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42화 (342/670)

# 342

귀환 마교관

342화

뚝… 뚝…

구절창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날 끝에서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후들후들…

“제길!”

맹가숙이 입술을 꾹 씹고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로써 그 역시 부상자 무리에 속해 버렸다.

이제 멀쩡히 싸우는 사람은 옹기승과 구강룡, 설 남매와 석탄강 그리고 유송령과 백공보, 마지막으로 추량과 흑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마단과 마병들이 부상자들을 굳이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굴욕감을 선사하겠다는 듯 신생조원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굴복시켜 갔다.

그리고 이렇게 부상자가 모여 있음에도 살수를 뻗어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절망감을 안기려는 속셈이겠지.’

맹가숙은 이를 빠드득 갈고는 저만치 나뭇가지 위에서 도도한 자세로 서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바로 적마단을 이끄는 수장, 적면인이었다.

하지만 그건 맹가숙의 착각이었다.

사실 적면인 역시 맹가숙 만큼이나 지금 오기로 싸움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도대체 이것들 정체가 뭐야?’

그는 눈자위가 떨리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아직도 멀쩡히 싸우는 신생조원들을 황망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옹기승과 구강룡만 제대로 상대하면 될 줄 알았다.

한데 신생조 하나하나가 이렇게 강할 줄이야.

애초에 마병을 이렇게 많이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당하는 건 적마단이 되었으리라.

처음엔 옹기승과 구강룡을 제외한 모든 신생조원들을 죽일 생각이었다.

물론, 여력을 봐 가면서 살려 두라고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해 꺼낸 말일 뿐이었다.

한데 이젠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두 생포해야겠어!’

오기라면 오기다.

신생조원들에게 당한 마병들이 너무 많다.

이 정도라면, 차라리 신생조원들을 마병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지금의 마병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특히 자신이 데려온 이백여 명의 마병들은 멀쩡한 인간이었을 때도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마병으로 만들어진 후, 절정 수준에 이른 고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마병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버티다니?

‘이렇게 나온다면 이것들을 전부 마병으로 만들 수밖에!’

물론 쉽진 않을 것이다.

거느리고 온 마병들 다수를 희생시켜야 하리라.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마병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더 강한 마병도 마찬가지다.

한데…

‘이 녀석들은 뭔가 다르다!’

단지 강하다는 개념이 아니라, 독특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특히…

‘대체 저년은 뭐지?’

적면인의 시선이 설서린에게 향했다.

얼굴에 고양이처럼 문양이 새겨진 여인.

처음엔 저런 무늬가 없었다.

그런데 싸우는 도중에 갑자기 문신처럼 생겨났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채찍.

한데 그 채찍이 보통 물건이 아니다.

화공을 익힌 것인지, 채찍 자체가 극양의 기운이 담긴 기물인 탓인지, 싸우는 내내 화염에 뒤덮여 있지 않은가?

게다가 살기에 따라 채찍에 가시처럼 돋아난 날이 이리저리 움직이기까지 한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저들이 ‘흑귀’라고 부르는 사내는 굉장히 사이한 술법으로 몸을 은신하고 있다.

만약 평범한 고수라면 그의 은신을 거의 눈치 챌 수 없으리라.

한데 마병은 다르다.

왠지 흑귀의 은신술은 마병들에게 완벽하게 통하진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흑귀가 익힌 은신술은 아마도 마병들의 기운과도 닮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한 명.

굉장히 어설픈 느낌인데도 마지막까지 버텨내고 있는 자다.

적면인이 눈여겨보는 자는 바로 추량이었다.

엉성한 자세와 특이한 동작들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양손에 차고 있는 무기와 호흡이 잘 맞았다.

게다가 그를 바로 곁에서 따르는 고양이도 무척 특이했다.

일반 고양이에 비해서는 덩치가 컸는데, 이따금씩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 마병들을 교란시키기도 했다.

어째서인지 마병들은 그 고양이를 쉽게 상대하지 못했다.

‘영물인 건가?’

어쨌거나 재미있는 실험체들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않은가?

다른 신생조원들 역시 생포했을 때, 좋은 마병이 될 재목들이었다.

숨은 붙여 놓아야 하는 만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의 국면은 적마단에게 유리하게 흐르는 중이었으니까.

‘조급할 필요는 없어. 한 놈씩 확실하게 취하는 거다.’

선천마령지체만 확보할 생각이었는데, 이대로라면 매우 우수한 마병까지 덤으로 확보할 상황이 아닌가?

한편, 신생조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지쳐 가고 있었다.

유송령의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자, 그녀와 함께 연계해 무공을 펼치던 석탄강 역시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설수민이 힘겨워하자, 설서린도 싸움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마침내 백공보가 등에 부상을 입고 물러나자, 남은 사람들은 더욱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체력을 넘어선 투지와 근성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

본능에 이끌려 무기를 휘둘렀고, 상대의 살초도 운으로 피하기가 일쑤였다.

“크욱!”

마침내 설수민이 어깨에 깊은 부상을 입으면서 비틀거리자, 설서린이 눈에 불을 켜며 달려왔다.

“오라버니!”

“훅, 후욱, 괜찮다.”

“이것들이…!”

설서린이 이를 빠득 갈자 그녀의 이마와 뺨에 새겨진 문신이 더욱 짙은 색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에워싼 마병이 너무 많았다.

마침 한쪽에서 사투를 이어 가던 구강룡과 옹기승도 수세에 몰리다가 신생조가 있는 쪽으로 간신히 몸을 빼냈다.

“제기랄!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구강룡이 이를 빠드득 갈면서 소리쳤다.

대략 이백여 명의 마병들 중 절반을 처리했다.

하지만 아직도 신생조원들에 비하면 머릿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

게다가 마병들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부상을 입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촤아아악!

마병 하나가 덜렁거리는 팔 하나를 스스로 잡아 뜯어 버리고는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좁혀 왔다.

신생조원들은 부상자들을 에워싸다시피 등을 진 채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제길…! 여기까진가?’

추량이 미간을 팍 구겼다.

사실 여기까지 버틴 것만 해도 놀라울 정도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이 지금까지 버틴 이유는 반묘 덕분이기도 했다.

기력이 다해 쓰러질 것 같을 때면, 반묘가 털을 곤두세웠고, 그럴 때마다 샘물이 솟아오르듯 가슴 부위에서 생성된 마나가 혈맥을 타고 휘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반묘 역시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버티고 선 상태였으니까.

짝짝짝.

적면인이 손뼉을 치며 걸어왔다.

“아주 훌륭하군. 대단해.”

그가 탁한 음성으로 말하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신생조원들을 훑어보았다.

“어지간한 마병은 가뿐히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겠군.”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략 쉰 명에 달하는 적마단원들이 적면인 뒤로 도열하면서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로 살기를 끌어올렸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주변은 아직도 백여 명이나 되는 마병들이 어슬렁거렸고, 적마단원이 쉰 명에 달했다.

한데 제대로 힘도 쓰지 않은 적면인까지 버티고 있으니, 이 싸움의 결과는 끝을 보지 않아도 뻔했다.

다음 순간 적면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주워 담아라. 병신을 만들어도 좋지만, 숨은 붙여 놓아야 한다.”

“존명!”

찰나지간,

타다다닷!

적마단원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런데,

슈우우우욱!

꽈아아아아앙!

갑자기 하늘에서 혜성이 떨어지듯 시커먼 그림자가 신생조원들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땅바닥이 분화구처럼 움푹 파이면서 파편과 먼지가 사방으로 자욱하게 흩어져 나갔다.

“뭐야? 이건 또?”

적면인이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먼지가 자욱한 복판을 노려보았다.

놀란 건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신생조원들 역시 갑자기 나타난 현상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전방을 주시했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가 차츰 사라질 때, 가장 먼저 소리친 사람은 바로 설서린이었다.

“서방님!”

뜬금없는 부름에 신생조원들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이내 환하게 변했다.

설서린이 저렇게 부를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지 않은가?

그토록 기다리고 찾았던 사람.

“교관…님?”

“사부님!”

신생조원들과 추량이 버럭 소리쳤다.

마침 희미해지는 먼지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네 서방이라는 거냐? 엄연히 임자가 있는 몸이라니까.”

신생조원들은 기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로 사비강이다.

사비강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설서린은 살기를 피워 올리면서 달려들었다.

“가지지 못할 바엔 부숴 버리…!”

퍼억!

사비강이 뻗은 일장에 설서린이 맥없이 날아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비강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만큼 말했으면 학습 효과가 있어야지. 왜 이렇게 피곤하게 굴어?”

그러더니 적면인을 슬쩍 돌아보고는,

“넌 뭐냐? 뭔데 우리 애들을 괴롭히는 거냐?”

“뭐, 뭣이? 그보다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적면인의 안면이 연신 씰룩였다.

흑운성에서 사비강과 사투를 벌였을 때의 공포가 가슴 한편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동시에 아랫배에서는 뜨끈한 분노도 일어났다.

‘이놈이… 그렇잖아도 일그러진 내 인생을… 더욱 일그러뜨려 놓았지!’

적면인이 떨리는 손길로 화상 입은 얼굴을 쓸어 만졌다.

본능은 소리친다.

사비강과 정면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그는 평범한 무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감정이 본능을 거부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저 재수 없게 비웃는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간다.

“네놈이… 날 기억 못해서는 안 되지!”

팟!

순간, 적면인의 신형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사비강 코앞에 나타났다.

후우우웅!

“화염구!”

그가 손을 뻗자, 시뻘건 불덩이가 손바닥에 맺히며 사비강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하지만 사비강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적면인은 눈을 찢을 듯 부릅떴다.

‘소멸… 돼?’

뿐만 아니라, 사비강을 때렸던 손이 차갑게 얼어 가는 것만 같다.

“크웃!”

적면인이 비틀거리면서 물러나자, 적마단원들이 얼른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적면인이 거칠게 수하들을 뿌리치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사비강은 그제야 적면인을 알아본 듯 입을 벌렸다.

“아, 너 그놈이구나. 흑운성에서 봤던 놈. 몰골이 말이 아니군.”

“날 이렇게 만든 놈이 할 소리냐?”

“그나저나 너도 참 학습 효과가 없구나. 우리 애들을 건드리다가 그렇게 당하고도 또 이런 짓을 해?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건만.”

“닥쳐라! 네놈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이번엔 적면인을 비롯한 적마단원들이 일제히 사비강을 향해 몸을 날려 왔다.

순간,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 들고는 수직으로 내리쳤다.

쩌엉!

파파파파파파!

순간 기의 파도가 일어나면서 적면인과 적마단을 향해 물결치듯 날아갔다.

“크억!”

“아아악!”

이는 단순한 기파가 아니었다.

사비강이 흡수했던 수만 가지 독의 기운을 머금은 파동이었다.

독기에 당한 적마단원들은 저마다 피부가 시퍼렇게 변하면서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몇몇 적마단원들은 그 자리에 엎드려 구토를 해댔다.

그나마 재빨리 실드를 펼쳐서 몸을 보호한 자들만 무사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독기로부터 몸을 보호한 적면인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사비강을 보았다.

잠시 잊었던 공포가 다시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었다.

사비강이 적면인을 보며 히죽 웃었다.

“계도가 안 통하면 차라리 부숴 버려야지. 세상의 악이 되기 전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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