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
귀환 마교관
313화
“커헉!”
옹기승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지켜보고 있던 구강룡이 화들짝 놀라면서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옆에서 서성이기만 했다.
사비강은 옹기승의 등을 향해 끊임없이 공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바람에 사비강의 장삼이 크게 부풀어 올라서 훈기가 돌았다.
옹기승이 뿜어내는 사이한 기운과 사비강이 불어넣고 있는 공력이 묘한 융합을 이루면서 지하 연무실 가득 열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이런 상태에서는 옆에서 자칫 손 끝 하나 건드리기라도 했다간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심할 경우에는 주화입마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때문에 구강룡으로서는 그저 초조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기승, 너는 그런 존재를 품고 있었더냐?’
구강룡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옹기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심경이 복잡했다.
어렸을 때는 옹기승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비록 배다른 형제이긴 하지만 자신과 한 핏줄을 나눠 가진 자가 있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 구기승은 그에게 있어서 애정의 대상이었다.
한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철천지원수처럼 여기고 이를 갈았다.
그때부터 옹기승은 그에게 있어서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동생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원수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너를 어찌 보아야 하느냐?’
옹기승을 바라보는 구강룡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지금이라도 옹기승을 죽이고자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모든 비극이 결국 옹기승의 체내에 잠들어 있는 흑치신마 때문이 아니던가?
여기서 일장만 뻗어낸다면…
옹기승은 일격에 사망할 것이다.
물론 사비강도 피해를 입겠지만, 그의 무공 수위라면 죽음은 면할 것이다.
어쨌거나 사비강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데…
‘모르겠다.’
눈을 꾹 감은 채 식은땀을 흘리는 옹기승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분노와 좌절, 기쁨과 슬픔, 원망과 연민.
이 모든 감정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커헉!”
순간 옹기승이 비명을 터뜨리며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냈다.
“승아!”
구강룡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곧이어 사비강을 향해 외쳤다.
“뭐하는 거요?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요? 이러다 동생이 죽게…!”
빠르게 소리치던 구강룡이 멈칫거리고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고는 한참이 지나서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피식거렸다.
“동생이라… 결국 그리 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툴툴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쩌면 지금껏 응석부리는 사람은 옹기승이 아니라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영혼의 나이는 그 시절에 멈춰 버린 모양이다.
“하하하하하!”
구강룡이 고개를 젖히고는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는 분명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노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원망과 증오를 어디로 쏟아내야 할지.
‘기다리시오, 련주!’
구강룡이 이를 빠득 갈았다.
그리고 사비강을 돌아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당신을 믿어 보겠소. 그날 약속한 대로 반드시 복수의 기회를 만들어 주시오.’
구강룡이 사령환을 복용했던 날, 사비강은 그에게 전음을 날리고는 몸을 날렸었다.
“사령환을 복용하고 죽은 척한다면 진리를 볼 수 있을 거다. 경거망동하지 않는다면 내가 복수할 기회를 얼마든지 만들어 주마.”
구강룡이 사비강의 말을 떠올리는 사이, 문득 문이 열리더니 계단을 따라 추량이 달려 내려왔다.
“사부님. 여기 계십니까? 저 드디어 반묘와…”
“방해 마시오.”
구강룡이 추량의 앞을 막아섰다.
말을 꺼내던 추량 역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된 거요?”
“교관께서는 심연의 싸움에 들어간 승아를 돕고 계시오.”
“승아? 이젠 꽤나 동생을 부르는 목소리가 부드러워졌구려.”
“상, 상관할 바가 아니오!”
구강룡이 불쾌한 듯 소리치자, 추량이 부드럽게 웃었다.
“누가 상관한 댔소? 그냥 그렇다고 얘기한 것뿐이지.”
“흥!”
구강룡이 몸을 휙 돌리고는 사비강과 옹기승을 바라보았다.
추량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뭐하고 있소? 응원이라도 해주시오. 옹기승에게 큰 힘이 될 텐데.”
“무슨 소리를!”
“우리 승아! 힘내라! 하고 말이오.”
“시끄럽소! 지금 나를 놀리는 거요?”
“무공은 고강한데 비해 수줍음이 많은 분이로군.”
“뭣이?”
그때였다.
“크아악!”
옹기승이 느닷없이 비명을 터뜨리면서 다시 한 번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 충격이 어찌나 큰지 뒤에서 공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비강 역시 흠칫 흔들릴 정도였다.
“승아!”
구강룡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가 슬쩍 추량의 눈치를 살폈다.
“뭐하고 있소? 이럴 때 형의 응원이 절대적인 힘이 된다는 걸 모르시오? 그동안의 오해로 원수처럼 지냈던 형이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이 힘이 될 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구강룡이 미간을 구기고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많이 힘을 잃었다.
잠시 후 구강룡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승… 승아…, 힘내라.”
“에이, 그게 뭐요? 좀 더 큰 소리로 외쳐야지.”
“시, 시끄럽소!”
그때,
“크어억!”
옹기승이 또 한 번 비명을 토해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순간 구강룡이 저도 모르게 버럭 외쳤다.
“내 동생, 승아! 힘내라! 깨어나면 그동안 형을 속 썩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줄 테니! 죽지 말고 반드시 이겨내라!”
“…….”
“…….”
구강룡의 외침이 잦아들자 지하 연무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구강룡이 슬쩍 추량을 돌아보았다.
추량이 엄지를 척 세웠다.
“훌륭했소. 형제간의 우애가 아주 아름답소.”
“상, 상관 마시오!”
“거참, 나는 상관 안한다니까.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지.”
구강룡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추량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역시 고강한 무공 실력에 반해 정말이지 뜻밖의 상황에서 수줍음이….”
“시끄럽소!”
**
콰당탕탕!
옹기승이 벽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온통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된 옹기승이 비척거리면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곳.
하지만 지금은 온통 불타오르고, 그나마 남아 있는 건물들은 모조리 부서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무너지고 부서진 폐허 속에서 벌이는 사투.
이글거리는 불길을 등지고 어머니가 자박자박 걸어왔다.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흑치신마의 형상이 겹쳤다.
“호호호. 이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구나.”
어머니의 입매가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옹기승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벌써 죽을 고비를 얼마나 넘겼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렇게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교관님이 돕고 계시는 거겠지.’
지금 이곳이 자신의 심연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환옥봉인대법 때와 달리 심연으로 잠겨들기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니까.
사비강은 자신을 극한의 궁지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진심으로 죽일 듯 칼을 내려찍었다.
그 직후, 자신은 태곳적의 기억으로 돌아간 것이다.
즉, 죽음 직전에 심연에 빠져들었고, 그러는 사이에 아마도 흑치신마가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리라.
그 후에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지만, 흑치신마는 다시 심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는 끊일 듯 끊이지 않는 힘이 계속해서 흘러들어온다.
그것이 바로 사비강이 보내주는 힘이리라.
“정말 지겨운 녀석이구나.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자. 네 몸은 내가 잘 쓰겠다.”
팟!
순간 어머니가 바닥을 차더니 귀신처럼 날아와 그대로 옹기승의 가슴팍을 무릎으로 찍었다.
퍽!
“크억!”
옹기승이 피를 토해내며 그대로 쓰러지자, 어머니가 검을 들어올렸다.
“평생 그렇게 원망만 하며 살았을 테지. 나머지 원망은 지옥에서 해라!”
슈우우웃!
검이 사정없이 내려 꽂혔다.
그런데 그 순간 옹기승의 시야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까지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느려진 속도로 검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때,
“내 동생, 승아! 힘내라! 깨어나면 그동안 형을 속 썩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줄 테니! 죽지 말고 반드시 이겨내라!”
하늘이 떨리듯 구강룡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옹기승은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난 것인지 왼손을 불쑥 뻗어내며 장력을 격발시켰다.
퍼어엉!
요란한 폭음과 함께 어머니가 비명을 내지르며 튕겨 날아갔다.
옹기승은 그대로 강시처럼 수직으로 일어났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인가…?’
그 말은 어쩌면 진심과 심연 또한 통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살아남은 유일한 혈육으로부터 미움과 증오만 받던 옹기승이었다.
한데 이 순간, 그는 그 혈육으로부터 처음으로 이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옹기승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금 전에 들린 그 목소리에서는 마음을 격동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듯했다.
지금껏 고생했다고.
너는 네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그 위로와 함께 모든 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노옴! 건방지게 나를…!”
어머니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순간,
쉬이이이잇!
옹기승은 눈을 꼭 감은 채로 보법을 밟아 갔다.
눈 깜빡할 사이에 어머니 앞에 다다른 옹기승이 검을 쑥 내질렀다.
푸욱!
“커어억!”
어머니가 두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 감히…?”
“내가 원해서 그리 태어난 것이 아니듯, 어머니도 나의 이런 운명을 원하진 않으셨을 터.”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멍해졌다.
다음 순간,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고맙구나, 승아.”
어머니의 목소리.
아마도 옹기승의 심연이 만들어낸 것일 테지만, 그것만으로도 옹기승은 큰 위안을 받는 듯했다.
다음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이지러지더니 흑치신마의 세 얼굴이 튀어나오며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노옴! 감히 나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
“닥쳐라. 내 몸에 기생하기로 했으면, 얌전히 말이나 잘 들어.”
“뭐, 뭣이?”
다음 순간 옹기승이 그대로 검을 대각선으로 베어 올렸다.
촤아아아악!
흑치신마의 상반신이 대각선으로 갈라지면서 시커먼 연기가 풀풀 휘날렸다.
흑치신마는 자지러지듯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시커먼 연기가 되어서는 옹기승의 전신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옹기승이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눈앞에 구강룡과 추량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옹기승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소, 형님.”
“흥! 뭐, 뭐가 말이냐?”
구강룡이 고개를 휙 돌리고는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추량이 풋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여튼 춘대래들 투성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