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
귀환 마교관
301화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적마단을 구성하는 무인들의 무공 실력 하나하나가 고강한데다 머릿수에서도 차이가 많이 났다.
게다가 신생조원들은 이미 흑의인들과 한 차례 격한 전투를 치르면서 기력이 바닥을 드러내던 상태.
애초에 오래 이어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처절하게 싸우면서 버텼다.
그렇다.
처절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잔혹하고 힘든 싸움이었다.
등자경은 옆구리를 깊게 베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진조영은 적마단주의 일장을 복부로 받아 내면서 내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두 사람 외에도 깊은 부상을 입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조원들이 있었다.
조장 맹가숙은 부상을 입은 자들을 가운데에 몰아두게 하고 그들을 에워싸듯 대열을 정비해 사방을 경계했다.
하지만 경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상황.
맹가숙은 적마단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 분명 이 기운은….’
다른 신생조원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이들이 내뿜는 사이한 기운이 어딘지 모를 이질감이 든다는 것뿐, 정확히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맹가숙만큼은 이 기운의 정체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이건 분명히… 마기(魔氣)다!’
신생조원들이 마기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오래 전 정마대전이 종료된 후 대부분의 무인들은 마공을 익힌 자들을 직접 대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강호에서 마인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는 마기를 숨긴 채 행동해왔다.
때문에 적마단이 뿜어대는 기운이 생소하고 이질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마기’라는 건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맹가숙은 달랐다.
신생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그는 오래 전 마인을 만나 마기를 느낀 적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적마단이 내뿜는 기운이 바로 ‘마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조원들이 동요할 것을 염려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한편, 다리를 절뚝이는 백공보가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투덜거렸다.
“제길, 교관님은 안 올 생각인가보군.”
그러자 방각이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리듯 답했다.
“아마 우리가 여길 온 것도 모를 걸?”
“설마. 그렇게 대놓고 조퇴를 했는데?”
“그냥 수업을 하기 싫었던 거겠지.”
방각의 말에 백공보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교관이 아니던가?
“그래도 교관님이 계셨다면 이것들 쯤은….”
말을 뱉던 백공보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평소에는 죽이려고 달려들던 상대에게 구조를 바라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뭔가 우스웠다.
마침 적마단의 뒤쪽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적면인은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말로만 듣던 신생조답군. 이렇게까지 버틸 줄이야. 하지만 여기까지다. 전부 쓸어버려.”
“존명!”
적마단이 대답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밀려드는 순간,
팟!
갑자기 그들의 눈앞에 낯선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짓말처럼 홀연히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사비강이었다.
적면인의 눈이 커졌다.
‘저자는…?’
인상착의로 미루어보아 그동안 말로만 듣던 사비강이 틀림없다.
게다가 신생조원들이 외치는 소리가 그것을 증명했다.
“교관님!”
“역시 오셨군요!”
신생조원들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지금까지 교관의 얼굴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던가?
반면 사비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처참한 몰골의 신생조원들을 보고는 툭 던지듯 물었다.
“몸이 안 좋아서 조퇴한다더니 여기서 뭐하는 거냐?”
“…….”
신생조원들이 입을 다물고는 멍하니 사비강을 보았다.
이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그걸 정말로 믿었던 거냐!’
사비강은 딱히 대답을 듣고 싶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는 듯 몸을 돌리고는 적마단을 훑어보았다.
“우리 애들에게 너무 심한 짓을 했군. 조금 화가 나려고 하네.”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사비강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살기는 지금껏 어느 때와 비교하기도 힘들 만큼 강렬했다.
적면인이 표정을 꿈틀거리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언젠간 부딪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강하다.
그렇다면 역시 선공이다.
“뭣들 하는가? 쓸어라!”
“존명!”
잠시 주춤거렸던 적마단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사비강이 한손을 뻗더니 마법을 캐스팅했다.
“아이스 스톰(Ice Storm)!”
찰나,
쑤아아아앙!
사비강 바로 앞에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형성되는가 싶더니 성문 쪽에서 달려들던 적마단을 향해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우앗!”
“피해랏!”
적마단이 일시에 흩어지면서 피하는데,
콰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얼음덩어리가 조각조각 깨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푸푸푸푸푸푹!
“컥!”
“크억!”
비수처럼 변한 얼음 파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적무단 무인들이 비명을 터뜨리면서 쓰러져 갔다.
한데 이어진 상황이 더욱 놀라웠다.
“도, 도대체 저건…!”
얼음 파편에 맞은 무인들 중 급소를 피했더라도 몸이 점점 차갑게 굳어 가면서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진 것.
그러다 보니 성문까지 일직선으로 길이 열린 셈이 되었다.
사비강이 추량과 맹가숙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부상자들을 데리고 우선 나가 있어. 내가 부르면 와라.”
“알겠습니다!”
추량과 맹가숙이 동시에 대답하고는 부상자들을 부축해서 열린 길을 통해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정류광도 그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적면인은 사비강의 마법을 보고는 뺨을 씰룩였다.
“과연… 과연… 마공을 익혔구나!”
“뭔 헛소리냐? 이건 ‘마법’이라는 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놈을 죽여라!”
적면인이 버럭 소리 지르자, 적마단의 기도가 사뭇 달라졌다.
사비강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마기를 마나로 바꾸는 것인가?”
아니다.
이건 좀 다르다.
마기 자체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일반적인 내공을 운용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고 마나의 운용 체계와도 다른 것이 느껴진다.
그들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을 보면 알 수 있다.
‘적어도 마나를 운용하는 거라면 저렇게 밖으로 마기가 분출하진 않을 터.’
일전에 청면인들과 싸울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자들이 대체 어떻게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까?
물론 정순한 내공의 기운과 사기가 다르듯 마기 또한 완전히 결이 다르다.
정, 사, 마의 기운 중에서 마계와 가장 연관이 깊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마기다.
혹시 거기에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들의 마기 운용 방식과 마족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이 닮아 있다면?
아마도 그건….
‘마령이라는 녀석이 그 비밀을 알겠지.’
그리고 정류광이 그에게 넘긴 기물 중 뭔가가 그를 일깨운 것이리라.
“뭐, 마계의 존재에 대해 아는 자가 나만이 아니라는 건 외롭지 않아서 좋긴 한데… 그래도 이딴 식으로 그 힘을 써먹겠다면 계도해 줄 수밖에.”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무슨 말이냐면… 네놈들을 이제부터 다 쓸어버리겠다는 뜻이다.”
“미친놈! 죽어라!”
적면인이 앙칼지게 소리치며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애초에 그가 이곳에 온 것은 구강룡의 협조로 선천마령지기를 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방해자가 생겼다.
그것도 사사건건 자신들의 계획을 망쳐 오던 자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이용해 아예 매장시켜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그가 허공으로 도약한 상태에서 적마단원들을 향해 명했다.
“놈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라!”
“존명!”
순간 적마단원들이 일시에 손을 모으더니 저마다 벼락처럼 소리쳤다.
“화염구!”
다음 순간 수백 개의 파이어 볼이 나타나더니 일시에 사비강을 향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슈르르륵!
화르르륵!
콰콰콰콰콰콰앙!
그야말로 불지옥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생조원들은 입을 척 벌리고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맙소사… 대체 저게 무슨 무공이야?”
“극양의 기운을 가진 무공인가?”
유송령과 방각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맹가숙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 지닌 무공은 마공이다.”
그의 말에 신생조원들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마공이라니!”
“그럼, 저들은 마교라는 말이야?”
맹가숙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 저들이 사용한 무공은 마공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지금까지 느껴졌던 기운과 묘하게 결이 다른 느낌이라서….”
그 말만큼은 다른 신생조원들도 동의하는 바였다.
조금 전까지는 적마단으로부터 어딘지 음침하고 사이한 기운을 느꼈다.
한데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또 다르다.
무척 생소한.
그렇다고 완전히 낯설지도 않다.
그래, 지금 저들에게서 느껴지는 모종의 기운은 지금까지 사비강에게서 느껴지던 것과 결이 비슷하다.
그걸 눈치 챈 방각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설마… 우리 교관이 마교 출신은 아닌 거지?”
“어느새 우리 교관이냐?”
“뭐… 어쨌든 신생조를 책임지고 있으니까.”
맹가숙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러진 않을 거다. 교관에게서는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마기는 내가 직접 느껴 본 적이 있으니 헷갈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군.”
방각의 말에 유송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교관님이 죽으면 다행이라고만 할 수도 없을 텐데.”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사비강에게 향했다.
아직도 수많은 불덩이가 사비강을 향해 마구잡이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저것들이 감히 내 낭군님을…!”
보다 못한 설서린이 채찍을 쥐고 달려 나가려고 했지만, 추량이 얼른 그 앞을 막아섰다.
“위험하오. 우선은 설 소저의 몸부터 돌보시오!”
“비켜! 만약 이대로 저이가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겨우 그 정도밖에 못 믿소?”
추량의 눈매가 어느새 매서워졌다.
그 눈길을 받은 설서린이 흠칫거리고는 가만히 추량을 응시했다.
잠시 후 그녀가 피식 웃음을 짓고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흥! 이대로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육시(戮尸: 시체를 훼손하는 일)라도 해버릴 줄 알아.”
섬뜩한 말을 들으면서 추량은 불안한 눈길로 사비강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불덩이 폭격이 거의 끝나고 사비강이 서 있던 자리는 분화구처럼 움푹 파인 채로 온통 연기와 먼지로 자욱했다.
‘사부님! 호락호락 당하지 마시라고요! 저 미친년이 사부님을 육시하겠다고 지랄 발광하면 저도 막을 자신 없으니까요!’
한편, 어마어마한 양의 불덩이를 쏟아 부은 적면인은 이윽고 훌쩍 물러나 건물 지붕 위에 올라서 공터 복판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잔잔한 비소가 떠올랐다.
‘진작 이래야 했어. 내가 나섰더라면. 아니, 적마단만 보냈어도 어쩌면 충분했으리라.’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아직 먼지와 연기로 자욱해서 사비강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지만, 저 불지옥에서 살아남을 리는 없다.
“성문 밖으로 나간 녀석들은 어쩔까요?”
어느새 다가온 적마단주가 적면인에게 물었다.
“어차피 우리 목표는 선천마령지기다. 성문을 걸어 닫고 쳐들어오는 놈만 조지면 돼.”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누구 마음대로 성문을 걸어 잠그래?”
희뿌연 먼지와 연기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
적면인 뿐만 아니라 적마단원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연기 속을 응시했다.
연기와 먼지가 차츰 걷혀 가자 공터 복판에 여전히 우뚝 선 검은 그림자가 드러났다.
마침내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예의 그 섬뜩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뜨거운 맛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어, 어떻게 그런 공격을 맞고도…!”
적면인이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이 양손을 활짝 펼치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제 내가 더 뜨거운 맛으로 보답하마.”
“무, 무슨…?”
“헬 파이어(Hell Fire)!”
다음 순간, 적면인은 두 눈을 부릅뜨고는 경악한 표정으로 비명처럼 외쳤다.
“말, 말도 안 돼!”
그의 눈동자에 온통 붉은 불기운이 가득 들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