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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97화 (297/670)

# 297

귀환 마교관

297화

흑운성 앞에 다다른 두 사람은 높은 성곽을 올려다보았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흑운성.

그 이름처럼이나 성벽은 온통 검은 돌로 채워져 있었다.

흑운성은 총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제일 아래쪽에 위치한 성벽으로 보호된 곳을 ‘하단성(下壇城)’이라 불렀고, 그곳을 지나서 나타나는 두 번째 관문을 ‘중단성(中壇城)’, 마지막으로 성주가 머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상단성(上壇城)’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결국 상단성까지 가기 위해서는 하단성과 중단성을 지날 수밖에 없었다.

석탄강이 높은 성문을 올려다보다가 옹기승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수업 빼먹고 여길 온 걸 알면 교관님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겠군.”

“걱정되면 돌아가도 돼.”

옹기승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석탄강이 사슬낫을 양손에 쥐고는 피식 웃었다.

“널 데리고 돌아가지 않으면 그 인간이 더 난리칠 것 같아서 말이다.”

옹기승도 웃어 버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가 성벽 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구강룡! 내가…!”

한데 그가 말을 마저 잇기도 전에,

그그그그그…긍!

육중한 소리와 함께 성문이 스르르 열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어서 들어오라는 듯 아무런 방비도 없이 열린 문.

석탄강과 옹기승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옹기승이 피식 웃었다.

“것 봐. 날 기다리고 있었다니까.”

“잠이나 자라. 너무 안자니까 이젠 걱정 된다.”

두 사람이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나누며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하단성에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이 하단성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느꼈다.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팽팽한 투기를.

하나 워낙 완벽한 은신을 펼치고 있었기에 얼핏 건물 자체에서 그런 험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저벅저벅.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이 하단성에 고요히 울렸다.

하단성의 특징이라면 각 건물들이 전부 성벽 쪽으로 붙어 있고, 한가운데가 텅 빈 공터라는 점이다.

평상시에는 수련을 하는 공터로 사용되지만, 침입자가 있을 시에는 포위하기에도 좋은 구조였다.

어쨌거나 두 사람이 그렇게 너른 공터 한가운데에 다다랐을 때였다.

촤촤촤아아아악!

일순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면서 수백, 아니 수천 자루의 암기가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찰나, 석탄강이 사슬낫을 빠르게 잡아 돌리면서 도기를 실었다.

솨솨솨아아앙!

사비강으로부터 받은 참월연도 중 ‘광휘반도(光輝盤刀)’라는 초식이었다.

두 자루의 사슬낫을 매우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날아드는 암기들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초식이었다.

물론, 이 경우 포위를 하며 거리를 좁혀 오는 자들이 있었다면 회전하는 사슬낫이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갔으리라.

즉, 광범위한 방어와 공격을 겸하는 초식으로는 제격이었다.

카라라라라라라라랑!

마치 철판 위에서 콩이 볶이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새카맣게 쏟아져 내리던 암기가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쉬쉬쉬쉬쉬쉭!

콰콰콰콰콰콱!

사방으로 뻗어 나간 암기들은 건물 지붕과 문설주에 깊이 처박혔다.

한바탕 소란이 멈추자, 석탄강과 옹기승 주변으로 온통 가시밭처럼 암기가 꽂혀 있었다.

한편, 석탄강의 무위에 옹기승도 조금 놀란 것인지 나직이 감탄을 터뜨렸다.

“잘 어울리는군.”

“이 정도로 놀라면 섭하지.”

“놀라지는 않았다.”

“거짓말은.”

옹기승이 피식 웃었다.

다음 순간,

타타타타타탓!

주변 건물의 지붕 위에서 흑의 무인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옹기승과 석탄강이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가며 살초를 퍼붓기 시작했다.

쉬익! 푹! 쉭! 푹!

수면신공을 사용하는 옹기승의 진짜 무서운 점은 바로 살기를 쏟아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잠을 자는 사람처럼 은밀하게 다가가 살검을 뻗어낸다.

움직임도 특이하다.

검이 먼저 움직이고, 옹기승이 거기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검이 살아서 날뛰는 것 같다고나 할까?

옹기승의 몸은 끈에 매달린 연처럼 펄럭이며 이동하는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좀처럼 그 역동성을 눈과 귀로 쫓기가 힘들다.

때문에 흑의 무인들은 번번이 옹기승을 베지 못하고 바닥을 찍거나 오히려 동료를 베기까지 했다.

반면 옹기승은 적의 틈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검을 휘저어 갔다.

꿈결에 취한 듯, 잠에 취한 듯 그렇게 흐느적흐느적 움직였지만, 그가 검에 이끌려 갈 때마다 혈향이 피었고, 비명과 핏물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옹기승은 내심 희열을 느꼈다.

‘달라졌다. 확실히…!’

그동안 사비강과 함께 싸우면서, 또 사비강을 암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 것이리라.

언젠가 사비강이 수업 시간 때 이런 말을 했다.

“뭐든 즐겁게 익히면 실력은 더 빨리 늘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사비강과의 대결을 즐기는 동안 엄청난 도약이 있었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잠꼬대처럼 피식피식 웃음까지 나왔다.

한편, 그 모습을 보는 흑의 무인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웃어…?’

수백 명을 상대로 고작 두 명이 쳐들어와서는 웃으면서 살육을 즐기고 있다니!

괘씸하고 약이 오르면서도 그 괴이한 모습에 등골이 오싹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옹기승이 그렇듯 고요한 암살자처럼 싸웠다면, 석탄강은 그야말로 패도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핫!”

그가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연도참공(聯刀斬空)의 초식을 펼쳤다.

그러자 사슬낫이 지면과 수평으로 날아가면서 크게 반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으악! 피해랏!”

“크억!”

흑의 무인들이 우르르 흩어지면서 몸을 날렸지만, 몇몇 이들은 사지가 절단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사슬낫에서 솟아난 도기는 원래의 길이보다 훨씬 먼 곳까지 위력을 미치면서 주변을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쾅!

성벽 쪽에 위치한 건물들을 베면서 기다란 상흔을 남긴 것.

벽이 움푹 파이거나, 창문이 찢어지며 떨어져나갔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몸을 피한 무인들이 혀를 내둘렀다.

‘저 미친놈…!’

‘도대체 이 녀석들은 정체가 뭐지?’

이 정도라면 두 사람 모두 절정을 넘어선 무인이다.

혈사련에서 망나니라고 낙인찍힌 무인들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이야.

문제는 이들이 절정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초절정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실제로 강호에서는 절정 고수가 초절정 고수를 이기는 경우가 이따금씩 발생한다.

무공의 단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지금 옹기승과 석탄강이 유독 강해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의외성.

이들은 틀에 박힌 무공을 펼치지 않는다.

원래 혈사련의 무인들이 그런 경향이 강하지만, 지금 이 두 사람은 그 이상으로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사비강을 만나면서 이들의 종잡을 수 없는 무공의 변화는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보니 흑의 무인들이 느끼기에는 초절정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대응하기가 까다로운 것이다.

한편, 두 사람의 화려한 전투를 멀찍한 곳에서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상단성의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강룡과 웃는 인상의 사내였다.

“당신의 생각과 달리 둘이 나타났군.”

웃는 인상의 남자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흑운성주 곽일도 앞에서는 수하라고 소개시켰지만, 사실 그는 구강룡의 수하가 아닌 인피면구를 쓴 흑면인이었다.

“뭐, 둘이든 셋이든 상관이 있나? 내 말대로 먹이가 제발로 나타났다는 게 중요한 거지.”

구강룡이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인피면구를 쓴 흑면인이 구강룡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저자가 우리가 원하는 먹이라는 게 확실하오?”

“그야 직접 잡아보면 알 거 아닌가?”

“만약 허튼 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그건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고.”

흑면인이 구강룡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좋소. 그럴 일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말을 마친 흑면인이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수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흑의 무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진법에 변화가 생겼다.

그러더니 그들이 일제히 석탄강을 향해 달려드는 게 아닌가?

타타타앗!

하늘을 새까맣게 메우면서 흑의 무인들이 일시에 석탄강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촤르르르르륵!

석탄강의 손에서 사슬낫이 뻗어 나가며 달려드는 적들을 가차없이 베어냈다.

서서컥! 서걱!

피가 치솟고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무인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흑의 무인들은 갑자기 동귀어진을 작정한 듯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자들이 몰려드니 사슬을 늘어뜨려 싸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촤르르륵, 탁!

사슬을 당겨 낫을 짧게 쥔 그가 근거리까지 달려든 적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낫을 휘둘러 갔다.

서걱, 서거걱! 수칵!

귀도난무(鬼刀亂舞)!

그야말로 귀신이 칼춤을 추듯 석탄강은 정신없이 낫을 휘둘렀다.

비명과 핏물이 치솟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흑의 무인들은 끝없이 밀려들었다.

카앙!

이윽고 대도를 휘두른 흑의 무인을 상대로 석탄강이 이를 악물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뒤에서 또 다른 자가 검을 내질러 왔다.

까앙!

불꽃이 튀면서 상대가 휘청거렸다.

그 찰나, 석탄강은 낫을 휘돌려 자신의 몸을 사슬로 팽팽 감아 버렸다.

마치 똬리를 틀 듯 몸을 감싼 사슬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무기를 방어하는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거리가 좁혀지면 다시 몸을 회전해서 사슬낫을 풀어냄과 동시에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

바로 ‘원추회격(圓錐回激)’이라는 초식이다.

물결치듯 회전하며 돌아가는 사슬낫은 잠시간의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반면 모든 무인들이 일시에 석탄강에게 향하자, 옹기승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넘쳤다.

옹기승이 석탄강을 돕기 위해 검을 내뻗으려는데,

“가라!”

흑의 무인들에게 에워싸인 석탄강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무인들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석탄강의 모습을 보며 옹기승이 멈칫거리자, 석탄강이 다시 소리쳤다.

“가라. 집안일이면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지.”

“…….”

“봤지? 나한테 벌떼처럼 달려드는 이놈들? 너보다 내가 더 강하다는 증거다!”

그 와중에 자존심을 내세우며 소리치는 석탄강이었다.

옹기승이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돌아섰다.

“잘 버텨라. 집안일 해결하고 올 테니.”

옹기승이 바닥을 차고 중단성을 향해 몸을 던졌다.

슈칵! 스컥! 서걱!

한편, 정신없이 낫을 휘두르는 석탄강은 멀어져 가는 옹기승을 보며 혀를 찼다.

“칫, 진짜로 가네. 매정한 놈!”

그의 사슬낫이 더욱 강한 살기를 머금어 갔다.

그와 동시에 그를 향해 달려드는 흑의 무인들도 더욱 기세를 올려 갔다.

**

백호당주를 만나고 돌아온 사비강이 수업을 막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교관님. 강아와 옹기승이 수업에 불참했어요.”

유송령이 미간을 좁히며 불쑥 말을 꺼냈다.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요? 그럼, 그 두 사람 어딜 갔는지도 아시는 건가요?”

“알지.”

“어디죠?”

“신경 쓸 것 없다.”

하지만 유송령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지금껏 석탄강이 자신에게 말 한 마디 없이 이렇게 독단적인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신경 써야겠어요. 아시잖아요? 우리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강아지가 아니라는 걸. 대답해 주시죠. 두 사람 어디로 갔죠?”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두 사람은 특급 수련 중이다. 마침 인근에 좋은 교재가 생겨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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