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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36화 (336/670)

# 336

귀환 마교관

336화

정도맹 본단에서 대략 삼십 리 정도 떨어진 이곳은 ‘용문산(龍門山)’이라 불린다.

곳곳에 기암절벽이 많아서 용이 그 바위들을 끼고 승천하였다고 해서 이름 붙은 곳.

이 험악한 지형의 중턱에 한 인영이 사뿐히 내려섰다.

척!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동혈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군.’

용문산을 돌아다니다가 겨우 발견한 동혈이었다.

마침 그의 뒤로 한 여인이 사뿐히 내려섰다.

바로 홍묘, 서래향이었다.

그녀는 어딘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앞에 선 적무린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양 뺨에는 홍조가 피어올라 묘한 색기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녀가 달뜬 숨을 내쉬며 사뿐사뿐 걸어왔다.

“홍묘님. 죄송합니다.”

적무린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서래향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그저 색기가 가득한 눈동자로 적무린을 물끄러미 응시할 뿐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동혈 안쪽으로 들어갔다.

똑. 똑.

동혈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아스라이 울렸다.

적무린은 비교적 바닥이 평평한 곳을 찾아 걸음을 멈췄다.

서래향 역시 적무린 앞에 멈춰 섰다.

스며드는 햇빛 때문에 그녀의 굴곡진 몸매가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다.

사락. 사라락.

그녀가 천천히 옷을 벗어 갔다.

이윽고 새하얗고 보드라운 피부가 드러났다.

적무린은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곧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하아…”

서래향은 그저 달뜬 숨만 내쉬며 천천히 다가왔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두 사람.

적무린은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꽉 씹었다.

이런 식으로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신의 그녀를 보자니, 참을 수 없는 욕정이 일어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죄책감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무린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끌어안았다.

다음 순간,

“하아앙!”

서래향이 가녀린 신음을 터뜨리더니 적무린에게 매달려 왔다.

이는 엄연히 세혼폭멸고가 제멸고독단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신음이 적무린의 욕정을 더욱 자극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적무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서래향의 입술을 덮쳐 갔다.

두 사람의 입맞춤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서래향은 적무린의 옷깃을 풀어헤쳤다.

곧 탄탄한 가슴이 드러나면서 서래향이 가슴 위를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흐읍!”

서래향이 어디를 어떻게 건드린 것인지, 적무린이 어금니를 꽉 씹으며 신음을 삼켰다.

“홍묘 님…!”

적무린도 더 이상은 참지 않았다.

어차피 이뤄져야 할 정사.

죄책감보다는 그녀를 살린다는 사실만을 떠올리기로 했다.

두 사람의 숨결이 점차 뜨거워져 갔다.

거칠게 옷을 벗어던진 적무린이 서래향을 바닥에 눕히고는 다시 입을 맞췄다.

그의 손길은 그녀의 가녀린 목선을 지나, 보드라운 가슴을 더듬고 다시 잘록한 허리를 지났다.

투박한 손길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서래향의 몸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하아아아!”

서래향의 신음이 점차 고조되어 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운우지락(雲雨之樂)은 천천히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갔다.

**

“헉, 헉, 헉!”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숨이 거칠게 차올랐다.

사비강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완전히 토막 난 시체들이 주변에 가득 널브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핏물은 흐르지 않았다.

애초에 죽은 자들이었다.

오래 전에 죽은 자들을 도륙한다고 해서 피가 튀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이 광경이 더욱 기괴했다.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음에도 혈흔을 전혀 발견할 수 없으니, 마치 기괴한 인형들을 가득 쌓아 둔 것만 같다.

문제는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시체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온 세상의 모든 죽은 자들이 사비강에게 몰려든 것만 같다.

“짜증나네.”

사비강이 투덜거리듯 읊조렸다.

마법을 쓸 수만 있었어도 이런 것들은 순식간에 태워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크라니온의 저주 때문에 마나는 사용할 수가 없다.

오로지 내공만 사용해야 하는데, 중원의 무공은 마법에 비해 광범위한 살상에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다.

마침 허공에 떠오른 나타스가 다시 목소리를 울렸다.

- 이제 그만 모든 걸 내려놓아라. 너 또한 이들과 같이 잠들면 평온을 얻으리라.

“좆 까는 소리 하고 있네. 어딜 봐서 이것들이 지금 평온한 거냐?”

사비강이 입매를 치켜 올리고는 따지자, 해골 얼굴을 한 나타스가 눈자위를 일그러뜨렸다.

- 끝까지 객기를 부리는군.

그러더니 나타스가 손을 휘젓자, 사비강을 포위하고 있던 죽은 자들이 포효를 내지르며 일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

“와라! 자근자근 밟아 주마!”

사비강이 악에 찬 표정으로 소리치며 칼을 움켜쥐었다.

쉬이이이잇! 쉬이잇!

그의 신형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였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속에서 오로지 손끝에 모든 감각을 실어 본능처럼 날아다녔다.

그렇게 얼마나 죽은 자들 사이를 누비며 설쳐댔을까?

툭, 투두둑. 툭툭!

‘제길… 또!’

하늘에서 녹빛으로 물든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쏴아아아아!

독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비강은 얼른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투투투투투!

거칠게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이 그의 호신강기에 부딪치면서 자욱한 연기를 일으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죽은 녀석들은 독우가 쏟아지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았다.

쉬이잇, 서컥! 쉬에에엣! 서컹!

바람 한 줄기가 불어 닥치면 어김없이 녀석들의 몸통이 하반신과 분리되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헉, 헉, 헉…!”

호신강기까지 일으킨 채로 싸우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빌어먹을! 이젠 슬슬 한계군.’

그때였다.

- 한심하군.

갑자기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에 사비강이 흠칫거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나타스는 여전히 창공에 우뚝 선 채로 사비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녀석이 한 말이 아닌가?’

그때 다시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 그래, 그놈이 아니라 나다.

‘누구냐?’

쉬이이잇! 슈컥!

허공을 가르며 달려들던 시체 한 구를 사선으로 절단내버리며 물었다.

영혼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 그새 날 잊었나? 역시 하등한 인간 따위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군.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도대체 누구냐? 넌 어디에 있는 놈이냐?’

- 네놈이 먹어치웠으니 네놈 뱃속에 있다고 해야겠지.

목소리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먹어치워…?’

사비강이 멍하니 반문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다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 네놈이 대책 없이 크라니온을 목에 거는 바람에 내가 온전히 힘을 드러낼 수 없게 됐다. 이 역경은 네놈이 자초한 일.

“무슨 개 헛소리냐?”

사비강이 이를 빠득 갈고는 나직이 으르렁거리자, 허공에 뜬 나타스가 눈자위를 찡그렸다.

- 무슨 말인가? 이젠 환청이 들리는 건가?

사비강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게 따졌다.

‘그래서 이 난관을 헤칠 방법은?’

- 내 알 바가 아니지.

‘뭐 이런 개 같은 놈이….’

- 닥쳐라. 이 몸은 위대한 드래곤의 혈통…

목소리가 주춤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사비강이 그제야 씨익 웃었다.

‘호오. 드래곤이라고? 그 말은 언젠가 내가 널 씹어 먹었다는 소린데….’

- 과연 하등한 인간답게 저열한 표현이군.

‘그나저나 내 뱃속에 있다면 이대로 내가 죽어도 곤란한 것 아닌가?’

- 그 또한 운명일 터.

‘이제 보니 말이 안 통하는 꼴통 드래곤이군!’

사비강이 비난을 퍼부으면서 다시 달려드는 시체 한 구를 베어 버렸다.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는 물었다.

‘하나만 묻지. 저놈을 어떻게 짓밟을 수 있겠나?’

- 저깟 하등한 악마 따위를 상대하지 못해서 이 지경이라니. 한심하군.

‘그러는 너도 저깟 하등한 악마 따위 때문에 힘을 못 쓰는 게 아닌가?’

그러자 드래곤의 목소리가 발끈했다.

- 그건 어디까지나 하등한 네놈이 날 삼켰으니…!

‘됐고. 방법을 알면 말해. 아님 그냥 이대로 나와 함께 소멸하든가?’

- 나의 힘을 억누르는 건 바로 펜던트다.

‘그건 알아. 문제는 이 펜던트를 몸에서 떼어 낼 방법도 없고, 부술 방법도 없다는 거지.’

사비강이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지난 일 년간 이 빌어먹을 크라니온을 없애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해봤다.

허연 쇠골이 보일 정도로 손톱으로 긁어 파보기도 했고, 검으로 찔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저주받은 펜던트는 몸에 깊숙이 박힌 채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마침 드래곤의 조소가 들려왔다.

- 흥!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존재는 없다.

‘웃기는군. 완전무결한 드래곤도 결국은 내게 종속되지 않았는가?’

- 헛소리. 너에게 흥미를 느껴 스스로 내린 결정일 뿐.

‘어쨌거나 그 결정 덕분에 넌 나와 함께 소멸하겠군. 하필 하등한 인간의 몸속에 들어와서 인정해 버렸으니 말이야. 결국 너 스스로 너를 소멸하도록 만든 셈….’

순간 사비강이 흠칫거리고는 허공에 뜬 나타스를 올려다보았다.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한 가지 생각.

“완전무결한 존재는 없다.”

사비강이 중얼거리자 드래곤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울렸다.

- 하등한 인간이 이제야 눈치를 챈 모양이군.

‘진작 말했으면 서로 편했을 것 아냐?’

- 그 정도도 눈치 채지 못할 녀석의 몸에 깃들 바에는 소멸당하는 게 낫다.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그 정도로 자멸하겠다니. 뭐 어쨌든 덕분에 영감을 받았다!”

파밧!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쿠와아아악!”

시체 두 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쉬이이잇, 쉬컥!

섬광이 번뜩이고 달려들던 시체의 상반신이 날아가 버렸다.

사비강은 그대로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콰직!

시체의 머리를 거칠게 밟으면서 내공을 격발시켜 허공으로 도약했다.

파바바밧!

단전에 남은 마지막 한 줌의 내공까지 쥐어짜면서 허공답보를 펼쳤다.

나타스의 눈자위가 일그러졌다.

- 흥! 내내 도망만 치더니. 드디어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가?

순간 나타스가 허리춤에서 검은 기운으로 넘실거리는 검을 뽑아 들었다.

쒸에에엑!

동시에 사비강의 칼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쉬핏!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칼날이 그대로 허공을 베었다.

나타스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 제법 괜찮은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인간.

쉬이이이잇!

검은 기운으로 뭉친 검신이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질주했다.

찰나,

콰아악!

“크웃!”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나타스 역시 깜짝 놀란 듯 눈자위가 커졌다.

- 이건 무슨… 짓…!

놀랍게도 사비강은 나타스의 검신을 맨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었지만, 검은 기운을 이기지 못한 듯 손바닥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사비강은 그대로 힘을 주어 쇄도해 들어오는 검의 방향을 비틀었다.

이 모든 과정이 찰나지간에 벌어졌다.

사비강이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타스의 해골을 노려보았다.

“자멸해라.”

- 노옴! 설마…!

나타스의 눈자위가 더욱 커졌다.

다음 순간,

콰자자자악!

나타스의 검봉이 그대로 사비강의 쇄골 사이를 파고들었다.

곧이어 쇠골 사이에 파묻혀 있던 크라니온에 금이 쩍 가더니 검붉은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파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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