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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45화 (345/670)

# 345

귀환 마교관

345화

사비강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황면인을 바라보았다.

“뭐하는 거지?”

황면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추량이 사비강 옆으로 다가와 불쑥 물었다.

“누구요? 무슨 목적으로 우리 길을 막는 거요?”

물론 짐작하는 바는 있었다.

얼굴에 누런색을 칠한 것으로 보아서는 마령교의 인물이리라.

지금껏 그가 본 마령교는 모두 얼굴에 색을 칠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마령교도가 어째서 사비강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따져 물어본 것이다.

한편, 황면인은 추량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등에 메고 있던 자루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려고 하자, 추량이 흠칫거리며 나섰다.

“무슨 짓을 하려고…!”

하지만 이번에도 사비강이 그를 제지했다.

“괜찮으니 물러나 있어.”

“…알겠습니다.”

추량이 물러나자, 황면인이 둘둘 말아 두었던 자루를 완전히 펼쳐 보였다.

“윽…!”

“우웁…!”

추량과 신생조 그리고 조문탁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루에서 나온 것은 머리를 잃은 시신이었다.

온몸이 난자당한 시신은 핏기가 없어서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는데, 추운 날씨 때문인지 아직 부패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사비강이 황면인을 물끄러미 보았다.

“어쩌라는 건지?”

“이 아이의… 머리만 찾지 못했네.”

황면인의 표정이 처연해졌다.

시신은 바로 적면인의 것이었다.

사비강 역시 알고 있었다.

시신의 몸에 새겨진 자상들은 모두 그가 만들어낸 흔적이었으니까.

사비강이 힐끔 조문탁을 돌아보았다.

조문탁이 들고 있는 자루에 바로 적면인의 머리가 들어있었기에.

정도맹 무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적면인의 수급을 챙기자고 제안한 것은 바로 조문탁이었다.

황면인이 엉금엉금 기다시피 사비강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다시 이마를 바닥에 쿵쿵 찧어댔다.

그 모습에 추량은 물론 신생조원들 모두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황면인을 바라보았다.

시신의 머리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은 알겠다.

한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어째서?

다음 순간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말이 황면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일세.”

“안타깝게 됐군.”

“부탁드리네. 내 아이의 머리를 돌려주게.”

“거절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자네를 죽일 걸세.”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렵겠지. 자네를 처음 본 순간 확신했네. 나에겐 과한 상대라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리네. 내가 무모한 짓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게나. 이 아이의 머리만 돌려준다면 얌전히 물러가겠네.”

“아들을 죽인 원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절까지 했는데… 머리만 받으면 얌전히 물러가겠다고?”

“그렇네. 물론 자네 말대로 나는 아직 자네에 대한 분노가 식지 않았네. 아마 그건 죽을 때까지 지우지 못할 걸세. 그런 만큼 언젠가는 자네를 죽이려고 할 걸세. 하지만 오늘만은… 오늘만은 자네가 내 아들의 머리를 돌려준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가겠네. 이는 진심일세.”

“할멈. 지금 할멈이 얼마나 모순된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알고 있지만…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네.”

황면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간절함과 원망, 지독한 슬픔과 분노가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사비강과 황면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참이나 얽혀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문탁.”

“예, 교관님.”

“내어 드려라.”

“……!”

조문탁이 뜻밖의 명에 움찔거리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지켜보기만 하던 맹가숙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진심입니까? 지금 저 할망구가 추후 칼을 갈고는 다시 찾아오겠다고 공언했는데?”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농을 할까?”

“뭐, 그건 아니겠지만….”

“문탁. 뭐하느냐? 어서 내어드리지 않고.”

“아… 알겠습니다.”

조문탁이 자루를 통째로 황면인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소.”

황면인은 축축하게 젖은 눈동자로 피로 얼룩진 자루를 한참이나 보더니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아이야…”

그녀가 자루에서 적면인의 머리를 꺼내 들었다.

화상으로 얼룩진 그 얼굴을 보자, 황면인은 울컥 치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소리 없이 한참을 흐느꼈다.

그 모습은 적아를 떠나서 모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녀가 사비강을 향해 다시 한 번 절을 했다.

“고맙네, 진심으로 고맙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네. 고맙네.”

황면인은 자루를 다시 말아 등에 지고는 양손으로 적면인의 일그러진 머리를 품은 채 돌아섰다.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보던 추량이 사비강에게 다가와 물었다.

“왜 그러신 겁니까?”

“그럼? 여기서 저 할멈을 죽이라고?”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저 노파는 사부님을 죽이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저 할멈 손에 죽을 것 같아 걱정이냐?”

“그건 아니지만….”

추량이 얼버무리자,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분명히 다시 오겠지. 칼을 갈고. 그땐 정말 내가 위험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 그녀가 쓰레기는 아니었으니까. 괴물도 아니었고. 괴물이나 쓰레기는 청소하는 재미가 있지만, 인간은 별로 재미가 없거든.”

그러자 듣고만 있던 맹가숙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가끔 보면 교관님은 쓸데없는 부분에서 감상적입니다만.”

“영감. 그 쓸데없이 감상적인 부분이 있어서 내가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온 거야.”

“무슨 소린지, 나 원….”

“그러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쯤 벌써 괴물이 되어서 강호를 휘젓고 다녔겠지. 내키는 대로 학살을 저지르면서 말이야.”

“전장에서 자식 대가리를 찾겠다는 적을 보면 죄다 도와줄까 걱정이오!”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적면인은 저 노파의 아들이 아냐.”

“뭐라고요? 그걸 어떻게….”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으니까. ‘아이’라고만 불렀지.”

맹가숙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그 부분이 재미있단 말이지. 무엇이 저 노파를 괴물로 만들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았을까? 어쨌거나 저 노파는 장례를 치르고 나서 다시 괴물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겠지. 그때 깔끔하게 청소하면 그만이다.”

“자신만만하시군요.”

“물론이지. 절대 강자는 뒤끝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옆에 서서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추량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전음으로 물었다.

[방금 내 말 좀 멋있었냐?]

추량이 반짝이는 두 눈으로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네, 완전!]

**

콰콰아앙!

땅이 진동하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한 차례 희뿌연 먼지가 가라앉고 나자 땅바닥에 움푹 파인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면인이 구덩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적면인의 시신과 머리를 그 옆에 내려 두었다.

그녀는 숲 한쪽으로 가더니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앞에 서서는 칼을 뽑아 들었다.

다음 순간,

쉬쉬쉬쉭!

수십 줄기의 빛이 난무하고 나자, 아름드리나무가 ‘꾸그긍!’ 소리를 내며 쓰러져 갔다.

콰당탕!

조각조각 나뉜 아름드리나무 중에는 비교적 반듯한 직사각형 목판도 있었다.

그녀가 손을 휙 저으며 능공섭물의 수법으로 직육면체 모양의 관을 만들어 갔다.

퉁! 퉁! 투투투퉁!

그녀의 품에서 날아간 비수들이 못질을 대신했다.

비수가 박힌 관이 완성되고 나자, 황면인은 적면인의 시신을 관속에 옮겨 담은 후 머리를 들어 물끄러미 보았다.

화상을 입어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

이제 그 고통은 잊은 것인지 적면인은 그저 가만히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매정한 놈. 끝까지 나를 외면하는구나.”

황면인이 눅눅하게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관 속에 적면인의 머리를 넣은 후 덮개를 덮고 다시 비수를 박았다.

관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곧 구덩이 안에 묻혔다.

황면인은 천천히 흙을 손으로 끌어 모으며 구덩이를 메워 갔다.

주름진 손이 흙을 긁어모을 때마다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천천히…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로 그녀는 꾸준히 흙을 메워 갔다.

해가 지고, 별이 빛나는 시간.

비로소 황면인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봉분을 바라보더니 거기에 등을 기댔다.

후우우웅.

시린 바람이 불어와 황면인의 뺨을 스쳤다.

그녀가 지친 음색으로 물었다.

“아직도 울고 있느냐?”

대답이라도 하듯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후우우웅!

“못난 놈…”

**

“아직도 울고 있느냐?”

황면인이 물었다.

이제 세 살 정도 된 아이는 여전히 부모의 시체 앞에서 목 놓아 울고 있었다.

그녀가 이 자리를 떠나던 어젯밤에도 아이는 그렇게 울었다.

그리고 날이 샐 무렵 다시 와보니 아이는 어젯밤과 똑같은 모습으로 울고 있었다.

시체가 된 아빠의 가슴을 흔들었고, 다시 그 옆에 쓰러진 엄마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하지만 시신이 움직일 리는 없었다.

아이의 부모를 죽인 사람은 바로 황면인이었다.

그녀는 울고 있는 아기에게 냉혹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부모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죽은 것이다.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 새겨 두어라. 네 조부모가 네 부모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표독스럽게 말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딘지 슬픔에 잠긴 듯했다.

아이가 울먹이며 황면인을 바라보았다.

황면인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네 조부모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는 것이냐?”

그녀는 아이에게 조부모의 죄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이의 조부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십여 년 전이었다.

그날 아이의 조부모는 황면인의 아이를 죽였다.

이제 막 말을 입에서 뗀 아이였다.

딱 저 아이만 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였지. 그 아이가 마교도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네 조부모에게 살해당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나는 그 후로 이십여 년 동안 와신상담 하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아니, 이건 복수의 칼이 아니라, 심판의 칼이었다. 내가 겪은 아픔을 네 조부모에게도 그대로 돌려주기로 했다. 해서 네 부모를 죽인 것이다.”

긴 이야기를 끝낸 황면인이 울고 있는 아이를 힐끔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는 이 악물고 살아가거라. 네가 후에 힘을 쌓아 나를 죽이러 온다면 기꺼이 환영해 주마. 하지만 그땐 심판이 아니라, 복수가 되겠지.”

황면인이 걸음을 옮겼다.

이젠 다시 이곳을 찾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따라왔다.

무시하고 걸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계속 따라왔다.

결국 황면인이 짜증스럽게 돌아섰다.

“왜 날 따라오는 것이냐? 네 조부모를 찾아 가란…!”

버럭 소리치던 황면인이 흠칫거리고는 아이를 보았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그녀가 차갑게 웃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네 조부모가 너로 위안을 삼을지도 모를 일이겠구나. 그렇다면 제대로 된 심판이라고 할 수 없지.”

말을 마친 황면인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이도 황면인을 따라 걸었다.

이번에는 황면인도 더 이상 소리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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