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86화 (286/670)

# 286

귀환 마교관

286화

사비강이 이끄는 침투조들이 장원에 들이닥치자 신도들은 정신없이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들이닥치자 그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비강의 무공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수준.

한 차례 손을 휘저으면 얼음의 대지로 변하고, 또 한 차례 손을 휘저으면 화염이 타오르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천멸대와 신생조를 하나의 침투조로 엮는 바람에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투기를 일으키며 싸워대니 그 기세가 대단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침투조는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적을 향해 거침없이 살공을 펼쳐 갔다.

“하아앗!”

목단화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혼돈뇌정 초식을 구사하자, 사심자가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뱀처럼 뻗어 나가면서 적의 목을 베어 갔다.

“크아악!”

“아아악!”

연신 비명이 터져 나올 때마다 허공으로 핏줄기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렇게 마구 뻗어 가던 사심자가 어느 순간 옆에 있는 설서린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

설서린이 얼른 보법을 밟으며 허리를 젖히자, 사심자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가슴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설서린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머, 이게 무슨 짓일까?”

“어머, 미안해라. 내가 아직 미숙해서 가끔 조절이 잘 안 돼. 이해 좀 해줘. 그래도 역시 대단하네. 상처 입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 정도 수준으로 상처 입을 만큼 약하진 않아서.”

설서린이 생글생글 웃더니, 느닷없이 마칸의 꼬리를 휘둘러 갔다.

“헛!”

목단화가 헛바람을 삼키며 움찔거리는 사이, 이미 마칸의 꼬리는 그녀의 뺨을 스치듯 지나가더니 배후에서 달려드는 신도 한 명의 목을 휘어 감았다.

곧이어 설서린의 뺨에 문신처럼 얼룩이 지는 순간,

촤라라락!

마칸의 꼬리에서 가시가 돋아나오면서 신도의 목을 찔렀다.

“커억!”

결국 바닥에 쓰러진 신도는 한 차례 경련을 일으키고는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대단…하군.’

목단화가 입술을 꾹 씹은 채 설서린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독특한 무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렇게 변형까지 될 줄은 몰랐다.

뿐만 아니라 설서린의 기도 자체도 달라졌다.

지금 설서린이 보여준 무위는 혀가 내둘러질 정도로 빠르고 고강했다.

설서린이 마칸의 꼬리를 거두어들이면서 생긋 웃었다.

“아, 고맙다는 인사는 넣어 둬. 그래도 한 조로 묶였는데, 약자를 보호하는 건 강자의 의무 아니겠어?”

목단화의 이마에 핏대가 빠직 돋아났다.

뭐가 어쩌고 어째?

마음 같아서는 당장 머리카락이라도 움켜잡고 싸우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꾹꾹 눌러 참았다.

대신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분노를 적들을 향해 풀어 나갔다.

쉬이이잇! 쉬쉬쉿!

“크아아악!”

“헉, 도, 도망… 아악!”

그렇게 두 사람은 신도들의 비명을 들으며 화려한 춤사위를 벌였다.

물론 그들처럼 냉랭한 사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조로 묶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굉장히 무심한 전투를 벌이는 사람도 있었다.

“크아아악!”

“우아앗! 갑자기 무슨 바람이…!”

느닷없이 불어 닥친 돌풍 때문에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던 신도들이 속수무책으로 날아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익! 다들 중심을 잡고 버텨!”

신도들 중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자가 양팔을 교차하며 다리를 굽히고 버텼다.

후아아아아앙!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강풍!

만약 그의 내공이 상당한 경지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벌써 가을바람에 나뒹구는 낙엽 신세가 되었으리라.

한 명이 그렇게 버티기 시작하니, 다른 자들도 얼른 중심을 잡고 내공을 운기하며 버티기 시작했다.

“제기랄! 어째서 이런 바람이…!”

“사술일 거다! 다들 정신 차려라!”

그때 우두머리 신도가 능소소를 보고는 소리쳤다.

“저 여자다! 저년이 바람을 일으키는 거다!”

“저년을 죽엿!”

신도들이 악을 쓰며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수십 마리의 맹금으로 변한 실레스틴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그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물론, 이는 청의봉으로 정령을 소환한 능소소에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실제로 최상급 정령인 실레스틴은 어지간한 절정 고수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으니, 신도들이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강한 바람에 맞서면서도 우두머리 신도는 조금씩 전진해 나갔다.

반면 능소소는 내심 초조했다.

실제로 싸우는 것은 실레스틴이지만, 그를 소환해서 장시간 유지할수록 기력이 소모되는 것은 능소소였다.

그런데 같은 조로 편성된 저 남자는…

‘도대체 어쩜 이런 상황에서 잘 수가 있는 거지? 기면증이라도 있는 건가?’

능소소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신생조 소속의 저 낯선 남자는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줄곧 팔짱을 낀 채 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처음 장원으로 침투하기 전에도 꾸벅꾸벅 졸고 있기에 많이 피곤한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다.

한데 치열한 접전 중에도 자고 있다니!

‘아아… 이젠 한계야…!’

청의봉이 아니었다면 진작 실레스틴을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버틴 것도 용한 것이다.

마침내 능소소가 소환을 멈추고는 두 무릎을 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헉… 더 이상은… 무리야…”

한편, 갑자기 돌풍이 사라지니 중심을 잡고 버티던 신도들이 일시에 앞으로 쏠리면서 와르르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계집년!”

“잡술도 이젠 끝이다!”

악에 받친 신도들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살검을 뿌리며 떨어져 내리는 그 순간,

쉬이이잇! 쉬익! 쉬익! 쉬익!

한 줄기 섬광이 솟아오르며 그림자들을 거침없이 베어 가는 것이 아닌가?

꾸벅꾸벅 졸고 있던 옹기승이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적들을 향해 몸을 던진 것이었다.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바로 능소소였다.

“저, 저 사람… 자면서 싸우잖아?”

분명 그녀는 보았다.

졸고 있던 옹기승이 눈을 감은 채로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크아악!”

“이건 또 뭔…! 아악!”

저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신도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그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나뒹굴자, 능소소가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실레스틴을 소환했다.

“실레스틴!”

다음 순간 거대한 돌풍이 휘몰아치면서 쓰러진 신도들을 멀찍이 날려 보내 버렸다.

한바탕 싸움이 정리되자 능소소가 한층 밝아진 얼굴로 옹기승에게 다가갔다.

“아… 정말 대단하세요! 감탄했어요. 저는 졸고 계신 줄만 알고… 아참, 아직도 이름을 모르고 있었네요. 아, 저는 능소소라고 해요!”

“…….”

“이렇게 강한 줄 몰랐어요. 같은 조가 되어서 정말 든든해요.”

“…쿠울.”

능소소는 그제야 옹기승이 다시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입을 척 벌리고 있다가 옹기승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저기…요?”

“으음…? 아! 아직 여기군요. 흐아암. 이동해야죠?”

“아… 네. 그런데 이름이…?”

“…….”

“저기 이름이 뭐냐고요!”

능소소가 다시 버럭 소리치자 얼른 정신을 차린 옹기승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이 좀 많아서… 제 이름은… 옹… 옹…, 헉! 순간 잠들 뻔했다. ‘옹기승’입니다.”

“아… 옹 대협. 저는 능소소라고 해요.”

“예, 아주 예쁜… 이름… 쿨…”

이쯤 되자 능소소도 더 이상은 말을 걸기 힘들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걸음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옹기승은 잠을 자면서도 능소소 곁을 잘 따라다녔다.

마침 모퉁이를 돌아가자, 저만치 염자량이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도와줘야겠어!’

그녀가 얼른 달려가려다가 곧 걸음을 멈추었다.

다음 순간,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염자량은 삼인 일조로 편성되었는데, 바로 유송령, 석탄강과 함께 싸웠다.

“다들… 정말 대단해.”

능소소는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했다.

사슬낫을 휘두르는 시커먼 남자는 생전 처음 보는 방식으로 적들을 상대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대도를 든 여인과의 호흡이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남자의 사슬이 때론 유송령에게 발판이 되어 주었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명줄이 되기도 했으며, 힘을 증폭시켜 주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거기에 염자량이 흑패도로 보조를 하니 그들을 대적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촤라라라라락! 서컥!

“크억!”

매끄러운 마찰음 끝에 섬뜩한 파육음이 울렸다.

이어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

낫이 신도의 가슴에 박히자, 유송령이 늘어진 사슬을 밟으며 빠르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염자량이 얼른 몸을 날리고는 그 역시 사슬을 밟으며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타다닷!

대도를 든 두 사람이 사슬낫 끝에 다다라서는 동시에 양쪽으로 날아올랐다.

“하아앗!”

“흐아압!”

서커엉!

수카앙!

검기가 폭사하면서 두 사람에게 달려들던 신도들이 무더기로 쓰러져 나갔다.

“흐익! 괴, 괴물들이다!”

“이 멍청한 놈들! 맞서 싸우지 못할까!”

겁을 먹고 도망가는 신도가 생기자,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신도가 얼른 몸을 날리더니, 그의 머리를 일장에 터뜨려 죽여 버렸다.

하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신도 몇몇은 아예 다른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들을 바라보던 염자량이 유송령에게 다가가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소저의 뛰어난 무공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구려. 나는 ‘염자량’이라고 하오. 혹시 소저의 고명(高名)을 알 수 있겠소?”

“별로 대단할 것도 없지만 알려 주죠. ‘유송령’이에요.”

다소 드센 성격인 그녀였지만, 염자량이 무척 정중하게 나오니 무턱대고 막말을 쏟아낼 수는 없었다.

염자량으로서는 석탄강의 무예도 상당하다고 느꼈지만, 자신과 비슷한 대도를 들고 도법을 펼치는 유송령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

한편,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석탄강이 미간을 푹 구기더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령아.”

“아, 강아. 이 친구는 ‘석탄강’이라고 해요. 사슬낫을 잘…”

“가자. 령아.”

석탄강이 말을 가로지르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유송령의 손목을 휙 낚아챘다.

“어어? 일단 같은 조인데 통성명이라도….”

“이름 안다고 달라질 건 없지.”

석탄강의 까칠함에 유송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래?”

“그리고 너.”

석탄강이 걸음을 멈추더니 염자량을 낫으로 가리켰다.

어딘지 흉흉한 기세에 염자량이 움찔거리고 바라보자, 석탄강이 무뚝뚝한 음성으로 툭 던지듯 말했다.

“내 사슬에 올라타지 마라.”

“아… 그건 싸우다 보니 꽤 효율적인 공격이라는 생각에 동의도 없이 그렇게 됐소. 기분 나빴다면….”

하지만 석탄강은 염자량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유송령을 끌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염자량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중얼거렸다.

“뭔가… 미움 받는 느낌이군. 왜지?”

“왠지 난 알 것 같은데?”

어느새 다가왔는지 능소소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어딘지 부러운 눈빛으로 저만치 걸어가는 유송령과 석탄강의 뒷모습을 보았다.

염자량이 능소소를 보고는 물었다.

“그래? 왜? 난 저들에게 무례하게 굴지도 않았는데!”

“글쎄… ‘너무 쉽게 정답을 가르쳐 주면 발전이 없다’고 사비강 교관님이 늘 말씀하셨잖아.”

“쳇. 너까지 이러기냐?”

염자량이 투덜거리는 순간,

구구구구구우웅!

갑자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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