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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05화 (305/670)

# 305

귀환 마교관

305화

사비강의 긴 이야기를 한동안 경청한 구강룡은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들었다.

“너 이 새끼… 어디서 농간질을….”

퍼억!

“커억!”

강기가 실린 주먹이 날아드는 바람에 구강룡의 눈자위가 허옇게 뒤집혔다.

정말이지 그의 무공이 초절정 수준이 아니었다면 벌써 열두 번도 더 죽었으리라.

사비강이 한숨을 내쉬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손이 좀 앞서는 성격이라. 나도 이런 버릇은 고쳐야 하는데, 참.”

사비강이 진심으로 미안한 듯 말하자, 구강룡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조금 전엔 정말 너무 큰 충격에 기절할 뻔했다.

‘뭐 이딴 교관이 다 있어?’

정도맹에서 파견했다기에 적당히 무공 좀 익힌 자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 봐야 정도문파의 교관이 아닌가?

무공이 강하다고는 해도, 정도의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혈사련에서 버틸 수 없으리라 여겼다.

한데 이렇게 상식을 깨는 놈일 줄이야.

그동안 소문은 무성했지만, 원래 소문이 더욱 부푸는 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소문이 약했어. 이놈은 소문보다 훨씬 더 악질에 꼴통이다!’

그때 사비강의 눈매가 짐짓 가늘어졌다.

“너 지금 나보고 꼴통이라고 생각했지?”

뜨끔.

구강룡이 미간을 구기고는 따졌다.

“갑자기 뭔 시비냐? 이번엔 독심술이라고 할 참인가?”

“뭐, 아니면 됐고.”

‘귀신이네, 이 새끼….’

구강룡이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어쨌거나 내가 네놈이 한 말을 믿을 근거는….”

퍼억!

“커억!”

“말투 고쳐라. 원래 존경을 강요하는 성격은 아니다만, 혈사련에서는 좀 방식을 바꾸기로 했거든.”

물론 이 이야기를 천멸대가 들었다면 절대로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강룡이 이를 뿌득 갈며 소리쳤다.

“이런 씨발! 그만 때…!”

퍽!

“끄윽…! 제길… 그만… 그만 좀 때립시다!”

“흠, 좋아. 일단은 뭐 그 정도에서 봐주지.”

“어쨌거나 네놈이 씨불인 이야기를 내가 믿….”

휙.

“아니, 교관께서 씨불인! 아니, 말한! 말씀한!”

“흐음. 일단 계속해.”

“끄음…! 교관께서 말한 게 전부 사실이라는 증거는 있소?”

구강룡이 분한 심정으로 반 존대를 하며 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악랄한 교관이 언제까지 자신을 고문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나마 자신을 죽이지 않고 이렇게 살려 두는 것은 아마도 그가 담당하는 생도이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면인을 비롯한 마령교의 무인들은 일절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죽여 버리지 않았는가?

“증거라… 증거가 있어야만 믿겠다?”

“그럼 나더러 단지 그 세 치 혀를… 아니, 그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퍼억!

“커억…! 제기랄!”

“생각보다 학습 효과가 없는 녀석이군.”

사비강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구강룡의 가슴팍에 슥슥 문지르고는 말했다.

치욕적인 상황이었지만 구강룡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명백한 차이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기에.

구강룡이 가물거리는 의식의 끈을 겨우 잡고 있자, 사비강이 그의 뺨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말해 봐, 어서. 시간이 없으니.”

“나더러 교관의 말만 믿으라는 거요?”

“그래, 하면 되잖아. 그렇게 말할 수 있잖아. 그런데 왜 처음부터 그렇게 못해?”

“대답이나 하란…! 해주시오.”

“증거를 원한다면 제시해 주지.”

구강룡의 눈동자가 커졌다.

“정말이오?”

“그래. 대신 네가 믿는 진리가 깨졌을 때, 너는 무조건 나를 따라야 한다.”

사비강이 자신 있게 나오자 구강룡이 흠칫거리고는 바라보았다.

“증거가… 대체 뭐요?”

“아직 나도 확실하진 않다. 이제부터 확인해 볼 참이다. 어때? 도박을 걸어보겠나?”

“만약 당신의 생각과 다르다면? 즉, 내가 믿는 진리가 틀림없다면?”

그러자 사비강이 시체나 다름 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옹기승을 힐끔거리고는 답했다.

“그땐 저 녀석을 너에게 주지.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네가 알아서 하라고. 나도 존속 살해까지 감싸 줄 역량은 없으니까.”

“좋…소. 그럼 증거는 어떻게 제시할 거요?”

사비강이 몸을 돌리더니 소리쳤다.

“량! 와라!”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단성문을 통해 추량과 정류광이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올라왔다.

추량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상단성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여기도 아래와 다를 바가 없군요.”

“오랜만에 살풀이 좀 했지. 그보다 정 총관.”

“예? 아, 예. 말씀하시…지요.”

피바다가 된 성주전 안마당을 훑어보던 정류광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여전히 사비강의 눈동자에서는 살기가 풀풀 휘날렸기에 그 앞에만 서도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사비강이 턱짓으로 옹기승을 가리켰다.

“이 녀석에게 술법이 걸렸던 걸 알 수 있겠나?”

“커험, 어디 한 번 보겠소.”

정류광이 헛기침을 하고는 짐짓 근엄한 척 옹기승에게 다가갔다.

옹기승은 눈을 꼭 내려 감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류광은 옹기승을 가운데에 두고 빙글빙글 돌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사이 사비강이 추량을 돌아보았다.

“가져온 사령환 일단 나한테 넘겨라.”

“여기 있습니다.”

사비강이 사령환을 받아들고는 추량에게 명했다.

“넌 돌아가서 신생조를 챙기도록 하고, 이곳에 나는 오지 않은 것으로 모두 입을 맞추도록.”

“알겠습니다.”

추량이 돌아가고 나자, 정류광이 불쑥 말을 꺼내 왔다.

“겉으로 봐서는 자세히 모르겠소. 우선 이자의 넋을 살펴봐도 되겠소?”

“좋을 대로.”

“그럼.”

정류광이 소매를 걷어붙이더니 양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옹기승의 가슴에 갖다 대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은은한 황금빛 기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별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정류광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갔다.

환술 등의 술법은 상단전 즉, 뇌에 축적된 기운이 작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신체를 격하게 움직이지 않더라도 체력 소모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그가 손을 거두고는 심호흡을 했다.

“일단 하나의 대법과 하나의 술법에 걸려들었소.”

“대법은 알겠고, 술법은?”

“환술의 일종이긴 하지만 조금 다른 것으로, 사이한 기운이 이자의 영을 속여 스스로 다른 상황을 재현하도록 했소.”

“쉽게 풀어서 말해.”

“한 마디로 기억이 조작되어 있다는 거요.”

“되돌릴 수 있겠나?”

“가능하오. 하지만….”

정류광이 옹기승을 보며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법을 풀 수는 없소. 마교에서나 사용할 것 같은 이 대법은 내 사부님이 오지 않는 이상 풀기 힘들 거요. 아니, 사부님이라도 장담할 수 없소.”

“흐음. 이 녀석에게 걸린 대법이 정확히 어떤 종류지?”

“그건 나로서도….”

정류광이 말끝을 흐리며 구강룡을 보았다.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 구강룡이 침을 탁 뱉고는 말했다.

“환옥봉인대법이라고 들었소.”

“환옥봉인…!”

정류광이 꿈틀거리자, 사비강이 물었다.

“알고 있는 건가?”

“환옥봉인대법은 그자의 가장 끔찍한 기억을 이용해서 영원한 악몽에 가둬 두는 것이오.”

“호오, 그래?”

사비강의 눈이 빛을 반짝였다.

어차피 시간이 없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류광의 사부를 언제 찾는단 말인가?

“좋아, 도박을 걸어 보지.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무슨 말이오?”

“이 녀석의 기억이 조작된 것을 원상태로 회복시켜 봐.”

“그런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요. 대법은 깨지지 않을 테니.”

“그건 어쩔 수 없고.”

“끄음…! 알겠소.”

“얼마나 걸리겠나?”

“비교적 간단한 술법이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요. 상단전에 머문 사이한 기운을 제거하는 정도면 충분할 테니.”

“좋아. 서둘러 줘.”

사비강이 팔짱을 끼며 옹기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옹기승은 이따금씩 꿈을 꾸는 것인지 아주 미세하게 눈꺼풀을 움직이기도 했다.

**

“제발… 이제 그만…!”

어린 구기승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두 손을 내려다보니 핏물로 잔뜩 얼룩져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손에 돌아가셨다.

벌써 몇 번째 아버지를 죽인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 끔찍한 악몽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정신적 고통이 극한으로 치솟았을 때, 경련을 일으키듯 꿈에서 깨어났다.

“헉, 헉, 헉…!”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발… 이제 그만…!’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사부님이 쓰러져 있었다.

사부님의 가슴에는 아버지의 검이 꽂혀 있었고, 아버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겨우 악몽에서 깨어났더니 다시 악몽이 펼쳐져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

이미 수백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렇다.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의지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앎과 삶이 별개로 움직인다.

지독한 악몽에 갇혀서 벗어날 방법도 알 수가 없다.

이 세상 자체가 뇌옥이고 끔찍한 지옥이다.

“커억! 너, 너…! 정신 차려라!”

귀를 때리는 절박한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덧 오른손에 아버지의 머리가 잡혀 있었다.

손을 놓고 싶다는 충동이 잠깐 일어났지만, 그보다 뱃속부터 끓어오른 분노가 더욱 강했다.

구기승이 소리쳤다.

“어째서 죽인 겁니까?”

“크억…! 어쩔… 수가… 내 모든 걸 설명할 테니…. 커억!”

“어째서엇!”

“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퍼억!’ 터지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머리가 터져 나간 아버지의 형체는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거친 숨이 토해져 나왔다.

손이 덜덜 떨렸다.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기랄!’

벗어나고 싶다.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하지만 또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눈을 뜨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로 돌아가 신생조원들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리라.

하지만…

마침 아스라이 귓가에 들리는 금속성.

구기승은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꿈…’

저 금속성이 신생조원들의 훈련소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이번만큼은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깨어나길!

고개를 들었다.

푹!

섬뜩한 파육음 끝에 쓰러지는 사부의 모습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아버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제기랄…!’

또 깨어나지 못했다.

이대로 정신이 미쳐 버리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제발 그마아안!”

그가 버럭 소리치는 순간, 귓가를 때리는 처절한 목소리.

“커억! 너, 너…! 정신 차려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자신의 손에 아버지의 머리가 붙잡혀 있다.

이젠 분노와 허탈감이 뒤섞여 피식피식 웃음마저 흘러나왔다.

이대로 미쳐 가는 건가 싶다.

그때였다.

‘나와라!’

갑자기 뇌리를 울리는 강렬한 목소리!

‘누구…?’

구기승은 아버지의 머리를 쥔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처음으로 꿈의 양상이 달라진 상황이다.

‘나와라! 나는 너다!’

다시금 강렬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제기랄! 누구냐!”

구기승이 제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아무렇게나 부려진 아버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승아, 대체 왜 그러느냐?”

“시끄럿!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말했잖아. 나는 너라고.”

“……!”

놀랍게도 그 목소리는 본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구기승이 두 눈을 크게 부릅뜨는데,

쑤우우욱!

그의 몸이 마치 이형환위를 펼친 것처럼 스르르 쪼개지더니 두 명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닌가?

한데 좀 달랐다.

그랬다.

조금 전까지 아버지의 머리를 쥐고 있던 것은 아직 어린 구기승이었다.

그런 구기승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성인이 된 옹기승이었다.

옹기승이 구기승을 빤히 바라보았다.

구기승의 눈동자는 온통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구기승의 전신에서 괴이한 사기가 풀풀 휘날렸다.

구기승이 이를 빠득 갈며 옹기승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옹기승이 구기승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장담할 수 있는가? 너의 악몽이 진리라는 것을.”

“뭔… 개소리냐?”

“왜곡을 보지 말고 진리를 보아라.”

“헛소리 집어쳣!”

팟!

순간 구기승이 몸을 날려 옹기승을 덮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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