, 사비강은 무너진 장벽 너머로 꾸물거리며 다가오는 바올드를 훑어보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들 처리할 수 있겠지?”
- 하등한 마계 생물 따위쯤이야.
“그 자신감을 지금 증명하도록.”
나타스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다음 순간, 그가 양손을 활짝 펼치자 사방으로 죽음의 기운이 훅 퍼져 나갔다.
이 기운이 몹시 섬뜩해서 후퇴하던 정도맹 무인들이 다시 한 번 움찔거리고는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잠시 후, 죽음이 가득한 전장에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기적… 어그적…
쓰러져 있던 시체들이 갑자기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로 하나 둘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지날수록 시체들이 일어나는 속도는 빨랐다.
처음에는 뭉그적거리며 움직이던 시체들이 나중에는 강시처럼 벌떡벌떡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능운파가 흠칫 떨고는 중얼거렸다.
“강시…?”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강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시간과 약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렇게 죽은 사람을 그 자리에서 바로 일으켜 세우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어쨌거나 그 믿기 힘든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마침내 사비강의 입에서 집행령이 떨어졌다.
“쓸어 버려.”
다음 순간, 나타스가 한 팔을 쭉 뻗자, 벌떡 일어난 시체들이 거침없이 달려 나가며 도검을 부리기 시작했다.
쿠우와아아!
쿠위우우욱!
그야말로 죽은 자들의 향연.
나타스는 그 시체들의 물결에 섞여 들어가면서 커다란 낫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쉬컥! 쉬이이컥!
커다란 낫이 지나친 자리에는 어김없이 부패가 진행되면서 독기가 일어났다.
거침없이 밀고 오던 바올드 역시 죽음의 물결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촉수 하나하나가 썩어 가는가 싶더니, 이내 부패가 시작되다가 죽은 자들에게 난자당하면서 쓰러져 갔다.
사비강은 다시 레비테이션 마법을 이용해 하늘로 솟아올랐다.
허공에서 내려다보는 전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광범위하게 퍼진 죽음의 물결이 바올드 떼를 덮쳐 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비강은 고개를 들어 저만치 대나무 위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는 녹면인과 살혼단을 이끌고 있는 독고진을 보았다.
이제부터는 마나를 아끼면서 행동해야 했다.
나타스를 소환하는 대가는 제법 크다.
현재 가진 마나의 절반가량을 소진해야 하므로.
때문에 하루에 나타스를 두 번 소환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광범위한 대규모 전투에서는 더 없이 유용하다.
사비강은 어기전성을 이용해 지시를 내렸다.
[단리 대주, 천멸대를 이끌고 녹면인을 상대해라. 맹 영감은 신생조를 이끌고 독고진 당주를 제거하도록.]
명을 들었는지, 지상에서 싸우던 천멸대와 신생조가 물길처럼 갈라지면서 각각의 방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기다란 대나무 위에 올라서서 전황을 살피던 녹면인은 입을 딱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저건… 도대체…?”
바올드를 처음 본 정도맹 무인들의 심정이 딱 이랬을까?
녹면인은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 녹빛 기운을 진득하게 풍기며 설쳐대는 죽은 자들.
게다가 죽은 자들의 주축이 되어 그들을 통솔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 해골 녀석은 정체가 뭐란 말인가?
새로 만들어진 강시인가?
정도맹에서 강시를 만들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 아닌가?
사비강이 거대한 장벽을 만든 것쯤은 그렇다고 치자.
그래, 많이 양보해서 그가 눈보라를 일으켜 거마병과 폭마병까지 얼려 버린 것도 이해하고 넘어가자.
하지만 저 해골 무인과 죽은 자들이 되살아난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저 인간은 뭐야? 아니, 인간이긴 한 건가?’
죽음의 물결이 되어 바올드를 습격하는 무리들을 보자니, 제아무리 담이 큰 녹면인이라도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그때였다.
“꽤나 고생하는군.”
익숙한 목소리.
녹면인이 휙 돌아보니 대나무 아래에 뒷짐을 지고 선 노파가 보였다.
바로 황면인이었다.
‘어느 틈에?’
황면인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눈치조차 못 챘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원래 자신과 황면인의 무공 실력 차는 크지 않은 편이었기에.
황면인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는데, 딱 하나 눈동자의 색깔이 온통 검은 색이었다.
흰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눈.
마치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오로지 어둠으로만 가득 채워진 것 같았다.
때문에 얼핏 그 부분이 뻥 뚫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녹면인이 훌쩍 뛰어내리고는 물었다.
“혹시 대법을…?”
수라불괴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황면인이 한쪽 입매를 슬쩍 치켜 올렸다.
“이제 지켜보면 알 테지.”
찰나, 황면인의 전신에서 오묘한 기운이 훅 퍼져 나왔다.
순간, 녹면인은 전신에서 돋아나는 소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굉, 굉장하다! 이 정도라면…!’
수만 개의 바늘이 온몸을 찔러대는 것처럼 따가웠다.
살기를 드러낸 것도 아니다.
그저 기도를 활짝 개방한 것뿐이었는데도, 녹면인은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대, 대단하군…!’
모르긴 해도 정도맹주와 싸워도 백초식을 넘기지 않고 이길 정도이리라.
‘수라불괴에 성공했군!’
황면인이 녹면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이제 본좌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지.”
그야말로 광오한 발언.
하지만 녹면인은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확실히 대단한 것이었기에.
다음 순간,
팡!
황면인이 바닥을 차는 것과 동시에 빛살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사비강이 있는 곳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