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
귀환 마교관
308화
뇌전흡살공을 펼치려던 허무극은 갑자기 눈을 뜬 옹기승을 보고는 흠칫거렸다.
‘어떻게?’
다음 순간, 옹기승이 허무극을 향해 손을 불쑥 뻗어 일장을 날려 왔다.
퍼엉!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온 직후, 허무극이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정작 장력을 날린 옹기승은 뒤로 스무 걸음 정도나 밀려나고 말았다.
옹기승이 가늘게 뜬 눈으로 허무극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입니까?”
허무극은 여전히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쯤 옹기승은 봉인대법에 의해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일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마령교까지 끌어들였다.
한데 깨어 있어?
‘도대체 어떻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대법을 실패했을 가능성이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법에 실패하면서 그 여파로 이 사달이 난 것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저 계단을 가르며 솟아오른 용암이라든지, 하단성을 홀라당 태워 버린 화마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그는 옹기승의 몸에 깃든 마령혼(魔靈魂)을 직접 본 적이 있었으니까.
만약 대법에 실패하면서 오히려 그 역효과로 옹기승의 몸에 깃든 마령혼이 나타났다면, 충분히 이만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아니야. 역시 그 일밖에 없다.’
구강룡이 마령교와 싸우다가 자멸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구강룡이 초절정에 이른 고수라고는 하지만, 마령교의 마인들을 홀로 이렇게까지 상대할 능력은 되지 못한다.
생각을 마친 허무극이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깨어 있었느냐? 네가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 도와주기 위해 왔노라.”
“그렇습니까?”
옹기승이 차갑게 웃었다.
누가 봐도 노골적인 비웃음이었기에 허무극이 슬쩍 눈살을 구기면서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옹기승은 조소를 지우지 않고 다짜고짜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뭘 묻는 것인가?”
“왜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무슨 거짓말을?”
허무극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옹기승이 가늘게 뜬 눈으로 빤히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나’라고 왜 거짓말 하셨습니까?”
“……!”
허무극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어떻게 그걸…?’
그는 속으로 떠오른 생각을 갈무리하면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시치미를 뗄 생각입니까? 련주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
“뭐가 그리 두려운 겁니까? 고작 저 같은 놈에게.”
옹기승이 싸늘한 조소를 지으며 말하자, 허무극의 뺨이 씰룩였다.
‘건방진…!’
“거짓말을 한 것도 모자라서 아예 제 기억을 바꾸신 것 같더군요.”
“뭐라?”
허무극이 놀라면서 반문했다.
그의 반응은 얼토당토 않는 누명을 썼을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그걸 네가 어찌 알았냐’는 듯한 반응.
그랬기에 옹기승은 더욱 차갑게 비소를 지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습니까?”
이제 허무극은 더 이상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마령교 새끼들! 대법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서 기억까지 되돌려 버려? 이렇게 한심할 데가!’
사실 그의 기억을 되돌린 사람은 사비강이 데려온 정류광이었지만, 허무극이 그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허무극으로서는 난감한 상황.
이 상태로 뇌전흡살공을 펼쳤다간 오히려 본인이 당할 가능성이 높다.
옹기승 조차도 자신의 몸에 깃든 마령지기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모르리라.
하지만 허무극은 보았다.
그 마령혼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을 풍긴다.
“아버지를 죽인 건 사부였습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허무극이 시치미를 떼자, 옹기승은 피식 웃어 버리고는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뭘 말인가?”
“내가 사부를 죽이자마자 혈사련 무인들이 대거 들이닥쳤습니다.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혹시….”
옹기승이 실눈을 뜨고는 허무극을 빤히 바라보았다.
허무극 역시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옹기승에게 더 이상은 숨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혹시… 아버지를 죽이라고 지시한 것은 련주님이었습니까?
허무극은 미간을 좁히고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휘이이이잉.
두 사람 사이에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치면서 바짝 마른 낙엽들이 어지럽게 뒹굴었다.
이윽고 영원히 닫혀 있을 것만 같던 허무극의 입이 열렸다.
“그렇다.”
“……!”
옹기승이 눈을 부릅떴다.
충분히 예상한 아니,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련주의 입에서 직접 그 소리를 듣자 또 기분이 달랐다.
전신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랄까?
“어째섭니까?”
옹기승이 씹어뱉듯이 묻자, 허무극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어차피 기억을 모두 찾은 것 같으니 말해 주마. 네 몸에 깃든 선천마령지기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이유로!”
“단지 그런 이유라… 무인이라면 비급서 하나에도 목숨을 거는 법이고, 신병이기를 구할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선천마령지기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취하고 싶지 않겠느냐?”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걸… 아니, 그렇다면 왜 취하지 않았습니까?”
“취하지 않은 게 아니라, 취할 수 없었다.”
“어째서? 술법을 이용해 어린 시절의 내 기억까지 바꿔 버렸으면서.”
“선천마령지기를 취하고자 할 때, 그 존재가 나타났다.”
“……!”
“네 몸에 깃든 악마는 본좌를 아이처럼 노려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 본좌가 어찌 전율하지 않았겠느냐? 그때부터 본좌의 목표는 하나였다. 무슨 수를 써서든 선천마령지기를 취하고야 말겠다고.”
“그 사실을 형도 알고 있었습니까?”
“그랬다면 네 형이 본좌를 죽이고자 달려들었을 테지.”
“형을 이용했단 말이군.”
“어차피 이 세상은 둘 중 하나 아니겠느냐? 이용을 하거나, 이용을 당하거나.”
“그럼에도 지금 내게 사실을 말해 주는 이유는 뭡니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네가 기억이 조작된 것까지 알고 있는 마당에 구차하게 변명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또 하나는?”
“너는 본좌를 죽일 수 없다. 지금쯤이면 너 역시 짐작할 테지만, 선천마령지기를 이용하게 되면 너는 이성을 잃고 말 것이다. 즉, 그때부터 넌 네가 아니게 될 테지.”
허무극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었다.
옹기승이 수면신공을 익힌 것 역시 선천마령지기를 억누르기 위함이었다.
최대한 자아를 지워내고 무위자연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
하지만 감정이 격해지고 자아에 함몰되기 시작하면 선천마령지기가 극성을 부릴 게 뻔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선천마령지기가 성체가 된 옹기승을 완전히 집어삼켜서 그를 미치광이로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본좌가 널 죽일 수도 없게 됐다. 어쨌거나 네가 죽을 정도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선천마령지기가 어떤 식으로든 현신할 테니까 말이다.”
허무극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그래서 마령교를 끌어들여 봉인 대법을 이용하려고 한 것인데….
‘쯧….’
한편,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처음부터 말없이 지켜보는 자가 있었으니….
‘련주…! 날 속인 거였소!’
바로 한쪽 구석에 널브러진 채 쓰러져 있는 구강룡이었다.
그는 사비강이 먹인 사령환 때문에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의식만큼은 또렷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들었다.
‘련주…!’
구강룡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허무극을 향해 살수를 뻗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령환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감정을 다스리기가 수월하다는 점이었다.
구강룡의 머릿속에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
“선천마령지기…라고요?”
어린 구강룡이 허무극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가 아버지를 죽인 동생을 쫓아가 죽이려고 하자, 허무극이 그 앞을 막아서며 꺼낸 말이었다.
허무극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네 동생의 몸에는 마령혼이 깃들어 있다. 네 동생이 아버지를 죽이고, 여기 있는 무인들까지 휩쓴 힘에는 바로 그 마령혼의 기운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약 지금 네 동생을 자극하면, 그 자리에서 너도 죽고 말 것이다. 해서 너를 말렸다.”
“련주님은… 련주님은 그 마령혼을 이길 수 없습니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구강룡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뭡니까? 그 방법이!”
“선천마령지기를 봉인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본좌가 그 마령지기를 제거해 버릴 수 있다. 다만….”
허무극이 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동생은 죽을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그 녀석은 제 동생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어머니도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젠 아버지를 죽였으니, 그 놈은 제 원수일 뿐입니다!”
“정녕 너는 원수를 갚고 싶으냐?”
“물론입니다!”
“좋다. 그럼 내가 너를 돕도록 하마.”
그 후 구강룡은 허무극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련 내에서도 가장 우수한 사부를 소개시켜 주고 몸에 좋은 영약도 많이 복용했다.
언젠가 왜 이렇게 자신에게 잘 해주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허무극은 이렇게 대답했다.
“본좌가 네 아비를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다.”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이후 구강룡이 살풍단주가 되었을 때, 그는 허무극으로부터 특별 임무를 부여받았다.
바로 잊혀 진 마교의 잔당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들이 옹기승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반드시 대법을 통해 선천마령지기를 봉인하려고 할 것이다. 너는 그걸 최대한 이용한 다음 본좌에게 옹기승을 넘겨야 한다. 만약 그들에게 자칫 옹기승이 넘어가게 되면, 녀석은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들은 옹기승을 신봉하게 될 거다. 그때는 복수도 요원해지는 거지. 그러니 반드시 옹기승을 본좌에게 넘기도록 하라.”
“존명!”
그렇게 떠난 구강룡은 머지않아 마교의 잔당을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일부러 사고를 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타인의 이목을 속였다.
그를 향한 련주의 관대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그저 날 이용하기 위한 거짓이었단 말인가!’
과거를 곱씹던 구강룡은 다시금 울분이 치솟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옹기승! 어디 있느냐?”
느닷없이 사자후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아닌가?
허무극과 옹기승이 흠칫거리고 돌아보자, 저만치 하단성 입구에서 한 사내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마침 하단성 안으로 들어서면서 주변을 휘이 둘러보더니 말했다.
“와…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기승아? 어디 있느냐?”
그리 큰 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공이 실린 그 목소리는 상단성에 있는 자들의 귀에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한편, 쓰러져 있던 구강룡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저 인간은 도대체 언제 저기까지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