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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29화 (329/670)

# 329

귀환 마교관

329화

심각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내려다보던 악천괴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당이협을 보며 물었다.

“참, 먼저 전서응을 보냈을 텐데.”

“받았소.”

당이협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쪽 역시 심각한 상황이오.”

“심각한 상황이라니? 대체 그 상자 안에 뭐가 들어 있었기에?”

“살겁을 일으킬 물건이 담겨 있었지.”

“살겁을? 그 작은 상자에?”

당이협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루 전 전서응이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

“전서응이 도착했습니다.”

수하가 암영대주실을 들어서며 보고했다.

이렇게 보고를 해올 정도의 문제라면 꽤나 심각한 일이라는 뜻.

당이협이 이맛살을 슬쩍 구기며 물었다.

“당양 지단에서 온 건가?”

“아닙니다. 그것이….”

“누군가?”

“사비강 전 국주님이 보내신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아무래도 급히 보낸 모양인데, 전서응이 혈비(血飛)입니다.”

“혈비!”

당이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혈비는 살막에서 가장 급할 때 보내는 전서응으로, 온몸이 피처럼 붉은 색이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었다.

‘혹시 그 문제인가?’

며칠 전 사비강은 홍묘와 관련한 은밀한 이야기를 전해 왔다.

홍묘가 중독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단순히 그 정도의 정보만으로는 홍묘의 몸에 들어갔을 어떤 물질이 무엇인지 추측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해서 의심되는 몇 가지 재료들만이라도 필요하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서신이 아니었나?”

“네, 작은 상자였습니다.”

“가지.”

당이협이 곧장 걸음을 옮겼다.

전서응이 매달고 온 목곽상자를 확인한 당이협은 곧 침음을 흘리며 심각한 표정에 빠져들었다.

상자에는 매우 작은 벌레 두 마리와 알 두 개, 그리고 단환이 세 개 들어있었다.

‘확실히 주군께서 보내신 거군!’

문제는 내용물의 의미다.

당이협은 보자마자 홍묘의 몸에 무엇이 심어져 있을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다.”

그가 나무젓가락으로 아주 작은 알을 건졌다.

옆에 서 있던 수하, 무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이건…”

“뭔지 알겠나?”

“상단부가 녹빛을 띄고, 하단부가 붉은 빛을 띄는 걸로 보아서는… 혹시 세혼폭멸고(洗魂爆滅蠱)의 알이 아닙니까?”

당이협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럼, 정말 큰일이 아닙니까?”

무천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세혼폭멸고’라니!

그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세혼폭멸고를 혈사련이 보유하고 있었을 줄이야….”

“확실히 그들의 수집력은 본가를 뛰어넘는군.”

“인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요.”

“그래. 한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 세혼폭멸고가 홍묘의 몸속에 들어갔다면 그야말로 위험한 상황이다.”

무천이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그건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세혼폭멸고.

수컷과 암컷이 한 쌍을 이룬다.

신기한 건 암수 한 쌍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세혼폭멸고의 경우 어미가 꼭 한 번에 암수 한 쌍씩 알을 낳게 되는데, 이것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서로 교미하여 다시 암컷이 알을 배는 구조다.

세혼폭멸고는 알의 형태로 사람 몸에 들어갈 수도 있고, 벌레의 모양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몸속에서 살아남는다.

그러다가 특이점이 오면 녀석은 혈관을 타고 인간의 뇌로 올라간다.

그리고 숙주가 가진 모든 내공을 이끌어내어 대폭발을 일으켜 공멸한다.

그러다 보니 숙주의 내공이 심후하면 심후할수록 그 폭발력은 더욱 커진다.

이때 특이점은 바로 쌍을 이룬 또 다른 세혼폭멸고의 죽음이다.

이 둘은 아무리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상호 작용한다.

어찌 보면 삭뇌충과 굉장히 비슷한 종류의 고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이 세혼폭멸고가 무서운 점은 또 있다.

“만약 홍묘가 정말 이 녀석을 복용한 것이라면, 맹주님이 위험합니다.”

“그렇지.”

당이협은 부정하지 않았다.

세혼폭멸고는 폭멸하기 전에 반드시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숙주를 이용해서 반경 십리 이내에 가장 기운이 강한 존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메뚜기나 사마귀의 몸속에 기생하는 연가시와 비슷하다.

일생을 곤충 뱃속에 기생하는 연가시들이 어느 순간 곤충을 물속으로 유인하듯이.

세혼폭멸고 역시 죽기 전에 가장 내공이 심후한 자를 찾아간 다음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킨다.

물론, 내공의 종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독공이든, 마공이든, 정공이든.

어쨌든 세혼폭멸고가 원하는 것은 강렬한 기(氣) 그 자체다.

아마도 꽃이 지기 전에 가장 화려하듯, 세혼폭멸고 역시 죽기 전에 가장 화려한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러한 본능 때문에 세혼폭멸고는 위험하다.

“만약 홍묘의 몸속에 기생하는 세혼폭멸고가 반응을 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맹주님을 찾아가겠지요.”

“그럴 거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차라리 지금 홍묘에게 사실대로 말해서 다른 곳으로 떠나도록 하는 건 어떻습니까?”

하지만 당이협은 고개를 저었다.

“련주가 왜 그녀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나?”

“…설마?”

“그래, 홍묘는 련주를 마음에 품고 있다.”

“하면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이 분해서라도….”

“홍묘를 가까이에 두고 보면서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군. 그녀는 생각보다 순정파야.”

“그럼 곤란하군요.”

당이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실을 알려 준다고 한들 홍묘는 스스로 떠날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만약 련주가 그것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 한 몸을 희생하리라.

“지금이라도 죽이면 어떻습니까?”

“그럼, 세혼폭멸고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킨다. 그녀를 죽이려면 이쪽의 희생은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

정말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무천이 이를 갈았다.

“허 련주는 정말 악질이군요. 어떻게 자신을 따르던 여인을 이렇게 이용할 수가….”

“그런 독한 마음이 그를 그 자리에 올렸겠지. 하지만….”

**

“그 독한 마음 때문에 반드시 망하게 해주마.”

당이협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한편, 당이협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대강 들은 악천괴는 혀를 내둘렀다.

“과연 련주답군. 홍묘를 그렇게 이용하려고 했다니. 그는 분명 홍묘에게 정을 품었을 진데….”

그는 누구보다도 련주와 홍묘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분명 사랑을 나누는 사이였다.

단지 육체적인 사랑만이 아닌.

물론, 자신은 그것을 모른 척했다.

련주는 그런 자였다.

야망을 위해서는 사랑도 가볍게 이용할 수 있는 자.

때문에 자신도 홍묘를 건드렸던 것이다.

한데…

사랑하는 여인도 필요하다면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다니.

‘후후후. 과연 멋있소, 련주.’

하지만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는 도리질을 쳤다.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럼 어떻게든 홍묘를 막아야 할 게 아닌가?”

“현재 모든 수단을 막론하고 그 방도를 찾고 있소. 본가가 최대한의 인력을 동원했으니 결과가 나올 거요.”

“정도맹은 당양에 도착했나?”

“지금쯤 당양에 있을 거요.”

“이런!”

악천괴가 무릎을 탁 치고는 발을 굴렀다.

그는 허무극의 성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을 앞두었을 때 신중보다는 신속을 택하는 자다.

신중함은 모든 일을 시도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게 평소 허무극의 지론이었으니까.

“서둘러야 할 게야! 당장 오늘 밤에 홍묘가 맹주를 찾아가도 이상할 게 없어!”

“해서 맹주전을 중심으로 초절정 고수를 배치해서 호위하고 있소. 쉽게 뚫리진 않을 거요.”

“흐음. 어째서 맹주를 밖으로 피신시키지 않은 거지?”

“이 일은 극비리에 진행되어야 하오. 혈사련에서는 본맹이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하나, 나는 세혼폭멸고를 홍묘의 몸에서 빼낼 방법을 찾아낼 거요. 그리고 본맹은 이번 위기를 반격의 기회로 삼을 생각이오.”

“하지만 당양에 머문 자들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나? 혈사련이 그들도 노릴 텐데.”

당이협이 악천괴를 돌아보더니 돌연 피식 웃었다.

“뭐가 웃긴 거냐?”

악천괴가 눈썹을 구기며 묻자, 당이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별 거 아니오. 언제부터 당신에게 본련이 아닌, 혈사련이 되었는지 신기해서.”

“흥,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어쨌거나 그쪽은 어쩔 수가 없소. 전서구를 날리다가 자칫 혈사련의 손에 그 전서가 들어가기라도 하면 계획이 틀어지고 본맹이 더욱 위험해질 테니. 다만, 지원군은 급파했소. 시간 내에 당도할지 모르겠지만.”

“흐음.”

악천괴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손 써볼만 한 건 다 했단 말이다.

당이협의 말대로 전서구는 위험하다.

자칫 혈사련의 손에 그 전서가 들어가는 순간,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함정에 걸리고 말 테니.

이제 당양은 운명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나저나 홍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찌 막으려고?”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그녀 몸속에 기생한 세혼폭멸고를 밖으로 빼낼 작정이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해야지. 반드시.”

당이협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악천괴 역시 심각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으이그, 이 화상…! 사태가 이 지경인데 지금 잠이 온단 말인가?’

물론 사비강은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다.

온갖 종류의 독을 한꺼번에 덮어쓰고는 실낱같은 생명의 끈을 간신히 잡고 있는 것이었다.

사천당가에서 최근 개발한 만독방진단까지 복용시켰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든 살릴 거요.”

당이협이 대답을 마친 후 어디론가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검은 기운을 풀풀 휘날리는 마병들이 언덕 아래에 가득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대열을 맞춰 서 있었지만, 연신 술에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때문에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마치 달빛 아래의 호수가 물결치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 화상을 잔뜩 입은 적면인이 옆을 슬쩍 돌아보고는 물었다.

“아귀(餓鬼). 모두 몇이냐?”

아귀라 불린 적의인이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모두 천 명입니다.”

“과연 대단하군. 녹면이 이렇게까지 해낼 줄은 몰랐군.”

적면인의 눈빛에 시기와 감탄이 스며들었다.

녹면이 마병 천인대(千人隊)를 계획대로 만들어냈다.

반면, 자신은 한 명의 선천마령지체를 포획하지 못했다.

게다가 흑면까지 동행하고도!

물론, 숫자 놀음으로 비교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존야도 자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다시 기회를 얻어낸 이상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보여야 한다.

이 전투에서 사비강을 죽이든, 선천마령지체를 죽이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얻는다!’

**

콰당!

“교관님! 사비강 교관님!”

문이 벌컥 열리면서 단리정을 비롯한 천멸대가 우르르 쏟아지듯 들어왔다.

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당이협과 악천괴는 침통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관 속에 넣고 있었다.

‘관…?’

천멸대원들 가슴이 저마다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까지 수포가 생긴 사비강의 몰골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연우경이 성큼 나서며 소리쳤다.

모두들 그 대답을 들으려는 듯 마른 침만 꿀꺽 삼킨 채 당이협과 악천괴를 노려보았다.

누군가 보았다면 마치 사비강을 죽인 게 두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당이협이 관을 덮으며 말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그런데 왜 교관님을 관 속에…!”

“이 방법만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게 아니면 살릴 수가 없다. 아니, 이렇게 해도 살아나실 가능성이 높진 않다.”

순간 천멸대원 모두가 입을 꽉 다물고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그때,

“그런…”

털썩!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에 모두가 돌아보니, 어느새 달려온 매설란이 출입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가 글썽이는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는 말했다.

“어떻게든 반드시 살려내요!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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