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
귀환 마교관
302화
“끄으으윽!”
옹기승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그의 사지를 구속하고 있는 사슬 갈퀴를 따라서 기묘한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옹기승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오른팔에 사슬 갈퀴를 던져 구속하고 있던 흑의인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해 훅 딸려가다가 가까스로 멈춰 섰다.
옹기승의 저항이 심해질수록 열여섯 방향에서 알 수 없는 주문을 읊는 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상단성 전체가 그들의 주문으로 인해 공명하면서 기묘한 울림이 연신 이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구강룡이 미간을 슬쩍 구겼다.
“얼마나 남았지?”
“말하지 않았소? 한 식경은 걸린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남은 시간을 묻는 거지.”
“여태까지 옆에 같이 있지 않았소? 이제 겨우 일각 정도가 지났을 뿐이오.”
흑면인이 우습다는 듯 중얼거리자, 구강룡이 이맛살을 구기고는 말했다.
“난 이렇게 시간 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군.”
흑면인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아니라 막상 지켜보고 있자니 동생이 안타까워진 건 아니….”
“주둥아리 조심하라고 했을 텐데.”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구강룡이 흑면인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구강룡의 기세가 사납게 변하자 흑면인이 싸늘한 조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뭔가 초조해 보여서 한 말이오.”
“초조하긴. 말했다시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같다고 했을 뿐이다.”
“남은 일각만 더 기다리시오. 그럼 당신 동생은 얌전한 시체나 다름없어질 테니까.”
“흥! 실수나 하지 마라.”
구강룡이 흑면인의 멱살을 던지듯 놓아 주었다.
흑면인은 그런 구강룡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옆을 힐끔 보니 구강룡은 뭔가 다른 생각을 골몰히 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듯 어딘지 불편한 모습.
그때였다.
크르러러렁!
사나운 포효가 일어났다.
옹기승이 발산한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옹기승의 몸에서 우러나온 검붉은 기운이 악마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 내면서 포효하는 소리였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맹한지 지붕 위에 서 있던 흑면인과 구강룡조차 몸을 움찔 떨고는 한 걸음 물러날 정도였다.
“저, 저것이…!”
“…선천마령지기의 실체요.”
흑면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잖아도 초승달처럼 휜 눈이 더욱 가늘어지면서 웃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그는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맹한 기운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지도…!’
옹기승의 몸에 깃든 악마는 적어도 중급 이상이리라.
쿠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악마의 형체가 포효했다.
그 울림이 어찌나 큰지 지붕에 얹힌 기왓장이 다르르 떠는 소리를 내질렀다.
동시에 형상화 된 기운이 증폭되더니 이내 성주전의 크기만큼이나 팽창하는 것이 아닌가?
구강룡이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 들고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걸 봉인할 수 있는 게 확실한 거겠지?”
“물, 물론이오. 대법이 실패할 리는 없소.”
흑면인은 호언장담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옹기승이 품고 있던 선천마령지기의 실체가 워낙 강맹한 기운을 뿜는 탓에 절로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때마침 십육방에서 주문을 읊는 흑의인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들이 내는 공명음이 마치 쇠사슬로 변해서 형상화 된 기운을 옭아매는 듯했다.
크르르르렁!
맹수와 같은 포효를 연신 내지르던 악마는 주문이 계속되면서 점점 지쳐가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쿠아아아앙!
콰콰콰콰쾅!
하늘을 우러러 거칠게 내지른 포효로 인해 강맹한 기풍이 사방으로 불어나갔다.
지붕마다 기왓장이 모두 날아갈 정도로 맹렬한 기세였지만, 구강룡과 마령교 무인들은 악착같이 버텨 내면서 자리를 지켰다.
후우우우우웅!
이윽고 소용돌이와 같은 기풍이 세차게 일어나더니 악마의 형상은 순식간에 줄어들면서 옹기승의 가슴으로 잠겨 드는 것이 아닌가?
눈에 띄는 변화에 구강룡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뒤이어 흑면인이 소리쳤다.
“좋아, 지금이다! 마무리해라!”
그의 명에 힘을 얻은 흑의인들이 더욱 큰소리로 주문을 읊어 갔다.
“반살라만 수라마혼지천…”
옹기승의 신체 주변으로는 검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맺혀 있었지만, 전처럼 어떠한 형상을 나타내 보이진 않았다.
그마저도 연기처럼 넘실대던 기운이 차츰 그의 몸 안에 완전히 갈무리되고 있었다.
구강룡이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물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반각 정도 지나면 환옥봉인대법(幻獄封印大法)이 완성될 거요. 그럼 저자는 깨어날 수 없는 악몽에서 영원히 갇히게 되는 거지.”
“환옥봉인대법?”
“그렇소. 대상이 가진 기억 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괴로운 곳으로 몰아넣는 대법이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환옥에 갇힌 이상 일 년 이내에 미치광이가 되고 말 거요.”
“그렇군. 대법이 완성되면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어쩌긴. 저자를 데리고 본교로 돌아갈 생각이오만. 설마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하려는 건 아닐 테지?”
“그냥 물어본 것일 뿐이다.”
구강룡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리고는 속으로 가만히 뇌까렸다.
‘젠장,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요?’
그가 조금은 신경 쓰이는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쿠콰아아아앙!
저만치 하단성에서 온통 붉은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 어마어마한 열기에 상단성 건물 지붕 위에 서 있던 구강룡의 얼굴까지 화끈거릴 정도였다.
구강룡은 물론 함께 있던 흑면인조차 놀란 것인지 움찔거리고는 하단성에서 솟아오른 불기둥을 보았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화력.
저 정도의 화력이라면 하단성이 통째로 날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구강룡의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신 건가!’
반면 흑면인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구강룡을 휙 돌아보았다.
“설마 우릴 속인 건 아닐 테지!”
“무슨 소린가? 난 모르는 일이야.”
구강룡은 은근 짚이는 바가 있었지만 태연한 척 표정을 굳혔다.
흑면인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우리를 속인 거라면 큰 실수를 하는 거요.”
“글쎄, 난 모르는 일이라니까.”
“좋소. 두고 보면 알 테지.”
흑면인이 시선을 다시 하단성 쪽으로 옮겼다.
마침 중단성으로 오르는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오르는 한 명의 사내를 보았다.
제법 먼 거리였기에 그 얼굴까지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상대가 단 한 명이라는 사실에 그는 적지 않게 놀랐다.
‘겨우 한 명…?’
하지만 조금 전에 일어난 폭발은 엄청난 규모가 아니었던가?
**
사비강은 계단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하단성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단성에 지어진 모든 전각은 완전히 전소되었다.
시커먼 재만 남은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도저히 생명체가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이것이 헬 파이어의 진정한 위력이다.
지금껏 사비강은 하이 레벨의 마법을 이렇게 마음 놓고 써 본 적이 없었다.
대체로 하이 레벨의 마법을 쓰더라도 어느 정도 힘을 조절해서 규모를 최대한 축소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하군. 잊었던 감각이 돌아오는 기분이야.’
그의 입가에 어딘지 야비한 미소가 감돌았다.
강맹한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은 언제나 묘한 쾌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그 순간으로 만족해야한다.
여기에 심취해 버리게 되면 마족이나 자신이나 다를 바가 없어지리라.
한때 그렇게 심취해서 스스로 마족인 것처럼 살아 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결말은 결코 좋지 못했다.
자신을 따르던 수하들을 모두 죽게 만들었고, 자신 역시 뒤통수를 맞았으니까.
‘그나저나 그 건방진 적면인도 죽었는지 모르겠군.’
시커멓게 그을린 시체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홀라당 타 버렸다.
적면인의 시체를 찾아보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이미 허비한 시간이 많다.
사비강은 하단성 입구에서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추량에게 전음을 보냈다.
[넋 놓고 보고만 있지 말고, 내가 중단성을 깨부수면 차근차근 따라오도록.]
[아… 예! 알겠습니다! 사부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됐고. 하오문의 정 총관을 데려오란 말이다.]
[아…, 예.]
추량이 머쓱해하는 대답을 들으며 사비강이 중단성으로 올라왔다.
조금 전 그는 상단성에 우뚝 치솟아 오른 괴형의 기운을 확인했다.
그것은 분명히 악마의 형상이었다.
뭔가 시작됐다는 증거다.
사비강이 중단성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슈슈슈슈슈슉!
이번에는 검은 옷을 입은 무인들이 그의 앞을 막아서면서 가득 떨어져 내렸다.
그들에게서 팽팽한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들은 한 치의 방심도 하지 않았다.
하단성에서 치솟은 불기둥이 바로 사비강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했기 때문이다.
사비강이 그들을 훑어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길을 열든지, 장렬히 죽든지 택해라.”
말을 마친 사비강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에서는 살기가 폭발하듯 우러나왔다.
그 강맹한 기운에 흑의인들은 저마다 마른 침을 삼키고는 움찔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길을 막아서야 할 터인데…
스스스슷…!
저도 모르게 길을 열고 있다.
‘크윽…!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흑의인 수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소리쳤다.
“한심한! 뭣들 하느냐! 이자를 막아라!”
그가 용기를 내어서 제일 먼저 사비강 앞으로 날아가 우뚝 막아섰다.
그러자 다른 흑의인들도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재빨리 수장의 곁으로 몰려들면서 사비강을 막아섰다.
수하들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따르자, 기세가 오른 수장이 검을 척 내밀고는 소리쳤다.
“노옴! 무슨 사술을 부린 건지 모르겠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둘 줄 아느냐!”
“…….”
사비강이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웃어…?’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도 이제 손맛을 살짝 봤는데, 이대로 쫄아서 나서지 않을까 봐 걱정했잖아. 고맙다. 내게 잊었던 즐거움을 다시 선사해 줘서.”
“뭐라?”
사비강은 대답하는 대신 손바닥을 쭉 뻗더니 나직이 읊조렸다.
“볼케이노(Volcano).”
“보, 볼… 뭐? 무슨 되도 않는…!”
그때,
쿠구구구구구궁!
짜르르르릉!
땅바닥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리는 바람에 흑의인들은 제대로 중심을 잡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곧이어,
쩌어어어억!
상단성으로 오르는 높은 계단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뜨거운 용암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쿠아아아아!
화르르륵!
순식간에 터져 나온 용암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면서 계단 아래에 자리 잡은 백여 명의 흑의인들을 거침없이 덮쳤다.
“크아아악!”
“으히익! 이, 이게… 뭔… 아아악!”
한편,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허공으로 떠오른 사비강은 지상에서 펼쳐지는 참혹한 광경을 보며 음산한 웃음을 머금었다.
용암에 삼켜지는 흑의인들이 보기에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