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94화 (294/670)

# 294

귀환 마교관

294화

복면인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없어 손을 뻗고 벽을 짚었다.

‘괴, 괴물들이다…!’

그는 여전히 꾸벅꾸벅 졸고 있는 옹기승과 한 걸음 물러서서 팔짱을 낀 채 구경하는 사비강, 그리고 요상한 방식으로 싸우는 추량을 바라보았다.

주변에는 복면을 쓴 동료들이 싸늘한 주검이 된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복면인은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럴 줄은 몰랐다.

이렇게 강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단 말인가?

과연 ‘수면검귀’라는 별호가 괜한 허세는 아니었다.

그리고…

‘저 녀석!’

복면인의 시선이 추량에게 향했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보는 방식으로 싸우는 추량이었다.

분명 맨손인데, 손목에서부터 검강이 튀어나왔다.

게다가 왼손에는 호신강기가 방패처럼 튀어나오더니 방어한다.

아니, 확실하지 않다.

과연 저것이 검강인지, 호신강기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모종의 기운으로 뭉친 검과 방패에 모두 당했다는 점이다.

더 환장할 노릇은….

‘분명히 허점투성이인데…!’

공격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점을 파고들어 공격을 가했던 복면인들은 전부 녀석에게 당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처음에는 동료들이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더 이상 실수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법이다.

뜻밖에도 추량이 방해가 되었기에 복면인들은 가장 약한 추량을 먼저 제거해서 머릿수를 줄여 놓겠다는 생각이었다.

한데 추량에게 덤벼든 예닐곱의 무인들이 모두 어이없게 당해 버렸다.

이 정도 되면 운만 탓할 수는 없지 않나?

상대를 잘못 고른 예닐곱은 사비강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사비강의 무공은 그야말로 넘지 못할 벽이었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들을 보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가 나타날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설마!’

일부러 자신들을 끌어들였던 것일까?

그래서 기습하기 좋은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온 것 역시 계획적으로?

그렇다면 사비강에 대해서 너무 쉽게 봤다.

변수가 하나만 생겨도 골치 아픈 법인데….

한편, 추량은 예닐곱 명의 복면인들을 직접 처리하고 나서 엄청난 자신감이 생겼다.

“보셨습니까? 사부님. 이 정도면 저도 꽤 도움이 되는 것 아닙니까?”

추량의 입매가 자꾸만 씰룩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지?’

싸움이 시작된 초 ․ 중반부터 복면인들이 자신을 집중적으로 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셋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여겨진 모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더럭 겁이 났다.

여기저기에서 살기가 쏟아지고, 살초가 난무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한데…

‘보였어! 확실히!’

그랬다.

신기하게도 녀석들이 일정한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검로가 훤히 보였다.

마치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이랄까?

반경 일 장 이내에 들어온 녀석들이 갑자기 힘을 잃으면서 검공이 둔해진 것이다.

그 정도의 속도라면 추량에게도 문제가 없었다.

재빨리 보법을 밟으면서 검공을 피하고 곧장 마나를 운기해 마나검으로 적을 베었다.

‘슈컥!’ 하는 소리와 함께 적의 머리통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추량은 왼손을 들어 다른 곳에서 달려드는 적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렇게 상대가 마나방패에 막혀 튕겨 나가는 순간, 마나검으로 또 다른 적의 옆구리를 깊게 베어냈다.

그렇게 예닐곱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복면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추량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분이란…

‘크으…!’

지금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이나 공포로 인한 떨림은 아니다.

흥분과 쾌감으로 인한 떨림.

“사부님, 저 녀석도 제게 맡겨 주십시오!”

득의양양해진 추량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복면인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이 건방진 애송이 새끼가…!’

분명 뭔지 모를 사술을 부린 것이리라.

한데 정파 놈들도 사술이라는 걸 사용하는 건가?

하긴 저 사비강이라는 녀석의 정체부터 수상하다.

싸우는 방식을 보면 정도의 무공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그 제자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턱!

복면인의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누가 보냈냐? 네놈들은 누구냐?”

추량이 짐짓 냉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순간,

타앗!

“뒈져라앗!”

“엇?”

복면인이 느닷없이 바닥을 차고는 추량을 향해 몸을 날려 왔다.

“이 바보 같은… 그래봐야 헛수고라는 걸….”

추량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마나검을 생성해서 뻗으려는데,

스팟!

찰나지간 복면인과 추량 사이에 사비강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동시에 사비강이 양손을 활짝 뻗었다.

퍼퍼엉!

그의 손바닥에서 쌍장이 뻗어 나가면서 추량이 튕기듯 멀어졌다.

마찬가지로 복면인 역시 튕겨 나갔는데,

콰아앙!

놀랍게도 그의 몸이 갈가리 찢어지면서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헉!”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은 추량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복면인은 그 흔적을 찾기도 힘들 만큼 뼈와 살점이 분리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설마… 자폭을 하려고…?”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복면인이 달려드는 그 순간, 추량은 그를 고문해서 배후 세력을 알아내기 위해 살초를 쓰지 않았다.

대신 요혈을 피해 그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달아나지 못하도록 구속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까딱하다간 죽을 뻔했잖아.’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상대가 자폭하려고 할 줄이야.

자멸공(自滅功)을 익힌 것이리라.

사비강 역시 쌍장을 뻗는 것과 동시에 실드를 펼치지 않았더라면 그 폭발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사,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추량이 가슴을 진정시키며 사비강을 불렀다.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죽어 나자빠진 시신들을 훑어보았다.

“전부 죽어 버렸군.”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기분에 취해서 그만….”

추량이 뒤늦은 후회로 고개를 숙였다.

찰나,

탓!

쉬이이잇!

“허억!”

사비강이 느닷없이 추량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베르타스가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추량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쒸에에엑!

“헙!”

추량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베르타스가 눈앞까지 날아와 목을 겨누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역시 사부님은 차원이 다르다. 손가락도 까딱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내가 너무 설쳐서 화나신 건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는 사이 추량의 가슴 품에 들어있던 반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추량 옆으로 폴짝 내려서서는 털을 곤두세웠다.

- 가르르릉!

녀석이 잔뜩 화가 났는지 콧잔등을 찌푸리고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사비강의 눈길이 반묘에게 향했다.

“흐음. 역시 그쪽인가?”

“네…?”

추량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자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검집에 갈무리하고는 돌아섰다.

잠시 후 반묘도 경계를 풀더니 추량의 몸을 타고는 어깨까지 올라갔다.

“디버프다.”

“예?”

추량이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녀석들이 널 공격할 때, 갑자기 둔해지는 느낌이 들었을 거야.”

“아…! 그렇습니다!”

“네가 강해진 게 아닐까 착각할 수도 있겠다만, 저 녀석의 힘이랄까?”

“이 녀석…요?”

추량의 손가락이 반묘를 가리켰다.

반묘가 하품을 길게 하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긴 건 그래보여도 어쨌거나 마수니까. 상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기력을 약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모양이군.”

“아…”

“생각보다 아주 쓸모없는 녀석은 아니었으니 다행이다. 잘 길들여 봐라.”

“하, 하지만… 사부님이 지금 절 공격하실 때는 아무런 느낌도…”

“그야… 저 녀석이 디버프를 걸기에는 내가 너무 강한 탓이지.”

‘그런 말도 잘도 하시는군요.’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사비강이기에 추량은 별로 이상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녀석이 그런 능력이 있단 말이지?’

추량이 어깨에 앉은 반묘를 손바닥 위에 올려 두고는 가만히 보았다.

영롱하면서도 푸른 눈을 가진 반묘가 추량을 가만히 올려다보면서 ‘니야앙’ 하고는 울었다.

왠지 자신의 실력이 향상된 게 아니라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좀 허탈했지만, 그래도 쓸모없는 애완동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추량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사비강은 고개를 돌리고 옹기승을 보았다.

옹기승은 검을 품에 안은 채 언제나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만 일어나라.”

“…….”

사비강이 한숨을 내쉬고 옹기승의 뒤통수를 치려는 순간,

휙!

옹기승이 눈을 감은 채 몸을 휙 젖히며 피했다.

순간 사비강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너 이 새끼… 당장 안 깨면 뼈째 썰어….”

“으음…? 아, 다 죽었습니까?”

“…….”

“저 녀석들은 뭐죠? 교관님은 원수진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사비강이 옹기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니라 너다.”

“예?”

“저 녀석들이 노린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예? 저를요? 왜요?”

옹기승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사비강이 게슴츠레 뜬 눈으로 보다가 말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글쎄요… 전….”

그 순간,

탓!

별안간 사비강이 경공을 펼치더니 옆 건물의 지붕 위로 훌쩍 도약했다.

사비강이 차가운 눈초리로 주변을 훑었다.

‘방금 분명히…’

기척을 느꼈다.

복면인과 한 패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누군가 이쪽을 예의 주시한 것만은 분명하다.

‘꽤나 은신에 능한 자군.’

적어도 은신술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자이리라.

한편, 사비강이 서 있는 지붕에서 대략 삼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주저앉아 구걸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최대한 숨을 눌러 참았다.

‘무, 무슨 기감이 저렇게나…!’

아주 잠깐 기가 흐트러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비강은 그걸 눈치 채고는 저곳 지붕 위에 올라 주변을 살피는 것이다.

게다가 저 경신법은 뭐란 말인가?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비강의 몸이 여기저기 번쩍거리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는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서 사비강이 지붕에서 지붕으로 이동하는 모습이었지만, 마법을 모르는 그로서는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마침 사비강이 이쪽으로 훅 가까워졌을 때, 거지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는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한 푼만 줍쇼… 한 푼만 줍쇼… 먹을 거라도 좋습니다….”

사비강은 거지에게 시선을 슬쩍 던졌지만, 더 이상 깊은 의심을 가지진 않는지 다시 먼 곳으로 이동했다.

가까스로 안도의 숨을 내쉰 거지가 포대 자루에 담긴 철전과 음식을 쓸어 담고는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걸음이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