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
귀환 마교관
340화
쉬이이잇!
질풍 같은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가자 팔 한쪽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적의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크아아악!”
푹!
청풍당주 은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내질렀다.
심장이 꿰뚫린 혈사련 무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촤아악!
검을 휘둘러 피를 떨쳐낸 은휘가 성성한 수염을 가볍게 쓸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지 단정해 보이는 그의 동작과는 달리, 주변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곳곳에서 비명이 치솟았고, 피가 튀었으며, 살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적의 시체는 쌓여 갔지만, 아군의 사상자 역시 점점 늘고 있었다.
“제길!”
고풍스러운 외모와 달리 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마침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사람을 향해 다시 질풍처럼 내달렸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살기와 광기가 난무하는 전장이지만, 지금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자신과의 싸움에만 집중해야 할 때다.
쉬이이이이잇!
그가 평생을 갈고 닦은 선풍폭검(旋風爆劍)이 한 줄기 광휘를 뿌리며 적의 사이를 지나쳤다.
퍼퍼펑!
그저 검로가 스쳐 지났을 뿐인데도 검기가 소용돌이치며 폭발을 일으키듯 공명했다.
“쿠와아악!”
“크아악!”
연이은 비명이 터지면서 두 사람이 옆으로 쓰러졌다.
은휘는 발걸음을 멈추고 부드럽게 돌아섰다.
그 일련의 동작이 마치 풍속에 따라 자연스럽게 날아다니는 꽃잎 같다고나 할까?
허연 수염이 성성한 노인이었음에도 그의 움직임은 그렇게 비교해도 충분할 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는 어김없이 혈화가 피었다.
“마를 숭배하는 더러운 종자들 같으니!”
은휘가 사자후를 터뜨리며 자신에게 달려든 두 사람을 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흠칫거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은 대체…?’
분명 선풍폭검의 영향으로 옆구리와 어깨가 터져 나간 적들이었다.
한데 놈들은 흐느적거리면서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 검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마치 통증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것처럼.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대법을 시전한 거지?’
두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기운이 굉장히 기괴했다.
‘끄음…! 이것들이 마병인가?’
확실히 예측 밖의 상황이다.
지금으로부터 두 시진 전, 총군사가 보낸 무인으로부터 밀언을 전해 들었다.
그 내용인즉슨, 혈사련이 본맹을 배신하고 마령교와 붙어 뒤통수를 칠 것이라는 경고였다.
다행히 늦지 않게 보고를 받았기에 은휘는 최대한의 준비를 해두었다.
휘하의 무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충분히 대비하도록 지시했다.
혈사련이 배신할 거라는 내용이 뜻밖이긴 했지만,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총군사가 인근 지단에 밀언을 보내 지원을 준비했다고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잠시 버티면 오히려 위기에 처하는 것은 혈사련과 마령교가 되리라 파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마령교와 접촉하면서 그들의 세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쉬이이이잇, 퍼퍼펑!
다시 한 번 선풍폭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지나가자, 그 자리에 연이은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에게 달려들던 마병 둘은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나면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마병이라니…!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놈들이 나타나서는…!’
미간을 팍 구긴 은휘가 사자후를 터뜨렸다.
“다들 당황하지 마라! 놈들은 그저 대법의 영향을 받은 졸개들일 뿐이다! 괴이한 모습에 두려워 할 것 없다!”
그의 기세에 조금이나마 힘을 얻은 것인지 정도맹의 무인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도검창을 휘둘러 갔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은휘는 먼발치를 보았다.
‘왜 아직 오지 않는 건가?’
지금쯤이면 지원군이 도착해야 할 것이 아닌가!
**
“대법에 영향을 받은 졸개들일 뿐이라니… 과연 그럴까?”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적면인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렇잖아도 화상으로 흉악하게 일그러진 그의 표정이 더욱 기괴하게만 보였다.
잠시 후 그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푸른빛이 넘실거리는 구슬이었는데, 굉장히 오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마침 그의 곁으로 녹면인이 다가왔다.
“벌써 그걸 사용하려고?”
“아껴 둘 필요는 없지 않나?”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다른 소식은?”
“총군사가 보낸 무인이 낌새를 챈 것 같아서 처리했지.”
“하긴 언젠간 들통 날 일이었지. 이걸로 지단주 놀이도 끝났군.”
“어차피 지겨웠어.”
적면인이 싸늘하게 웃었다.
“놈들도 생각지 못했을 테지. 감찰국조차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정도만을 고집한 의파 지단주가 실은 마령교일 줄은.”
“한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공을 내게 넘기려고? 내 알기론 교주님께 직접 이번 전투를 맡겠다고 고집부린 걸로 아는데.”
“더 재미있는 게 생겨서 말이야.”
“혹시…”
녹면인이 눈을 가늘게 뜨자, 적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천마령지체를 찾아낼 수 있게 됐다.”
“그렇군.”
적면인이 돌아서며 녹면인에게 새파란 기운을 품은 구슬을 건넸다.
“그럼 이후는 맡기도록 하지.”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라고.”
녹면인이 묘한 웃음을 짓자, 적면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너야말로 다된 밥에 재 뿌리지 마라.”
“별 걱정을.”
“참, 총군사가 낌새를 챈 거라면 인근의 낙성(洛城) 지단에도 연락이 갔을 텐데.”
“이미 황면이 거기로 갔다.”
“그렇군.”
적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언덕 아래를 바라보았다.
청풍당주 은휘는 아직도 기세 좋게 전장을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를 것이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두 지단은 영원히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럼, 뒤는 맡기지.”
적면인이 말을 마치고는 바닥을 차고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 모습을 힐끔 본 녹면인이 언덕 아래로 시선을 던지고는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
“뭐, 맡기고 말고 할 것도 없구먼.”
다음 순간 그가 손에 쥔 구슬에 힘을 주었다.
파칭!
구슬이 깨지면서 갇혀 있던 검푸른 기운이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곧이어,
“쿠와앙!”
“크어어어!”
정도맹 무인들에게 달려들던 마병들이 거칠게 포효를 내지르더니 더욱 사나운 기세로 병장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외형 역시 점점 커져 갔다.
“같잖은 사술이다! 동요하지 마라!”
은휘가 사자후를 터뜨리며 정도맹 무인들을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그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렇잖아도 아수라장이었던 전장은 점점 더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
“무린…”
서래향은 침상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적무린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의식이 없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에게 이미 상세하게 전해 들었다.
그리고 적무린이 지금 이렇게 병상에 누워 있는 이유가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것도.
“넌 참 바보 같구나.”
서래향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세혼폭멸고.
자신의 몸에 그런 것이 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아수대환단을 선물한 이유가 세혼폭멸고의 폭발력을 더욱 드높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라니.
‘련주… 당신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서래향이 아랫입술을 꼭 깨물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바보 같은 건 너만이 아니구나.”
누가 누굴 탓하랴.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바보가 되지 않으련다.
이번 사건은 그녀의 심경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녀가 결심을 굳힌 얼굴로 적무린을 내려다보았다.
“난 더 이상 바보처럼 당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도 바보처럼 굴지 마.”
그녀가 돌아서서 방을 나서다가 마침 그곳으로 들어오던 사비강과 마주쳤다.
“여기 있었군.”
“일단은 적 대주를 대신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죠.”
서래향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주고받은 거지.”
“명리각에 들어갔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거죠?”
“어쩌다 보니 만독불침이 됐거든.”
사비강이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진담이라는 건 서래향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익힌 것은 독공이다.
때문에 사비강에게서 느껴지는 기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건 진작 눈치 챘다.
“정말 이젠 당신을 죽이기 어렵게 됐군요.”
“날 죽일 필요가 없게 된 거지.”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오늘 아침, 맹주님은 재령산으로 떠나셨고, 나도 곧 갈 생각이야.”
“만약… 련주와 싸우게 되면….”
“되면?”
“그자를 죽이기 전에 나와 대화할 기회를 줄 수 있나요?”
“아니. 없어.”
사비강은 주저 없이 고개를 저었다.
서래향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이 남자, 원래 이런 식이었지.’
잠시 잊고 있었다.
불필요한 호의는 절대 베풀지 않는 남자라는 것을.
서래향이 곧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그렇다면 절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세요.”
“당연히 그럴 생각이야.”
사비강이 적무린에게 다가가서 단전에 손바닥을 슬쩍 대보았다.
“회복은 빠르군. 오늘 저녁쯤엔 깨어나겠어. 잘 보살피라고.”
말을 마친 사비강이 몸을 돌리고 걸어갔다.
서래향이 그의 등에 대고 소리쳐 물었다.
“지금 바로 출발하는 건가요?”
“그래야지. 내가 없어서 꽤나 골치 아파할 녀석들이 있거든.”
사비강의 입가에 어딘지 짓궂은 미소가 걸렸다.
**
“와, 진짜 골치 아파 죽겠네!”
백공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냈다.
그는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마령교 신도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련주가 보낸 암귀들을 겨우 처리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마령교의 신도들이라니!
“도대체 이것들이 어찌 이렇게 빨리 우릴 찾아낸 거지?”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맹가숙이 구절창을 꽉 말아 쥐고는 적들을 노려보았다.
붉은 무복을 입은 마령교 신도들이 숨 막힐 듯한 마기를 드러내며 신생조를 포위하고 있었다.
마침 그들 사이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방갓을 깊이 눌러 쓴 마령교 신도들과 달리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는데, 화상 때문에 무척이나 흉측한 외모였다.
바로 적면인이었다.
그가 벌어진 입술을 비틀며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희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우린 너희 모두에게 볼일이 있는 게 아니다. 저기.”
적면인의 손가락이 옹기승을 가리켰다.
“저 녀석만 남고 모두 떠나도 좋다.”
“그거 참, 엄청난 희소식이군.”
맹가숙이 손에 힘을 풀더니 신생조원들을 힐끗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적면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데 너희한테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
“우린 저 녀석만 두고 떠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지.”
“과연 단순하고 무모한 것들이로군.”
적면인이 냉소를 짓더니 이내 손을 불쑥 들어 올리고는 명했다.
“처리해라. 선천마령지체만 두고 모조리 죽여도 좋다. 아니지, 여력이 된다면 숨은 붙여 놓아라. 좋은 실험체가 되겠군.”
“존명!”
붉은 무복을 입은 신도들이 일제히 신생조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