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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84화 (284/670)

# 284

귀환 마교관

284화

설서린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깔깔거리며 사비강에게 물었다.

“어머, 교관님, 저한테 기루 차려 주실 거예요? 그럼 전 저런 촌스러운 애는 쓰지 않을 건데.”

순간 목단화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파바밧 튀었다.

금방이라도 찢어발길 듯한 살기가 폭사되니, 설서린이 짐짓 어깨를 움츠리며 사비강에게 더욱 매달렸다.

“어머, 교관니임. 쟤 좀 무서운 것 같아요. 성질머리가 아주….”

마침내 목단화가 더는 참지 못하고 연검을 뽑아 들려는데, 사비강이 설서린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다들 그만해라. 물고 뜯고 싸우는 건 작전 끝나고 얼마든지 시간을 주지. 하지만 그전에는 집중하도록 해. 경고는 한 번만 한다.”

늘 장난기 가득한 사비강이었지만, 지금의 말투는 무척 엄중했기에 설서린도 더 이상 도발을 하진 않았다.

사비강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정해 준 대로 이인 일조 혹은 삼인 일조로 함께 움직이도록 한다. 북쪽 침투조는 맹 영감의 지시에 따르도록 하고, 남측 침투조는 단리정의 지시에 따른다. 누구든 이 두 사람의 명을 어긴다면 내게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계도를 해주겠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왜 없겠나?

신생조 중의 절반 정도는 단리정의 명을 들어야 하고, 천멸대 중 절반 정도는 맹가숙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하지만 지금 상황이 엄중한 만큼 누구도 면전에서 싫은 내색을 하지는 못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각자 위치로. 한 식경 후에 신호를 주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신생조원과 천멸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

“으음…!”

매설란은 희미한 신음을 흘리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순간 그녀는 수십 개의 바늘이 뱃속을 쑤시는 것만 같은 통증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렸다.

“흐윽…!”

파도처럼 몰아치는 격통 때문에 오히려 의식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매설란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차가운 돌바닥.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창문 하나 없는 방이지만, 창살문 너머에서 스며드는 빛으로 대략의 사물들이 분간이 되었다.

‘여긴…?’

어둡고 습한 것으로 보아서는 어느 동혈 속이거나 지하이리라.

완전히 정신이 돌아온 매설란은 위기감을 느끼고는 얼른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절그렁!

묵직하면서도 차가운 금속이 손목과 발목을 구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금속은 다시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체내의 공력을 온전하게 발출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깨달았다.

‘공진철…!’

그녀는 얼른 바로 누운 채로 체내의 모든 공력을 마나로 치환했다.

음양환유마나심법.

지난 육 년간 시간이 비틀린 동혈 안에서 사비강으로부터 혹독하게 지도 받았던 내공심법이었다.

다행히 공진철에 구속되어도 음양환유마나심법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아마도 진기의 흐름이 일반적인 중원의 방식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리라.

매설란은 심장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마나를 느끼며 일단은 안도했다.

‘좋아, 아직 솟아날 구멍은 있어!’

마나로 치환된 이 기운을 내공처럼 같은 혈맥을 따라 운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럼 공진철에 의해 억제될까?

아니면 공력이 마나로 치환된 상태이니 그 힘을 밖으로 발출하는데 문제가 없을까?

이에 대해서는 사비강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으면 진작 물어볼 걸.’

하긴 미리 물어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방법이 없는 거다.

일단 해보는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마나에 대해서는 공진철이 전혀 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면 왠지 가능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비강 역시 이런 상황이 있었다고 했다.

혈사련의 분타로 끌려갔을 때.

그는 공진철에 구속된 상태에서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이 발동된다면, 무공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공진철은 말 그대로 내기의 성질을 억누르는 것이지, 무공의 심법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다만 여기에도 문제점이 하나 있다.

공진철 자체의 내구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시 사비강이 말했다.

마법을 사용하고도 공진철 자체의 내구성이 생각보다 강해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기회를 봐야 해….’

매설란은 계속해서 음양환유마나심법을 이용해 마나를 쌓아 가면서 의식을 잃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은시 지단주 오재상을 죽인 직후, 무너졌던 돌무더기를 부수면서 청면인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너무나 허무하게 당했지.’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자신은 기력을 완전히 소모한 상태였으니까.

한데 놀라운 것은 그의 싸움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그자 분명히…’

그랬다.

청면인은 사비강과 비슷한 방식으로 싸웠다.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나마 다행인 건 용린갑을 착용하고 있어서, 그자의 마법에 직격탄을 맞고도 기절하는 수준에서 그쳤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내상까지 입어서 이처럼 빠르게 의식을 회복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기척…!’

매설란은 창살문 너머로 누군가 다가오는 걸 느꼈다.

마침 창살문 밖에 그림자 둘이 멈춰 서더니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였지?”

“그렇습니다.”

“그년 진짜 죽여 주더만.”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어차피 제물이다. 의식을 치르기 전에 한 번 따먹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처녀만 바치는 것도 아니고.”

“청면 어르신이 주의하라고 하셔서….”

“괜찮아. 공진철로 구속해 놨으니 제까짓 게 어쩔 거냐? 너무 걱정 말고 여기 좀 지키고 있어라. 내가 먼저 풀고 나오면 네 차례니까.”

“…알겠습니다.”

마침내 철창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그림자 하나가 들어왔다.

매설란은 아까부터 눈을 감은 채 의식을 잃은 척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매혼섭공의 구결에 따라 마나를 운기하기 시작했다.

내공이 아닌 만큼 얼마나 매혼섭공의 효력이 발휘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효과가 없진 않은 모양이었다.

“후우우. 죽여 주는군.”

뇌옥 안으로 들어온 사내가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신음처럼 목소리를 흘려냈다.

그의 말투와 억양에서 잔뜩 억눌린 욕망이 다분히 느껴졌다.

‘매혼섭공이 먹혀들고 있어.’

이걸로 확실해졌다.

마나를 운기해서 매혼섭공을 펼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공진철 때문인지 마나 때문인지 그 효력은 내공이었을 때보다 훨씬 약했다.

지금쯤이면 벌써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어서 피부를 접촉하자마자 진기를 쪽쪽 빨린 채 살가죽만 남기고 죽었어야 했다.

한데 사내는 달려드는 대신 뜨거운 숨만 훅훅 내쉬면서 매설란을 감상하고 있었다.

복부에 마법 공격을 맞았던 매설란은 옷자락이 찢어져 하얀 아랫배가 훤히 드러난 상태였다.

게다가 미끈한 허벅지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후후후. 이런 미녀가 꼼짝도 못하고 묶여 있으니 더 흥분되는군.”

그의 역겨운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매설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계속해서 매혼섭공을 펼쳤다.

달큰한 내음이 뇌옥 안을 가득 메웠다.

매혼섭공의 영향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피부는 평소보다도 더욱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손을 대면 꿀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피부였다.

어떤 남자라도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 아찔한 유혹을 참지 못했으리라.

“흐흐흐.”

남자는 실없이 웃으며 천천히 매설란에게 다가갔다.

“으으음…”

매설란이 슬쩍 몸을 뒤척이면서 희미한 신음을 흘렸다.

별 것 아닌 이 동작으로 인해 남자의 심장은 튀어나올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완전히 매혼섭공에 걸려든 셈이었다.

누군가 나타나서 그를 방해한다면, 목숨을 걸어야 하리라.

남자가 입을 찢으며 다가와서는 매설란의 몸 위로 천천히 자신의 몸을 덮어 갔다.

매설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체향은 퀴퀴한 뇌옥의 냄새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남자가 매설란의 목덜미를 혀로 핥았다.

“하아아.”

매설란이 뜨거운 숨을 터뜨렸다.

그 순간 사내의 남근은 더 이상 팽창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버렸다.

그의 손이 매설란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흐흐흐! 죽이는 년이군! 하아악! 오늘 내가 이년을 따먹으면 죽어도 원이 없을… 크헛?”

말을 뱉던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갑자기 힘줄이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피부가 점점 시커멓게 물들면서 급속도로 말라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체내의 공력이 급격히 빨려 나간다는 것을 느끼고는 얼른 물러났다.

“이, 이게 뭔…!”

당황한 남자가 황급히 물러나려고 하는데,

“벌써 식어 버리면 재미없잖아. 죽어도 원이 없다며?”

어느새 눈을 뜬 매설란이 사내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을 뱉는 게 아닌가?

“허억!”

남자가 깜짝 놀라며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하지만 그가 놀란 것은 매설란이 깨어 있었다는 점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매설란의 목소리가 심장을 멎게 할 만큼이나 짜릿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두 눈을 마주치는 순간,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만큼 넋이 나가고 말았다.

매설란이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허억! 허억! 헉…!”

사내는 거친 신음을 쏟아냈다.

그는 전신의 기력을 남김없이 빨리면서도 환상적인 쾌락에 젖어 갔다.

마침내 홀로 절정에 다다른 그가 한 차례 경련을 일으키더니 매설란의 몸 위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절그렁.

매설란이 쇠사슬에 연결된 팔을 끌고 와서 사내의 허리춤에 달린 열쇠를 꺼내들었다.

그 후에는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다.

사슬 때문에 운신의 여유가 어느 정도는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사내에게서 취한 열쇠로 공진철을 손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막 구속을 풀어내고 일어났을 때였다.

마침 창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아직 멀었습니까?”

매설란이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섰다.

“예전에 끝났지.”

“헉!”

문밖에 서 있던 사내가 깜짝 놀라 돌아서는 순간,

콰악!

매설란이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컥, 커억!”

그 역시 순식간에 온몸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곧 뼈와 가죽만 남은 채 그 자리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매설란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모반듯한 통로였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혈이 아니다.

그 네모반듯한 통로의 벽에는 놀랍게도 귀한 야명주가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곳이지?’

그때였다.

“……!”

매설란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소름을 느꼈다.

‘조금 전에 분명히…!’

매설란이 고개를 휙 돌리고 통로 끝 쪽을 바라보았다.

붉은 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통로 끝.

그곳에서 분명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울려 나왔다.

한데 귀로 들었다기보다는 영혼을 울렸다는 느낌이랄까?

그 처절함이 너무나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기분 나빠…! 도대체 여긴 뭐야?’

매설란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통로 끝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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