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
귀환 마교관
332화
“홍묘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쉬이이이잇!
따앙!
적무린이 얼른 칼을 휘둘러 살기를 머금고 날아드는 비수를 쳐냈다.
파밧!
다음 순간 서래향이 바닥을 차더니 쏜살같이 날아들면서 일장을 내뻗었다.
“홍묘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하지만 서래향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적무린에게 끔찍한 살수를 쏟아 붓고 있었다.
수십 합을 섞던 서래향이 발을 세차게 내질렀다.
퍼엉!
적무린이 양손을 교차해서 막는 바람에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 틈을 타서 서래향이 일장을 다시 뻗었다.
적무린이 급한 마음에 얼른 양손을 뻗으며 맞섰다.
퍼엉!
요란한 소리가 울리면서 적무린의 몸이 부웅 날아오르더니 십여 장 밖까지 튕겨 나가면서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크윽!”
또 다시 울컥 피를 토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서래향은 내원으로 들어선 후에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저 건물 사이를 지나가면, 맹주전을 코앞에 두게 된다.
그곳은 접근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아무런 통보 없이 살수가 마구 쏟아질 터였다.
“홍묘님! 더 이상 가시면 안 됩니다!”
적무린이 비틀거리면서도 악착같이 일어나 달렸다.
하지만 서래향의 발걸음은 가볍고 빨랐다.
마침내 건물 사이를 지나 조금 너른 공터에 다다랐을 때였다.
슈슈슈슈슈슉!
서래향 앞으로 서른 명의 무인들이 떨어져 내리면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무인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접근 금지 구역이오. 돌아가시오.”
잠깐 멈칫거렸던 서래향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를 포위하면서 일백 명의 무인들이 귀신처럼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처처처처처척!
살기를 가득 담은 검신이 그녀를 향해 내밀어졌다.
수장이 다시 엄중히 경고했다.
“당신은 지금 접근 금지 구역으로 들어섰소. 당장 멈추고 돌아가시오.”
그때, 적무린이 달려오며 외쳤다.
“잠깐 멈추시오! 오해가 있는 거요!”
수장이 차갑게 조소를 날렸다.
“오해? 무슨 오해?”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소. 이분은 내가 다시 모시고 돌아가겠소.”
수장이 적무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소. 얼른 돌아가시오.”
“알겠소.”
적무린이 얼른 서래향에게 다가가 어깨를 짚었다.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이만…”
쉬이이잇! 퍽!
“커억!”
서래향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적무린의 가슴을 쳐냈다.
졸지에 일격을 당한 적무린이 울컥 피를 토해내면서 튕겨 나갔다.
그러자 그녀를 포위한 무인들이 일제히 살기를 터뜨리며 서래향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안 돼!”
적무린이 고함을 내질렀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무기도 없는 서래향이 일백에 달하는 무인들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공력이 상승하면서 초절정의 영역에 들어섰다지만 어찌 저렇게 평온하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정도맹의 무인들이 훨씬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곧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저들…! 지금 살공을 펼치지 않는다!’
놀랍게도 정도맹 무인들은 살기를 가득 피우면서도 실제로 검을 부릴 땐 살초를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초절정에 이른 서래향을 막아내기란 역부족인 듯 보였다.
마침내 수장도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절대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반드시 막아라!”
“존명!”
앞을 가로막고 있던 서른 명의 무인들도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모두 백삼십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하는데도 그들의 호흡은 생각보다 잘 맞고 있었다.
과연 정공을 익힌 자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정도맹의 진짜 실력인가?’
만약 이들이 살공을 펼쳤다면 서래향은 지금쯤 곤경에 처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들은 지금 서래향에게 살초를 쓰지 않고 있다.
그것이 이들에게는 유일한 약점이 되고 있었다.
‘합격술이나 차륜술만큼은 확실히 정도맹이 우수하구나.’
어쩔 수 없다.
사공을 익힌 자들은 대체로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다.
나를 죽이고 남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성미에 좀처럼 안 어울린다.
약육강식의 논리를 철저하게 따르면서 오로지 강해지는 것 하나가 목표다.
때문에 남들과 조화를 이뤄야만 하는 합격술이나 차륜술은 정도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래향은 이들을 하나 둘 제압하기 시작했다.
살초를 쓰지 않는 무리와 살초를 써도 되는 초절정 고수의 차이는 컸다.
“크윽!”
“아아악!”
독공에 당한 자들이 하나둘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반 각 정도가 지났을 때는 절반 정도 되는 무인들이 독공에 당하면서 쓰러져 나갔다.
하지만 애초에 전방을 막아섰던 서른 명은 독에 당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피독주를 복용한 듯했다.
그들은 끝까지 맞서 싸웠지만, 역시나 살초를 마구 퍼붓는 서래향의 적수가 되기는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 서래향은 다른 이가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고 싸우기 시작했다.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비명이 솟구쳤고 피가 흩뿌려졌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적무린은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갑자기 서래향이 왜 저렇게 변한 것인지, 또 정도맹의 무인들은 어째서 이 지경이 되어서도 살초를 쓰지 않는 것인지 의문투성이였다.
그렇게 일각이 더 지났을 때였다.
쉬컥!
한 줄기 섬광과 함께 세 명의 무인들이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그들은 목숨을 잃지 않았다.
총 백삼십 명의 무인들 중 죽은 이는 겨우 두 명에 지나지 않았다.
서래향은 딱 자신을 방해하지 못할 정도만 상처를 입혔다.
딱히 상대를 배려해서라기보다는, 그 이상의 공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듯했다.
이번에도 수장을 포함한 세 명의 무인이 그렇게 부상을 입고 쓰러지고 나자, 그녀는 예의 그 무심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쯤 다시 누군가 공터 끝 북쪽으로 향하는 문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그는 바로 암영대를 이끌고 나타난 무천이었다.
하지만 서래향은 그들에게 시선을 던지지도 않은 채 몸을 틀었다.
“음?”
무천을 비롯한 암영대는 물론, 적무린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서래향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무린은 서래향이 맹주전으로 가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무천과 암영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모든 병력을 맹주전 호위에 집중시켰다.
천멸대원들 역시 이곳 북문이 뚫리면 제일 먼저 그녀를 막아서기로 되어 있었다.
한데…
‘어딜 가는 거지?’
무천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서래향을 보았다.
‘혹시 세혼폭멸고에 문제가 생겼나?’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서래향 스스로 발걸음을 돌리니 자연히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서래향의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팟!
순간 서래향이 바닥을 차더니 굉장히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무천이 눈살을 찌푸리다가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뭐 이걸로 일단 고비는 넘긴 건가?”
왠지 모를 찜찜함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지만 맹주전 길목은 막은 것이다.
그때, 암영대원 중 한 명이 뜨악한 소리를 뱉어냈다.
“저곳은… 사비강 전 국주님이 묻혀 계신 방향이군요.”
“……!”
무천이 그를 휙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서래향이 날아간 방향을 보았다.
‘설마…!’
그는 강렬하게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에 재빨리 바닥을 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
“제기랄! 지긋지긋하게 쫓아오는군!”
맹가숙이 뒤를 힐끔 돌아보면서 혀를 찼다.
추량을 포함한 신생조원들은 지금 잠시도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쳐 달아나는 중이었다.
맹가숙이 조금 뒤처진 도비천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괜찮은 거냐?”
“걱정 마쇼! 이 정도로 죽진 않을 거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내 말은 네 자존심이 괜찮냐고 묻는 거다.”
도비천이 피식 웃었다.
다시 떠올려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는 방각과 흑귀 그리고 구강룡과 함께 군사의 막사를 몰래 염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흑견이 세혼폭멸고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만 련주가 흑견을 죽여 버렸을 때, 아주 잠깐 호흡이 흐트러졌다.
이미 사비강과 옹기승으로부터 들어서 련주의 이면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그런 모습을 목격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 빈틈을 련주는 놓치지 않았다.
련주는 곧장 능공섭물의 수법을 이용해서 병장기를 자신에게 날려 보냈다.
그 순간, 몸을 빼냈지만 한 자루의 검이 그의 어깨를 깊이 베며 지나간 것이다.
그 후 네 사람은 곧바로 신생조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그 길로 신생조원들은 무리에서 이탈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규모 작전이 눈앞에 있는 만큼 련주가 직접 자신들을 쫓아오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쫓는 무리는 바로 허무극이 비밀리에 키워 왔던 암귀들이었다.
“제길,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가야 해? 그냥 저것들 다 쓸어버리면 되지 않겠어?”
방각이 이를 뿌득 갈고 소리치자, 맹가숙이 혀를 차며 반박했다.
“쯧! 멍청한 소리. 지금 저것들이 무서워서 도망가는 거냐? 저놈들 상대하는 동안 또 다른 놈들이 추격해 오면 여간 곤란해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맞는 말이야. 우선은 최대한 멀리 간 후에 저것들을 쓸어버리는 게 좋겠어.”
유송령마저 맹가숙의 의견에 동의하자, 방각도 더 이상은 토를 달지 않았다.
“쳇, 알았다고.”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눈앞에 커다란 강이 나타났다.
촤아아악!
신생조원들이 미끄러지듯이 멈춰 섰다.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
방각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눈앞에 흐르는 강을 보았다.
맹가숙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뭐 이젠 붙어 볼 만하겠지.”
“저 녀석들을 처리하고 강을 건너도록 하자.”
구강룡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검신에 시퍼런 검강이 맺혔다.
마침내 그들을 쫓던 암귀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모두 쉰 명.
그들이 어딘지 광기 서린 눈빛으로 신생조원들을 훑어보더니 혀로 입술을 핥았다.
“우리 강아지들. 여기를 묫자리로 정한 건가?”
암귀 중 하나가 말하자, 맹가숙이 피식 웃었다.
“지들 파묻힐 땅도 구분 못하는 것들을 보냈군. 이 녀석들은 왠지 우리보다 더 개망나니 같은데?”
“언제까지 그리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보지!”
파밧!
순간 암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동시에,
“쓸어버려!”
맹가숙의 고함소리에 신생조원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큰일 났습니다! 홍묘가 이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당이협이 몸을 휙 돌렸다.
그가 당황한 눈동자로 후원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수하들이 쉼 없이 약수를 뿌려대고 있었다.
후원 가득 수증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이곳으로 오다니…?’
그렇다면 애초에 련주가 노린 것은 사비강이었단 말인가?
아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사비강이 이곳에 있다는 걸 련주가 어찌 알겠나?
아마도 련주 역시 이리 될 것이라는 건 몰랐을 것이다.
자신처럼.
‘주군이… 맹주님보다 더 심후한 내공을 소유하고 계신 거였어! 이런!’
애초에 홍묘는 맹주를 제거하기 위해 보내졌을 것이다.
한데 맹주보다 더 심후한 내공을 소유한 자가 나타나자, 세혼폭멸고가 방향을 이쪽으로 바꾼 것이리라.
아니면 언젠가 사비강이 말했던 ‘마나’라는 것이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세혼폭멸고는 자신의 폭발력에 사용될 수 있다면 어떠한 종류의 기운이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어쨌거나 지금 사비강의 몸에 맹주의 내공보다도 심후한 기운이 잠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 상황에서 결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
수하가 다급하게 보고를 이어 갔다.
“현재 암영대가 최선을 다해 막고 있습니다만, 곧 뚫릴 듯합니다!”
“다른 무인들은?”
“맹주전을 호위하기 때문에 따로 빼낼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맹주를 위해 존재하는 무인들을 함부로 빼낼 수는 없을 테니.
“당장 천멸대라도 불러서 막도록 해라!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홍묘가 이곳에서 오 장 이내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다!”
“존명!”
수하가 몸을 날렸다.
당이협도 얼른 무기를 챙겼다.
이제 이곳에서 사비강만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