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23화 (323/670)

# 323

귀환 마교관

323화

“아수대환단에 다른 기능이라도 있소?”

“그런 게 있을 리가.”

추희룡이 고개를 저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사비강이 눈살을 구겼다.

“한데?”

“아수대환단만으로는 그저 사공을 익힌 무인에게 매우 좋은 영약일 뿐이오. 다만….”

“다른 것도 같이 복용시켰다?”

“그럴 가능성이 높소.”

“하지만 적 조교에게서 들은 바가 없소.”

적무린은 분명 아수대환단만 가지고 홍묘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의 표정을 떠올려볼 때, 그 말이 거짓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적 조교도 모른 채로 갔을 테지.”

“전해주는 사람이 모를 수가 있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

사비강이 말끝을 흐렸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추희룡이 그런 사비강을 빤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아수대환단에 뭔가를 섞은 것이오. 아수대환단은 어디까지나 명리각에서 자체적으로 제조한 영단이오. 그러니 어떤 수작질을 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소.”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군.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렵게 개발한 영단에다가 다른 약재를 섞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을 텐데.”

“나도 거기까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지금 류 군사와 련주의 반응을 미루어 짐작컨대,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소. 만약 홍묘가 정도맹주를 어떻게든 제거하게 되고, 본련의 무인들이 연합 작전 도중 정도맹 세력을 소탕하게 된다면….”

“정도맹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겠군.”

“그렇소. 이건 어디까지나 류 군사의 머리에서 나온 계책일 거요. 이미 흑견을 파견해서 마령교와 물밑 작업을 진행한다는 말도 들었소.”

“마령교가 순순히 받아들이겠소?”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쁠 건 없지. 류 군사는 ‘강호양분지계(江湖兩分之計)’라는 그럴싸한 말로 마령교를 구슬리고 있소. 사실 그의 뜻대로 된다면 마령교의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지 않겠소?”

확실히 그렇다.

만약 류여중의 암계가 통해서 정도맹을 소탕하게 된다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마령교가 될 것이다.

물론, 세력의 규모로 따진다면 혈사련이 제일 강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세력을 내세우지도 못했던 마령교 역시 단숨에 두각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추희룡이 굳은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자들이 강호를 휘젓게 두어서는 안 되지. 반드시 우리가 막아야 하오!”

사비강이 차갑게 조소를 지었다.

“내게까지 애써 명분을 내세울 필요 없소.”

“무, 무슨 소리요?”

추희룡이 조금 당황한 듯 물어보자, 사비강이 예의 그 비웃음을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류 군사의 계획이 통했을 때는 련주의 세력이 더욱 막강해지겠지. 그땐 반역을 일으키기가 더욱 어려워질 테고. 당신은 그걸 가장 염려하는 것 아니오?”

정곡이 찔리자 추희룡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사비강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어넘겼다.

추희룡은 그런 자다.

마치 정도맹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취하면서 강호의 질서를 위하는 척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야망을 위해 본심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허무극이나 추희룡이나 거기서 거기인 셈.

하지만 사비강의 입장에서는 역시 추희룡을 혈사련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모든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테니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짐승보다는 말 잘 듣는 애완견이 나은 법이지.’

잠시 동안 기억을 떠올렸던 사비강은 다시 고개를 들고 눈앞에 보이는 명리각을 바라보았다.

아수대환단에 포함된 또 다른 약재.

그것이 정도맹주를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추희룡은 확신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홍염을 통해 당이협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약을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짐작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사비강이 직접 명리각에 잠입해서 의심되는 재료가 있으면 뭐든 가지고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 찾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만큼, 얼마나 많은 재료를 가지고 나와야 하는지도 막막하다.

어찌 보면 굉장히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계책이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일단 무턱대고 걸어갈 수밖에 없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겔의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아무리 많은 재료라도 가지고 나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

추희룡은 명리각에 사비강이 관심을 가질만한 물건이 있다고 했다.

그 역시 추희룡이 일전에 보부상을 추적하면서 구한 물건이었는데, 도무지 그 용도를 몰라서 명리각에 넘겼다고 했다.

아마도 명리각에서 각종 약품 실험 등을 주관하고 있으니, 뭔가를 알아낼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 넘긴 것이리라.

추희룡은 마계 도구를 그저 마교의 술법이 담긴 기물 정도로 치부하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리라.

일단 그게 뭔지도 확인해 볼 일이다.

결심을 굳힌 사비강이 몸을 훌쩍 날렸다.

새처럼 날아간 사비강이 명리각 바로 옆의 커다란 나무 위에 안착했다.

번을 서는 무인은 모두 서른 명.

모두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다.

게다가 가장 까다로운 것은 명리각이 온갖 기관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제일 먼저 명리각의 통제실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이 무게를 감지한다.

지붕의 경우에는 번을 서는 무인들 체중의 합을 넘어서는 순간, 곧바로 경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때문에 명리각에서 번을 서는 무인들은 철저하게 체중 관리를 한다.

단 두 근 정도의 차이만 나더라도 경종이 울리고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명리각에는 창문도 없다.

물론 약제를 달이거나 독약을 제조하는 등 각종 실험도 겸하기 때문에 환기 장치가 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환기구를 통해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군데군데 철망이 촘촘하게 쳐진데다가 그곳에는 온갖 독극물이 연무가 되어 흘러나오는 곳이니 오히려 죽음을 자초하는 수가 생긴다.

결국 정문을 통해서 들어가고, 정문을 통해서 나와야만 한다.

나오는 건 그렇다 쳐도 들어가는 게 일단 문제다.

정문은 안에서만 열리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명리각이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건물이 비어 있었던 적은 없다.

만약 건물 안에 사람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을 경우에는 기관 장치 자체를 아예 해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꽤나 공을 들인 기관 장치인 만큼 해체 작업을 하는 데에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만큼 견고하고 치밀한 장치라는 뜻이리라.

밖에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호를 보낸 후 안쪽에서 문을 열어 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그 방법밖에는 없는가?’

물론 무사히 명리각에 잠입한다고 해서 그걸로 끝이 아니다.

명리각 내부에도 침입자를 대비한 각종 기관 장치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만 한다.

특히 명리각에는 수동으로 작동해야 하는 비상종 대신 ‘탐기신주(探氣神珠)’라는 장치가 있다.

이는 공력을 탐지하는 구슬이다.

이 구슬은 비상종과 연결되어 있는데, 만약 이 탐기신주에 한 번도 주입한 적이 없던 기가 명리각 내부에서 감지되면 여지없이 비상종이 울리는 구조다.

즉, 명리각에서 일하는 무인들을 제외한 제삼자가 내부에서 내공을 사용할 경우에는 비상종이 자동으로 시끄럽게 울려댄다는 뜻이다.

때문에 절대로 내력을 출공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그 누구에게도 발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자신이 발각되면, 련주와 군사가 작전을 변경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정도맹을 칠 명분을 제공해 주는 셈이 된다.

흑귀를 시킬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역시 사안이 중대한 만큼 직접 잠입하기로 했다.

‘절대로 들키지 않는다!’

사비강은 나뭇가지에 몸을 숨긴 채 때가 되길 기다렸다.

**

사흘 후.

명리각 부각주 우광(右鑛)은 걸음을 서둘렀다.

이제 혈사련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영단과 독단이 많이 필요할 때다.

그리고 혈사련의 성격상 이럴 때는 영단보다는 독단을 훨씬 많이 만든다.

‘오늘부터 고생 꽤나 하겠군.’

이런 시기에는 명리각으로 들어가게 되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머물게 된다.

명리각 이 층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시기다.

대략 일 년 전, 정사대전이 펼쳐졌을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좀 빨리 끝나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는 품에서 피독주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이걸로 마지막 열 번째 피독주였다.

열흘 전부터 하루에 하나씩 정해진 피독주를 복용했다.

총 열 개의 피독주를 복용하면 어지간한 독에도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내성이 생긴다.

온갖 독극물을 다루는 명리각인 만큼 이런 비상 시기에는 체계적인 방법으로 피독주를 복용해야만 했다.

그가 마침 좁은 길을 막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우 부각주.”

문득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

우광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호의로 접근한 자일 리가 없지!’

속셈을 끝낸 그가 재빠르게 돌아서며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어 휘둘렀다.

“누구냣!”

쉬이이잇!

하지만 그보다 등 뒤에 있는 자가 훨씬 빨랐다.

탁탁탁.

‘크읏!’

우광은 그대로 단검을 놓친 채로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점혈 당한 것이다.

그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의식이 가물가물 흐려졌다.

‘제길…! 웬 놈…’

쓰러지는 우광을 사비강이 살포시 부축했다.

“까딱하면 목소리도 카피하지 못할 뻔했군. 대체 어디서 빈둥거리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생각보다 시간을 허비했잖아.”

사비강이 투덜거리면서 주변을 재빨리 살폈다.

그는 곧 우광을 어깨에 걸친 다음 몸을 날렸다.

**

“흐음. 이 정도면 됐겠지?”

사비강은 동경에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구석에는 우광이 벌거벗은 채로 밧줄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광의 얼굴이 사비강과 완전히 똑같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사비강은 우광의 얼굴과 똑같았다.

즉, 서로의 얼굴이 감쪽같이 바뀐 상황.

이는 사비강이 우광을 상대로 셰이프 스위치 마법을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셰이프 스위치 마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상이 살아 있어야만 한다.

때문에 사비강은 우광을 처리하지 않는 대신 신생각 창고에 묶어 둔 것이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푹 자두라고.”

일을 마치고 나면 우광으로 변한 사비강은 명리각에 볼 일을 보기 위해 출장을 가겠노라고 말할 생각이다.

물론, 진짜 우광은 그 이후에 행방불명이 될 예정이다.

그때까지 진짜 우광이 이곳에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추량도 모른다.

비밀은 아는 자가 적을수록 좋은 법니까.

물론, 창고 문은 마법으로 걸어 잠글 테니 밖에서 문을 열 방법은 없다.

안에서는 열 수 있겠지만, 우광의 혼혈이 풀려 깨어나려면 적어도 열흘 정도는 걸릴 테니 문제없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사비강이 몸을 돌리고는 창고 문을 열고 나섰다.

**

예상대로 번을 서는 무인들은 사비강을 보고도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설계도를 확인한 데다 추희룡으로부터 대략의 구조를 들었기 때문에 사비강은 침착하게 행동했다.

먼저 명리각 정문 앞에 다다른 그는 길게 늘어진 줄을 잡아당겼다.

뭔가 ‘딸깍’ 하는 느낌이 왔다.

이걸로 명리각 안에 신호가 전해졌으리라.

잠시 후,

그그긍…!

육중한 문이 저절로 열렸다.

사비강은 만일을 대비해 피독주 하나를 삼키고는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어두컴컴하고 짧은 복도였다.

복도 끝에는 다시 철문이 있었는데, 이중 장치로 문이 설치되어 있는 듯했다.

아마도 명리각 내부에 자욱한 독기를 일차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인 듯했다.

벌써부터 눈이 따끔거리는 것이 독기가 느껴졌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 이곳에 들어섰다가는 내문을 열기도 전에 피를 토하고 쓰러질 정도였다.

‘벌써부터 지독한 열기가 느껴지는군.’

사비강은 내문의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순간, 후끈한 열기가 훅 달려들었다.

기다란 복도를 두고 양 옆으로 방이 늘어서 있었는데,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들 모두 두건을 쓰고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신변 위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기로부터 조금이나마 신체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몇몇 무인들이 사비강을 보고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를 부각주 우광으로 본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디 한 번 샅샅이 뒤져 볼까?’

사비강의 눈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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