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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00화 (300/670)

# 300

귀환 마교관

300화

“당시 옹기승을 거둔 자는 한때 ‘청해자(靑海子)’라는 별호로 알려진 도인이었소. 그의 이름이 옹해인(雍海仁).”

“그의 성을 따서 옹기승으로 개명한 모양이군.”

“그렇소.”

사비강의 말에 정류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저만치 흑운성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류광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서 말을 이었다.

“청해자 옹해인은 구기승에게 수면신공을 전수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소. 구기승은 옹 씨 성을 이어 받고 장례를 지낸 후 혈사련으로 돌아왔지.”

“왜 다시 돌아왔지? 혈사련에는 구강룡이 있었을 텐데.”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다만….”

정류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알아 버린 건지도 모르지.”

“피할 수 없는 운명?”

“숨고 도망쳐 봐야 언젠간 부딪칠 일이 아니겠소? 그렇다고 죄책감에 자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깔끔하게 매듭을 짓자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군.”

“그렇소. 련주가 그를 받아들였으니, 구강룡도 옹기승을 함부로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테지. 하지만 곪은 상처는 언젠간 터지는 법.”

“구강룡이 사고를 치기 시작한 건가?”

“그렇소. 살풍단주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점점 삐뚤어져 갔소. 그로서는 아버지를 죽인 동생을 다시 받아 준 련주가 이해되지 않았을 거요.”

“하긴. 그럴지도.”

“사실 나도 그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소. 왜 혈사련주가 옹기승을 받아 줬는지. 엄밀히 따지자면 혈사련주로서는 옹기승이 자신의 수하들을 죽여 버린 화근인데 말이오. 살려 둘 이유가 없지 않소?”

“으음.”

사비강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사실 정류광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비강은 짚이는 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걸 굳이 이 자리에서 떠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구강룡은 사고를 계속 쳐서 신생조까지 밀려났고, 옹기승은 왜?”

“그것도 참 웃기는 일이오. 옹기승이 익힌 건 수면신공이지. 수면신공은 도가 사상이 진득하게 녹아 있는 무공이오. 그러다 보니 조직 생활에 어울리기나 하겠소? 생각해 보시오. 앞에서 대주나 조장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얼마나 복장이 터질 노릇이겠소?”

사비강은 대충 짐작이 갔다.

물론 옹기승이 졸고 있다고 해서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 자체가 조직 생활에는 어울리지 않았으리라.

사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는 사이 세 사람은 흑운성이 위치한 산 입구에 다다랐다.

정류광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날 왜 이렇게 끌고 가는 거요?”

“당신이 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사비강이 툭 던지듯 대꾸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갔다.

**

“헉, 헉, 허억.”

석탄강이 양손을 척 늘어뜨리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두 손에는 피 묻은 사슬낫이 들려 있었다.

“저… 괴물 같은 놈…!”

“정말이지 징글징글한 녀석이군!”

석탄강을 둘러 싼 흑의인들이 어금니를 빠드득 갈며 중얼거렸다.

하단성 공터에는 수십 명의 무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사슬낫에 목숨을 잃은 자도 있었고, 팔다리 중 일부가 절단된 자도 있었다.

그들 모두 석탄강에게 당한 것이었다.

단 한 사람에게.

석탄강이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주변을 차가운 눈초리로 훑어보았다.

그 맹수 같은 눈빛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흑의인들이 움찔거리자, 석탄강이 입매를 히죽 올리고는 물었다.

“네놈들에게서는 요상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그런데 이상하게 낯설진 않단 말이야. 어디선가 느낀 적이 있어. 그게 어디더라….”

석탄강의 말에 흑의인들이 콧잔등을 씰룩였다.

여전히 자신들은 수십 명이나 살아남았는데, 저렇듯 여유를 부리는 모습에 짜증이 일어난 것.

마침 석탄강이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렇군. 하지만… 왜지?”

석탄강은 여전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르겠군. 왜 그런 건지. 그냥 물어보는 게 낫겠어. 너희들!”

석탄강이 낫을 불쑥 들어 올리고는 흑의인들을 가리켰다.

흑의인들이 움찔거리면서 물러나다가 곧 자신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 듯 인상을 팍 구겼다.

흑의인들 중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이를 갈며 물었다.

“뭐냐?”

“어째서 너희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그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냐?”

“뭔 개소리냐?”

“옹기승 말이다. 왜 네놈들에게서 그 녀석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 거냐?”

“그딴 건 네 친구 놈에게 물어봐라.”

“그 녀석이 원체 말이 없는 놈이라서 말이지.”

우두머리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상대가 객기를 부리면서 입을 나불거리고 있지만, 석탄강은 곧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기력이 다해 숨을 헐떡이면서 어깨까지 들먹이고 있지 않은가?

그가 흑의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놈의 발악도 끝났다. 조져라!”

다음 순간, 흑의인들이 저마다 칼을 부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석탄강이 바닥을 차고 마주쳐 갔다.

공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기에 내공 소모가 심한 절초는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최소한의 공력을 이용해서 날아드는 적들을 찍어 버리거나 피해 가면서 싸웠다.

쉬익! 푹! 쉭! 푹!

“크아악!”

“끄아악!”

비명과 함께 핏줄기가 흩뿌려졌다.

하지만 적이 너무 많았다.

마침내 석탄강에게 빈틈이 생겼고, 적의 살검이 짓쳐들어 왔다.

쉬컥!

“크읏!”

옆구리를 베인 석탄강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다시 적의 칼자루가 석탄강의 목을 노리면서 날아들었다.

‘제길…! 여기까진가?’

이번에는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죽음의 순간 눈을 감기는 싫었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죽으리라!

그런데 그 순간,

쉬이이잇! 까앙!

어디선가 날아든 비수 한 자루가 적의 칼자루를 쳐내는 것이 아닌가?

휘청거리면서 물러난 흑의인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다음 순간, 그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저것들은 또 뭐야?”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석탄강이 비틀거리며 몸을 돌렸다.

하단성의 성문을 지나 한 무리의 무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강아!”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오는 자는 다름 아닌 유송령이었다.

석탄강이 피식 웃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가 흑의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다 죽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개 같은 새끼들! 네놈들이 강아를! 이것들 피부를 홀딱 벗겨서 소금을 쳐 사막에 던져 버리겠다!”

유송령이 귀신처럼 소리치면서 거신도를 휘둘러 왔다.

**

적면인은 활짝 열린 성문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건 아직도 일을 치르는 중이라는 건가? 역시 적마단(赤魔團)을 이끌고 오길 잘 한 걸지도.’

그의 뒤에는 붉은 옷을 입은 무인들이 대략 삼백여 명 정도 도열해 있었다.

그가 수신호를 내리자 적마단원들이 일제히 성문 안으로 달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선 적면인은 순간 하단성에 일어난 장면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석탄강을 비롯한 신생조원들이 온통 피 칠갑을 한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주변에는 흑의인들이 죽거나 부상당해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한편, 이제 막 흑의인들을 완전히 제압한 신생조원들은 느닷없이 성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붉은 옷의 무인들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것들은 또 뭐야?”

맹가숙이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면서 투덜거렸다.

신생조가 석탄강을 돕기 위해 도착했을 때는 흑의인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곧 중단성에서 지원을 나온 흑의인들 때문에 싸움이 쉽진 않았다.

인원이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중단성에서 지원을 나온 흑의인들은 무공의 수준이 훨씬 고강했던 것이다.

그런 자들을 겨우 쓰러뜨렸더니, 이건 또 웬 놈들이란 말인가?

적마단은 순식간에 신생조를 둥글게 포위했다.

삼백 명.

압도적으로 우세한 머릿수다.

게다가 조금 전의 흑의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맹한 기운이 느껴진다.

“너희들, 뭐냐?”

백공보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팡팡 치면서 물었다.

적면인은 그를 비롯한 신생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소를 지었다.

“먹이만 온 게 아니었던 모양이군. 이것들 다 쓸어 버려라.”

“존명!”

적마단원들이 일시에 대답하면서 신생조원들을 향해 붉은 물결처럼 쏟아져 나아갔다.

“니미럴, 구강룡이 이젠 별의 별 놈들을 다 끌고 다니는구나! 오냐, 어디 한 번 혈무를 추자꾸나!”

맹가숙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치며 구절창을 휘둘러 갔다.

**

뚝… 뚝…

옹기승은 팔뚝을 타고 흐르다가 손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았다.

이번에는 자신의 피였다.

전신을 난자당한 그는 두 발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상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아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는 점이다.

과연 사슬 갈퀴를 사용하는 흑의인들은 저 웃는 인상의 남자가 명한 대로 생포에 초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옹기승의 기력이 다한 것을 확인한 흑면인이 다시 손을 들어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사슬 갈퀴를 든 흑의인들이 동시에 갈퀴를 날려 왔다.

촤르르르륵! 콱! 콱! 콰콰콱!

“크읏!”

뼈다귀 갈퀴는 그대로 옹기승의 양팔과 다리, 목 등을 움켜쥐면서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옹기승이 입술을 악다물고 버티려고 했지만, 중단성을 뚫고 올라오면서부터 이미 많이 지쳐 있던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의 양손과 다리가 활짝 펼쳐지자, 흑면인이 다시 손을 들어 수신호를 보냈다.

슈슈슈슉!

그러자 이번에는 열여섯 방향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솟아올라 왔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칼끝을 이용해 바닥에 모호한 문양을 새겨 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괴이한 문양이 완성되자 갈퀴로 옹기승을 구속한 여덞 명의 흑의인들과 그 밖에서 열여섯 명의 흑의인들이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법이 시작된 것이다.

“끄으으윽!”

사지가 구속된 옹기승은 전신에서 핏줄이 도드라지면서 온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구강룡이 흑면인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얼마나 걸리는 거지?”

“한 식경 정도 걸릴 거요.”

“대법에 성공하면 어찌 되는 거지?”

“훗, 이제 와서 설마 동생이 걱정되기라도 하는 거요?

“그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면 좋은 꼴을 못 볼 텐데.”

구강룡이 나직이 으르렁거렸지만, 흑면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옹기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자는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상태가 될 거요. 혼백이 봉인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테니. 일종의 강시와 같은 상태가 되지. 물론, 쓸모가 다하면 죽일 거요.”

구강룡이 고개를 돌려 옹기승을 보았다.

그는 속으로 가만히 뇌까렸다.

‘너 자신을 탓해라. 이 모든 건 네놈이 아버지를 살해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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