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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96화 (296/670)

# 296

귀환 마교관

296화

구강룡이 싸늘한 시선으로 수하에게 명령했다.

“처리해.”

수하가 고개를 슬쩍 끄덕이더니 손을 불쑥 뻗었다.

총관은 느닷없이 얼굴 앞에 내밀어진 손바닥을 보고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이게 뭔…?”

“화염구.”

화르르륵, 퍼엉!

수하의 손바닥에 맺혔던 불덩이가 일순간 쏘아지면서 총관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총관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머리를 잃고는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저만치 나가떨어진 그의 머리는 불에 잔뜩 그슬려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

곽일도는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총관을 바라보면서 입만 척 벌리고 말았다.

태어나서 저런 무공은 처음 보았다.

손에서 불덩이를 쏘아 내다니?

대체 저자는 무슨 무공을…?

놀라기는 그의 심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곽일도와 달리 계속 놀라고만 있을 여유는 없었다.

“크윽…!”

심복의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터져 나왔다.

구강룡이 그의 손목을 잡은 채로 서서히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것.

내공을 끌어올려 맞섰지만, 구강룡의 내공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익…!”

심복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반면 구강룡은 시종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심복을 향해 읊조리듯 말했다.

“난 말이지. 뒤통수치려는 인간을 아주 싫어해.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으아압!”

심복이 체면불고하고 기합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검을 쥔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점점 손의 방향이 뒤틀리면서 검봉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검을 거꾸로 겨누고 자결이라도 하려는 자세가 되고 말았다.

심복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점점 검신이 목 줄기에 와 닿는다.

이윽고 차가운 날이 목의 피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큭…!”

“천천히 썰어 주마.”

구강룡의 눈에 잔혹한 빛이 떠올랐다.

그는 심복의 손목을 쥔 채로 천천히 심복의 목을 검신으로 썰어 갔다.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구강룡은 내공을 운용해서 심복이 검을 놓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검신이 심복의 목 삼분지 일쯤을 파고들었을 때,

털썩…!

심복이 부들부들 떨면서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제야 구강룡은 손을 놓아 주었다.

강한 힘에 잡혀 있던 심복의 팔목은 앙상한 가지처럼 그 부분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심복은 그렇게 쓰러진 채로 한참이나 경련을 일으키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편 졸지에 우수한 수하 두 명을 잃은 곽일도는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그가 황망한 눈으로 구강룡을 돌아보았다.

“대,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건가? 내가 자네에게 무슨 서운한 짓이라도 했단 말인가?”

“서운한 짓이라면… 지금 했지.”

“허억!”

구강룡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되어 나왔다.

금방이라도 곽일도의 목을 겨눈 검신에서 강기가 솟구쳐 오를 것만 같았다.

“성주께서는 모험심이 강하시군. 짜릿한 모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말이야.”

“잠, 잠깐! 제발 살려 주게!”

곽일도가 느닷없이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구강룡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소를 머금었다.

그래, 흑운성주 곽일도는 이런 자다.

결코 자존심 따위에 목숨을 거는 자가 아니다.

그래서 성벽도 이렇게 높이 쌓은 것일 테지만.

곽일도가 무릎을 꿇은 채 말을 이었다.

“시키는 대로 다 하겠네. 성문을 열고 모든 병력을 물리겠네. 그러니 제발 살려 주게!”

“또 뒤통수를 치는 건 아니겠지?”

“물론일세! 난 모험을 그리 좋아하지 않네!”

“그랬군.”

구강룡이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

류여중이 낭하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침내 웅장한 문 앞에 멈춘 류여중이 안을 향해 고했다.

“련주님, 접니다.”

“들어오게.”

허무극의 대답에 류여중이 얼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허무극은 천천히 일어나서 바지를 걸쳐 입기 시작했고,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나신의 시녀들은 흩어지는 나비처럼 사방으로 물러났다.

류여중은 허무극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이유가 있을 테지. 무슨 일인가?”

류여중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살풍단주 구강룡이 돌아왔습니다.”

“그런가? 어디에 있나?”

“현재 흑운성을 차지하고 농성 중입니다.”

“흑운성을?”

허무극이 뜻밖이라는 듯 바라보자, 류여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흑운성의 총관과 성주의 심복까지 죽였습니다. 주둔하던 무인들은 모두 성 밖으로 추방당해 현재 본궁으로 피신한 상태입니다.”

“성주는?”

“성내 뇌옥에 갇힌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행히 그 외의 사상자는 없습니다.”

“제대로 일을 벌이는군.”

허무극의 반응에 류여중이 미간을 슬쩍 좁혔다.

이건 저런 한 마디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혈사련에 속한 문파 하나를 침략해서 난장을 피운 사건이다.

당장 구강룡을 잡아다가 목을 쳐도 부족함이 없다.

한데 저렇게 태연히 감탄을 하고 있다니!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강룡은 현재 신생조가 아닌가?”

“맞습니다.”

“하면 사비강 교관의 소관이겠군. 사비강 교관에게 책임을 물어 그가 얌전히 복귀하도록 추궁하는 게 어떤가?”

“놈은 혈사련 무인의 신분을 이용해서 흑운성을 손쉽게 차지했습니다. 지금 그를 따르는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흑운성에 잔뜩 주둔하고 있습니다.”

“허참, 어딜 가나 통솔력은 있는 모양이군. 그새 그만한 세력을 구축했다니.”

“지금 감탄하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너무 답답한 나머지 류여중이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을 던지고 말았다.

하지만 허무극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사상자는 그 두 명이 전부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합니다만.”

“하면 이번 일은 사비강 교관에게 맡겨 보도록 하지. 그의 지도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류여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체 예전부터 구강룡에게 왜 그리 관대하십니까? 그는 다른 신생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망나니 같은 자가 아닙니까?”

허무극이 묘한 미소를 짓더니 류여중을 슬쩍 돌아보았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지. 이용을 하거나 이용을 당하거나. 한데 이용하는 대상에게는 관대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용이라니 대체 뭘….”

말을 꺼내던 류여중이 곧 입을 다물어 버렸다.

허무극의 표정에서 더 이상의 대답은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속으로 가만히 질문을 떠올렸다.

‘대체 그를 이용해서 얻고자 하시는 게 뭡니까?’

**

퍽! 콰다앙!

“크윽!”

“윽!”

석탄강과 옹기승이 나가떨어지면서 신음을 흘렸다.

쓰러진 두 사람 앞으로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조금 전 기습은 좀 아까웠다. 조급함을 버린다면 더 좋은 공격이 되었을 거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석탄강과 옹기승은 부루퉁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또 실패다.

이번만큼은 옷깃 정도는 스치겠다는 심정으로 덤볐는데.

사비강이 숙소에서 나올 때까지 반 나절을 꼬박 기다린 끝에 암습을 시도했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사비강이 옹기승을 보며 말했다.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을 때는 너무 애쓸 필요 없다. 차라리 완전히 깨어나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언제까지 꿈만 꾸고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니까.”

사비강이 그렇게 태연히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휙!

사비강 앞으로 복면을 쓴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졌다.

갑자기 나타난 복면인을 본 석탄강과 옹기승이 흠칫거렸다.

특히 며칠 전 복면인들로부터 기습을 받았던 옹기승은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나갔다.

쉬이이잇!

그가 수면검공을 펼치면서 몸이 검에 딸려 나가듯 질주하자, 그 앞을 사비강이 막아섰다.

까앙!

금속성과 함께 사비강이 그대로 옹기승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 일련의 동작이 무척이나 부드러웠기에 옹기승은 기습에 실패하고 떠밀리면서도 전혀 다치지 않았다.

“진정해. 이 녀석은 내 수하니까.”

사비강의 말에 옹기승도 그제야 경계심을 풀고 검을 갈무리했다.

복면을 쓰고 나타난 자는 바로 홍염이었던 것.

사비강이 홍염을 돌아보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보고해.”

“주군께서 찾으시던 ‘구강룡’이라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홍염의 보고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뜻밖에도 옹기승이었다.

그가 흠칫거리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사비강이 홍염에게 물었다.

“그래? 지금 어디에 있지?”

“흑운성을 차지했습니다. 혈사련에서도 처치 곤란으로 난감한 상황인 모양입니다. 아마 주군께 곧 책임 추궁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흑운성이라… 꽤 번거로운 짓을 하는군.”

“아마도 주군을 향한 시위 같은 게 아니겠습니까?”

“시위라…”

그때였다.

옹기승이 불쑥 끼어들면서 홍염에게 물었다.

“방금 구강룡이 흑운성에 있다고 했소?”

홍염이 사비강을 슬쩍 보았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옹기승을 보며 대꾸했다.

“그렇소. 현재 성주를 뇌옥에 가두었고, 그곳의 무인들을 모두 물린 후 자신들이 이끌고 온 무리로 채워 놓았소.”

“흐음. 잘 알겠소.”

옹기승이 입술을 쿡 씹더니 몸을 휙 돌리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석탄강이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얼른 옹기승을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홍염이 사비강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방법이 정말 먹히겠습니까?”

“두고 보면 알겠지.”

사비강이 옹기승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홍염을 돌아보며 물었다.

“옹기승에 대한 조사는 정확한 거겠지?”

“하오문에서도 검증 절차를 거쳤다고 하니 틀림없을 겁니다.”

“흐음.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군.”

사비강이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능소소에게 냄새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줄곧 옹기승에 대해 조사를 해왔다.

능소소가 말한 냄새는 사람의 후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령이 특유의 기운으로 맡은 냄새다.

그런 만큼 옹기승에게 뭔가 있으리라 판단한 것.

그리고 그 판단은 뜻밖의 사실을 밝혀냈다.

사비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옹기승… 그 녀석이 사실 구씨란 말이지? 재미있군. 아, 백호당주도 만나 봐야겠군.”

**

“네가 거길 왜 가냐?”

석탄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옹기승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가 매우 가늘게 눈을 뜨고선 말했다.

“그가 돌아온 건 나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네 발로 직접 갈 필요가 없을 텐데.”

“언젠간 매듭을 풀어야 할 일. 만나 봐야겠다.”

“꼭 가야만 하겠냐?”

“집안일이야. 해결을 봐야지.”

옹기승이 희미하게 웃고는 걸어갔다.

“별 수 없군.”

석탄강이 옹기승의 뒤를 따라 저벅저벅 걸어갔다.

옹기승이 그를 돌아보았다.

“너는 낄 필요 없어.”

“닥쳐라. 내 맘이다.”

옹기승이 잠시 석탄강을 보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후회하지 마라.”

“잠이나 더 자라. 오늘따라 깨어 있는 시간이 많다.”

말을 마친 석탄강이 먼저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흑운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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