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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19화 (319/670)

# 319

귀환 마교관

319화

“이건…”

서래향이 목곽 상자에 담긴 단환을 바라보고는 떨리는 음성을 흘렸다.

“…아수대환단…!”

적무린이 그녀에게 건넨 상자 안에는 틀림없는 아수대환단이 들어 있었다.

혈사련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영약.

온갖 귀한 약재를 쏟아 넣어서 정해진 심법을 운기하면 엄청난 효과를 얻게 된다는 영단.

서래향 역시 그 이름만 들어봤을 뿐,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다만 어딘지 푸르고 붉은 빛깔이 도는 독특한 색상 때문에 그것이 아수대환단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걸… 내게…?”

멍하니 묻는 그녀를 보며 적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 서신….”

서래향이 떨리는 손길로 서신을 받아들었다.

이미 검열 절차를 거쳤기 때문인지 서신은 개봉된 상태였다.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정도맹의 볼모로 잡힌 신세가 아니던가?

정도맹 입장에서도 보안을 지키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으리라.

“적 대주가 욕 봤겠네.”

“별 말씀을. 당연한 절차에는 응할 뿐입니다.”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사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치욕이라고 생각해도 당연할 만큼 엄격한 절차였다.

우선 혈사련에서 방문한 자는 무조건 검열기관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혹시나 폭약이나 밀서 등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조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챙겨 온 짐들은 물론이고,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벗어던지고 검사를 받는다.

“다행히 이걸 문제 삼지는 않았군.”

“련주님께서 홍묘님께 전하는 영단입니다. 누구라도 감히 문제 삼을 수는 없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혈사련이 정도맹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때문에 련주는 맹주에게 보내는 선물을 따로 준비해 주었다.

아마도 그 덕에 홍묘에게 전하는 영단을 집요하게 따지지는 않았으리라.

홍묘는 서신을 펼쳐 들었다.

‘그분의 글씨구나.’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여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로 자신의 몸을 걱정하고, 타지에서 고생하는 것을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수하를 격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서래향에게는 그마저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글귀까지 읽어 내린 서래향은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오랜 타지 생활에 지쳐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갑자기 그리워하던 사람의 마음을 전해 받아서일까?

주책없이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적무린은 말없이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천상궁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지 겨울바람이 더 매섭게 느껴졌다.

잠시 감정을 다스린 서래향이 활짝 웃었다.

“다행이군. 잘 지내고 계신다니. 나도 모처럼 보신을 하고 더 강해져서 보탬이 되어야겠어.”

“복용법은 아십니까?”

“서신에 적혀 있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적무린은 대답하는 서래향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리도 좋으실까?’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지금 얼마나 행복에 겨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침 서래향이 미간을 좁히고는 물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아,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서….”

“뭐, 그보다 적 대주는….”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십시오.”

“그러지. 무린은 언제까지 머물 생각이지?”

“당분간 이곳에 머물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한동안 홍묘님을 보좌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마침 신생조도 어지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터라.”

“그렇잖아도 겨울이 되면서 적적하던 차에 잘 됐군.”

서래향의 말에 적무린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

“그게 정말입니까?”

누구보다 놀란 목소리로 되물은 사람은 바로 백호당주 추희룡이었다.

허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하면… 마령교를 토벌하겠다는 것은….”

“그건 대외적인 명분이지.”

허무극의 말끝에 류여중이 한 걸음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여기 계신 분들께서는 이 사실을 철저히 함구해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본련은 지금 마령교를 소탕하기 위해서 분주한 것으로 보여야 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마령교는 이대로 놔두자는 겁니까?”

추희룡이 따지듯 묻자, 류여중이 그를 돌아보며 답했다.

“물론, 때가 되면 그들 역시 손을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하니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듣고만 있던 독고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 정도면 이제 우리가 움직일 때가 됐지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슬슬 뛰어야 할 차례입니다.”

“하지만 이 작전을 실패했을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생길 겁니다.”

그러자 독고진이 코웃음을 치면서 따졌다.

“흥! 모든 작전이 그런 법이오. 이 세상에 실패해도 안전한 작전이란 없소! 위험부담이 큰 만큼 얻는 것도 크다는 건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소?”

“하지만 련주께서 수하를 이용했다는 비난은….”

그러자 류여중이 말을 자르며 나섰다.

“이용이 아니라 자원한 겁니다. 모르시겠습니까? 그 의미를.”

그의 눈빛이 전에 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추희룡이 흠칫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과연 류 군사는 무서운 자로다.’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지만 그의 표정과 언행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도 함부로 따질 수가 없다.

게다가 이미 련주의 입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때문에 이에 맞설 사람은 드물었다.

상당수 무인들이 곧 독고진처럼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류여중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 계획을 아는 사람은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함구령을 절대적으로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존명!”

“그럼 모두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조만간 움직일 때가 올 테니.”

류여중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그려졌다.

**

후원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서래향은 단전에서 치미는 뜨끈한 기운에 모든 의식을 집중했다.

그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적무린이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굉장한 기운이야.’

서래향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기의 소용돌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련주가 서신을 통해 알려 준 구결을 암기하면서 내공을 운기했다.

마침내 단전에서만 소용돌이치던 기운이 전신의 혈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휩쓰는 느낌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알몸으로 얼음물에 빠진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온몸에 오한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것과 달리, 현재 그녀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뜨거운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 열기를 적무린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단숨에 이 갑자의 내공을 끌어올리게 해주는 최고의 영단이다.

결코 그 복용법이 쉽진 않으리라.

괜히 지켜보는 적무린조차 긴장이 되어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마침내,

“커억!”

서래향이 울컥 피를 토해내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는 입을 꽉 다물었다.

“홍묘님!”

적무린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다가는 곧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렇듯 운기를 할 때는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되기에.

이건 어디까지나 그녀와 그녀 자신의 싸움이다.

섣불리 개입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나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너무 차가워!’

겉에서 일어나는 열기와 달리 그녀는 내면의 한기에 온몸이 굳어 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혈맥을 타고 흐르던 냉기가 정수리에 가서 부딪쳤다.

팍!

차갑게 흐르던 물이 정수리의 백회혈에서 막히면서 다시 역류했다.

‘아아악!’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통증에 서래향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백회혈에 막힌 냉기는 그대로 역류하다가 다시 단전에서 치고 올라오는 힘에 떠밀려 백회혈로 되돌아가곤 했다.

퍽!

다시 한 번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면서 백회혈을 때렸다.

“커억!”

서래향이 또 한 번 피를 울컥 토해냈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통증이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아수대환단을 복용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던가?

혹시 잘못된 방법으로 운기를 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한편, 그녀를 지켜보던 적무린도 이쯤 되자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치밀었다.

만약 서신에 적힌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그러니까 아수대환단을 복용하기 위한 운기법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운기법이라면?

그래서 홍묘가 죽으면 혈사련은 그 책임을 물어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걸까?

아주 잠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나?

게다가 사인이 애매하지 않은가?

‘그래, 그럴 리가 없다!’

적무린이 어금니를 꾹 깨물고는 서래향을 바라보았다.

서래향은 이제 의식을 잃기 직전이었다.

극음의 기운이 백회혈을 때릴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운기 역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몸을 사릴 수는 없어.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극한의 고통으로 치닫게 되자 잊었던 독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이를 악물고는 결심을 굳혔다.

좀 더 요결에 집중하면서 운기를 시작하자 극음의 기운은 한층 강화됐다.

그야말로 머리통이 통째로 얼어 버릴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이제는 얼음물이 아니라 얼음덩어리 자체가 혈맥을 타고 미끄러지며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가자!’

단단한 얼음덩어리가 뾰족하게 변하는 기분이 드는 순간, 그녀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내공을 운기했다.

쏴아아아아!

거대한 빙하가 혈맥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백회혈에 날아갔다.

이전 같았으면 눈을 질끈 감았겠지만, 그녀는 그 모든 감각으로부터 의식을 거두지 않았다.

죽을 때 죽을 일이라도 최후의 순간을 똑똑히 마주하겠다고 다짐했다.

쩌어엉!

마침내 뾰족하게 갈린 빙하가 백회혈의 두꺼운 벽에 부딪쳤다.

‘아아아아아악!’

“쿨럭! 커억!”

마음속의 비명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입 밖으로 검붉은 핏덩이가 토해져 나왔다.

적무린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힘을 짜내어 단전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두 번째 빙하를 백회혈로 날려 보냈다.

쩌어어엉!

꽈자자작! 콰자작!

백회혈의 두터운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투둑, 뚜두둑!

콰아아아아!

단단한 벽이 조각조각 허물어지면서 혈맥을 타고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깨질 것 같던 머리는 이제 더 없이 쾌청했다.

뿐만 아니라, 온몸을 얼려 버릴 것 같았던 냉기는 백회혈을 지나자마자 들끓는 용암에 녹아 버리듯 훈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수우우우웅!

마치 기분 좋은 바람이 몸 안을 휘도는 기분.

전신이 무척 가벼워졌다.

한편, 밖에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적무린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래향의 표정이 더 없이 온화해진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기운만으로도 복용에 성공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으리라.

마침내 서래향이 두 눈을 떴다.

적무린이 다가갔다.

“감축 드립니다.”

“고마워.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이야.”

서래향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갑자기 이 갑자의 공력이 늘어나자 이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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