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귀환 마교관
321화
“흥!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옹기승 그 녀석을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거요. 이제 날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오.”
차갑게 말을 뱉어낸 석탄강이 흠칫 몸을 떨더니 옆으로 툭 쓰러졌다.
물론, 이 과정을 신생조원들이 모두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거기에는 백공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으으, 젠장. 내가 당하는 모습도 이 녀석들이 여기 앉아서 다 지켜봤다는 얘기잖아?’
그랬다.
이 모든 것은 사비강이 정류광을 불러서 만든 술법이었다.
신생조가 호문산으로 들어선 후 호랑이 바위를 지날 때, 정류광은 그들 모두에게 술법을 걸어 둔 것이었다.
물론, 정류광 혼자 힘으로는 이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술법에 완벽히 끌어들이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사비강이 펼쳐 둔 결계가 더해지니 큰 무리 없이 신생조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술법에 걸려든 신생조는 호랑이 바위 앞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서성거렸고, 사비강은 그들을 한 명씩 기절시켜서 이곳으로 납치해 왔다.
그리고 백공보가 당했던 것처럼 뺨을 때려 깨운 후 같은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모두 같았다.
누구 하나 옹기승의 행적을 밝히지도 않았고, 련주를 상대로 날을 세우면서 대립했다.
그리고 지금 석탄강이 마지막으로 납치된 후 막 술법에서 깨어나는 중이었다.
석탄강 역시 술법에서 깨어나자마자 현실 적응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상황을 눈치 채고는 신생조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이걸로 전원 시험에 통과한 셈이군.”
사비강의 말에 맹가숙이 퉁명스런 목소리를 내뱉었다.
“대체 뭘 시험하는 겁니까? 알고나 당해야 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갑자기 련주님까지 끌어들여서 시험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무리 교관님이라지만, 이건 솔직히 기분 나쁘다고요.”
여기저기서 불만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웅성거림이 잠잠해지자 사비강이 신생조원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 눈길이 전에 없이 진중했기에 신생조원들은 저도 모르게 살짝 긴장한 채 사비강을 응시했다.
마침내 사비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앞으로 혈사련주 허무극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게 될 거다.”
“……!”
너무나 갑작스런 발언에 신생조원 모두가 입을 딱 벌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연 사람은 방각이었다.
“하하… 하… 교관님도 농이 지나치십니다. 괜한 소리를 했다가 누가 듣기라도 하면….”
“농이 아니다. 누가 들을 리는 없다.”
방각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뭐야? 지금 진심이라는 거야?’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사비강의 언행이 지나치게 진중하지 않은가?
묘한 분위기 탓에 신생조원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다음으로 입을 연 사람은 설서린이었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낭군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소녀는 무조건 따를 거예요.”
“지랄 같은 소리! 지금 정도맹에서 파견 온 교관이 련주를 죽이겠다는데, 거기에 동참하겠다는 거냐?”
맹가숙이 이마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그러자 신생조원들이 작게나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서린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련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없었어. 그저 낭군님이 원한다면 따를 뿐.”
“이런 미친년….”
“영감탱이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더니 노망이 났나 봐. 그간 나한테 당했던 것도 잊었나?”
“오냐, 어디 한 번 해보자는 거냐? 우리가 언제까지 예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맹가숙이 으르렁거리며 일어나자,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다들 조용.”
나직하고 묵직한 목소리였는데, 공력이 담겨 있었기에 웅장한 울림이 있었다.
그 위압감에 눌린 맹가숙과 설서린이 더는 말다툼을 잇지 못하고 서로를 외면했다.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련주를 죽이고자 하는 건 여기에서 나뿐만이 아니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
맹가숙이 눈살을 찌푸린 채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때 신생조원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바로 구강룡과 옹기승이었다.
두 사람이 사비강 곁으로 가더니 신생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린 이미 련주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
순간 신생조원들이 다시 한 번 놀란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이 녀석들이 왜 련주를 죽이려고 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를 제거하려고 하는지 너희들에게 알려 주겠다.”
**
추량은 정자에 앉아서 밤하늘을 하릴없이 올려다보았다.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사비강은 신생조를 시험해 보겠다며 호문산으로 향했다.
그래도 명색이 호위무사인 만큼 추량도 따라가야 했지만, 이번만큼은 흑귀에게 호위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사비강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런 일은 조교인 적무린이 맡아야 했지만, 지금 그는 련주로부터 임무를 받아 정도맹으로 파견된 상태였다.
‘다들 시험에 통과했을까?’
대략 어떤 식으로 시험을 할 것인지는 사비강을 통해 전해 들었다.
신생조를 시험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앞으로 사비강이 그들을 계속 이끌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를 통해 신생조의 결속력도 확인한다는 속셈이었다.
신생조원 중 단 한 명이라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진행될 계획에서 그들을 제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동료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상부의 지시나 명령도 어길 수 있다면, 나는 그놈들을 끝까지 끌고 갈 생각이다.”
사비강이 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비강은 지금까지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기보다는 인간성에 대해 줄곧 강요해 왔던 것 같다.
언젠간 사비강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피바람이 휘몰아치고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데도 이 강호가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은, 그 가운데에서도 사람다움을 유지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아마 지금쯤이면 결론이 났을 텐데.’
추량의 생각에 그들이 시험에 통과할 확률은 딱 반반이었다.
워낙 반항기가 심한 자들인 만큼 련주에 대한 충성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절반.
하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망나니들로만 모여 있으니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딱 절반이었다.
게다가…
‘과연 그들이 그 허황된 이야기를 믿을까?’
사비강은 이참에 마계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도 그 이야기를 믿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과연 신생조가 덥석 믿어 줄까?
‘어렵다, 어려워.’
추량이 다시 한숨을 내쉬는데, 문득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사비강 교관은 어디 있는가?”
추량은 단번에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백호당주, 추희룡!’
그가 이 시간에 사비강을 왜 찾는 것일까?
의아한 생각을 품으면서 추량이 그를 돌아보려는데,
“돌아보지 마라. 인사는 됐다. 사비강 교관을 급히 만나봐야겠다.”
추량이 그대로 선 채로 답했다.
“사부님은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뭐라? 그럼 어디에?”
“현재 신생조를 거느리고 야외 수업 중이십니다.”
“허어, 하필 이런 시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추량이 넌지시 묻자 추희룡이 잠시 침음을 흘리더니 주변을 슬쩍 살폈다.
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그가 추량을 향해 전음을 흘렸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전해라.]
[무슨 계획을 말씀하시는 건지…]
[용을 잡을 계획이다.]
[그렇게만 전하면 됩니까?]
[그래. 마령교 토벌은 애초에 없던 일이었다고 전하면 된다.]
[예? 그건 무슨 말씀…]
[자세히 설명할 여건이 안 된다. 자세한 건 추후에 만나서 설명하겠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언제쯤…]
말을 꺼내던 추량은 더 이상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
신생조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사비강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니미… 어디서 통속소설을 읽고 와서 버무린 건 아닌지….”
맹가숙이 입매를 씰룩이며 중얼거렸지만, 그 스스로도 짐작하고 있었다.
사비강이 꺼낸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임을.
거짓이라고 보기에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기에.
“옹기승. 그게 정말이냐?”
방각이 옹기승을 부르며 물었다.
옹기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각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참. 그래도 련주님은 믿었는데.”
옹기승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련주였고, 옹기승의 체내에 깃든 선천마령지기를 흡수하려고 한 사람도 련주였다니.
좋다, 백번 양보해서 이런 것들을 모두 믿는다고 치자.
사실 믿지 않을 방법도 없다.
정작 구강룡과 옹기승이 나서서 그렇게 증언하고 있으니 거짓말일 리는 없을 거다.
다만…
“대체 그 마계에 관한 이야기를 진짜 우리더러 믿으라는 말입니까?”
맹가숙이 다시 불쑥 물었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믿고 안 믿고는 너희들의 자유지. 하지만 너희들도 두 눈으로 봤을 테지. 천신교 토벌 작전 때 보았던 그 괴이한 마물의 모습을. 아마 말은 하지 않아도 꽤나 궁금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런 생경한 무공들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 그것도 정도맹에서 파견 온 교관이 마령교의 무공과 매우 흡사한 것을 사용했으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그게 마계에서 귀환했기 때문이라니… 그것도 모자라서 회귀를 해? 허참…”
“다시 말하지만 난 너희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사실을 전했을 뿐. 내가 지금 확인하려는 건, 네놈들이 내게 협조할 것이냐, 아니냐다. 이건 믿음과 별개의 문제지.”
“그래서 반드시 련주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훗날 마계의 앞잡이가 될 자이기 때문에?”
“물론이다. 이 두 녀석은 이미 동의한 상태이고.”
“아무리 그래도 련주가 죽으면 후폭풍이 거셀 겁니다. 교관님의 그 허황된 소설은 아무도 믿지 않을 거고요.”
“그래서 이번에 마령교 토벌을 이용하려고 한다. 마령교도들에게 련주가 당한 것처럼 꾸밀 생각이지.”
“그게 가능합니까?”
“위조와 조작에 능한 녀석들이 있거든.”
“크음.”
맹가숙이 팔짱을 끼며 침음을 흘렸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반역을 꾀하는 일이다.
섣불리 결정을 내렸다가는 목숨이 깃털처럼 날아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무거운 결정을 가볍게 내리는 자도 있었다.
“따를게요, 낭군님.”
“린아가 따른다면 나도.”
설서린과 설수민 남매가 제일 먼저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그들은 반역을 저지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는 눈치였다.
원래부터 혈사련의 소속감보다는 자기들의 기준대로 움직이던 남매였으니까.
그 다음으로 유송령과 석탄강이 나섰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련주는 죽어도 싸군요.”
“따르겠습니다.”
어차피 석탄강은 옹기승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이윽고 맹가숙도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쳇, 이러려고 련주인 척하면서 우리를 시험했던 거군.”
“너희들이 련주에게도 대항할 만한 배짱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사비강이 피식 웃자, 맹가숙이 혀를 차고는 답했다.
“혹시라도 착각은 마십시오. 그 허황된 이야기를 전부 믿는 건 아니니까. 다만… 옹기승 저 녀석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화가 나서 동참하는 거요.”
맹가숙이 사비강을 따르겠다고 선언하자, 다른 조원들도 하나둘 뜻을 모았다.
마침내 모든 신생조원들의 의견이 하나로 일치하자,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다. 이제 한 배를 탄 상황이니 그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해서도 말해 주지. 련주가 죽게 되면 백호당주가 련주의 자리에 임시로 오르게 될 것이다.”
“백호당주가? 그럼 그도…?”
“이미 뜻을 모았다.”
“허어, 언제 그렇게….”
맹가숙이 혀를 내두르자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원래 세상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더 바쁘게 움직이는 법이지.”
그때, 유송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어, 교관님?”
“뭐지?”
“그런데 신생조원 중 한 명 빠진 것 같은데요?”
“누구?”
**
“젠장!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숲을 하염없이 헤매는 등자경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도 없어?”
등자경이 다시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아련하게 메아리 소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사비강이 잊고 있던 한 명.
등자경은 그렇게 호랑이 바위 앞에서 서성이며 언제 끝날지 모를 산행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